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6
◈ 216화. 난전
후방에서 전황을 살피는 설지량은 그답지 않게 갑갑함을 느꼈다.
진무립과 맞서는 운화결이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노림수가 들킨 이상 이대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 까닭이었다.
“무면산왕!”
빗살처럼 뽑혀 나온 창두가 새하얀 백광을 줄기줄기 쏟아 내며 진무립의 전신으로 쏟아진다.
슈슈슈슉!
차갑게 빛나는 진무립의 눈동자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백광을 떠올렸다.
“하앗!”
기합을 토해낸 진무립은 두 발을 지면에 단단히 쑤셔 박고 손에 쥔 흑봉으로 원을 그렸다.
쿠콰콰쾅!
일진광풍과 함께 흩어진 기파가 마치 암기처럼 사방에 틀어박힌다.
두 사람의 주변으로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접근하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무서운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주군!]설지량의 전음에도 운화결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진무립에게 몰두했다.
탐색전이 끝나자 강렬해진 진무립의 공세는 잠시라도 한눈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런.’
설지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표국의 부하들이 합류한 이상 압도적인 승리를 의심치 않는다.
그의 기준으로 이 전장에서 팔존에게 승리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무면산왕뿐이다.
만일, 운화결이 전투의 승패가 갈릴 때까지 진무립에게 묶여 있다면 팔존 전원이 살아남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대로는…….’
자신들이 그리는 원대한 계획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설지량의 눈동자가 빠르게 전장 전체를 담았다.
‘광룡의 곁에는 언제나 광녀가 있다.’
생각을 마친 순간,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표국의 지원이 상천의 반격에 주춤하는 사이, 중천대와 중소방파 간의 싸움은 완전히 승기가 기울었다.
이미 상천의 무인들이 거칠게 휩쓸고 간 자리에 서장의 절대자인 판천라마와 산동의 수장들, 중원삼가의 수장까지 가세한 까닭이다.
콰콰콰콰쾅!
연이은 폭음과 함께 두 자루 검신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진대천을 상대하는 명가홍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놈!”
뜻을 함께하던 수장들은 위사영과 원로원의 검에 모조리 목이 떨어진 상태.
앞을 막아서는 진대천의 만겁화양검(萬劫火揚劍)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진대천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좋은 약을 처먹은 모양인데 고작 그 정도밖에 힘을 못 쓰나?”
무림 칠경의 일원인 진대천은 화검(火劍)이라는 무명이 붙었을 만큼 양기를 극대화한 무공을 펼치는 무인.
자신과 비슷한 성질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다.
‘아무래도 이건 이상하다!’
명가홍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바드득 갈았다.
전투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 지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화산처럼 넘치던 힘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설지량! 대체 내게 준 것이 무엇이냐!’
카앙!
사선으로 찔러 가던 검신이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다.
“큭!”
시간이 지날수록 손목에서 느껴지는 육중함이 점점 강렬해진다.
상대의 힘이 강해지는 게 아닌, 자신의 힘이 빠르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간격을 확보한 진대천의 검신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쌔액!
일점으로 쏘아진 검극이 명가홍의 검면을 강타한다.
카아앙!
“큭!”
고막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명가홍의 신형이 주르륵 미끄러지는 순간이었다.
지면을 박찬 진대천의 검신이 부챗살처럼 갈라지더니 송곳과 같이 전신으로 쏟아졌다.
명가홍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진대천을 노려보며 검신을 내뻗었다.
“놈!”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어야 할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순 없다.
명가홍은 단전 밑바닥에 잠재한 내력을 남김없이 끌어 올렸다.
투둑. 투둑.
불거진 혈관이 터져 나가며 전신이 피로 물들어 간다.
“이렇게 끝날 거 같으냐! 나는 광한검 명가홍이다!”
악을 쓰는 명가홍의 모습은 마치 혈귀가 강림한 듯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쏴아아아!
두 사람 주변으로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수십 다발 검영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쿠콰콰콰콰콰쾅!
거친 굉음과 함께 대지의 진동이 극에 달하는 순간.
콰직!
방어를 분쇄하고 들어간 진대천의 화검이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컥!”
화르륵!
검신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명가홍의 전신을 집어삼킨다.
“내가 이렇게…….”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눈동자가 불길에 휩싸여 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뇌리를 잠식하는 가운데 나직한 일침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주제를 알았어야지. 지금의 무림은 과욕이 통할 만한 곳이 아니야.”
“큭큭…….”
검을 뽑아내는 순간 명가홍의 신형이 마른 짚단처럼 풀썩 쓰러졌다.
어느새 다가온 위사영이 말했다.
“화검이 더욱 강렬해졌군.”
“죽기 전에 네 녀석 한 번은 이겨봐야지.”
“목표를 좀 더 높게 잡지 그러나?”
잠시 단소룡의 괴물 같은 신위를 떠올린 진대천이 실소를 흘렸다.
‘그게 가능하겠냐?’
위사영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움직일 여력이 있나?”
“충분하지.”
“저들을 도와야 한다.”
두 사람이 바라본 곳엔, 경천동지할 싸움을 시작한 상천의 무인들이 있었다.
“은곡이라……. 정말 지긋지긋하군. 그냥 이대로 상잔하게 두는 게 낫지 않나? 그놈이 그놈일 텐데.”
위사영은 고개를 저었다.
“상천은 자신들이 팔황문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속내는 모를 일이지. 나중에 뒤통수치면?”
“그땐 다시 싸우면 된다.”
간단명료한 대답에 진대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그게 무림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대천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고개 돌린 위사영이 중천대와 중소방파의 전투를 살폈다.
수장들이 모두 죽은 이상 중소방파 무인들에겐 싸울 이유가 사라졌다.
‘희생을 줄여야 하는가.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는가.’
판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사방에서 쇳소리와 비명이 솟구치는 와중에도 위사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소룡. 자네는 대체 어떻게 화령을 이끌어 온 것인가?’
한평생 천하를 떠돌며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눈으로 보고 머리에 담았다.
어울리지 않게 중원무림맹의 맹주직을 맡은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으로 자신의 무공을 진일보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래도 이번엔 길을 잘못 들은 모양이야.”
고개를 흔든 위사영이 결단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책임은 진다. 모든 원망은 내가 가져가겠다.’
표국이라는 지원군이 온 이상, 수장을 잃고 분노한 자들을 어설프게 살려 뒀다간 전투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탓.
지면을 박찬 위사영의 검극이 중소방파 무인들을 향할 때였다.
‘이게 아닌데.’
무너진 단상의 잔해에 숨은 지박개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사태가 커져 버렸다.
‘어떻게든 저쪽으로 가야 한다.’
눈앞의 중소방파가 무너지는 이상 살길은 표국의 배후에 숨는 것뿐이다.
넙죽 엎드린 그가 꿈틀거리며 나아갈 때, 누군가 그의 머리통을 짓밟았다.
“컥!”
“이게 거지새끼인가? 아니면 쥐새끼인가?”
조롱 섞인 불편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적모개였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당천이 봉인된 내력을 풀어 주고 간 것이다.
탁!
지박개는 적모개의 발을 뿌리치며 몸을 굴렸다.
빠르게 한 발을 내디딘 적모개는 일어나는 지박개의 안면을 후려 찼다.
퍽!
“컥!”
억눌린 신음과 함께 누런 이빨이 튀어나온다.
“네놈은 거지새끼도 쥐새끼도 아니라 개새끼다.”
적모개는 상대가 정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휘청하는 지박개의 안면으로 묵직한 주먹이 거침없이 틀어박혔다.
콰직!
“자, 잠깐…….”
“사문을 팔아먹은 주제에 잠깐은 무슨 잠깐이냐. 이 개새끼야.”
슈우욱!
활짝 펼친 장심으로 묶여 있던 단전의 내력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잘 가라. 저승에서도 빌어먹을 새끼야!”
분노 섞인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콰앙!
지박개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전선에 선 중천대주 선우빈은 혈귀가 된 몰골로 쉴 새 없이 검을 내질렀다.
잠시 물러나 고개 돌린 곳엔 부친이자 선우세가의 가주인 선우진이 있었다.
“예. 가주님.”
“이 정도면 되었을 것이다. 여긴 네게 맡기마.”
완전히 기울어 버린 전황은 누가 와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다.
“가주께서는…….”
선우진의 고개가 뒤로 휙 돌아간다.
“나는 저들을 도와야겠다.”
부친을 따라 시선을 옮긴 선우빈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곳에는 고작 열댓 명의 무인들이 중천대의 뒤를 지킨 채 필사적으로 싸우는 중이었다.
‘저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승기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선우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맡겨 주십시오.”
“부탁하마.”
몸을 날리는 선우진의 뒤로 황보춘과 제갈경이 합류했다.
“형님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은곡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천하대전에서 뼈에 사무칠 정도로 경험했다.
제갈경의 당부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대 깊숙이 들어가선 안 될 것이다.”
눈앞에 은곡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무려 수백이 넘는다.
이는 천하대전 막바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규모였다.
“가자.”
경각심을 되새긴 그들이 육군명 등의 후미로 파고들 무렵.
포달랍궁의 궁주 판천라마는 전선의 중앙에서 대담하게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는 적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인의 장막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중소방파 무인 중 그 누구도 감히 판천라마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의 손에서 일장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족히 십여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를 향한 무인들의 눈빛에 담긴 것은 공포와 경외심이었다.
좌우에서 쉴 새 없이 전투가 벌어짐에도 판천라마는 조용히 생각을 이어 갔다.
‘무엇이 최선의 판단인가.’
표국의 무인들은 포위망을 갖추고자 연신 틈을 노렸고 상천 측 무인은 그것을 저지하고자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의 적을 일소하고 중천대와 함께 표국에 맞서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표국의 무인들을 공격하는 것이 나은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은은한 서기가 아지랑이처럼 주변을 감싸는 가운데 환혼사자 완사계가 다가왔다.
“불존.”
판천라마는 결단을 내렸다.
“그대들은 이곳을 빠르게 정리하도록 하라. 본좌는 새로 나타난 손님들을 상대해야겠다.”
“광룡을 돕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비명과 굉음이 치솟는 전장에서, 진무립과 운화결은 지금까지와 달리 소리 없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진무립을 슬쩍 쳐다본 판천라마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광룡은 혈마 무천극에게 승리한 위인이다. 그는 지지 않는다.”
서장의 절대자, 불존의 말에 허언은 없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불존.”
고개를 끄덕인 판천라마가 발을 내디딜 때였다.
‘살수?’
금강적사안(金講的査眼)을 시전한 판천라마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혈투의 중심에서, 적을 향해 맹렬한 공세를 퍼붓는 단려화의 뒤로 시꺼먼 그림자가 접근하고 있었다.
‘광룡의 여인인가.’
상대의 노림수를 간파한 판천라마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길게 미끄러졌다.
차갑게 눈을 빛낸 설지량의 손이 검파를 잡아 간다.
‘주군께서 알면 화를 내시겠지만…….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다.’
여인을 인질로 삼는 것은 제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운화결일지라도 극도로 혐오하는 짓이다.
그걸 알기에 인질로 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진무립의 주의를 조금이라도 흔들어 운화결에게 목표를 상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신 역시 무인이라면 각오는 되어 있겠지.’
상대와의 거리는 삼 장.
뽑혀 나온 검신이 그림자조차 감추며 은밀히 사라질 때였다.
“불길하구나.”
등 뒤의 현기 짙은 목소리에 설지량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엉!
벼락같은 일검을 쳐 낸 판천라마의 눈빛이 강렬한 금빛을 토해 냈다.
‘위험한 자로다.’
비단 무공의 강렬함만이 아니다.
‘형용할 수 없이 짙은 증오와 분노, 무엇이 이자를 수라로 만들었는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금강적사안은 설지량에게서 혈마 무천극 이상의 어둠을 감지하고 있었다.
설지량의 미간이 좁아졌다.
‘서장의 절대자. 판천라마.’
한동안 소식이 없던 자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그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가 앞을 막아선 이상 광녀를 공격하는 것은 틀렸다.
불존의 금강적사안은 음혼무영공을 놓치지 않고 간파할 테니까.
“후우.”
나직이 숨을 고른 설지량은 싱긋 웃었다.
“무천극에게조차 패한 당신이 나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극적인 도발에도 판천라마는 담담한 얼굴로 대꾸했다.
“망자라고 하여 그가 가볍게 보이는 모양이로구나.”
“망자가 아닐 때도 가볍게 보았던 건 사실이지요.”
보폭을 넓힌 설지량이 판천라마를 직시했다.
“일단 당신을 죽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