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3
◈ 193화. 여월(如月)의 맑은 하늘 아래
태산표국의 소식은 하루 만에 곡부의 수문화에게 전해졌다.
서신을 들고 온 정이상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대승입니다. 백표대를 구출하고 악계화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건 당연한 결과고.”
수문화는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새로 합류한 표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신노군 국주께서 조직을 개편하고 빠르게 수족으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실력 있는 표사들이 대거 합류해 국주께서도 기쁜 모양입니다.”
해체 직전까지 갔던 대량표국이다.
진무립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한 신노군의 결정은 지금 그 보상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붓을 든 수문화는 빠르게 서신을 적어 내려갔다.
“대별채에 이걸 전해라. 나명도와 적표대가 죽었다면 회남표국은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이참에 그곳의 표사들까지 집어삼킨다.”
“알겠습니다.”
서신을 챙긴 정이상이 문을 열자 귀를 붙이고 있던 동초개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가, 갑자기 문을 열면 어떡해요? 간 떨어질 뻔했네.”
동초개의 적반하장에 정이상은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거기서 뭐 하시오?”
“보면 몰라요? 엿듣고 있었지.”
“…….”
할 수만 있다면 동초개의 얼굴을 꼬집어 얼마나 두꺼운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수문화가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동소협은 지금 국주께 잠시 와달라고 전해주시오.”
“예. 총사님!”
즉시 예를 갖추며 달려가는 동초개의 모습에 정이상은 인상을 구겼다.
그 정중한 태도가 자신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까닭이다.
“뭐 해? 얼른 안 가?”
“가요! 갑니다!”
* * *
살아남은 태산표국의 수뇌는 악계화와 철사대주 자영이 전부였다.
악계화는 그나마 전투가 끝난 뒤에도 의식은 있었으나 죽은 듯 누운 자영은 닷새가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몸은 좀 어떤가?”
“금방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마라. 완전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회복에 전념해라.”
“악공. 우린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핏기 가신 안색만큼이나 목소리 또한 어둡기 그지없었다.
자신들을 이끌어줄 국주가, 적이 아닌 아군이라 믿었던 자들에게 죽었다.
거기에 은곡의 무공을 들켰을뿐더러 인근 방파까지 공격한 자신들은 무림 공적이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야말로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무거운 정적 속, 지그시 눈 감은 악계화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릴 버린 복령천에 복수한다.”
상천이 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면한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들의 등에 칼을 꽂은 복령천이다.
“복령천은…….”
자영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들의 힘으론 하늘이 무너져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면산왕이 우릴 도울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분명 우리가 필요했기에 살려뒀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결과 그는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노존을 살려두었을 때도 그랬다. 놈은 분명 자신에게 쓸모 있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살렸는지 안다.
오대표국이 모두 은곡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태산표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쉬어라. 무면산왕을 만나고 오겠다.”
자영의 어깨를 두드린 악계화가 막사를 나섰다.
시평과 다음 계획을 논의하던 진무립의 막사에 악계화가 찾아왔다.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나?”
악계화는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며 대뜸 물었다.
“상천의 목표는 무엇인가?”
“평범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복령천이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복령천이라는 이름에 대해선 단려화에게 들은 바 있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팔황문의 다른 이름이 복령천인가?”
“그렇다. 패배자의 이름을 잇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지.”
“복령천의 천주는 누구지?”
“죽은 팔황문주 황운천의 아들, 이름은 황천패다.”
황운천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으나 살아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천하대전이 벌어지던 당시 그는 폐관에 들어있던 참이었다. 자신이 없어도 당연히 팔황문의 세상이 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거지. 하지만 황운천은 생각지도 못하게 신룡에게 패했고 폐관에서 나온 그는 생존자들을 수습해 음지로 스며들었다.”
시평이 물었다.
“그도 팔천영신공을 익혔나?”
“내가 알기론 그렇다.”
“무위는?”
“나야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상부에선 선친을 넘어섰다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악계화의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비록 단소룡에게 패하긴 했으나 황운천의 무위는 세상을 손에 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복령천의 근거지는 어디냐?”
“은곡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 나는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국주님과 요동의 산속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른 표국의 무인을 본 적은 없었다.”
“까다롭군.”
화령이 천하대전에 승리하고도 팔황문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것은 그들이 철저히 점조직이 되어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시평이 물었다.
“복령천이 오대표국을 세운 이유는?”
“나는 오대표국으로 장강 이북과 황하 이남을 손에 넣으려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르겠군.”
“그렇다면 복령천의 진짜 전력은 어느 정도지?”
악계화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가 머물던 산속 외에는 본 적이 없다.”
잠시 말을 끊었던 악계화는 남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국주님께 들은 것은 있지. 복령천은 천주 밑에 팔존(八尊)이, 그리고 팔존의 아래에 국주님과 비슷한 고수가 열네 명이 있다고 한다. 그 외의 것은 모른다.”
팔존의 두 명이 죽었다곤 하나 아직 여섯이 남아있다.
거기에 청금환과 같은 고수가 열넷이나 된다면 그들의 전력은 결코 상천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니, 드러난 것이 그 정도라면 분명 더한 것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엔 악계화가 먼저 말했다.
“나를 살려두었다는 건 내가 나서서 태산표국과 오대표국의 관계를 증언하길 바라는 것이겠지.”
진무립은 부정하지 않았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군.”
“좋다. 네 뜻에 따라주지. 대신 이쪽도 조건이 있다.”
진무립이 피식 웃었다.
“조건을 걸 처지인가?”
“우릴 배제하고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고 싶다면 거절해도 좋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보이는 이 당당함이 진무립은 왠지 싫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지금 논쟁을 하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진무립은 손을 들며 답했다.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지.”
“우리 백표대가 산동 무림의 눈을 피해 중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다오. 그리고 우리가 언제든지 상천의 산채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허가해라.”
시평이 미간을 좁혔다.
살아남은 무인은 악계화와 자영, 백표대와 철사대를 포함해 모두 서른두 명.
거산채라면 얼마든지 이들을 막아낼 수 있겠으나 그 밑의 산채라면 다르다.
행여 이들이 중간에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걱정하는 시평과 달리 진무립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너희들은 당분간 죽은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전투가 끝난 직후, 진무립은 혹시 모를 눈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태산표국의 의복을 버리게 했다.
지금 표국의 외곽은 은무대와 양산팔수가 철저히 지키고 있었고 생존자 전원에게 상천의 무복을 지급한 상태였다.
진무립이 물었다.
“그게 끝인가?”
악계화는 고개를 저었다.
“복령천과 싸워라. 이게 핵심이자 마지막 조건이다. 이걸 받아준다면 그대에게 협조하겠다.”
살아남은 부하들만 데리고 국주의 복수를 완성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에겐 반드시 진무립과 상천의 힘이 필요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 될 테고……. 조건은 하나가 더 남지 않았는가?”
악계화는 입을 열지 못했다.
“…….”
그의 눈을 물끄러미 직시하던 진무립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듣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나와 싸울 기회를 주겠다.”
악계화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깃든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그가 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부하들을 끔찍이 아끼는군.’
비록 청금환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복령천이라곤 하나 그의 무공을 빼앗은 것은 진무립이다.
그의 생각을 읽은 진무립은 말 한마디로 악계화의 칼날이 다른 이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고맙군. 꼭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하겠다.”
“움직일 채비가 끝나면 나를 찾아와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중원에 들여보내 주지.”
“그러지.”
자리에서 일어난 악계화는 그대로 몸을 돌려 막사를 나섰다.
오후의 밝은 햇살 아래, 여월(如月)의 시린 바람이 복잡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악계화는 마치 뭔가에 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겨울의 맑은 하늘에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얼굴이 구름처럼 아른거린다.
누군가에겐 천하의 악인일지라도 자신에겐 세상의 전부와 다름없던 사람.
평생을 형님처럼 생각하며 따랐던 청금환의 얼굴이었다.
악계화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나직이, 그리고 힘있게 읊조렸다.
“기다리십시오. 우리의 등에 칼을 꽂은 자들은 모조리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 * *
태산표국의 몰락으로 산동 무림은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었다.
상천이 대량표국으로 태산표국을 대신하게 되었으나 운영 방식은 그들과 달랐다.
진무립은 대량표국의 표행에 산동 여러 방파의 무인들을 대거 고용할 것과 합당한 보수를 약속했다.
사업장만으로 수익을 유지하던 방파에겐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더불어 연판장에 서명한 상단의 통행세를 절반으로 낮추고 각지의 산채 인근에 묵어갈 수 있는 객잔을 세우기로 공표했다.
상천과 연계한 표행이 도착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번거로움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진무립은 산동무림과 상단이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공표했고 하나씩 방안이 나올 때마다 그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기뻐했다.
모두가 산동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동진상단의 넓은 장원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산해진미로 가득한 넓은 연회장.
울려 퍼지는 웅장한 풍악과 무희의 아름다운 춤사위는 상천의 승전을 축하하듯 추위를 녹여간다.
진무립이 앉은 상석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수장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천주께서는 제 잔도 한잔 받아주십시오.”
“고맙소.”
청명한 소리와 함께 진무립의 빈 잔이 채워진다.
적당히 취기가 올랐으나 누구도 선을 넘는 이는 없었다.
눈앞의 청년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태산표국을 상대로 실력을 증명한 절대 고수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그들은 차분히 술을 따를 기회를 기다렸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간 사이 문이 슬쩍 열리며 수문화가 들어왔다.
[조금 늦었습니다.] [신국주는?] [그는 회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곧 부곡채주와 합류해 표국을 접수할 겁니다.]사천과 강남의 거산채주들은 오대표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대별채에 머물고 있었다.
수문화는 신노군과 함께 회남표국을 접수할 인물로 백채륜을 선택한 것이다.
[수고했다. 앉아라.]수문화는 면식 있는 상단주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마음을 잔으로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한 잔씩 올리겠소.”
상석에서 내려온 진무립이 수장들의 자리로 이동해 그들의 잔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이웅이 곁에 앉은 양소방주 묵운정에게 말했다.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모든 것을 상천에게 걸었고 저들은 그에 완벽한 결과로 대답했다.
묵운정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소.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오.”
그의 말대로였다.
아직 다른 오대표국이 남아있는 이상, 태산표국의 배후가 남아있는 이상 이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듣자 하니 중원무림맹이 오대표국과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조만간 산동의 일이 중원에도 널리 퍼지게 될 텐데 영향이 좀 있지 않겠습니까?”
중원은 산동에 비해 고강한 고수들이 많다.
만일 그들이 상천을 끝까지 적으로 대한다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묵운정이 술잔을 내려두며 말했다.
“오대표국은 협잡을 자주 일삼는 이들이니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오.”
“그렇겠지요. 이쪽도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산동무림은 연판장까지 만들어가며 상천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중원무림이 끝까지 상천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묵운정의 노안에 반대편에서 술병을 들고 움직이는 진무립이 담긴다.
그의 넓은 등을 보고 있자니 근심이 사라지며 주름진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 길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천주와 함께라면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