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5
◈ 225화. 전쟁의 끝
설지량이 죽었다.
홀로 남은 지여령은 착잡한 얼굴로 임교영을 바라보았다.
백채륜의 눈동자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선택하세요.”
그 눈빛에 흠칫 몸을 떤 지여령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을 데리고 중원무림맹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그곳에서 승리한 운화결이 기다리고 있다면 살 수 있다.
“아가씨의 안전을 약속한다면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옳은 판단입니다.”
빠르게 다가간 유대하가 혈도를 짚어 그녀의 내력을 봉인했다.
용추가 지여령과 임교영을 양쪽 어깨에 걸쳤다.
“어서 갑시다.”
모두가 발을 돌릴 때였다.
유대하가 그녀답지 않게 멍하니 선 단려화를 불렀다.
“소저.”
그제야 정신이 든 단려화가 고개를 돌렸다.
“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그만 돌아가시죠.”
“그래요.”
제법 시간이 흐른 만큼 지금쯤 중원맹의 전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것이다.
백채륜을 필두로 신법을 전개한 이들이 어둠 속을 빠르게 질주했다.
* * *
단려화 일행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갈 무렵.
정반대의 숲속에선 또 하나의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크르륵…….”
상체가 낫처럼 휘어진 표설중이 왈칵 피를 쏟아낸다.
“쿨럭!”
흩뿌려진 피가 시산혈해의 참혹한 전장으로 스며든다.
함께 온 양천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지만 씁쓸한 감정 따윈 들지 않는다.
‘설지량!’
판천라마가 자신을 따라잡은 속도를 고려하면 놈이 뒤를 막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양천대를 붙여서 보낸 이유도 짐작이 간다.
느린 자의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으니 적의 추격은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설마 네놈이 나를 미끼로 삼았단 말이냐!’
꺼림칙한 자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 상황에서도 자신을 이용할 줄은 몰랐다.
지독한 배신감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아미타불.”
서기 짙은 불호가 피로 물든 전장에 울려 퍼진다.
표설중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판천라마를 쳐다봤다.
“큭.”
눈앞의 판천라마는 과연 서장의 절대자다웠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따라잡은 그는 압도적인 무공으로 양천대를 전멸시켰다.
극성의 음혼귀영공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금강적사안 앞에선 무용지물과 같았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대를 만난 것이다.
판천라마가 오연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보며 말했다.
“본좌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한다면 고통 없이 풀어줄 수도 있다.”
“우습군.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겠다고 천을 배신할 것 같으냐?”
“말하지 않는다면 지옥불의 고통이 무엇인지 맛보게 될 것이다.”
“땡중이 못 하는 말이 없군.”
“부처께서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그대들의 작태를 본다면 그분께서도 충분히 납득하실 것이다.”
허깨비처럼 미끄러진 판천라마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그의 마혈을 짚은 판천라마는 팔을 잡고 내력을 불어넣었다.
“크아아악!”
팔에서 시작된 가공할 고통에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무슨 수법인지는 몰라도 흔히 고문할 때 사용하는 분근착골의 고통도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숲을 뒤흔들던 비명이 멈춘 뒤, 판천라마는 땀에 흠뻑 젖은 그에게 말했다.
“이실직고하라. 천산을 끌어들여 무슨 짓을 하려 하느냐?”
질문한 판천라마의 두 눈이 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금강적사안을 시전한 것이다.
순간 표설중의 몸이 흠칫 떨려온다.
‘그걸 어떻게?’
복령천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정보가 판천라마의 입에서 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 무슨 소리냐?”
판천라마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뿜어낸다.
‘역시 관계가 있군.’
그의 반응에 가정이 확신으로 변한다.
판천라마가 그에게 묻는 것은 서장에서 천산으로 들어가는 쇠붙이가 급격히 늘어난 까닭이다.
그간 천산이 무림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신룡과 화령이 건재한 까닭이었다.
그런 그들이 화령의 동태에 변함이 없음에도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면, 내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을 확률이 크다.
판천라마가 연통이 도착하기도 전에 중원에 들어온 것은 진무립과 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역시 네놈들과 손을 잡은 것이로구나.”
“…….”
표설중은 핼쑥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엔 다른 것을 물어보지. 순순히 대답할 리 없으니 약간의 고통을 더하도록 하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팔에서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든다.
“크아아아아-!”
마음 같아선 정신줄을 놓고 싶었으나 이 끔찍한 고통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내력을 거둔 판천라마가 물었다.
“혈교가 수백 년간 완성하지 못한 혈야광인의 제조법을 보완해준 것이 네놈들 복령천과 관계가 있느냐?”
확신은 없다.
다만 천산에 손을 내민 자들이 혈교에도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표설중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 나는…….”
그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판천라마의 눈에 지독한 살기가 깃들었다.
‘그것도 이놈들이란 말인가?’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네놈들. 설마 혈야광인을 제조하고 있느냐?”
찰나의 정적 끝에, 표설중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후우…….”
판천라마에게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이내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혈야광인은 막대하게 쏟아붓는 돈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 혈교를 물리친 사천 무림이 그것을 증명했지. 실험 과정에서 만든 것이 몇 구 남아있을지 모르나 혈교처럼 그것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혈교와 마교에 손을 내민 것은 역시 무림의 전복을 노리는 것이냐?”
“회천(回天)이라고 한다.”
“어떤 식으로 무너뜨릴 생각이었느냐?”
“오대표국을 이용해 중원에…… 공백을…… 천산이…… 화령도…….”
중간중간 목소리가 뚝뚝 끊기더니 표설중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진다.
‘설마 내, 내게도 금제를 걸었단 말인가!’
투둑. 투둑.
이어서 표설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전신 혈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크으윽!”
판천라마는 즉시 그의 상태를 알아챘다.
“금제인가.”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혈이 뒤틀리며 내력이 역류하는 증상이었다.
침착하게 그의 혈맥에 정순한 내력을 불어넣던 판천라마는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물러났다.
‘틀렸다.’
그의 몸에서 판천라마의 내력을 집게로 당기듯 훅 끌어당긴 탓이었다.
“네 덕에 많은 것을 알아냈으니 고통이라도 줄여주마.”
“크으으으…….”
실핏줄이 터진 표설중의 눈동자에 억울함이 가득하다.
“삶에 미련이 많은 놈이로군. 그러나 늦었다.”
훌쩍 물러난 판천라마가 그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어서 금빛으로 물든 장심에서 가공할 내력이 쏟아지며 표설중의 전신을 덮쳐갔다.
콰아앙!
숲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금빛이 달빛처럼 흩어진다.
살존 표설중의 최후였다.
* * *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어스름한 빛을 흩뿌린다.
“하아, 하아.”
입에서 풍기는 단내가 뽀얀 입김으로 흩어져갔다.
들썩이는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리는 핏물.
시산혈해의 참상 속에 피가 강처럼 흐르는 전장.
말할 힘까지 아껴가며 싸워온 그들의 전투는 어느덧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큭큭큭.”
창대에 의존해 조소를 흘리는 피투성이 사내는 운화결이었다.
‘진무립.’
은곡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무립은 표사들의 빈틈을 착실하게 공략했다.
자신은 이제 움직일 힘조차 없건만 진무립은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에 쓰러진 숫자가 족히 칠백.
자신과 복령천주처럼 야망에 사로잡힌 괴물이 아니다.
그는 진짜 괴물이었다.
힘겹게 상체를 바로 세운 운화결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삼천이 넘던 부하 중 살아남은 숫자는 고작 삼백.
팔백에 불과하던 중원삼가의 무인은 삼백 명이나 두 발로 서 있었다.
‘내 눈에 담긴 것이 정녕 현실인가.’
기량 차이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분전이다.
그리고 그 분전의 중심에는 진무립과 상천의 고수들이 있었다.
“삼가는 뒤로! 팔기는 적을 포위하라!”
쩌렁쩌렁한 외침은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한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상천팔기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부름에 화답했다.
“예!”
지친 삼가의 무인이 물러나는 사이, 일사불란 움직인 서진환과 상천팔기가 팔방에서 적을 몰아붙였다.
탓!
시뻘건 혈귀가 되어 전장의 중심으로 솟구치는 진무립에게 시꺼먼 흑창이 빨려들었다.
무려 일 장이나 솟구친 진무립의 창끝이 지면으로 향한다.
쿠우우우…….
마치 발아래로 세상을 굽어보듯, 밀집된 적을 눈에 담은 진무립이 거친 기합성을 토해냈다.
“하압-!”
날카로운 일성은 마치 뇌성벽력처럼 적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쌔애액!
진무립의 신형이 흑창과 함께 벼락 치듯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크아악!”
부르르 몸을 떠는 대지.
피 냄새로 흥건한 전장.
반경 일 장이 유성에 충돌한 듯 움푹 꺼지며 피와 살점이 바람과 함께 솟구친다.
쉬익!
바닥을 나뒹구는 두 자루 도가 진무립의 양손으로 빨려들었다.
지면을 박찬 진무립은 거침없이 적을 향해 돌진했다.
서걱!
가볍게 휘두른 도신에 두 명의 머리통이 둥실 떠오른다.
그사이 배후에서 두 명의 적이 창을 찔러왔다.
상체를 돌린 진무립이 등 뒤의 창을 거칠게 후려쳤다.
카캉!
“후욱!”
가쁜 숨을 토해낸 진무립은 지체 없이 두 자루 도를 내던졌다.
퍼퍽!
여지없이 머리를 꿰뚫은 도가 시야 밖으로 사라진 순간 그의 손에는 어느새 적의 창이 쥐어져 있었다.
휘리릭!
진무립의 움직임에 따라 한 자루 창이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친다.
따다다다당!
전방위로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튕겨낸 진무립이 발치에 나뒹구는 검을 후려 찼다.
쌔애액- 콰직!
“컥!”
검에 관통된 적이 믿기지 않는 눈으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적진의 한복판에서, 진무립은 추풍낙엽처럼 적의 목을 베어가는 장관을 연출했다.
“저자가…… 정말 마도림의 소공자, 광룡 진무립이란 말이냐?”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개방의 방주 철표개였다.
총단의 세작을 모조리 처단하고 인근의 거지를 전부 불러모아 지원을 온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철표개의 연통을 받고 달려온 소림과 무당의 고수들도 그와 함께 서 있었다.
진무립의 압도적인 신위에 넋이 나간 그들은 우두커니 선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싸울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진무립의 활약에 영혼까지 빠져든 것이다.
적모개가 철표개를 붙잡고 말했다.
“그렇게 구경만 하실 때가 아닙니다. 상천팔기를 따라 주변을 포위하고 적을 안으로 압박해야 합니다.”
철표개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리하면 광룡이 위험해지지 않겠느냐?”
적이 안으로 밀집하면 밀집할수록, 그 안에서 싸우는 진무립이 위험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적모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소공자가 바라는 일입니다.”
“바라는 일이라고?”
적모개는 정확하게 진무립의 의도를 읽고 있었다.
작게 열린 입술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는 내색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지금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고 있을 겁니다. 상천팔기에게 포위를 지시한 것도, 신법을 전개할 힘까지 아껴 적을 베기 위한 소공자의 의도입니다.”
“허.”
“우린 외부에서 압박하며 적의 시선을 분산시켜 소공자를 도와야 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 쓰러져 있던 악계화가 몸을 일으킨다.
“한 명이라도 더 베어야겠다.”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던 자영이 너덜거리는 왼팔을 움켜쥐고 일어난다.
“아직 움직일 수 있습니다.”
복수를 위해 온몸을 내던진 태산표국의 무인 중 살아남은 이는 두 사람이 전부였다.
떨리는 손으로 도를 움켜쥔 악계화가 힘겹게 발을 옮겼다.
“가자.”
“예.”
움직이려는 이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이.”
돌아본 악계화의 눈에 꿈틀거리는 육군명이 들어온다.
“나 좀 일으켜봐.”
악계화는 미간을 찌푸린 채 육군명을 일으켰다.
“나도 가겠어요.”
탈진한 채 앉아있던 진설란도 바닥에 검을 꽂고 일어난다.
잔뜩 인상을 쓴 철표개가 앞으로 나섰다.
“황개야. 저 아이들을 뒤로 물려라. 우리가 나서겠다.”
“적모갭니다.”
“……어서.”
한숨을 삼킨 적모개는 다리의 떨림을 억누르며 나아갔다.
적모개와 일부 제자들이 부상자들을 데려가자 철표개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먼저 가겠소.”
그 뒤를 따라 개방의 제자들과 소림, 무당의 고수들이 신법을 전개한다.
순식간에 적을 포위한 그들은 상천팔기의 움직임에 맞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안에선 진무립이 휘젓고 밖에선 적의 압박이 거세진다.
밤새 이어진 격전에 지친 표사들에겐 그들을 당해낼 힘이 없었다.
쓰러지는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자 그들의 눈에 절망이 떠올랐다.
“크…… 큭큭.”
힘겹게 서 있던 운화결이 창을 들어 올렸다.
전방위의 압박이 거세지며 빠르게 숨통을 조여온다.
“그래. 오너라.”
흐릿한 시야에 마지막으로 담긴 것은, 지면을 박차고 달려드는 진무립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