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6
◈ 226화. 또 다른 절대자
쌔애액!
거침없이 뻗어 나간 날카로운 창두가 적의 목을 사정없이 꿰뚫는다.
푹!
시뻘건 피가 튀며 부릅뜬 표사의 눈동자가 빠르게 빛을 잃어간다.
처절했던 전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적이 쓰러졌음에도 진무립의 눈은 여전히 전투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후우…….”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음 적을 찾을 때였다.
“무립.”
곁으로 다가온 단려화가 붉게 젖은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어깨에서 밀려드는 따스함이 진무립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천천히 상체를 바로 세운 진무립이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했다.
“……끝인가.”
복면을 내린 단려화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이겼어요. 당신이 해낸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실감이 난다.
시산혈해의 중심에서, 두 발로 오연히 선 진무립을 향해 아침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져 내렸다.
터엉-!
움켜쥔 흑창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거친 쇳소리를 자아냈다.
“그런가.”
차분히 돌아보는 진무립에게 경외감으로 가득한 무인들의 눈빛이 쏟아진다.
함께 사투를 벌인 중원삼가의 무인부터 뒤늦게 합류한 개방과 소림승에 무당의 도사들까지.
자신을 향한 그들의 눈빛에 적개심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꿈.
세상에 스며들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던 부하들의 바람.
평생을 바라온 꿈의 종착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느낌이다.
지나온 걸음들이 겹겹이 떠오르며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어깨에서 시작된 옅은 떨림은 단려화의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진무립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옷자락을 부욱 찢었다.
“얼굴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잖아요. 가만히 있어 봐요. 닦아줄게요.”
그녀는 하얀 천을 겹쳐 진무립의 두 눈을 살포시 덮었다.
축축한 무언가가 스며들어 단려화의 손까지 뜨겁게 적셔간다.
‘무립.’
그녀는 먹먹한 가슴을 슬쩍 쓸어내렸다.
어느새 도를 떨군 채 바닥에 주저앉은 연길상도.
창대에 지탱해 끝까지 버티고 선 이하빈도.
서로에게 등을 기댄 대중경과 마일관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송조광, 백채륜까지.
진무립을 담은 그들의 시야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뿌옇게 흐려졌다.
단지 자신들의 설 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기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해온,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까지 걸어온 진무립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천팔기가 지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진무립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상천의 무인들도 하나둘 끌리듯 뒤를 따라간다.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한 서진환이 진무립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주군. 명하신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이어서 서로를 바라본 상천의 무인들이 벅찬 감정을 수습하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진무립은 얼굴을 가린 단려화의 손을 천천히 내렸다.
피투성이가 된 부하들은 성한 자가 한 명도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평생 보아온 것 중 가장 밝아 보였다.
“그래.”
부하들을 대견한 듯 바라보는 진무립의 눈동자도 오늘따라 유독 반짝거린다.
진무립은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웃었다.
“모두…… 수고 많았다.”
서로를 향한 눈빛에 깃든 것은 무한한 신뢰였다.
마주 본 그들이 빙그레 미소 지을 때였다.
“우와아-!”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무인들은 울분에 찬 함성을 토해냈다.
중원무림맹의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뒤흔드는 함성은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장엄했다.
“흐흐흐.”
실실 웃은 적모개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정말 이겼구나.”
긴장이 탁 풀리며 스르륵 눈이 감긴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그것은 이 전장을 함께 헤쳐나온 이들 모두의 생각이었다.
* * *
두 번의 해가 지고, 두 번의 밤이 지날 때까지 중원무림맹의 분주함은 이어졌다.
연무장을 가득 채운 시신과 얼어붙은 핏자국.
하룻밤을 꼬박 채운 전투의 흔적이었다.
탈진한 중원삼가의 무인들에겐 뒷정리를 할 여력이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개방의 제자들이 열심히 시신을 치우면 소림승이 불경을 외웠고 무당의 도사들은 지전을 태우며 도경을 읊었다.
뭔가를 쪽쪽 빨며 지나가던 용추가 부서진 담장 안을 힐끔 쳐다봤다.
“저래도 되는 거냐?”
육군명이 물었다.
“뭘?”
“저러면 나중에 부처랑 원시천존 사이가 멀어지지 않겠냐고.”
바로 옆에서 불경과 도경을 읊는 모습이 마치 경쟁 구도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육군명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둘이 언제는 친했냐?”
“원래 사이가 안 좋았냐?”
“……딱히 좋을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하여간 노인네들은.”
“…….”
두 사람이 지나간 뒤, 추영당주 봉추개가 나타났다.
사방을 둘러본 그는 혀를 내둘렀다.
“피는 나중에 지우고 일단 시신부터 한쪽으로 모으게.”
바닥에 깔린 시신만 족히 수천 구가 넘는다.
천하대전의 마지막 전투에서 나온 희생자를 훨씬 웃도는 숫자였다.
‘광룡 진무립.’
시신 중 상당수는 바로 진무립에게 당한 자들이다.
‘신룡 같은 괴물은 무림사에 다시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서 본 진무립의 무위는 충격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도착했을 때 진무립은 이미 운화결에게 승리를 거두고 수백 명을 도륙하며 힘을 소진한 뒤라는 것이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지들을 돕던 적모개가 그에게 다가갔다.
“당주. 총단은 어떻게 됐습니까?”
“총단은 이곳에 오기 전에 정리했고 지금쯤 분타의 정리가 끝나가고 있을 걸세.”
“피해가 커지기 전에 수습해서 다행입니다.”
봉추개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내부의 문제가 터졌으니 속이 답답해진 것이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고민해봐야 뾰족한 수도 없었고 차차 생각해볼 문제였다.
봉추개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
“듣자 하니 너는 광룡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사천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얼마 전 그때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냐?”
사천을 구한 영웅이라곤 하나 중원에서 보기엔 변방의 제법 뛰어난 후기지수 정도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인물이 눈앞에서 수백 명의 적을 쓰러뜨리고 화무신검 운화결까지 잡아냈으니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턱을 매만지던 적모개가 나직이 침음했다.
“음.”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답하려니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는다.
적모개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말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건 보면 알 수 있다. 묻는 건 그게 아니다.”
주변을 살핀 봉추개가 나직이 목소리를 깔았다.
“위험한 인물이 아닌지 묻는 것이다.”
적모개는 곧장 그의 걱정을 눈치챘다.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다곤 하나 중추를 구성하던 중소방파가 전부 몰락했고 삼가 또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가까스로 천하대전의 피해를 복구한 그들 입장에선 정말 뼈아픈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상천이 이 기회를 틈타 중원의 패권을 취하고자 한다면 막을 힘이 없는 것이다.
적모개는 그를 안심시키듯 빙그레 웃었다.
“상천은 이름부터 천하와의 상생을 기치로 세워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는…… 주워…….”
“왜 그러느냐?”
“아니…….”
적모개가 침을 꿀꺽 삼킨다.
‘필요에 따라선 주워 담기도 하는 인물이잖아?’
봉추개가 답답하다는 듯 대답을 재촉했다.
“이 친구야. 끝까지 말을 해야지.”
좌우로 눈알을 굴리던 적모개가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아는, 동료와 부하들을 누구보다 아끼는 진무립이라면.
같은 시각.
무운전의 최상층에선 위사영과 맹의 중추들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 야심가는 아니오.”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한 제갈무용이 위사영의 말을 이어받았다.
“음. 본인도 맹주의 의견에 동의한다오. 그들에겐 움직여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소이다.”
무거운 공기로 가득한 집무실에 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중원무림맹과 오대표국이 손을 잡은 이상 넋 놓고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내막이 드러난 이상, 진무립이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 모를 리 없는 그들이었다.
제갈세가주 제갈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첩첩이 쌓인 과제로 생각에 여유가 없으시겠으나 다들 잊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황보한의 눈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들이 은곡의 후예라는 것 말인가?”
“그들은 오대표국의 야욕을 분쇄하며 자신들이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와서 그걸 문제 삼기는 어렵겠지요.”
“그건 그렇겠지.”
이번엔 선우세가주 선우진이 물었다.
“그럼 무엇을 잊고 있다는 건가?”
“그가 작정하고 중원을 먹겠다고 하면 우리에게 막을 힘은 있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중은 약속한 것처럼 헛웃음을 터트렸다.
소림의 방장 정현이 백미(白眉)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젊은 무인들이 그런 신위를 눈앞에서 보았소이다. 누가 그와 적대하려 하겠소이까?”
“음.”
모두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전신(戰神)을 연상케 하는 진무립의 신위에 빠져들지 않은 무인은 없을 것이다.
가만히 침묵하던 철표개가 천천히 일어나 모두에게 포권을 취했다.
“내 그대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구려. 미안하오.”
반백의 도사, 무당의 장문인 청화가 도관을 고쳐 쓰며 말했다.
“방주께서 사죄라니요. 이번 사태는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동의하듯 입을 열려 할 때, 철표개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대들과 함께 중원무림맹을 창설한 것은 모두에게 공정한, 정의가 살아있는 무림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내 생각은 너무 안일했소.”
완벽한 공정이란 있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철표개는 다시금 상기하며 과거를 뉘우쳤다.
선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방주님의 이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을 악용하는 자가 나타났기에 이런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지요.”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인간은 실수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중원무림맹을 세웠던 것도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철표개가 무겁게 끄덕일 때, 위사영이 오랜 시간 생각해온 것을 꺼냈다.
“방주의 이상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으나 결과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오. 다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시오?”
황보세가주 황보한이 답했다.
“중검문주 명가홍의 야욕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것과 오대표국의 정체를 너무 늦게 알아챈 탓이 아니겠습니까?”
위사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곁가지에 불과하오.”
제갈경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눈치챘다.
“강남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는군요.”
한동안 진대천과 함께 화령도에 머물렀던 그라면 무엇보다 모범적인 표본을 보아왔을 테니까.
위사영은 부정하지 않았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하나로 뭉친 중원은 큰 희생을 치렀으나, 도리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강남은 태평성대를 이어가고 있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오?”
제갈경이 답했다.
“신룡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소. 단소룡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가 굳건히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천하대전에서 그와 함께 싸운 이들이었기에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위사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국법보다 힘이 우선시 되는 무림이오. 힘이 없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란 말이지.”
소림의 방장 정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맹주께서는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으시오?”
“나라면 우선 또 다른 절대자와 대화를 나눠볼 것이오.”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니 생각이야 할 수 있겠으나 천하십대고수조차 감히 입 밖으로 절대자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천하제일인, 신룡 단소룡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절대자라면…….”
정현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이어진 위사영의 대답은 짧고 묵직했다.
“진무립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