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4
◈ 224화. 설지량입니다
멈춰선 지여령이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군사?”
후방의 적을 감지한 설지량은 갈등에 잠겨 있었다.
‘미끼를 던지고 도망칠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어둠 속에서 단려화 등이 나타났다.
설지량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나답지 않구나.’
언제나 과감하게 판단을 내리고 망설임이 없던 자신이다.
그런데 진무립에게 당한 뒤로 어떤 판단을 내리건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정리했다.
‘수가 적군. 어설프게 추격을 달고 도망치기보단 상대하면서 방법을 찾아도 되겠어.’
설지량은 앞으로 나섰다.
“집요하군요.”
그를 쳐다보던 백채륜이 단려화에게 물었다.
“저자는 누굽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몰라요.”
“…….”
“그런데 중요한 인물이라는 건 확실해요.”
용추가 시큰둥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겠네.”
“들려요.”
용추가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떼며 유대하를 쳐다본다.
“그럴 줄 알았지. 말조심해.”
“……나요?”
백채륜의 실눈이 호선을 그려간다.
저들의 뒤로 보이는 혼절한 여인, 임교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운화결이 자신을 희생해 지키려 했던 여인, 그런 이를 데려가는 자들이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뱀 같은 눈매에 호리호리한 체구.
피에 젖은 백의를 걸친 백채륜을 설지량이 못 알아볼 리 없다.
‘무음광검 백채륜인가.’
상천팔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을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갈 고수다.
부하에게 임교영을 건넨 지여령이 곁으로 다가왔다.
“군사.”
“대장은 내가 맡지. 부대를 넷으로 나눠 잡졸들에게 붙이고 그대는 아가씨를 지키도록. 당가의 독에만 주의하면 크게 어려울 건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들렸는지 용추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들었냐? 열심히 해봐라. 잡졸들아.”
“…….”
어색한 정적 속에 싸늘한 시선이 용추에게 파고든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당천이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대장이 누구일 거 같지?”
“그야 당연히…….”
동료를 차례로 살피던 용추의 눈동자가 목적을 잃고 흔들린다.
이내 용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저 시벌놈이.”
백채륜이 유대하의 어깨를 두드린다.
“수장은 제가 맡겠습니다. 열심히 해보세요. 잡졸 여러분.”
“…….”
마지막 말이 네 사람의 가슴에 비수처럼 틀어박혔다.
천천히 나아간 백채륜의 앞을 설지량이 막아섰다.
“무음광검 백채륜. 한 번쯤 만나고 싶었습니다.”
“나를 만나고 싶었다. 후후후.”
스르릉.
가슴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투명한 검신이 달빛 아래 나타난다.
“죽고 싶었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싱긋 웃은 설지량이 검파를 움켜쥐고 보폭을 벌렸다.
“내 손으로 죽여볼까 했다는 말입니다.”
쿠우우우…….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요하던 주변 공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단순한 살수는 아닌 모양이군요.’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정면에서 맞서려 한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 속에 백채륜의 좌수가 검신에 닿는다.
“나와 상대한 적은 후회 속에 죽어가곤 했지요.”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
“그대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파앙!
지면을 박찬 백채륜의 신형이 공간을 꿰뚫고 튀어 나간다.
동시에 설지량의 검신이 번뜩이며 허공을 휘저었다.
카카카캉!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절정의 쾌검이 연이어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꽃을 흩뿌린다.
시선을 빼앗긴 유대하의 귀에 단려화의 나직한 경고가 들려왔다.
“준비해요.”
두 사람이 충돌을 시작한 사이 여든 명의 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유대하가 검파를 움켜쥐고 물었다.
“작전은 없습니까?”
대답은 당천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건 필요 없다.”
용추가 히죽 웃었다.
“그렇지. 그냥 전부 때려잡으면 그만이야.”
단려화가 당부하듯 말했다.
“모두 조심해요. 다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용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대하와 당천을 쳐다봤다.
“다들 아가씨 말씀 잘 들었지?”
“…….”
“가자! 잡졸들아!”
철봉을 움켜쥔 용추가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부우웅!
순식간에 흩어진 양천대원들 사이로 회전하던 철봉이 뚝 떨어진다.
쾅!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가운데 용추의 신형이 좌측으로 치닫는다.
“잡졸을 상대로 도망치는 거냐!”
잡졸 소리가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쌔애액!
수평을 그려가는 철봉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적진을 휘저었다.
이어서 단려화와 유대하, 당천이 차례로 적과 충돌하며 전투를 시작했다.
지여령의 시선이 당천과 상대하는 부하들에게 닿는다.
[당천의 독은 주의해야 한다! 넓게 간격을 유지하고 틈을 주지 마라!]고개를 끄덕인 양천대원들이 일사불란 움직여 넓게 포위망을 갖췄다.
당천은 내심 감탄하며 암기를 손에 쥐었다.
‘쓸만하군.’
상대는 독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보통의 독인이라면 충분히 통했을 것이다.”
타타타탓!
진형을 갖춘 상대가 사방에서 맹렬하게 짓쳐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섬뜩하게 눈을 빛낸 당천이 두 손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슈아아악!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 여덟 자루 비도가 적의 코앞에서 뚝 떨어진다.
‘헛!’
허공을 휘저은 양천대원이 기겁하며 하단을 막아냈을 때.
카앙!
그 찰나의 틈으로 당천의 독장이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이게 미, 미끼라고?’
부릅뜬 양천대원의 눈에 시꺼먼 어둠이 빨려들 듯 확장된다.
콰앙!
“컥!”
폭음과 함께 양천대원의 신형이 바람같이 튕겨 나갔다.
단 두 번의 공격에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당천이 오연하게 말했다.
“당가의 힘을 얕보지 마라.”
지여령의 눈빛이 짙은 떨림을 보인다.
‘저자가 당천이란 말이야?’
비록 금표대에 미치지는 못한다곤 하나 은곡의 무공을 익힌 양천대가 이토록 쉽게 당할 이들은 아니었다.
그녀가 쉽지 않은 싸움을 예감하고 있을 무렵.
치치치치칭!
백채륜과 설지량은 연신 떨어지고 부딪치길 반복하며 상대의 힘을 탐색하고 있었다.
설지량의 눈에 이채가 번졌다.
백채륜이 익힌 유운천예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백채륜의 검초는 일반적인 유운천예검과 그 궤가 다르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경지에 접어들었나.’
초식과 초식의 연결, 출수와 회수의 완급조절은 마치 진무립을 연상케 할 만큼 매끄럽다.
“후후후. 한눈을 팔 여유가 있습니까?”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진 백채륜이 사선에서 쇄도한다.
쌔애액!
설지량은 번개같이 반응하며 몸을 비틀었다.
미세한 차이로 백채륜의 검신이 눈앞을 스쳐 간다.
일격을 피해낸 설지량이 반격을 위해 검파를 내지를 때였다.
‘지나간 게 아니었다고?’
분명 스쳐 지나갔어야 할 검신이 아직도 눈앞에 있다.
검로를 예측하고 반격하려는 자신의 움직임을 상대가 예측한 것이다.
숨결마저 닿을 거리, 싱긋 웃은 백채륜이 검신을 끌어당겼다.
서걱!
목덜미를 스친 검신에서 시뻘건 피가 솟구친다.
“큭.”
설지량의 입에서 오늘 처음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좌측으로 빠져나가는 백채륜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슈우욱!
백채륜은 즉시 좌수를 옆구리에 붙였다.
퍽!
우측으로 미끄러지는 백채륜의 검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매끄럽게 찔러오는 검극이 설지량의 옆구리를 스치는 순간.
후려 찬 반동을 이용해 회전하는 그의 검이 백채륜의 옷깃을 갈라냈다.
서걱!
일수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상대를 눈에 담고자 간격을 벌린다.
백채륜은 나풀거리는 옷깃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 상황에서 반격이라, 제법이로군요.”
상대의 뱀 같은 눈동자를 직시하는 설지량이 생각을 정리했다.
‘기대 이상.’
백채륜의 공격은 예측을 불허하는 완급조절이 핵심이다.
기존의 유운천예검과 달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예측을 불허한다면, 그것마저 예측하면 되겠지요.”
설지량의 왼손이 지혈을 위해 목덜미로 향할 때였다.
탓!
지면을 박찬 백채륜이 벼락같은 기습을 가했다.
‘역시.’
이런 기회를 놓칠 상대가 아니라는 건 예상했다.
설지량은 즉시 물러나며 사선으로 검신을 휘저었다.
캉!
백채륜은 미끄러지는 설지량을 놓치지 않고 뒤쫓았다.
슈슈슈슈슉!
폭우처럼 쏟아지는 백채륜의 검극에, 설지량의 검신이 원을 그리듯 회전했다.
카카카카카캉!
오싹한 쇳소리와 함께 비산하는 기파가 초목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연이어 공세를 퍼붓는 백채륜은 상처 난 설지량의 목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피가 제법 많이 흐르는군요.’
단순히 옷이 젖는 정도가 아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은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이다.
‘큭큭.’
설지량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찰나의 실수에 자신의 발이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물러나게 두지는 않을 것 같군.’
그렇다면 서둘러 상대를 끝내는 수밖에 없다.
쿠우우우!
내력을 아낌없이 끌어올린 두 사람이 치열한 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스각!
살갗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지만 누구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다음은 없는 사람처럼 일 검, 일 검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백채륜은 비어있는 상대의 좌수를 집요하게 노렸다.
지혈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처절한 사투가 이각이 흘렀을 무렵,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설지량의 속도가 눈에 보일 만큼 느려지기 시작했다.
백채륜의 노림수대로 과도하게 피를 흘린 탓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큭큭큭.”
백채륜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진다.
하얗게 질린 설지량의 입술이 미소 짓듯 꿈틀거렸다.
‘나를 상대했던 자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은 왠지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완전히 승기를 굳힌 백채륜이 숨을 고르며 히죽 웃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요.”
“후후.”
피를 너무 흘린 탓에 사물이 겹쳐 보이며 정신이 혼미해진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설지량은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고작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네 사람을 상대하던 양천대는 반의반도 남지 않은 상태.
‘끝까지 나답지 못한 판단이었다.’
차라리 저들을 미끼로 도망쳤다면 방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졌구나.’
후회로 젖은 설지량의 눈동자에, 마지막 남은 적에게 검초를 쏟아내는 단려화가 보인다.
달빛마저 흡수한 무광의 쾌검.
문득 기억 속 누군가가 떠오르자 설지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랬나.”
양천대를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검법은 분명 검황 천영의 천인검(穿人劍)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어도 나쁘지 않겠어.’
생각을 마치는 순간 단려화의 검에 마지막 양천대원의 목이 날아간다.
서걱!
설지량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지친 얼굴로 백채륜을 바라보며 말했다.
“졌습니다.”
임교영을 지키던 지여령이 눈을 치켜떴다.
“군사?”
그가 순순히 패배를 시인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백채륜이 말했다.
“생각보다 인정이 빠르군요.”
“사실이니까요. 유언 정도는 남겨도 괜찮겠지요?”
상대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백채륜은 대답 대신 검을 회수했다.
미소로 예를 표한 설지량이 단려화를 바라본다.
“아가씨를 살려주신다면 귀한 선물을 드리지요.”
“선물?”
“당신들이 궁금해하는 복령천의 정보입니다.”
순간 뜨겁던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군사!”
지여령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아가씨를 죽이고 싶습니까?”
“그, 그건…….”
이내 체념한 지여령이 질끈 눈을 감았다.
복령천을 우선시하는 다른 대표두들과 달리 그녀에겐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임교영이 더욱 특별했던 까닭이다.
단려화는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진무립이 임교영을 살려둔 것은 그녀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면 설지량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말씀하세요.”
“정주의 동남쪽으로 첫 번째 야산.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반쯤 무너진 관제묘가 있습니다. 입구에서 오른쪽 구석의 바닥을 들어내면 밀봉된 목곽이 나올 겁니다.”
“그 안에…… 복령천의 정보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말이 끝나는 순간, 힘이 빠진 설지량의 무릎이 무너지듯 지면에 닿는다.
단려화를 올려보는 설지량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럼…….”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설지량이 천천히 쓰러져간다.
‘나는 세상에서 무림을 지울 생각이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 속에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저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흐릿하던 상대가 점점 선명해지며 영준한 용모의 청년으로 변해간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상대의 질문에 그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설지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