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5
◈ 215화. 팔존의 등장
어둠 속, 불어오는 바람에 짙은 혈향이 묻어난다.
얼어붙은 땅 위로 피가 강처럼 흐르는 이곳은 개방의 총단이었다.
냉정한 눈으로 수십 구의 시신을 응시하는 이는 바로 걸왕 철표개였다.
추영당주 봉추개가 피에 젖은 몰골로 나타났다.
“조당의 장악이 끝났습니다.”
“모두 몇이나 죽었지?”
“총단에 머무는 거지는 도합 마흔다섯입니다. 아랫것들을 보냈으니 분타도 사흘 안에 정리될 겁니다.”
철표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형 때보다 많잖아?”
천하대전 이전의 반란 사건보다 피해가 훨씬 컸다.
철표개는 괜스레 전대 방주와 비교되는 것 같아서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봉추개가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뭐가 어쩔 수 없단 말이냐?”
“방도들이 중이나 도사도 아니고 물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거지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철표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심한 일이로군.”
지금의 말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이 거친 무림에 의와 협의 기치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구나.”
천하대전이 끝난 시점에 굳게 다짐했던 꿈.
방주에 오르고 중원무림맹을 세운 뒤, 모두가 자신의 이상에 따라 의협이 살아있는 무림을 만들어가길 바랐다.
그러나 개인의 욕심까지 생각대로 제어되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또한 무림이라며 넘어가야 하는가.’
입가에 쓴웃음이 절로 맺힌다.
“지박개가 맹으로 향했으니 분명 뭔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먼저 가겠다.”
봉추개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철표개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알아서 몸 사리고 있을 테니 서둘러 장로와 방도들을 소집해서 따라와라.”
지면을 박찬 철표개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난전이 펼쳐지는 중원무림맹의 대연무장.
거친 쇳소리와 비명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장을 눈에 담은 궁존 안사독이 혀를 찼다.
“형편없군. 국주는 저런 버러지들과 거사를 도모하려 했단 말인가?”
중소방파 무인들은 소수에 불과한 상천의 무인들에게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들은 숫자의 우위를 살리지 못한 채 벌써 절반 이상이 나가떨어졌다.
창존 구유비가 고개를 저었다.
“은곡의 무공이 대단한 거예요.”
그녀의 말처럼 상천의 무인은 압도적인 신위로 상대를 도륙하고 있었다.
어둠에 스며든 살존 표설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자가 무면산왕인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운화결과 접전을 펼치는 진무립이 있었다.
두 사람 뒤로 놓인 흑과 백의 궤짝.
활짝 열린 궤짝으로 쉴 새 없이 무기가 들어가고 나오길 반복한다.
팔천영신공과 팔천영신공이 충돌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전황을 살핀 표설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은 탐색전인 모양이로군.”
절륜한 보법에 비해 두 사람의 충돌은 가볍다.
거구의 노인, 봉존 영군천이 어깨에 봉을 척 걸치며 나섰다.
“판은 깔렸다. 여기서 상천의 대가리를 전부 족치고 아랫것들을 흡수하면 화령과의 전쟁에서 써먹을 수 있겠지.”
어쨌든 뿌리는 같은 은곡이다.
그들은 무면산왕과 상천팔기를 모두 제거하면 갈 길 잃은 자들이 뿌리를 찾아올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도존 박위문이 윤건을 고쳐 쓰며 도파를 움켜쥐었다.
“시작하세.”
시선을 교환한 그들이 전장을 덮쳐가는 표사들의 뒤를 따랐다.
상천의 무인들이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이는 바로 육군명이었다.
‘왔다!’
그 수가 대략 이천이 넘는다.
태산표국의 백표대가 백오십, 철사대가 백여 명이었던 것처럼, 저들 중 절반가량은 거산채와 엇비슷한 무위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극도의 위기감이 전신을 지배하는 가운데, 육군명의 눈이 빠르게 중천대를 살폈다.
‘여긴 이제 저들만으로 충분하겠어.’
자신을 비롯해 상천팔기가 거칠게 몰아붙인 결과, 힘의 균형이 비슷하게 맞춰진 상태였다.
‘놈들이 후미를 덮치면 위험해진다.’
그렇다면 잠시라도 돌진을 멈춰 세워야 한다.
지체 없이 몸을 날리는 그의 곁으로 용추가 따라붙었다.
“같이 가.”
“저놈들은 보통이 아니다.”
용추는 이 와중에도 히죽 웃었다.
“난 무서운 게 없는 몸이야.”
피식 웃은 육군명이 도파를 고쳐잡았다.
“좋아. 함께 가지.”
필사적으로 싸우고 싸웠으나 손끝에서 느껴지는 도의 예기는 아직 살아있었다.
“내력, 체력은 아직 충분하고.”
밀려드는 해일과 정면으로 마주 선 육군명이 도신을 높게 치켜들었다.
선두에 선 다부진 체구의 사내, 대표두 무환이 즉시 검을 빼 들었다.
“우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육군명의 눈동자가 차가운 청광을 쏟아냈다.
“네놈들의 헛된 야망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피곤하게 살았는지 알아?”
스승과 함께 반평생 숨어 살던 자신이 진무립을 만나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당당한 무림의 구성원이 되어 천하를 질타하고자 했던 꿈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육군명의 두 손으로 전신 내력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대표두를 저지하겠다. 부하를 노려라.]쌔애액!
어느새 다가온 당천이 무환을 향해 비도를 출수하고 있었다.
“그래. 부탁한다!”
빗살처럼 뻗어 나가던 비도가 무환의 검 끝에 걸리는 순간.
캉!
치켜든 도신에서 줄기줄기 솟구친 흑광이 무환의 좌측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흑무진천도 압천경세(壓天驚世)의 초식.
태산 같은 위력을 품은 흑광이 단숨에 표사들을 덮쳐가는 순간, 우측에선 일진광풍을 동반한 용추의 봉영이 노도와 같이 적을 후려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컥!”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십여 명의 적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거침없이 질주하던 적의 발이 우뚝 멈춰섰다.
대표두 무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감히!’
수천의 진격이 고작 세 사람에게 막히고 말았으니 속에서 열불이 치미는 것이다.
육군명과 당천, 용추가 다음 초식을 전개하려 할 때였다.
“멈춰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어깨를 잡아 세운 이는 거련채주 연길상이었다.
그의 곁으로는 어느새 집결한 상천팔기가 매서운 눈으로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적이 멈췄으니 이대로 가면…….”
육군명의 말에 연길상은 턱짓으로 그 뒤를 가리켰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저들 뒤에는 개봉의 서문 밖에서 마주쳤던 노인들이 있었다.
육군명 등이 이대로 뛰어들었다면 분명 그들이 나섰을 것이다.
철궁을 움켜쥔 송조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넷인가?”
그날 본 노인은 분명 다섯 명이었으나 느껴지는 기운은 넷에 불과했다.
그때 왕유가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다섯일세. 그는 내가 맡지.”
네 사람의 뒤로 분명 몸을 숨긴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음혼귀영공을 익혔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비장하게 빛나는 연길상의 눈동자에 시꺼먼 물결이 한가득 떠오른다.
“저놈들만 잡으면 된다.”
탁!
나란히 선 마일관이 결연하게 두 손을 부딪쳤다.
“그래 저들을 잡고…… 우리의 존재 가치를 천하에 입증하자.”
두 개로 갈라진 은곡.
중원무림맹을 구하고 자신들이 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천하에 입증할 시간이다.
진무립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운화결이 뒤를 힐끔 살폈다.
‘왔군.’
조금 늦은 게 아쉽긴 했으나 이 정도면 균형을 맞추기엔 충분하다.
고개 돌린 운화결의 눈동자에 허공을 가득 채운 권영의 바다가 떠오른다.
그는 물러나지 않고 주먹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쏴아아아!
내지르는 주먹과 주먹이 허공에서 정확히 충돌하며 강렬한 폭음을 자아낸다.
쿠콰콰콰콰콰쾅!
쩌렁쩌렁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주르륵 미끄러진다.
운화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정도도 뚫지 못한단 말이냐?’
슬쩍 빈틈을 내주었음에도 진무립의 주먹은 그곳을 노리지 못했던 것이다.
팔존 두 명을 잡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보여주는 진무립의 무위는 딱 그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뒤를 슬쩍 살핀 운화결이 진무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진무립의 상대는 자신이 아니라 팔존이어야 한다.
그들이 도착한 이상 빠르게 상대를 바꿔야 했다.
운화결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진무립은 그의 눈빛과 행동,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눈에 담고 있었다.
‘이놈. 역시 뭔가 노리고 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나만 끝내면 이 싸움의 승리는 손쉽게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전투의 승리가 목적이 아닌가?
진무립은 조금 더 그의 속내를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있나?”
쐐애액!
차갑게 눈을 빛낸 진무립이 주먹을 말아쥔 채 짓쳐 들었다.
“당연히 있다.”
자리에서 빙글 회전한 운화결이 손등으로 주먹을 후려쳤다.
콰앙!
이번엔 그 반동으로 회전한 진무립이 어깨부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퍽!
짓쳐 든 어깨가 가슴을 가격한 직후, 밀려나던 운화결의 손이 진무립의 어깻죽지를 잡아당겼다.
쉬익!
“더 힘을 써봐라!”
그와 동시에 운화결의 상체가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진무립을 그대로 땅에 메다꽂았다.
콰앙!
“큭.”
무림 출도 후, 처음으로 진무립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슈아악!
솟구친 운화결의 발이 진무립을 향해 뚝 떨어진다.
진무립은 그 즉시 몸을 굴렸다.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 발이 얼어붙은 대지에 충돌했다.
콰아앙!
일어나는 진무립을 향해 운화결의 발등이 거침없이 짓쳐 든다.
쌔애액!
교차된 진무립의 팔이 그의 발등을 막아냈다.
쾅!
화살처럼 튕겨 나간 진무립이 무너진 단상의 잔해에 파묻혔다.
운화결은 멈추지 않았다.
지면을 박찬 운화결의 신형이 벼락같이 단상의 잔해로 날아들었다.
“고작 이 정도라면 내 쪽이 곤란하단 말이다!”
진무립이 자신에게 우위를 보여야 팔존을 이 싸움에 끌어들일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상대는 전력을 다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밀리는 형국이니 화가 치미는 것이다.
움켜쥔 운화결의 주먹으로 강렬한 기운이 운집한다.
쐐애액!
팔천영신공 폭천격(爆天擊)의 초식이 피어오른 먼지구름 사이를 직격했다.
쿠아아앙!
중천대와 함께 사투를 벌이던 단려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무립!”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몸이 반응하며 지면을 박찬다.
탓!
중천대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그녀 앞에 희끗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안 됩니다.”
어느새 나타난 유대하가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유대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는 진무립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얗게 질렸던 단려화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렇군요.”
차분히 호흡을 고른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몸이 먼저 움직인 걸 어쩌겠어요.”
진무립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게 아니다.
그의 위기를 목도한 순간 육신이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소저께서 주군을 많이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시끄러워요.”
그때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흩어져가며 서서히 진무립과 운화결의 신형이 드러났다.
내지른 주먹, 그것을 받아낸 진무립의 손.
고막을 후려치던 강렬한 굉음은 진무립의 방어가 성공하며 기파가 터지는 소리였다.
진무립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내가 팔존을 죽여주길 바라는 것이냐?]순간 운화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놈……. 설마 그 한마디로 추측했다는 말인가?’
진무립은 상대의 표정에서 확신했다.
‘역시 그랬군.’
시간을 끄는 행동, 연신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과 폭천격을 시전하며 내뱉은 외침.
천음지체를 타고난 진무립의 영민한 머리는 그 모든 것을 종합해 상대의 노림수를 파악한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내 부하들은 약하지 않으니까.”
쉬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무립의 발이 허공을 가르며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훌쩍 물러난 운화결의 눈에, 자신감으로 가득한 진무립의 표정이 담긴다.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차가운 목소리에 이어 진무립의 손으로 흑검이 빨려들었다.
“이 전투의 승자는 우리 상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