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1
◈ 211화. 중원무림맹
진무립의 말이 끝나자 왠지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깃들었다.
짧은 정적 끝에 당천이 입을 열었다.
“책임감인가.”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내 방식의 옳고 그름을 타인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군. 출발하지.”
천천히 돌아선 당천이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내게는 없었던 것인가.’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갖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풍천지회에서 소천무군 단자룡에게 당한 굴욕적인 패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한순간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사천의 전쟁에서 추락한 명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무인으로서의 자신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수장이 될 자로서의 자신은 그렇지 않다.
진무립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확실해졌다.
추락한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철저히 주변을 외면했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패배를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무립은 조직을 위해 왈패에게 얻어맞는 굴욕까지 감내했다. 반면 나는 패배의 굴욕에 세상과 나를 단절시켰다. 우리의 차이는 제법 크구나.’
자신과는 그릇이 다른 인물이다.
씁쓸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진다.
읊조리듯 나직한 목소리가 뒤따르는 진무립에게 스며들었다.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
진무립의 목소리도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처음 운룡각에서 널 봤을 때, 너는 잘 벼려진 비수와도 같았다.”
“무슨 의미냐?”
“날카롭지만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의 너는 연검과도 같구나.”
“날카롭지만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의 너는 연검과도 같구나.”
문득 돌아본 당천의 눈에 진무립의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변했다는 사실은 너만 모르고 있다. 멍청한 놈아.”
“…….”
진설란이 수도 없이 말해왔을 땐 그다지 와닿는 게 없었다.
그런데 진무립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그런 것도 같았다.
당천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런가.”
진무립은 당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질문이 끝났으면 집중해라. 물에 빠졌던 아이가 장성해 두 발로 우뚝 설 시간이니까.”
순간 당천의 표정이 다른 사람처럼 일변했다.
“그러지.”
자신이 달라졌다면 분명 진무립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진무립을 도와 그에 보답할 시간이다.
숲길을 따라 백여 장을 나아갔을 때, 나무 위에서 시꺼먼 인영이 뚝 떨어지며 둘의 앞을 막아섰다.
당천은 즉시 신분패를 꺼냈다.
“사천 공위맹의 사절이오. 맹주님을 뵙고자 하오.”
“지금은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할 수 없소.”
적모개의 일로 내부가 혼란스러운 까닭이었다.
당천은 침착하게 준비한 말을 꺼냈다.
“맹주님과의 약속으로 온 것이니 가서 당천이 왔다고 전하시오.”
* * *
같은 시각.
개봉의 북서쪽 숲에선 고요한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영을 재차 확인한 설지량이 운화결의 막사로 들어갔다.
“일급표사를 제외한 전원이 은신처로 떠났습니다.”
오늘따라 그의 말투가 사뭇 진지했다.
운화결은 차분히 찻잔을 내려두었다.
“시작이로군.”
곁에 앉은 임교영이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상공. 오늘은…….”
“걱정할 것 없다. 날이 밝기 전에 마무리될 테니까.”
그녀의 등을 어루만진 운화결은 양천대주 지여령에게 말했다.
“네 목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 숙였다.
“물론입니다.”
“다녀오지.”
임교영이 멈칫하는 사이 장포를 두른 운화결이 막사를 나섰다.
“팔존은 출발했나?”
“금표대와 함께 이동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다섯 명 전원이 움직였겠지?”
설지량은 목소리를 낮췄다.
“대표두들에게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눈을 떼선 안 된다고 각별히 일러두었습니다.”
“그들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없나?”
“우리에게 쓸모가 있다고 여기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운화결이 작게 끄덕였다.
“명가홍은?”
“백영단화를 손에 넣었으니 지금쯤 욕망에 들끓고 있을 겁니다.”
“좋다.”
운화결의 두 눈이 섬뜩한 빛을 토해냈다.
“가지.”
뒤늦게 막사를 나온 임교영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언제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 운화결이다.
이날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던 그였기에 이번 일 또한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여령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가씨. 저희도 움직여야 합니다.”
유사시 운화결이 일각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로 이동해야 한다.
“말하지 못했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잘 다녀오시라는 말을…….”
지여령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주군께서는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겁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임교영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마주 웃었다.
“그렇겠지요. 분명 그럴 거예요.”
“모시겠습니다.”
지여령이 손짓하는 순간, 일백의 양천대가 순식간에 두 사람을 둘러쌌다.
“예정된 장소로 갈 것이다. 아가씨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이동한다.”
숲속이라 그녀가 타고 이동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
막사를 나선 양천대는 임교영을 호위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진영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숲속.
한껏 몸을 낮춘 사내의 눈에, 저 멀리 지나가는 검은 광풍이 떠오른다.
‘저들이 갑자기 왜 움직이는 거지?’
맹에서 초빙한 것은 오로지 운화결뿐이다.
표사들이 이동할 이유가 없는데 움직이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맹주님께 전해야 한다.’
위사영의 명으로 이곳을 주시하던 사내가 조용히 돌아서는 순간.
푹.
새까만 비수가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언제…….”
소리는커녕 공기의 떨림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죽는 마당에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큭.”
마지막 힘을 다해 사내가 눈에 담은 것은 새까만 어둠 속,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였다.
조용히 다가온 대표두 무환이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가시지요. 노존.”
“재촉하지 않아도 늦지 않는다.”
말을 마친 살존 표설중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명가홍의 처소에 뜻을 함께하는 십여 명의 수장들이 집결했다.
지그시 눈 감은 명가홍은 기감으로 주변을 재차 확인했다.
‘없군.’
내력을 갈무리한 그가 동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심하시오. 만에 하나 변수가 발생해 계획이 어긋난다면, 사전에 약속한 대로 움직여야 할 것이오.”
그런데 웬일인지 수장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명가홍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긴장이라도 한 것이오?”
그때 양척방주 목충이 입을 열었다.
“명문주.”
“말씀하시오.”
“개봉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
“태산표국이 몰락했고 그들이 팔황문의 후신이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명가홍은 그제야 그들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대표국을 이용해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는 것은 좋으나 소문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허허. 그것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명가홍은 부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을 가져오너라.”
“예.”
빠르게 방으로 들어간 부하가 손에 두루마리 장계를 들고 나왔다.
명가홍은 그것을 활짝 펼쳤다.
“보시구려. 이게 비각에서 입수한 정보요.”
장계를 받아든 목충의 곁으로 수장들이 모여들었다.
“이것은…….”
그들이 눈에 담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태산표국, 회남표국. 상천의 기습에 멸문. 무면산왕은 팔황문주 황운천의 팔천영신공을 익힘.」
목충이 부릅뜬 눈으로 물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입니까?”
명가홍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소.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장계를 입수한 직후, 개방에서 서신을 보내왔지 뭐요?”
그는 품에서 조당주 지박개가 보내온 서신을 꺼냈다.
“이곳에도 같은 내용이 쓰여있소.”
장계와 서신을 번갈아 확인한 수장들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교활한 놈들!”
명가홍이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산적이란 족속들은 원래 그런 자들이오. 세간에 떠도는 소문 따위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안도한 수장들이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목충이 입을 열었다.
“사전에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때 숙소의 정문으로 부하가 달려왔다.
“문주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았다.”
손에 쥔 검은 장포를 두른 명가홍이 발을 내디뎠다.
“때가 되었군.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봅시다.”
고개를 끄덕이는 수장들의 눈빛이 결연하게 빛났다.
“예.”
처소를 나서는 걸음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다.
주먹을 내지르면 태산마저 무너뜨릴 수 있을 것처럼 힘이 넘쳐흘렀다.
가볍게 주먹을 말아쥔 명가홍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계획이 조금 틀어져도 괜찮을 것 같군.’
* * *
진무립과 당천이 위사영의 허락하에 정문을 넘었다.
무운전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공기가 무겁군.’
굳이 느끼려 하지 않아도 곳곳에서 무거운 긴장감이 여실히 느껴진다.
모두가 적모개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표국의 무인들은 맹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만일 적모개가 운화결과 명가홍의 유착을 입증해낸다면 사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기에 좀처럼 긴장을 풀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안내를 따라 무운전에 도착했을 때였다.
“공자.”
당천이 호위로 위장한 진무립을 슬쩍 돌아본다.
“무슨 일이냐?”
“송구합니다. 잠시 볼일을 보고 와야겠습니다.”
당천이 안내하던 사내에게 무언의 시선을 던졌다.
“왼쪽 모퉁이를 돌아가시오.”
사내의 말에 이어 당천이 팔짱을 끼고 발을 멈췄다.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속히 다녀오거라.”
“감사합니다.”
가볍게 예를 갖춘 진무립이 전각 모퉁이 너머로 이동했다.
‘하필 반대편이냐.’
비각은 무운전의 바로 옆 건물.
그런데 진무립이 온 곳은 아쉽게도 비각의 반대편이었다.
‘일다경 정도는 괜찮겠지.’
그림자로 스며든 진무립은 순식간에 전각을 돌아갔다.
곳곳에 횃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담장 앞에 도착한 진무립이 비조처럼 그것을 뛰어넘었다.
비각의 건물은 단층에 사방으로 넓은 구조다.
‘입구에 둘. 안은 비었다.’
주변을 살핀 진무립은 조용히 각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빠르게 창을 열고 들어간 진무립은 벽면의 가구를 밀어 기관을 작동시켰다.
스스스…….
마치 모기가 울 듯 나직한 소음이 깔리는 가운데 장정 한 명이 들어갈 만한 계단이 나타났다.
밑으로 내려간 진무립은 작은 공동의 천장에 달린 야명주를 발견했다.
비각의 암도는 양쪽의 기관을 작동시켜야 열리는 구조.
손을 뻗어 야명주를 꾹 누르자 한쪽 벽의 바위가 거짓말처럼 움직이더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왔군.’
사박이는 발소리가 바람에 섞여 귓속을 파고든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복면을 착용한 상천팔기와 동료들이 나타났다.
“악계화는?”
육병흑궤를 등에 진 유대하가 슬쩍 길을 비켜선다.
흑의를 착용한 악계화와 태산표국 출신 무인들은 후미에 멈춰서 있었다.
악계화가 결연한 눈빛으로 전음을 보내왔다.
[우린 언제든 나설 수 있다.]복령천의 천주가 이곳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배신한 팔존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복수심에 피가 끓어오른 그들은 치미는 살기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흥분하지 마라. 아직은 기다릴 때다.]진무립은 주인환과 금성우에게 말했다.
“비각은 드나들었던 너희가 잘 알 거다. 인환은 이들을 숨을 만한 곳으로 데려가라. 성우는 나와 함께 간다.”
“예.”
음혼귀영공을 전개한 금성우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성우를 보낼 때까지 대기다. 행여 노출될 경우 잠시 재워둬라.”
이하빈이 동료들을 대표해 예를 갖췄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발로 당당히 세상을 활보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