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3
◈ 223화. 운화결의 선택
박위문과 지우성이 쓰러진 지금, 전면에서 지시를 내릴 인물은 대표두 무환과 장공표뿐이었다.
당연히 그 두 사람은 진무립의 목표가 되었다.
진무립과 판천라마가 거침없이 몸을 날릴 무렵이었다.
‘진무립.’
그를 바라보는 설지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복령천에 들어간 과정부터 그곳을 나와 오대표국을 중원 최강의 자리에 올리기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화령의 대군사 화윤이 온다 해도 머리만큼은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놈이 등장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이길 수 있을까.’
아직 전력에서 우위인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
진무립이 발산하는 존재감이 설지량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까닭이다.
쿠콰콰콰콰쾅!
피와 살점이 솟구치며 몰아치는 혈풍에 비명이 뒤섞인다.
그사이 쓰러진 표사가 다시 일백.
설지량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는 부하들을 보며 짙은 갈등에 사로잡혔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인가.’
지치지도 않고 움직이는 진무립을 누구도 막아서지 못한다.
사람인 자신이 속단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때 담장 밑의 어둠에서 내상을 다스린 운화결이 일어났다.
“지량.”
“주군.”
은밀히 주위를 살핀 운화결이 전음을 보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라고 생각해라.]그답지 않은 말이었으나 진무립과 직접 상대해본 이상 알 수 있었다.
놈은 강하면서도 영악하다.
분하지만 뒷일까지 생각하며 자신과 싸운 놈에게 저들을 물리칠 방도가 없을 리 없다.
설지량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존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볼 테니 아가씨와 함께 탈출하시지요.]금강적사안을 가진 판천라마가 있는 이상 여기서 더 지체하면 어려워진다.
탈출을 결심했다면 진무립의 발이 묶여있는 지금이 적기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탈출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한다.]설지량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그렇게 안 좋습니까?]운화결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놈은 전투 중에도 계속해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위협이 되지 않으니 살려두고 있으나, 내가 움직이면 반드시 놈도 움직일 거다. 이 몸으로 추격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다.]외상도 외상이지만 온전히 회복하려면 적어도 반년은 정양해야 할 만큼 큰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진무립에게 패했다고 꿈꿔온 대계가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자신은 몰라도 설지량의 머리라면 얼마든지 계획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살존과 나를 미끼로 써라. 그걸 들고 강남에 가는 거다.]강남에는 천하제일방파인 화령이 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확보한 복령천의 정보.
운화결은 지금 그것을 들고 떠나라 말하는 것이다.
‘이게 최선인가.’
같은 목표를 꿈꾸며 오늘까지 온 이상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무림을 향한 분노는 그에게 지킬 의리보다 크다.
천하에서 무림을 없애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날까지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운화결도 마찬가지였다.
설지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하마.]무슨 부탁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가씨입니까?]운화결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죽기엔 불쌍한 아이다.]설지량은 혼절한 채 지여령의 품에 안긴 임교영을 쳐다봤다.
‘탈출하는 것보다 뒷날 아가씨를 설득하는 게 더 큰 난관이 되겠군.’
임교영에게 다가간 운화결은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미안하구나.’
평생을 함께하겠다던 약속은 오늘부로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지량.”
등 뒤의 설지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모든 일이 끝나면 교영을 사천으로 데려가다오.”
언젠가 사천의 한적한 땅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던 그녀의 꿈.
자신이 없더라도 그 꿈만큼은 이뤄주고 싶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운화결이 손의 떨림을 억누르며 검파를 쥐었다.
“가라.”
우두커니 서서 운화결을 바라보던 설지량은 지그시 눈 감은 채 포권을 취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비장하게 돌아선 설지량이 지여령을 찾았다.
“양천대에서 무위가 처지는 아이들로 스물을 차출해라.”
“예.”
임교영을 조심스럽게 내려둔 그녀는 밑에서부터 스무 명을 차출했다.
그들을 둘러본 설지량이 지여령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가씨를 모시고 동쪽 담장 밑으로 이동해라. 곧 떠날 거다.] [예. 군사.]고개를 끄덕인 지여령이 임교영을 조심스럽게 등에 업는 사이, 설지량은 차출한 무인을 데리고 십 장 밖에 숨은 표설중에게 다가갔다.
[노존. 먼저 탈출하셔야겠습니다. 천주께 아뢰어주십시오.]순간 반짝이는 표설중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쳐 간 건 착각이 아니었다.
체면상 어쩔 수 없이 남아있었다곤 하나, 진무립이 가공할 초식을 전개할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다.
표설중은 은근히 물었다.
표설중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뒤는 네게 맡기고 천주께 보고를 올리겠다.] [노존.]돌아서던 표설중이 고개를 돌린다.
[무엇이냐?] [팔령산으로 가십니까?]팔령산은 팔존이 얼마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표설중은 고개를 저었다.
[소화산으로 갈 것이다.]설지량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물었다.
[소화산이라니요?]여기까지 온 이상 표설중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일 년 뒤에 소화산(小華山)에서 천주님과 교주의 회동이 있을 것이다. 소화산에 가서 그분을 기다릴 생각이다.]원했던 대답이 나오자 설지량은 즉시 고개 숙여 회심의 눈빛을 감췄다.
복령천주의 위치는 팔존만이 아는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소화산.’
섬서성 서안에서 북쪽으로 이백 리 떨어진 곳이다.
[미끼로 쓰실 아이들을 준비했습니다. 데려가시지요.]설지량의 손이 따라온 양천대원들을 가리킨다.
[미끼?] [저쪽엔 판천라마가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그제야 이해한 표설중이 고마운 눈길을 보낸다.
[데려가지. 살아서 보자꾸나.] [물론입니다.]표설중과 양천대원 스물이 담을 넘어 사라지자 설지량은 은밀히 전장의 배후로 움직였다.
전황을 빠르게 살핀 그는 진무립의 뒤에서 사투를 벌이는 판천라마를 찾았다.
[죽산채주를 쓰러뜨린 적의 수괴가 서쪽 담을 넘었습니다! 원군을 부르려는 모양입니다!]사방으로 금파장(金波掌)을 쏟아내던 판천라마가 멈칫하는 순간, 설지량은 전력으로 신법을 전개해 자리를 이탈했다.
‘죽산채주를 쓰러뜨린 살수?’
분명 숲속에서 왕유를 구할 때 도망쳤던 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왠지 그 말보다는 원군이라는 뒷말이 더욱 신경 쓰였다.
판천라마는 즉시 진무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망친 자가 있는 모양이군. 다녀오겠다.]말을 마친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서쪽 담장으로 몸을 날렸다.
무인들의 뒤에 숨은 설지량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다.’
전력의 핵심인 진무립은 추격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가장 꺼림칙한 판천라마를 떼어낸 이상 자신의 도주를 막을 자는 없었다.
‘가장 떨어지는 아이들로 붙여두었으니 머지않아 잡힐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살존 표설중은 금강적사안을 가진 판천라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빠르게 돌아선 설지량이 동쪽 담장 밑으로 은밀히 움직였다.
자신을 주시하는 눈이 있는 것도 모른 채.
‘그자야!’
고개 돌린 단려화의 눈동자에 멀어지는 설지량이 떠오른다.
난전 중 자신의 배후를 노렸던 살수.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놔두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반드시 잡아야 해.’
고개 돌린 단려화의 눈동자에 때마침 체력을 회복하고 일어나는 백채륜이 보인다.
그녀는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갔다.
“갈 곳이 있어요!”
백채륜이 싱긋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갈 길이 없습니다만.”
그의 말처럼 주변에선 중천대가 적의 포위에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단려화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이라면 뚫을 수 있잖아요! 반드시 잡아야 해요!”
그녀답지 않은 다급한 말투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백채륜은 차분하게 물었다.
“잡아야 할 상대는 몇 명입니까?”
“하나…… 가 아니고 그건 모르겠어요.”
일단 자신이 본 것은 설지량이 끝이었으나 누가 더 있을지 모른다.
주변을 돌아본 백채륜은 가장 가까운 유대하와 용추, 당천을 불렀다.
“아가씨께서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당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가야 할 곳?”
유대하가 물었다.
“어딜 간단 말입니까?”
백채륜의 실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아가씨께서 바라시는 곳.”
이들은 호위다.
자신 혼자 가는 것이면 모를까 단려화가 간다면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야 하니까.
백채륜은 용추를 쳐다봤다.
“용추.”
언제나 그를 꺼림칙하게 생각해온 용추가 흠칫 놀라며 물러난다.
“뭐, 뭐요?”
“아가씨께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길을 여세요.”
용추의 금영무단경(金影武鍛憬)은 어지간한 공격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는 신공.
백채륜은 그를 앞세워 힘을 아끼고 포위를 돌파할 생각이었다.
“내가 왜…….”
철썩!
단려화가 다그치듯 용추의 등짝을 때렸다.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빨리 동쪽을 뚫어요!”
“아, 알았습니다.”
움찔한 용추가 즉시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단려화, 당천에 유대하가 차례로 뒤따랐고 후미는 백채륜이 지키며 몸을 날린다.
아군의 사이를 돌파한 용추가 철봉을 높게 치켜들었다.
“비켜라!”
쌔애액!
짧은 휴식으로 충만해진 내력이 내리치는 봉에 깃든다.
콰아앙!
강렬한 대지의 진동과 함께 전방에 일 장 남짓한 길이 열린다.
용추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뚫려선 안 된다! 막아라!”
누군가의 외침에 이어 좌우에서 섬뜩한 공격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용추는 자신의 강철 같은 육신을 믿고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카카카카캉!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공격이 고스란히 튕겨 나간다.
당황한 그들이 멈칫하는 사이, 용추를 비롯한 단려화 일행은 순식간에 포위를 돌파해버렸다.
용추와 자리를 바꿔 전력으로 신법을 전개한 단려화가 담장 밑에 도착했다.
‘어디로 갔지?’
분명 설지량이 향한 곳은 이곳이었다.
단려화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놓칠 순 없어!’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하듯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며 감각이 활짝 개방된다.
이윽고 담장 너머의 먼 곳에서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쪽이야!’
등 뒤에서 불어온 바람과 함께 그녀의 육신이 이끌리듯 담장을 넘었다.
슈아악!
솟구친 진무립의 도신이 폭포수 같은 궤적으로 뚝 떨어진다.
서걱!
눈앞의 상대를 단숨에 두 동강 낸 진무립이 차분히 숨을 고르며 어둠 속을 쳐다본다.
‘맡겨도 되겠지.’
아군이 열세인 이상 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도 없을뿐더러 검파를 쥔 운화결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무면산왕. 아니, 진무립.”
마지막을 각오한 운화결의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난다.
‘부탁한다. 려화.’
고개 돌린 진무립이 운화결을 눈에 담았다.
“와라.”
양천대와 함께 담장을 넘은 설지량은 지여령의 등에 업힌 임교영을 확인했다.
“아가씨의 상태는?”
지여령은 뒤를 슬쩍 살피며 말했다.
“많이 놀라셔서 정신을 잃으신 것뿐이에요. 맥은 정상이에요.”
운화결이 그렇게 당한 것을 처음 보았으니 혼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급적 오래 주무시면 좋겠네요. 아가씨.’
그녀가 깨어난다면 분명 운화결에게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테니까.
순식간에 중원무림맹을 벗어난 설지량은 혹시 모를 추격에 대비해 북쪽으로 달렸다.
그렇게 일각을 전력으로 달렸을 무렵.
설지량의 눈동자가 등 뒤의 어둠 속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