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0
◈ 210화. 스며들었다
철표개는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켰다.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상천이 종령문을 멸문시켰을 가능성은 낮아지는군.“
”아마도 그렇겠지요.“
“흐름을 보면 내일 밤 맹에서 뭔가 터질 거다. 혼란을 틈타 우리 개방도 내부를 정비하고 다음 행보에 나서야 한다.”
“그때처럼 합니까?”
그때라는 말은 바로 전대 장로들의 반역 사건을 말함이었다.
철표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우리 개방의 꼴이 우스워지지 않겠느냐?”
“음.”
철표개와 전대방주가 다른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전대방주 역시 사전에 반역의 기미를 감지하고 있었으나 반역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칼을 뽑길 망설였었다.
그러나 철표개는 다르다.
한번 정한 것은 우직하게 밀고 나가며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 것은 마치 신룡을 보는 듯하다.
“아랫것들에게 일러 시일을 맞춰보겠습니다.”
“당면한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확실하게 해야 해.”
“표국의 배후 말씀입니까?”
“그래.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거다.”
봉추개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보다 방주님.”
“그래.”
“맹의 일은 이대로 관망하실 생각입니까?”
가만히 생각하던 철표개가 무겁게 입을 연다.
“나서야 할 거 같으면서도 왠지 나서면 뭔가 틀어질 거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삼가에서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란 말입니까?”
“그거랑은 좀 다른데, 혹시 무면산왕이 개봉에 들어왔다는 정보는 없느냐?”
개봉에 퍼진 소문은 달포 전 태산표국이 무너진 사실과 둘로 갈라진 은곡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일 뿐, 아직 며칠 전 벌어진 전투결과와 진무립의 정체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조당이 장악된 상태라 설령 정보가 들어왔다 한들 알기는 어려울 겁니다.”
“음.”
철표개는 엄지와 검지로 허연 수염을 비볐다.
‘태산표국을 무너뜨린 무면산왕이 이곳을 관망할 거 같지는 않은데.’
왠지 개봉 어딘가에 그가 있을 것만 같았다.
“맹의 일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만일 무면산왕이 도착해 뭔가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면 섣부른 개입은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조금 생각해볼 테니 너는 언제든 매수당한 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돌아서는 봉추개의 뒤로 철표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말이다.”
“뭡니까?”
슬며시 돌아본 봉추개는 주먹을 말아쥐는 철표개를 볼 수 있었다.
“내 밥그릇 깨 먹고 도망친 놈. 반드시 잡아 와.”
“…….”
* * *
“엣취!”
있는 힘껏 재채기한 동초개가 코를 슥 문질렀다.
“총사님. 창문 좀 닫으면 안 될까요?”
종이 더미에 파묻혀 있던 수문화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개방의 사결제자는 고작 이 정도 추위를 느낍니까?”
“음. 생각해보니 조금 덥군요.”
동초개는 보란 듯이 옷섶을 흔들었다.
“허허. 방이 왜 이렇게 덥지. 잠시 산책 좀 다녀오겠습니다.”
실소를 흘린 수문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초개가 나간 직후 정이상이 들어왔다.
“방이 왜 이렇게 춥습니까?”
“먹 냄새가 너무 심해서 환기하는 중이다. 앉아라.”
탁자에 기대앉은 정이상이 나직이 말했다.
“지금쯤 개봉에 주군과 팔기가 집결했겠군요.”
“그렇겠지. 혹시 내 앞으로 서신이 온 것은 없었나?”
정이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말하기 전부터 중원에 들어와 있었다고 합니다. 곧 개봉에 도착할 겁니다.”
“그래? 누가?”
“그가 직접 움직였다고 합니다.”
수문화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진다.
“이거 의외인데.”
“주군을 만나 논의할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군.”
“산동의 수장들도 늑장을 부리지 않았다면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
“주군께 그 사실을 전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
수문화는 짜증 섞인 얼굴로 이마를 매만졌다.
“떠나기 전에 말했어야 했는데.”
처리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탓에 잠시 잊고 있던 게 문제였다.
정이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지요?”
잠시 생각하던 수문화는 먹물 가득한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호재면 호재지 악재가 되지는 않을 거다. 우리 일이나 하자.”
* * *
개봉으로부터 하루 거리의 작은 마을.
조용한 객잔의 별채에서 중원삼가의 수장들이 회동을 갖고 있었다.
“개봉에 떠도는 소문을 들으셨는가?”
번듯한 외모의 미중년, 선우세가의 수장 선우진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다소 투박한 인상의 중년인이 대답했다.
“진위를 파악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지금으로선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선 오대표국과 상천, 양쪽 다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황보한의 말에 제갈경이 섭선을 살랑거리며 말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선우진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사태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파악할 시간조차 없지요. 왠지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시간에 쫓긴다는 말인가?”
“물론 오대표국입니다.”
“음.”
나직이 침음한 선우진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간 우리가 너무 맹의 일에 손을 놓고 있었어. 이대로라면 맹의 분열은 막기 어려울 것 같네.”
황보한이 말했다.
“비각의 부각주가 내일 밤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고 했답니다. 왠지 뭔가 벌어질 것만 같습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네.”
“소문을 조금이라도 일찍 접했더라면 세가의 무인들을 불러왔을 것인데…….”
아쉬움으로 가득한 말에 제갈경이 답했다.
“우선은 맹에 머무는 부하들에게 최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지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하루의 시간이 있으니 나머지는 가면서 생각해보시지요.”
“그래야겠군.”
황보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돌아가서 출발 전까지 눈이라도 붙이시지요.”
“그러세. 나가볼 테니 경이 자네도 조금 쉬게나.”
선우진과 황보한이 나간 뒤, 홀로 남은 제갈경은 창문을 열어 방안을 환기했다.
눈 덮인 새하얀 풍경 속,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시린 공기에 제갈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호의 겨울은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구나.”
* * *
성문을 넘은 상천팔기가 왕유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대로에 접어들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거리 가득한 사람들, 시끌벅적한 공간이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일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탄성을 흘렸다.
“허. 정말 대단한 인파로군.”
왕유가 다그치듯 말했다.
“쉿. 그렇게 촌놈처럼 두리번거리지 말게. 복호채주는 우리의 정체가 노출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섯 채주가 서로를 번갈아 보며 눈을 껌뻑였다.
그 모습에 왕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네들 설마?”
송조광이 멋쩍게 웃었다.
“이미 노인네들을 만나 한 수 교환했습니다.”
“…….”
마일관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차피 곧 만날 텐데 뭐 어떻습니까?”
“가만두지 않겠다고…….”
“손속을 나눈 건 대별채주입니다.”
송조광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이럴 건가?”
연길상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일단 가보세.”
왕유가 체념한 듯 한숨을 삼켰다.
‘죽이지야 않겠지.’
인파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 그들이 마침내 풍령객잔에 도착했다.
때마침 별채의 마당에 나와 있던 진무립이 그들을 보며 반갑게 웃었다.
“왔느냐?”
이하빈이 여전히 방문 앞을 지키고 선 가운데 여섯 명의 팔기가 조용히 예를 갖췄다.
“주군을 뵙습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진무립의 처소에 여섯 명의 팔기가 둘러앉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마일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송조광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적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순간 이하빈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온 이상 저들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 거다.”
이어서 진무립의 눈이 모두의 얼굴을 차례로 담았다.
“다들 개봉은 처음이겠지. 개봉의 거리는 어땠나?”
연길상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거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 노점에서 요기를 하는 이들과 좌판에서 물건을 사는 이들. 그간 우리는 할 수 없었던 평범한 일상이다.”
팔기는 자신들의 주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를 고쳐 앉은 그들이 이어질 진무립의 말을 기다렸다.
“산동과 사천.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인정한 지금, 우리에겐 단 한 걸음이 남았다.”
차분한 말이 끝난 직후, 진무립의 두 눈이 영롱한 빛을 쏟아냈다.
“내일 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세상을 만들어보자.”
* * *
고요한 하루가 지나고 마침내 적모개가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왔다.
계획을 재정비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진무립은 저녁과 함께 개봉의 북문을 나섰다.
다른 이들이 모두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가운데 그의 곁을 따르는 인물은 당천이 유일했다.
진무립이 물었다.
“진소저는 좀 어떠냐?”
당천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조금 달라진 것도 같더군.”
“이곳에 온 보람이 있군.”
“나도 그 보람을 좀 찾아볼까 한다.”
어둑한 숲속에 접어들자 진무립은 한 걸음 물러나며 복면을 착용했다.
“무슨 보람?”
“부친은 내가 네 곁에서 뭔가를 얻어오길 바라고 계신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뭘 얻어갈 수 있을 거 같으냐?”
“묻고 싶은 게 있다.”
발을 멈춘 당천이 진무립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왜 네 일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있지?”
“내 일이 아닌 것은 무엇이냐?”
“네 뿌리는 은곡이 아니라 마도림에 있다.”
진무립을 향한 당천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들을 위해 네 인생을 바치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천은 씨족으로 구성된 당가의 무인.
혈연을 중시하며 자라왔기에 진무립이 마도림에 영광을 되찾아준 것은 납득이 간다.
그러나 상천은 다르다.
진무립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부족한 뭔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주 선 진무립이 물었다.
“스며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선문답은 관둬라. 그런 건 싫어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어둑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피투성이가 된 모친의 옆에서 오열하는 아이. 자식을 잃은 어미의 절규. 내가 스승님을 따라 처음 그들과 만났을 때 본 것이다.”
“측은지심인가?”
“부정하지 않겠다. 시작은 분명 그랬으니까.”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 사람도 그 아이를 위해 인생을 바치지는 않는다.”
“당시의 나였다면 분명 너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런데 사람 일이 생각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야.”
당천은 입을 다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검게 빛나던 진무립의 눈동자가 잿빛을 머금고 과거를 떠올린다.
“스승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노인과 아이들을 구했다. 거기서 그치려 했으나 또 누군가 찾아와 내가 구한 자들을 죽이려 했다. 그렇게 지옥같이 반복된 세월이 무려 십 년이다.”
“…….”
“물에서 건진 아이를 위해 인생을 바치지는 않는다고 했었지.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아이가 다시 물에 빠질 상황이라면, 너는 그 손을 놓을 수 있을까?”
침묵하는 당천의 머리는 조금씩 진무립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어지는 고요한 숲속에서.
나직한 진무립의 말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끊임없이 구하고 지켜야 했다. 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꼴을 차마 볼 순 없었으니까.”
당천을 향한 진무립의 입가에 처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내가 지키는 것은 물에 빠진 아이가 아니라 내 형제이자 가족이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내 가슴에 스며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