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
◈ 196화. 홍월루
타들어 가는 모닥불이 작은 동굴에 은은한 빛을 흩뿌린다.
불가에 앉은 진무립의 눈에 잔뜩 웅크린 부하들이 담긴다.
곁에 앉은 단려화가 몸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왜 바람이 들이치는 거죠.”
추위를 덜 느끼는 무공 고수라지만 오늘따라 한겨울의 칼바람이 제법 차갑다.
“저 녀석한테 물어봐.”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모포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 한천유가 있었다.
이 동굴을 발견해 일행을 안내한 이는 바로 한천유였다.
‘때리면 안 돼. 힘을 숨겨. 넌 광녀가 아니라 사천검화야.’
크게 호흡을 하며 자신을 타이른다.
그녀는 자는 사람을 깨워 타박하는 대신 진무립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중원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이틀 전 악계화들을 은밀히 떠나보낸 이들은 남은 일을 시평에게 맡기고 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가보면 알겠지.”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은 진무립은 온기를 불어넣었다.
고개 돌려 진무립을 그윽하게 응시하던 단려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소협도, 용소협도, 육소협도 어서 보고 싶네요.”
오랜 시간 함께해서 그런가 이제는 그들이 남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단려화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진무립과, 그들과 함께하면서 화령도에선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진무립도 그녀를 향해 마주 웃었다.
“곧 만나게 될 거다.”
* * *
개봉의 홍월루.
휘황찬란한 오색 등불 아래, 간드러지는 기녀들의 교성과 취객의 호기로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뒷간에 다녀온 육군명은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계단을 올랐다.
“불야성이로구나.”
이 층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깥과는 마치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수십 개가 넘는 탁자에 족히 백 명은 넘는 손님들.
모두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평범한 세상도 나쁘지 않군.”
그때 곁으로 머리를 질끈 올려묶은 헌앙한 청년이 다가왔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귀하의 세상도 평범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힐끔 쳐다본 육군명의 눈에 귀태 나는 청년이 들어온다.
“넌 누구야?”
등 뒤를 오가는 취객과 달리 청년의 낯빛엔 홍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본인은 화명이라고 합니다.”
“화명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제대로 기억나질 않았다.
“무인은 아닌 거 같고.”
“개봉에서 작게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장사를 하는 자가 값비싼 자색 비단옷을 입을 리 없다.
피식 웃은 육군명이 말했다.
“평범하지 않은 세상이라. 무림이 그렇지 뭐.”
난간에 팔을 걸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같은 시야를 공유했다.
“그대의 세상은 어떻지?”
“아직은 살 만합니다.”
“곧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전쟁에서 오대표국이 승리하면 그리될지도 모르겠군요.”
“제법 장사를 크게 하는 모양이야.”
화명이 말없이 웃을 때, 등 뒤의 문이 열리며 강팍한 인상을 가진 총관이 나타났다.
육군명을 슬쩍 살핀 그는 화명의 귀에 손을 붙이고 속삭였다.
“루주님. 안의 손님들이 잠시 뵙길 청합니다.”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예.”
재차 육군명을 살핀 총관이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육군명이 짓궂게 웃었다.
“작은 장사라구?”
홍월루는 천하상단에서 운영하는 기루.
루주는 상단주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화명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바로 천하상단주 화영의 둘째 아들이었던 것이다.
화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부친에 비하면 큰 장사는 아니지요.”
“이보게. 친구. 나를 속였으니 오늘 술값은…….”
화명은 웃는 낯으로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귀한 손님께서 찾으시니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칫.”
가볍게 예를 갖춘 화명이 등 뒤 객실의 문을 열었다.
육군명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방 안을 살핀다.
‘음?’
천천히 닫히는 문 너머로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양척방주 목충, 금도문주 염창도?’
중원무림맹의 의방에서 머무는 동안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인물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중원맹 소속 중소방파의 수장이 족히 열 명은 보인다.
‘출정식은 생략한다더니 이런 곳에서 만나는 모양이군.’
실소를 흘린 육군명은 문 두 개를 지나쳐 자신의 방에 도착했다.
다소곳한 자태로 악기를 연주하던 기녀들, 탁자 앞에 마주 앉은 유대하와 용추가 고개를 돌린다.
유대하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볼멘소리를 했다.
“똥통에 빠져 죽은 줄 알았다.”
“이제 일어나자.”
꺼어억.
용추가 길게 되새김질을 하며 이를 쑤셨다.
“벌써?”
“이제 곧 자시다. 내일부터 먼 길 가야 하는데 이 정도 마셨으면 됐어.”
탁자 밑에 쌓인 술병이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인다.
유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래. 가서 한숨 자자.”
악기를 내려둔 기녀들이 세 사람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
“벌써 가시는 건가요?”
목소리에서 아쉬운 기색이 느껴진다.
빙그레 웃은 육군명이 기녀의 탐스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손님이 빨리 가면 좋지 뭘 아닌 척을 하고 그래?”
얼굴을 붉힌 그녀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인사를 하던 육군명은 불현듯 의문이 떠올랐다.
“객실에 기녀가 들어가지 않는 곳도 있나?”
“이곳 이 층부터는 전부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건지요?”
잠시 생각하던 육군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리 간다.”
기녀들의 배웅 속에 일 층으로 내려온 세 사람이 술값을 치렀다.
밖으로 나오니 뜨겁던 기루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그들의 옷깃을 파고든다.
“칫.”
대번에 술이 깬 용추가 투덜거리며 돌아본다.
“이제 다시 군자로 돌아갈 시간이야.”
“군자는 내일부터 다시 하기로 했다.”
“그래. 응원하마.”
뒷짐을 진 육군명이 그늘진 골목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고 보니 술도 마시지 않는 것 같던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들이 머무는 방에는 기녀도, 술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유대하가 곁으로 붙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거냐?”
“아니 그냥 좀 이상해서.”
“무엇이?”
인적 없는 골목에 접어든 육군명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이 기루에 있었다고?”
“그래. 그들 정도면 충분히 별채를 빌릴 만하지 않나? 대체 왜 계단 위의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까?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음. 수상하긴…….”
그때 세 사람의 신형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바로 담장을 뛰어넘었다.
정적이 깃든 골목, 슬쩍 고개 내민 육군명의 눈에 은밀히 접근하는 흑의인들이 보인다.
육군명은 즉시 담장에 등을 붙이고 앉아 기척을 숨겼다.
‘설마 우리를 노리고?’
불현듯 관제묘에서 마주쳤던 운화결이 떠오르자 육군명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니지. 출정을 앞두고 개봉 한복판에서 무공이 드러날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잠시 후, 은밀한 기척들이 담장 너머를 빠르게 지나쳐갔다.
밖을 살핀 유대하의 입에서 긴장된 음색이 새어 나왔다.
“저 방향은 홍월루다. 대체 무슨 일이지?”
육군명이 안에서 본 것에 더해서 생각하면 연관이 없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음.”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나타났다.
“어.”
담장 밑에 주저앉은 세 사람과 아이의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유대하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우, 우린 나쁜 사람이…….”
멀뚱히 쳐다보던 아이가 코를 닦더니 뒤돌아 외쳤다.
“어머니! 손님 왔어요!”
“…….”
그사이 튕기듯 솟구친 세 사람이 훌쩍 담장을 뛰어넘었다.
텅 빈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하던 적모개가 밤하늘을 확인했다.
‘곧 시작하겠군.’
지금쯤 제갈문과 비형대가 기루에 도착했을 것이다.
신법에 박차를 가하는 적모개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분타주. 이 시간에 어딜 바쁘게 가는 겁니까?”
“어?”
반사적으로 발을 멈춘 적모개의 눈에 유대하들이 보인다.
“돌아간 줄 알았는데 여긴 무슨 일이오?”
육군명이 말했다.
“아직 그분이 오시지 않아서 말이지. 홍월루에서 술 한잔하고 오는 길이야.”
“홍월루?”
적모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유대하가 물었다.
“조금 전 한 무리의 흑의인이 홍월루로 가던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아. 그건 비각의 무인들이오. 운화결과 명가홍의 유착관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거든.”
“결정적인 단서?”
“설마 은무대에게 듣지 못했소?”
“그런 얘긴 안 하던데.”
적모개는 오늘의 계획을 매우 짧고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지금부터 그들의 거래 현장을 덮칠 생각이오. 작은 것이라도 나온다면, 그것을 빌미 삼아 전쟁을 없는 일로 만들 수도 있을 거요.”
육군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혹시 비각의 계획에 연루된 인물이 명가홍 외에 더 있나?”
“운화결과 명가홍이 독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그건 왜 물으시오?”
“홍월루의 이 층에 목충과 염창도를 비롯해 중소방파의 수장들이 모여 있던데?”
“그들이 거길…….”
순간 적모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 설마!’
사색이 된 적모개는 인사조차 생략하고 지면을 박찼다.
적모개가 사라진 골목을 응시하던 유대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표정이 많이 심각한데.”
“따라가 볼까?”
그때 등 뒤에서 서늘한 여인의 음색이 들려왔다.
“어딜 따라간다는 것이냐?”
흠칫 놀란 그들은 즉시 뒤를 돌아봤다.
은은한 달빛 아래,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의 미인이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주인환과 금성우가 나타났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데리러 가는 길이었소.”
금성우의 당부가 유대하의 귓속을 파고든다.
[어서 예를 갖추시오.]유대하가 아차 싶은 얼굴로 예를 갖췄다.
“복호채주를 뵙습니다.”
“인사 앞에 그대의 이름을 붙여야 바른 것이다.”
서늘한 안광이 유대하의 동공을 매섭게 파고든다.
‘팔기 최강의 무인이라더니 눈빛 한번 살벌하네.’
그녀에겐 단순히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유대하가 복호채주를 뵙습니다.”
“용추가 복호채주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포권을 취할 때, 성큼성큼 걸어간 육군명이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난 육군명이야.”
“……그대.”
이하빈은 이건 뭔가 싶은 눈으로 육군명을 쳐다봤다.
“혹시 미쳤는가?”
“미친 건 아니고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 설명은 가면서 할 테니 일단 따라와.”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하극상을 밥 먹듯이 하는 자로구나.”
육군명을 향한 이하빈의 손끝에 자비 없는 흑광이 맺힐 때, 유대하가 그 앞을 다급하게 가로막으며 말했다.
“지금 홍월루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우릴 도와준 개방의 친구가 연루되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그 심상치 않은 표정에 이하빈은 내력을 회수하며 팔을 내렸다.
“……앞장서라.”
규율에 엄격하다지만 융통성 없는 성격은 아닌 듯하다.
안도한 유대하는 그녀를 이끌고 홍월루로 달렸다.
* * *
흰 눈에 내려앉은 달빛이 사방으로 은은한 빛을 흩뿌린다.
홍월루의 별채.
악공의 연주가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달빛을 안주 삼은 세 사람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언제 국주와 한잔하나 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는구려. 껄껄껄.”
껄껄 웃은 명가홍이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운화결도 그에 맞춰 잔을 비웠다.
“앞으로 종종 이런 시간을 만들어보겠소.”
“왠지 그럴 기회가 자주 있을 것 같구려.”
설지량이 두 사람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래야지요.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얼마든지 그럴 시간이 있을 겁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은 연이어 술잔을 나눴다.
그들의 얼굴에 깃든 홍조가 무르익은 달빛처럼 번져갈 무렵.
운화결이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명가홍이 눈을 빛냈다.
“그것은?”
“약조한 백영단화요.”
“오오.”
술상 위를 건너가던 명가홍의 손이 목함에 닿을 무렵, 흐르던 악공의 연주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멈추시오.”
악기를 내려둔 악공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창밖에서 수십 명의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별채의 문이 벌컥 열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문 앞에 선 제갈문과 스무 명의 흑의인을 향했다.
목함을 움켜쥔 명가홍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비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