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
◈ 20화. 천중일화(天中一花)
“림주님을 뵙습니다.”
아늑한 림주의 집무실.
진무립이 정중히 예를 갖추자 초무강은 웃으며 일어났다.
“여기선 그럴 것 없다. 사석에선 원주에게도 하대를 한다고 들었는데 내게만 너무 예를 차리지 말 거라.”
“하하하. 알겠습니다.”
진무립이 자리에 앉자 초무강은 손수 차를 따라주었다.
“광룡대는 어떠하냐?”
“쓸만합니다.”
“대검문에서 제법 요직에 있던 자들이다. 자존심이 강해서 다루기 쉽지 않을 것이야.”
진무립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용추의 무지막지한 매타작 앞에서 감히 자존심을 내세우는 자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숙부와 조카 사이의 대화가 오고 간 뒤, 초무강은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아직 유림이와 만난 적이 없었지?”
초유림은 초무강의 하나뿐인 딸이다.
진무립이 이곳에 왔던 시기부터 줄곧 외가에 머물고 있었기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곧 만나게 될 모양입니다.”
진무립이 이번 임무를 예상하자 초무강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래. 이번 임무에서 만나게 되겠지. 이곳의 일이 정리되었으니 네게 부탁을 하고자 한다.”
“말씀하십시오.”
“처가는 여기서 열흘 거리의 파중현에 있단다. 규모는 작으나 정가장이라고 하면 그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
목적지를 설명한 초무강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실종된 장인어른과 처남을 찾아야 한다.”
***
임무를 수령한 진무립은 은밀히 중경의 안가로 향했다.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지어진 작은 장원엔 진무립의 수신호위 은무대가 정체를 감춘 채 머물고 있었다.
방에서 진무립과 독대한 대주 서진환은 공손히 예를 갖췄다.
“대검문에서 중경의 패권을 되찾아오셨군요. 감축드립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화에게 따로 연락 온 것은 없지?”
“예.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천하의 모든 산채를 통합했으나 수십 년이나 산적으로 살아온 자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상천이 추구하는 목적, 무림과의 상생에 부합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자는 쳐내야 하고 쓸만한 인재는 위로 끌어 올려야 한다.
무림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 큰 충돌이 없는 것은 내실을 다지는 상천의 입장에서 다행이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사천 무림의 정보가 너무 적다. 오늘부터 각지로 흩어져 각파의 고수들과 세력 간의 알력, 그들의 치부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알아봐라.”
서진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곁에서 보필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용추가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놈이 무식하긴 하지만 아주 멍청한 건 아니거든.”
잠시 생각하던 서진환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봐야겠다.”
밖으로 나가려던 진무립은 슬쩍 천장을 쳐다보더니 씩 웃었다.
“대주와 부대주는 함께 움직여라.”
“예?”
“그냥 그러라고.”
문을 나서는 진무립의 귀에 청초한 여인의 음색이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천주님.]광평장으로 돌아온 진무립이 대원들을 소집한 사이, 내림원에서 수에 맞게 말을 가져왔다.
상호군의 얼굴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정가장의 일을 맡았다고 들었소이다.”
“뭐 아는 것 좀 있나?”
“워낙 소문만 무성해서 말이오. 혹자는 상천의 소행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혈천수라(血天修羅), 또는 광마(狂魔)의 소행이라고도 하더이다.”
진무립의 표정이 왠지 떨떠름했다.
혈천수라와 광마는 천하삼흉(天下三凶)에 속하는 괴인.
상천을 극도로 싫어하는 표국에선 무면산왕을 포함해 천하사흉(天下四凶)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진무립의 입장에선 상천이 그런 자들과 함께 의심받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놈인지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진무립이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상호군이 다시 말했다.
“만일 정말 천하삼흉이 관여한 일이라면 무리하지 말고 즉각 지원을 요청하시오. 비록 행실이 악독하나 무공만큼은 십대고수에 버금가는 자들이라오.”
진무립을 데려온 뒤로 틈틈이 마도림의 검법을 가르친 상호군이다.
천음지체의 뛰어난 오성을 타고난 진무립은 가르치는 것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으나 아직 고수와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상호군의 눈에는.
진무립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출발한다.”
말에 오른 진무립을 필두로 오십여 기의 인마가 마도림을 나섰다.
***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언덕 밑에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면사를 쓴 여인과 죽립을 눌러쓴 여인.
얼굴을 가렸으나 붉은 무복 위로 굴곡진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잠시 발을 멈춘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언덕을 쳐다봤다.
죽립 여인이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아가씨. 잠시 쉬어 가시겠습니까?”
“그래요.”
가을의 초입이라곤 하나 아직 한낮의 더위는 여름에 못지않았다.
길가의 나무 그늘에 앉은 두 사람이 면사와 죽립을 벗자 일 순간 주변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립 여인의 냉소적인 얼굴도 아름다웠으나 봄날의 꽃처럼 화사한 미모를 가진 면사 여인은 천하절색이란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였다.
모시는 이의 미모를 넋 놓고 감상하던 죽립 여인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가씨. 오는 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중경 마도림이 대검문을 멸하고 일대의 패권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파중현의 길목인 이곳에서 중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잠시 들렀던 마을에서 지나가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한 모금 물을 마신 죽립 여인이 말했다.
“한때 사천제일세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지. 역사가 깊은 만큼 쉽게 무너질 곳은 아니었나 봐.”
“숫자는 대검문이 마도림의 두 배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소공자라는 자가 모든 계획을 세웠다고 하던데 어떤 방법으로 무너뜨렸을지 궁금합니다.”
죽립 여인이 싱긋 웃어 보이자 일순 얼굴에 빛이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잘하면 이번에 알게 되지 않을까?”
“예?”
“파중현의 정가장은 마도림과 사돈 관계야. 중경의 패권을 되찾은 마도림이 정가장의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겠지.”
“아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바로 파중현.
목적은 정가장의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만 출발하자꾸나.”
얇은 면사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자 죽립 여인도 뒤따라 일어섰다.
“아가씨.”
“응?”
죽립을 손에 든 여인은 짧은 망설임 끝에 말했다.
“만일 소문처럼 이번 일에 상천의 천주 무면산왕이 얽혀있다면 화령도에 연락을 취하고 지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녀의 걱정에 드리운 면사 안으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직은 내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지?”
“아가씨의 무공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상대는 오왕의 일인입니다. 자칫 다치실까 걱정스럽습니다.”
“오왕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아. 내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말이야. 하지만······. 이번 일의 배후에 무면산왕이 있다면 만나서 반드시 확인해야 해.”
“그가 천하대전을 일으킨 팔황문주의 아들이라는 소문 말입니까?”
면사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께 듣기론 은곡의 무인은 말단 무사조차 중소 방파의 대주보다 강했다고 해. 아버지와 스승님이 계신 우리 화령조차 주변의 도움 없이는 막아낼 수 없었다고 하셨으니까. 만일 팔황문주의 아들이 은곡을 이끌기 시작했다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야.”
“상천의 무인 중에 은곡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삼두육비의 괴물이니, 어린아이의 정혈을 빨아먹는 음적이니 하는 소문도 모두 상천에 밀려 입지를 잃은 표국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그 소문도 표국들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천하와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상천이다.
그들이 등장한 뒤로 상행의 안정성은 전과 비할 수 없이 높아졌다.
일개 보부상이 단신으로 산 고개를 넘는 것은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상천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비록 수장의 정체가 모호하긴 하나 상천의 행보는 혈겁을 일으킬 자들이 보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면사 여인이 말했다.
“나도 소문의 진위가 의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러나 악몽 같은 역사를 반복하기 싫다면 떠도는 낭설이라도 무시해선 안 돼. 그것이 천하제일방파로 무림의 존경을 받는 화령의 의무니까.”
그녀의 확고한 의지에 죽립 여인은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천하제일인의 금지옥엽이자 검황 천영의 애제자.
천중일화(天中一花) 단려화의 의지는 자신과 같은 일개 호위가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니까.
두 사람이 잠시 멈췄던 행보를 재개했다.
그녀들이 높은 언덕의 중턱까지 올라갔을 때, 단려화의 곁을 따르던 연소정은 접근하는 말발굽 소리를 감지했다.
“아가씨. 역용을 하셔야겠습니다.”
단려화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평범한 외모로 변했다.
그때 언덕 밑에 나타난 오십여 기의 인마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두 여인은 한쪽 옆으로 길을 비켜섰으나 진무립은 그 앞에서 말을 멈췄다.
‘이 여자 뭐지?’
진무립의 눈은 단려화의 면사를 향해 있었다.
‘다들 느끼지 못하는 건가?’
부하 중 누구도 그녀가 범상치 않은 기도를 숨기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한편 단려화 역시 진무립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내, 뭔가 있어.’
부친이 가진 여섯 번째 감각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예리한 감각을 지닌 그녀였다.
단려화는 진무립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마주 본 두 사람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을 때, 뒤에서 용추가 대뜸 말했다.
“어이. 예쁜데.”
산적 두목같이 생긴 용추가 눈까지 찡긋하자 두 여인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진무립의 손이 용추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미친놈이 무슨 시정잡배도 안 할 소리를 하고 있어.”
머리를 매만진 용추가 억울한 듯 울상 지었다.
“여자들은 예쁘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음적이야? 엉?”
한숨을 푹 내쉰 진무립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 그런데 얼굴은 좀 봐야겠어.”
연소정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나섰다.
“무례합니다.”
“우린 파중의 실종사건을 해결하러 가는 마도림 무인들이야. 근방에 칼 찬 놈들은 죄다 확인하며 가는 길이거든. 얼굴만 보여주면 그냥 갈 게.”
유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언제 그랬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검문을 하며 온 기억은 없었다.
용추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그녀들이었으나 마도림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바로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 중 하나가 마도림의 이야기 아니었던가?
게다가 파중현의 사건도 있으니 단려화는 잠시 대화를 나눠볼 생각으로 면사를 걷어 올렸다.
“우리는······.”
얼굴을 확인한 진무립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드렁한 태도로 고개 돌렸다.
“에이, 잘못 봤네. 가자.”
용추가 거들 듯 말했다.
“별로 안 예쁘네요. 제 눈을 파버릴까 고민 중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광룡대가 언덕을 넘어 사라지자 단려화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지?”
뭔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자신의 착각이 분명했다.
고개를 넘기 무섭게 유대하가 물었다.
“뭐였습니까?”
조금 전과 달리 진무립의 눈은 사뭇 진지했다.
“파중으로 가는 길 같은데 마을에 들어서면 몇 놈 붙여라.”
“예?”
진무립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저 얼굴, 역용이야.”
유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역용술은 안력이 뛰어난 유대하조차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으나 진무립에겐 확신이 있었다.
‘미세하게 흐트러진 피부 결. 인위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면 젊은 나이에 그럴 일은 거의 없지.’
거기에 광룡대원조차 간파하지 못할 만큼 은밀히 기도를 숨긴 여인이라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열흘 거리를 무려 나흘이나 앞당긴 광룡대가 저녁 무렵 파중현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에 일행을 멈춘 진무립은 중경과는 사뭇 다른 공기를 느끼며 말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군.”
비록 파중현이 중경과 같은 대도시는 아니었으나 삼만 호 이상이 사는 마을로 작지 않았다.
노을이 내려앉은 마을은 아직 잠들 시간이 아님에도 황량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전유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제가 가서 알아보고 오지요.”
“다녀와라. 땡중.”
진무립의 말에 전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용추의 사건 이후 진무립뿐만 아니라 동료들까지 땡중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소승은 땡······. 아니지, 저는 중이 아닙니다. 다녀오지요.”
저도 모르게 스님을 자처할 뻔했던 전유는 급하게 말을 고치고 마을에 들어갔다.
진무립의 말처럼 텅 빈 거리는 정말 사람이 사는 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바쁘게 움직이던 전유는 때마침 문을 걸어 잠그는 객잔을 찾을 수 있었다.
“이보시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객잔일 텐데도 점소이는 낯선 사람의 존재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마, 말씀하시지요. 스님.”
전유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스님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