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9
◈ 229화. 당가의 이공자
뱀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가 목곽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백채륜은 목곽을 받아들고 관제묘를 나섰다.
“삼 장 밖으로 물러나세요.”
두 사람은 즉시 뒤로 물러났다.
긴장된 시선 속에 백채륜은 천천히 목곽을 열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동시에 백채륜의 신형이 한천유의 곁에 나타났다.
스스스스…….
살짝 열린 목곽에서 희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백채륜이 예상했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역시.”
한천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게 뭡니까?”
대답은 백하진의 입에서 나왔다.
“독이다. 뚜껑을 여는 자가 중독되도록 기관이 설치되었던 모양이다.”
설지량을 떠올린 백채륜이 싱긋 웃는다.
“역시 눈빛만큼이나 철두철미한 사람이었군요.”
한참을 기다리던 백채륜은 불어온 바람이 독연을 완전히 걷어간 뒤에야 발을 내디뎠다.
‘후후후. 과연 어떤 정보가 들어있을까요?’
뚜껑을 툭 걷어찬 백채륜은 내력으로 손을 보호하며 서책을 꺼냈다.
「天」
표지에 쓰인 것은 단 한 글자에 불과했으나 그 하나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백채륜은 천천히 첫 장을 넘겼다.
「황천패. 팔황문주 황운천의 막내아들.」
첫 장부터 그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막내아들이라는 겁니까?’
그는 계속해서 글귀를 읽어갔다.
「하늘이 내린 무재를 타고난 자로 두 형을 제거하고 후계에 오름. 첫째는 확실히 사망. 둘째의 행방은 묘연.」
내용을 차분히 머리에 담은 백채륜이 다음 장을 넘겼다.
「십이사령(十二士令). 황천패가 직접 가르친 열두 명의 고수로 일부는 팔존의 무위를 상회. 각기 다섯 명의 부하를 거느림.」
백채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정보를 수집해 은밀하게 감춰줄 정도다.
그렇다면 설지량이라고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리는 없다.
정보는 정확할 수도,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 쓰여진 것보다 한 수 위의 적으로 상정해야 차후의 계획에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거 엄청난 괴물들이로군요.’
그는 이 와중에도 싱긋 웃으며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다.
「백화무단(百華武團). 대표두에 준하는 일백의 고수로 구성된 집단. 팔존의 태도를 보면 단주 양무화의 무위는 최소한 주군에 필적할 정도.」
곁에서 함께 서책을 읽던 백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중원무림맹에서 전투가 벌어지던 날.
적에 맞서면서도 틈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진무립과 운화결을 살폈다.
극강의 고수가 벌이는 전투에서 뭐라도 하나 배우고자 하는 향상심 때문이었다.
‘천주도 아니고 일개 단주가 운화결에 필적하는 고수라는 말인가?’
그것도 문제지만 대표두에 준하는 고수가 일백에 달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산동의 전투에서 분명 자신과 한천유는 적의 대표두 하나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었으니까.
한천유는 마른침을 삼켰다.
‘양산팔수 이상 가는 고수가 백 명이나 된다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한 고수들이라면 남의 눈을 속이고 이동하는 것은 일도 아닐 터.
느닷없이 일백의 고수가 한 번에 산채에 나타난다면 이쪽에선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음 장부터는 설지량이 파악한 개개인의 정보였다.
‘이게 전부라면 생각보다 수가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소수정예인가요.’
그때 책장을 넘기던 백채륜의 손이 우뚝 멈춘다.
“오호.”
“왜 그러십니까?”
“작은 글씨라서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군요.”
백채륜의 손끝이 하단의 깨알 같은 글자를 가리켰다.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건…….”
그들의 눈이 모인 곳에는 예상치 못한 이름이 있었다.
「백화무단 부단주 당명. 당가의 이공자.」
* * *
떠오르던 태양이 아침의 습기를 거둬가며 세상에 온기를 드리웠다.
중원에 비해 이른 봄을 맞이한 사천 무림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짓다 만 공위맹의 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과거 사천맹이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성도는 중원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무림이 또다시 거대한 암운이 찾아오는 지금, 초평천을 비롯한 수뇌들은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원활한 공위맹의 부지에 건물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걸 언제 다 옮기지.”
종이로 가득한 수레를 쳐다보는 당우가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등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느껴지더니 귀여운 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아. 중원에서 온 소식은 없었어?”
뒤를 돌아보니 당과 하나를 내밀며 히죽 웃는 초유림이 있었다.
당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직 없었어.”
넉살은 어찌나 좋은지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전부 형님이고 비슷하거나 어리면 무조건 반말부터 튀어 나간다.
그럼에도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후웅.”
당과를 잡아가려는 찰나, 초유림이 손을 뒤로 숨겼다.
당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안 줘?”
“공짜가 어딨어?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것도 있지. 중원에서 우리 형님 소식을 가져오면 많이 줄게.”
“칫. 가라. 나 일해야 돼.”
당우가 다시 돌아서는 찰나였다.
“근데 형님아.”
“왜?”
“형님은 당가의 삼공자잖아?”
“그렇지.”
“천이 형님이 소가주이자 대공자고 말이야.”
당우는 초유림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눈치챘다.
“이공자가 어디 있는지 궁금한 거지?”
“헤헤. 맞아. 이거 먹어.”
가져갔던 당과를 슥 내미는 걸 보니 정말 궁금한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당우는 못 이기는 척 당과를 받아들었다.
“그건 말이야.”
주변을 살핀 당우가 그녀 앞에 쭈그려 앉으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물론이지. 내 입이 얼마나 무거운데.”
게 눈 감추듯 당과를 입에 넣은 당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몰라. 오래전에 집을 나갔거든.”
십 년도 지난 일이라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소가주의 자리를 놓고 큰형과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부친이 자신을 풀어놓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소가주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불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초유림이 새초롬하게 눈을 흘겼다.
“야. 내 당과 다시 내놔.”
“하하하.”
초유림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당우 역시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당우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진무립이라면 가장 두려운 사람은 바로 둘째 형이었으니까.
* * *
약 냄새로 가득한 방 안.
내부를 깔끔하게 정리한 은수련이 검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은 여전했으나 쏟아지는 햇살은 새로운 출발을 반기듯 눈이 부셨다.
그녀가 문을 닫고 햇살 아래로 발을 내디딜 때였다.
“떠나는군요.”
모퉁이 너머에서 나타난 여인은 동진상단의 대부인 공여소였다.
은수련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공여소가 아쉬운 듯 말했다.
“조금 더 쉬어가면 좋을 텐데.”
“대부인의 배려 덕분에 충분히 쉬었습니다.”
공여소는 품에서 작은 전낭을 꺼냈다.
“이건 여비로 쓰고 조심해서 가도록 해요.”
“이러지 않으셔도…….”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쑥 하고 들어온 손이 자신의 품으로 들어왔다 사라진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상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다.
칠맥 연화봉의 제자.
지금은 천하제일인의 아내가 된, 백설하의 사저인 진소향이 바로 그녀의 진짜 이름이었다.
연모하던 사내의 흉심을 읽지 못하고 백설하를 죽음에 이르게 할 뻔한 여인.
천하대전이 발발한 것은 그녀가 뇌옥에 갇혀 과오를 참회하던 때였다.
칠맥을 덮친 전쟁의 겁화로 뇌옥에서 나와 사문을 위해 싸웠으나 그것이 그녀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전쟁이 끝난 뒤 천하를 떠돌다 이곳 산동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꼭 그래 주길 바라요. 그리고…….”
“물론 대부인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공여소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에게 이곳은 도피처이면서도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가볍게 인사를 마무리한 은수련이 동진상단을 나섰다.
‘집착이 과하면 시야가 좁아져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나처럼 말이지요. 눈을 크게 뜨고, 여유를 갖고 기다리세요. 그리하면 언젠가 상대가 그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녀의 조언을 가슴에 새긴 은수련이 신법을 전개했다.
* * *
개봉에서 시작된 소문이 빠르게 천하로 퍼져 나갔다.
오대표국의 진짜 정체에 놀라지 않은 자는 없었다.
천하에 혈겁을 일으킨 팔황문의 후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야욕을 막아낸 상천 역시 은곡 출신이라는 것이다.
「과거 천하대전에 반대한 은곡의 무리들이 있었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묘한 소문이 다시금 부상하며 천하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중원무림맹주 위사영은 공식적으로 상천의 도움을 받았음을 선포했다.
더불어 이들이 천하에 혈겁을 일으킨 자들과 다르다는 것 또한 인정했다.
그에 이어 산동 무림 또한 공식적으로 상천의 도움으로 오대표국의 위협에서 벗어났음을 알렸다.
연이어 쏟아지는 충격적인 소문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면산왕의 정체가 사천을 구한 영웅 광룡 진무립이라는 사실.
그가 화무신검 운화결을 쓰러뜨리고 천여 명의 적을 도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금 무림에서 일기당천을 해낸 절대자가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북광남신(北光南神).
개봉의 한 매담자의 입에서 시작된 그 호칭은 바람처럼 흘러나가 천하로 뻗어 나갔다.
광룡 진무립과 상천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과 같은 존재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 * *
“상천의 천주께서 입장하십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대전의 문이 활짝 열리며 흑빛 장포를 걸친 진무립이 나타났다.
그의 뒤를 산동무림의 수장들과 당천, 상천의 부하들이 따르고 있었다.
상석의 위사영부터, 좌측에 앉은 삼가와 소림, 개방의 수장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융단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간 진무립이 위사영의 옆자리에 멈춰섰다.
함께 온 무인들이 우측의 빈자리에 늘어선 가운데, 진무립과 위사영이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공석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로군. 맹도들을 대신해 정식으로 감사의 예를 표하오.”
밤중에 몰래 들어와 그를 만난 기억이 떠오른 진무립이 슬쩍 웃었다.
“공식적으로 본 천의 존재를 확인해주신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진무립이 처소 밖으로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진무립과 이야기도 나누기도 전에 상천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은, 중원무림맹이 상천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광룡 진무립.’
제갈경의 눈동자가 묘한 눈빛으로 진무립을 응시했다.
자신들의 속을 끓이며 두문불출하던 진무립이 위사영의 공식 선포에 처소를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기다릴 때와 움직일 때를 본능적으로 아는 자였다.
철표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룡을 연상케 할 만큼 고강한 무공에 대군사 화윤의 머리까지 가진 자. 대체 누가 이런 자를 가르쳤을까.’
며칠 전 적모개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으로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를 상대로 절대 잔머리를 굴려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들과 손을 잡겠다면 이쪽에서 먼저 진심을 보여야 합니다.’
중원무림맹이 공식적인 입장을 낸 것은 바로 적모개의 진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진무립이 위사영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럼 앞으로의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