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7
◈ 197화. 전화위복
명가홍이 물었다.
“내가 운국주와 술 한잔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오?”
의화전이 진행 중이라면 모를까, 전쟁을 함께하기로 한 이상 가볍게 술 한잔하는 것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게 아닙니다.”
세 사람을 번갈아 본 제갈문이 침착하게 물었다.
“문주께서 손에 쥔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왜 궁금하시오?”
“중검문주께서 금성표국주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동맹을 성사시켰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비각은 그것을 밝히고자 온 것입니다.”
명가홍이 차갑게 말했다.
“집행원에서 할 일에 어째서 비각이 나서는가. 이건 월권이 아니오?”
“집행원에서 의혹을 밝힐 생각이 없는 듯하니 비각이 나설 수밖에요.”
비각주의 자리를 가져간 중원삼가는 감찰 권한이 있는 집행원을 중소방파에 양보한 상태였다.
사천맹의 병폐를 본 중원삼가가 자신들이 중소방파 위에 군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선의에서 내린 결정은 지금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혹시 맹주께서 지시한 것이오?”
“맹주님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때 악공으로 위장한 제갈문의 부하가 입을 열었다.
“금성표국주가 건넨 것은 백영단화입니다.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백영단화.”
양기가 강한 무인에게는 구령부화초 못지않게 효과를 발휘하는 영단.
명가홍이 오래전부터 백영단화를 찾아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제갈문이 말했다.
“손에 쥔 것을 보여주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명가홍이 움켜쥔 목함을 들어 올렸다.
“백영단화라, 좋소. 받으시오.”
명가홍은 무심하게 목함을 던졌다.
[안 돼!]때마침 도착한 적모개의 다급한 전음에도 불구하고 목함은 제갈문의 손에 안착했다.
목함을 받아 든 제갈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볍다!’
명가홍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깃드는 순간이었다.
별채로 통하는 기루의 뒷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소방파 수장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비각주!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비각에서 중검문주를 사찰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소?”
“대체 무슨 이유로 비각에서 중검문주를 감시해왔단 말이오!”
쏟아지는 성토 속에 제갈문의 얼굴에 낭패한 빛이 스쳐 갔다.
‘당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적모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아.’
육군명의 말대로 중소방파의 수장들이 나타난 걸 보면 저들은 함정을 파고 기다린 게 확실하다.
‘너무 성급했다.’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서두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명가홍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열어보시오. 내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 동맹을 성사시켰는지 모두의 앞에서 확인해보십시다.”
떨림을 억누른 제갈문의 손이 천천히 목함을 열었다.
짐작대로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 안에 작은 것이라도 들어있었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어있는 목함은 동맹 과정을 재조사할 빌미로 삼을 수 없다.
모든 계획을 주도한 설지량은 속으로 미소를 감췄다.
‘제갈경의 아들답게 제법 똑똑하다만, 아직은 어리군요.’
만일 사흘이라는 시간이 저들에게 조급함을 주지 않았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뒤에 서 있던 금도문주 염창도가 굳은 얼굴로 나섰다.
“비각주. 구성원의 비리를 감찰하는 것은 집행원의 일이오. 본인은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현 시간부로 월권을 행사하고 구성원을 사찰한 비각주와 부각주의 직무를 정지, 형옥에 구금하겠소.”
염창도가 발을 내딛는 순간, 번개같이 움직인 비형대가 제갈문을 지키듯 둘러쌌다.
그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비각은 지금 집행원의 행사를 거부하는 것인가?”
제갈문은 담담한 얼굴로 비형대를 물렸다.
“물러나십시오.”
“각주님.”
그들 사이를 걸어간 제갈문이 염창도의 앞에 멈춰 섰다.
“집행부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옳은 판단이오.”
염창도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와주시겠소?”
“그러지요.”
중소방파의 수장들은 빠르게 제갈문과 적모개를 포박했다.
명가홍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가시구려. 본인은 아직 제대로 마시지 못했으니 멀리 나가지 않겠소.”
“…….”
후원의 담장 너머에서 끌려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유대하의 표정도 낭패한 육군명과 다르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좋지 않다. 만일 전쟁이 벌어진다면 저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거다.]여기서 보이지 않는 별채의 안에는 분명 운화결이 있을 것이다.
‘복호채주가 저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운화결의 무공을 끌어낼까 생각했던 육군명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중원무림맹 소속 무인들이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운화결이 무공을 감추고 저들이 다친다면 전쟁을 막을 실낱같은 가능성조차 사라지고 만다.
[채주와 함께 객잔으로 돌아가서 기다려라. 적모개를 만나고 오마.] [알았다. 조심해라.]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한 육군명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유대하를 뒤따르는 주인환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마 음혼귀영공을 간파했단 말인가?’
일 장 안으로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그 간격에서 무림 칠군에 속하는 명가홍이 간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분명 그와 마주했던 설가라는 사내일 것이다.
‘설마 나와 같은 무공을…….’
음혼귀영공을 익히고 자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무위를 가졌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묵묵히 후미를 따르며 사태를 파악하던 이하빈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산동에서 소식은 없었느냐?”
“이쪽에서 흑조를 한 번 보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명으로 저희 둘 다 중원맹 내부에 머물고 있었기에 전서를 받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소식을 받지 못한 건, 교대로 안팎을 드나들던 두 사람이 적모개를 도우라는 명을 받고 비각에 전념한 까닭이다.
“그렇군.”
이하빈도 자신의 움직임을 알리고자 사람을 보내 밀문을 남길 정도였으니 산동의 소식이 도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의 뇌리에 조금 전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별채 안에 있던 자들. 한 명은 분명 쉽지 않은 고수였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게 흘러나오는 기도를 그녀는 확실히 느꼈다.
그렇다면 당면한 상황부터 파악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모두 내게 설명하거라.”
주인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이하빈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서운 것은 고강한 무공뿐만 아니라 지모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다.
천하대전을 승리로 이끈 화령의 대군사 화윤.
이하빈은 그 화윤을 상대로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쳤던 이립의 딸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주인환은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그녀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바탕 홍월루를 휩쓴 바람이 멀어져 간다.
수장들을 돌려보낸 명가홍이 설지량의 잔을 채워주며 웃었다.
“훌륭한 계획이었소.”
“모두 문주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비각을 손에 넣고 전쟁을 주도한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중검문의 이름은 분명 중원삼가의 위에 있게 될 겁니다.”
명가홍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껄껄껄! 듣기만 해도 좋군.”
마냥 꿈같은 얘기는 아니다.
중원삼가를 앞세워 사문의 피해를 줄이고 자신이 백영단화를 복용한다면 중검문은 확실히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주변을 살핀 명가홍이 은근히 물었다.
“그래, 물건은 언제 넘겨줄 것이오?”
운화결이 답했다.
“약속대로 첫 전투가 벌어지는 시점에 넘겨드릴 것이오.”
“음.”
고개를 끄덕거리던 명가홍이 설지량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토록 전쟁을 서두르는 연유가 무엇이오?”
출정식조차 생략할 정도로 서두르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늦어지면 이쪽이 곤란하단 말이지요.’
태산표국과 상천에 얽힌 세간의 소문이 벌써 지척까지 도달한 상태.
설지량은 내심을 감추고 말했다.
“상천은 이미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있습니다. 종령문이 멸문한 것이 바로 그 증거지요. 지체하다가 피해가 늘어난다면 흔들리는 자들이 나올 겁니다.”
회남표국주 나명도가 산동의 소식을 전해온 순간, 설지량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상천으로 위장해 종령문을 지운 것이었다.
태산표국의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설지량의 속내를 모르는 명가홍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 내가 주도할 전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지.”
잔을 내려둔 명가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이 출정이기도 하니 이만 돌아가 보겠소. 새벽에 보십시다.”
가볍게 인사한 명가홍이 별채를 떠났다.
운화결이 잔을 채우며 웃었다.
‘전화위복이로군.’
태산표국의 사건으로 인해 자칫 시작도 못 해보고 무너질 뻔한 계획이다.
설지량은 소문을 차단하는 한편 적의 감시를 역이용해 훌륭하게 계획을 이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심복이다.
설지량이 남은 잔을 비우고 말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 아가씨와 떨어져 계셔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셔야지요.”
“떨어져 있는다고?”
그가 무슨 소릴 하냐는 듯 쳐다보자 설지량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아가씨를 데려가겠다는 말인가요?”
“당연한 소리 하지 마라.”
“…….”
“일어나라. 돌아가자.”
실소를 머금은 설지량이 먼저 일어났다.
“예. 예. 얼른 가시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이 홍월루를 나섰다.
* * *
고요한 밤거리에 사박이는 발소리가 널리 퍼져 나간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적모개가 전음을 보냈다.
[제 실수입니다. 각주.]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해준 이들을 위해.
그들을 꼭 도와야겠다는 강박과 조급함에 시야가 좁아졌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제갈문은 되려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아닙니다. 결정한 것은 나였으니 자책하지 마십시오.]그 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적모개는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전쟁이 벌어지면 우릴 조사하는 것도 뒤로 미뤄질 거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형옥에서 시간만 보내게 될 거야. 방도를 찾아야 한다.’
다양한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봐.]별안간의 전음에 움찔한 적모개가 슬쩍 눈을 돌렸다.
오 장 밖의 지붕 위로 흐릿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육군명!’
그의 귀로 재차 전음이 도착했다.
[내가 도울 건 없나?] [시간이 필요하오. 시간이.]서두르다 이런 꼴이 되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소공자가 연락을 취해올 때까지.]육군명은 절로 나오는 헛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그게 쉽게 될 일이면 네가 지금 잡혀가고 있을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적모개도 어이가 없었는지 자신의 처지도 잊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런 멍청한 놈. 아직도 조급하잖나.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란 말이다.’
자신을 타박한 적모개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분해진 적모개의 머리가 사천에서 혈교를 상대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내딛는 걸음이 늘어날수록 적모개의 머리에 다양한 가능성이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그들이 개봉의 북문 앞에 도달했을 때.
‘그래. 판을 뒤집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
적모개는 생각을 마치고 전음을 보냈다.
[맹주님을 만나주시오. 은무대라면 가능할지 모르오.] [그리고?]잠시 뜸을 들인 적모개의 두 눈이 비장하게 빛났다.
[맹주님께 나와 각주를 사형에 처하라 전해주시오.]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성공한다면 분명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혹시 미친 거 아니지?]육군명의 우려와 달리 적모개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비각주는 제갈세가의 대공자요. 이런 사내를 죽이려면 그만한 논의가 필요할 터, 확실하게 전쟁을 늦출 수 있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