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0
◈ 190화. 배신
구표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줄기 섬광이 벼락같이 솟구쳤다.
서걱!
“컥!”
적안호 해진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져간다.
설마하니 악계화가 먼저 움직이리라곤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이게 무슨…….”
악계화의 행동에 태산표국 무인들의 눈이 부릅떠질 때였다.
칭!
번개같이 뽑혀 나온 나명도의 검이 청금환의 가슴을 노려가고, 품에 들어갔다 나온 조관의 손이 비수를 움켜쥔 채 좌황의 목을 찔러 갔다.
‘젠장!’
구표걸은 영요설의 주먹이 날아든 뒤에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국주님!”
콰앙!
영요설의 주먹이 구표걸의 팔에 작렬하는 순간.
피를 머금은 악계화의 도신은 청금환을 찌르는 나명도의 검을 막아갔다.
캉!
쇳소리가 터지는 순간 나명도의 입에서 뇌성벽력 같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전(戰)!”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좌황의 가슴이 조관의 비수에 꿰뚫린다.
“내가 이겼다.”
비록 창술 대결은 아니었으나 놈은 죽을 것이고 자신은 살 것이다.
비릿한 조관의 미소가 좌황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친다.
“크윽! 배, 배신…….”
“네놈들이 자초한 거야.”
콰앙!
폭음이 터져 나오며 구표걸의 신형이 막사를 찢고 튕겨 나간다.
청금환의 핏발선 눈동자에 노기가 솟구쳤다.
“이놈!”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 대계를 앞두고 오대표국이 사이좋게 무너질 순 없지 않나?”
“노존께서…….”
고개 돌린 청금환은 악계화를 막아가는 역이광의 장력을 볼 수 있었다.
‘아아!’
은곡에서 나와 천하대전을 겪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사문의 회천을 위해 살아왔다.
거칠게 흔들리는 그의 동공에 빛나는 검신과 무면산왕의 얼굴이 겹치듯 떠오른다.
‘무면산왕. 설마 나를 살려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느냐?’
적과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고 아군의 배신에 당하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다.
쌔액!
나명도의 검극이 새까만 절망과 함께 그의 가슴을 엄습했다.
푹!
* * *
칠흑 같은 어둠 속, 새하얀 백의를 그보다 하얀 손이 파고들었다.
“컥!”
피를 토하는 백의인의 두 눈에 낭패한 빛이 떠오른다.
무면산왕의 발을 묶기 위해, 백표대로 위장한 뒤 죽기를 각오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무면산왕은 보이지도 않았고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놈에게 죽게 되었으니 억울한 것이다.
“이 숫자로는 너무 무모한 작전이었다.”
백하진은 차가운 말과 함께 가슴을 파고든 손을 빼냈다.
털썩.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적을 끝으로 이가장을 기습했던 자들이 모두 쓰러졌다.
한천유가 비도를 회수하며 외쳤다.
“장주님! 괜찮으십니까?”
이가장주 이웅은 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괘, 괜찮소. 하필 천주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습격할 줄이야…….”
만일 녹사대와 청사대가 없었더라면 자신의 목은 몸통과 분리되었을 것이다.
청사대 부대주 오광이 한천유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저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이런 의미였나?”
태산표국의 담장 안에서 누군가 밖을 유심히 살폈다던 전언.
이들의 기습이 단려화의 전언 뒤에 이뤄졌으니 오광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한천유는 죽은 백표대원의 시신을 유심히 살폈다.
“옷이 너무 깨끗하군. 마치 처음 입은 것 같단 말이야.”
백하진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놈들. 아무래도 백표대원이 아닌 것 같아.”
지금 태산표국은 새 옷을 지어 입을 만큼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럼 누구지?”
한천유는 머릿속으로 흩어진 조각을 하나씩 맞춰갔다.
“회남표국?”
“그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감시를 속이고 도착했을 수도 있잖아? 태산표국의 싸움을 감추기 위해 이들로 시선을 끌게 했을지도 모르지.”
한천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양산채를 제외한 다른 산채의 산적들에게 백표대 수준의 고수를 완벽하게 감시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음.”
“이들이 만일 회남표국의 무인이라면…… 하동교호 나명도는 제법 머리를 쓸 줄 아는 놈이야.”
한천유는 즉시 청사대를 소집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태산표국에선 전투가 벌어졌을 거다. 천주님을 도우러 갈 테니 넌 이곳을 지켜.”
“내가 가겠다.”
“지금은 내가 가는 게 맞아. 다녀온다.”
백하진을 밀어낸 한천유가 동료들과 이가장을 나섰다.
* * *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태산표국의 하늘로 솟구친다.
시산혈해의 참상,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연신 터져 나오던 쇳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줄어간다.
전장을 향한 단려화의 동공이 옅은 떨림을 보인다.
‘잔혹해.’
표국 안의 은밀한 눈이 외곽을 살피고 돌아갔던 이유를 이제 알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나명도는 자신들의 눈을 속이고 한발 빠르게 이곳에 도착했다.
청금환과 좌황은 목숨을 잃었고 악계화와 구표걸, 철사대주 자영은 피투성이가 된 채 사투를 벌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담장을 넘었을 땐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뒤였다.
단려화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떡하지?’
당초 진무립의 계획은 회남표국이 태산표국을 공격할 때를 기다려 백표대를 구하는 것이었다.
태산표국의 실체가 천하에 드러나면 다른 오대표국은 분명 이들을 잘라내고 관계를 부정하려 할 것이다.
믿었던 아군에게 배신당하고 주인까지 잃는다면 이들의 복수심은 말할 것도 없을 터.
진무립은 백표대의 복수심을 이용해 오대표국과 태산표국의 관계를 증명할 생각이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역이광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라면 능히 다른 오대표국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으니까.
‘무립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 늦어.’
영요설의 기습에 왼팔이 부러진 구표걸은 나명도까지 가세한 합공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흑살대의 협공에 위태로운 자영도 후순위로 미룬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에 역이광과 조관의 협공을 버텨내는 악계화가 떠오른다.
‘저 사람을 구하자.’
진무립이 일 순위로 생각했던 인물도 바로 악계화였다.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즉시 몸을 날렸다.
쌔애액!
매섭게 흔들리는 창두가 악계화의 가슴으로 짓쳐 든다.
“이게 산동의 벽력도인가!”
조롱 섞인 일갈에 악계화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배신자 놈이!’
마음 같아선 당장 놈의 목을 치고 싶었으나 우측에서 역이광의 장력까지 날아든다.
단전의 내력을 아낌없이 끌어올린 악계화는 흑무진천도 흑단벽의 초식을 전개했다.
쏴아아!
내지른 도신에서 시꺼먼 도광이 줄기줄기 솟구치더니 전방에 거대한 장벽을 드리웠다.
악계화의 흑단벽에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창광과 무시무시한 장력이 충돌했다.
쿠콰콰쾅!
‘큭!’
악계화의 발이 언 땅에 주르륵 미끄러진다.
비록 가진 무공의 삼 할만 사용하는 역이광이었으나 지금의 악계화는 그것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발을 멈춘 악계화를 향해 시꺼먼 창광이 폭사했다.
‘흑연화!’
흑천비류창 흑연화의 초식은 좌황과의 비무를 통해 지겹도록 겪어왔다.
일진광풍을 동반한 악계화의 도신이 허공에 원을 그리더니 짓쳐 드는 먹구름을 찢어발겼다.
콰앙!
튕겨나듯 물러나는 악계화의 등으로 한 줄기 장력이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여기서 일섬표(一殲慓)를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빛나는 역이광의 두 눈에 확신이 떠오를 때였다.
서걱!
눈앞에서 뭔가가 번쩍인다 싶더니 일섬표의 섬광이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다.
“그대는…….”
주름진 노안이 악계화의 후방에 나타난 단려화를 담았다.
“영감님. 그래도 그렇지 아군을 공격하는 건 너무 치졸하지 않아요?”
뒤를 슬쩍 쳐다본 악계화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꺼져라. 도움은 필요 없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일지라도 어제까지 싸운 적의 도움을 받을 만큼 구차하게 살고 싶진 않았다.
복면 위로 드러난 단려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르장머리가 없군요.”
그녀를 알아본 역이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면산왕의 여인이다! 그가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
무면산왕은 판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고수.
그가 온다면 이번 계획은 무조건 실패한다.
“그럴 생각입니다. 노존.”
등 뒤의 서늘한 목소리는 구표걸의 머리를 움켜쥔 나명도의 것이었다.
악계화의 눈이 전장을 살핀다.
모시던 주군과 좌황은 언 땅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머릴 잃은 구표걸의 목에선 피가 강물처럼 흘러나온다.
뒤늦게 달려온 일급표사들은 예전에 전멸했고 자영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철사대와 백표대는 고작 서른에 불과했다.
바로 옆의 기습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까닭이다.
적으로 싸우던 무면산왕이 표국을 불태웠을 때도 죽은 자는 고작 열 명이 넘지 않았었다.
반면 아군이라 믿었던 자들은 이 안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말살하고자 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악계화는 피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노존. 위의 지시요? 아니면 당신의 계획이오?”
“위에서도 바랄 것이네.”
“큭큭큭! 수십 년의 세월을 바친 대가가 배신이라니. 복령천(覆嶺天)에서 우리는 고작 쓰고 버리는 하등한 잡졸에 불과했단 말인가.”
부르르 떨리는 어깨 위로 지독한 살기가 솟구친다.
단려화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적을 주시했다.
‘복령천?’
세상을 뒤집겠다는 의미의 그것은 아무래도 팔황문의 새로운 이름인 듯싶었다.
역이광은 차갑게 눈을 빛내며 손을 들었다.
“서두르게.”
“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서릿발 같은 공격이 쏟아진다.
단려화는 검극을 쏘아내며 외쳤다.
[살아서 복수하고 싶다면 내게서 등을 돌리지 말아요!]카카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난다.
다섯 줄기 검극을 쳐낸 단려화에게 등골이 오싹할 만큼 날카로운 쾌검이 쏟아졌다.
‘빨라!’
스승과 진무립만큼은 아니었으나 나명도의 유운천예검은 이제껏 무림에서 만난 상대 중 가장 빠르고 날카로웠다.
다급하게 끌어올린 검신으로 폭포수 같은 검영이 부딪쳐온다.
쏴아아!
좌우로 움직이는 단려화의 눈동자가 갈라지는 상대의 검극을 빠짐없이 담았다.
춤을 추는 검극에 맞춰 단려화의 손목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따다다다다당!
눈앞에서 튀는 불꽃에 찌푸린 나명도의 얼굴이 비친다.
‘이 계집. 보통이 아니다.’
고작 일 수를 교환한 것에 불과하나 알 수 있다.
‘백표대를 먼저 끝내는 게 빠르겠군.’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발끝으로 지면을 찍은 나명도가 방향을 바꿀 때였다.
쐐애애액!
공간을 찢어발기는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시꺼먼 창이 전장의 한복판에 틀어박혔다.
쿠우웅!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굉음에 이어 피에 젖은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간다.
담장 위를 쳐다본 역이광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무면산왕!’
결국 늦었다.
아니, 저들의 눈을 속이는 나명도의 계획은 나무랄 것이 없었다.
놈이 너무 빠른 것이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진무립의 하얀 이빨이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틀어박혔다.
“제법이로구나. 늙은이.”
청금환은 비참하게 죽었고 악계화와 무인들은 복수심에 이를 갈고 있다.
역이광을 살려둔 보람이 있다.
자신이 예상했던 방식으로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철컥.
등에 멘 육병흑궤가 열리며 흑궁과 철시가 손아귀로 빨려들었다.
“끝을 볼 시간이다.”
나직한 목소리와 동시에 오싹한 기운이 역이광의 가슴을 엄습한다.
지이이익!
잔뜩 당겨진 활시위에 네 대의 화살이 걸린다.
시퍼렇게 빛나는 진무립의 눈은 화살촉을 따라 전장을 직시했다.
“지금부터 붉은 옷과 까만 옷을 입은 놈은 전부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