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0
◈ 230화. 새로운 조직
철표개의 뒤에 앉아있던 적모개가 은밀히 전음을 보냈다.
[방주님. 제 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잔머리가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철표개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린다.
‘알았다니까!’
몇 번이나 알았다고 했음에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당부를 거듭하는 까닭이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위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본인이 공표한 것처럼 우리 중원무림은 상천을 무림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로 했소.”
순간 산동 무인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짐작하던 것이었으나 그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위사영이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된 마당에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오대표국과 중소방파들의 몰락으로 중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청하게 된 것은 앞으로 중원 무림의 운영에 상천의 힘을 빌리고, 더불어 복령천의 위협에 함께 대응하고자 함이오.”
적모개는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저분이 맹주라서 다행이다.’
만일 과거 사천맹주였던 한천월처럼 꽉 막힌 사람이었다면 진무립의 심기를 상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위사영은 무공을 섭렵하고자 천하를 떠돈 만큼 한천월과 달리 열린 사고를 갖고 있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전투가 끝나고 며칠 시간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둔 방안은 있습니까?”
위사영의 시선을 받은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경입니다. 상천과 사천, 산동의 영웅들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예법에 좌중은 역시나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선 오대표국의 야욕으로부터 본 맹을 도와주신 여러분께 마음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좌중에게 예를 표한 그는 진무립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번 전투에서 몰락한 중소방파는 무려 스무 곳에 달합니다. 그들은 저희 삼가와 달리 상천과의 전쟁 중비에 전력을 투입한 까닭에 본거지에 남아있는 무인은 미미한 숫자입니다. 문파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기엔 어렵겠지요.”
칼을 뽑은 위사영이 아주 철저하게 중소방파 무인들을 척결한 까닭이었다.
경청하는 분위기 속에 제갈경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주축이 된 저희 삼가의 무인 또한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저희 중원삼가는 그들의 사업장 일부를 인수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물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에는 상천의 지대한 공이 있었기에 천주께 허가를 구하고자 합니다.”
제갈경은 가식 없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철표개를 통해 적모개의 당부를 들었을뿐더러 복령천이라는 적이 남아있는 이상 상천의 힘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심력을 소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진무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소방파가 중원무림맹에 속해있던 이상, 그들의 영역을 흡수하는 것은 온전히 귀측이 알아서 할 일이오. 우린 그들의 영역을 흡수하거나 사업장을 인수하는 일에는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소.”
순간 좌측에 앉은 중원무림맹의 무인들이 술렁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진무립이 승자의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니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제갈경은 진무립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대량표국을 인수한 것은 오대표국의 몰락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과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것이로구나.’
사업장 몇 개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오대표국의 빈자리를 대신해 얻는 수익이 훨씬 클 터.
진무립은 너그러움을 보이며 실리를 취할 생각이었다.
감춘 속내가 있다곤 하나 제갈경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애당초 자신들이 손해 볼 것은 없었으니까.
그가 입을 다시 열기 전에 진무립이 말했다.
“우린 얼마 전 산동에서 대량표국을 인수했소. 그들로 오대표국의 공백을 대신할 생각이오. 그러니 중소방파가 갖고 있던 이권에는 관심이 없소.”
진무립이 예상외로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자 제갈경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
잠시 생각하던 제갈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잔머리를 굴리지 말라던 적모개의 당부가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접고 솔직하게 물었다.
“천주께서 중원 무림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자 합니다.”
순간 진무립의 옅은 미소가 제갈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왠지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들킨 듯한 느낌이 든다.
진무립이 생각해둔 바를 말했다.
“오대표국에 남아있는, 그들의 사정을 모르던 표사들을 대량표국에서 포섭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그들이 거래하던 상단과도 접촉할 생각입니다.”
제갈경은 예상과 틀리지 않은 그의 답변에 묵묵히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의 정예가 모조리 몰락한 이상 이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상행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여, 일부 상행은 이 자리에 계신 산동과 중원의 방파에 맡기고자 합니다. 물론 통행세는 산동 무림에 약속했던 것과 동일하게 맞출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무리하여 맡기보다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 여러 면에서 낫다.
아니나 다를까 이가장주 이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업장도 갖지 않겠다. 표행도 우리와 나누겠다. 통행세도 낮추겠다. 그리하면 상천에서 가져가는 이익이 대폭 줄지 않겠습니까?”
물론 지금 가져가기로 한 이권만으로도 상천은 그간 벌어들인 수익의 열 배 이상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대표국의 숨은 야욕을 분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치고는 포기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슬며시 두 팔을 펼쳤다.
“본 천을 세우며 목표로 삼았던 것은, 모든 식구가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 당당히 무림을 활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천의 무인들이 지그시 진무립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무한한 존경심이었다.
진무립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당초의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과욕을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상천. 처음부터 바라온 것은 군림이 아닌 상생입니다.”
“아아.”
곳곳에서 감탄한 이들이 탄성을 흘리는 가운데 적모개는 흐뭇한 얼굴로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상천의 전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중원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는 진무립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진무립에겐 팔황문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따르는 자들을 누구보다 아끼는 소공자다. 함께하는 이들을 피와 공포뿐인 길로 이끌고 싶지 않은 게야.’
감탄하는 그들과 달리 철표개와 삼가의 가주들은 한없이 복잡한 눈으로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로구나.’
그제야 자신들이 세운 중원무림맹에 무엇이 빠져있었는지 깨달은 것이다.
진무립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만천하에 입증했기 때문이다.
중원삼가와 개방은 천하대전에서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곳은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무림.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자신들이 공정과 상생을 부르짖었으니 다른 마음을 품는 자가 나왔던 거다.
‘이 간단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니.’
철표개의 입가에 지독한 쓴웃음이 깃든다.
진무립의 선언에 들떴던 분위기가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침묵하며 대화를 듣고 있던 위사영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상천은 이 자리에서 확실히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했고 우린 그것을 확인했소. 하여 나 또한 그에 답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오.”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제안입니까?”
“사천과 산동, 멀게는 서장 무림까지 상천과 그 뜻을 함께하고 있지. 우리 중원 무림 또한 그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소.”
위사영의 눈길에 중원무림맹의 수뇌들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지금부터 할 말은 이 자리를 만들기 전에 모두와 약속했던 것이었다.
나직이 숨을 내쉰 위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중원무림맹을 해체할 것이오. 향후 복령천에 대응하기 위해 상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으면 하오.”
한쪽에 앉아있던 당천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새로운 조직?”
그 작은 목소리가 들렸는지 위사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하를 아우르는 무림맹이오.”
* * *
맹으로 복귀한 백채륜 일행은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채주님.”
쏟아지는 눈빛을 느낀 한천유가 새삼스럽게 백채륜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정체가 알려졌을 텐데도 저들에게서 일말의 적대감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빛에서는 은은한 경외감까지 엿보였다.
이따금 예를 갖추는 무인들도 보인다.
‘중원삼가의 무인이 우리에게 예를 갖추는 날이 올 줄이야.’
백채륜은 그답지 않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제 정체를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백채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지요.”
그의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은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은 쏟아지는 눈길 속에 진무립의 처소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던 서진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백채륜이 가볍게 예를 갖췄다.
“다녀왔습니다. 주군께서는 좀 어떻습니까?”
“회의를 마치고 조금 전에 돌아오셨습니다. 기별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갔던 서진환이 잠시 후 문을 활짝 열었다.
문 너머로 탁자에 기대앉은 진무립이 보인다.
“들어와라.”
싱긋 웃은 백채륜과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예를 갖췄다.
“주군을 뵙습니다.”
“쉬지도 못하고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문이 닫히자 백채륜이 물었다.
“그간 변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천과 산동, 중원이 함께하는 조직을 만들자고 하더군.”
백채륜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스치듯 사라졌다.
“그러기로 하셨습니까?”
“대답은 미뤘다.”
만일 그들의 의지에 화답한다면 상천의 위상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진무립이 망설이는 이유는 얻는 것이 큰 만큼 책임도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진무립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며 화제를 돌렸다.
“갔던 일은?”
백채륜은 품에서 가져온 책자를 꺼냈다.
“설지량이라는 사내가 남긴 비서입니다.”
“읽어봤겠지?”
“예.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책을 받아든 진무립이 천천히 책장을 넘겨 갔다.
정보를 머리에 새겨넣으며 백화무단에 대한 내용까지 확인했을 때였다.
진무립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말했다.
“당가의 이공자. 당명?”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온 것이다.
“의외지요?”
당천과 당우 사이에 형제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당천에게 물어봐야겠군.”
그 이름을 머릿속에 넣은 진무립은 차분히 남은 내용을 확인했다.
“수가 많지는 않구나. 활개 치고 다니게 둔다면 제법 까다롭겠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듯합니다.”
“네가 생각한 대책은?”
“한시적으로 모든 식구를 한자리에 모으는 겁니다.”
상대가 이쪽의 눈을 피해 각개격파를 시도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전쟁을 빨리 끝내야겠군.”
모두를 한자리에 모은다면 기존에 하던 일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별다른 사업장이 없는 이상 전쟁이 길어진다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백채륜이 말했다.
“예.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선수를 쳐야 합니다. 다만 놈들이 은신처를 수시로 바꾸는 탓에 설지량도 천주의 위치까지 파악하진 못한 모양입니다.”
“설지량이 모른다면…….”
“그 역시 모르겠지요.”
“음.”
몸을 일으키자 아물기 시작한 상처에서 비명을 내지른다.
진무립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침상에서 내려왔다.
“진환.”
문이 열리며 서진환이 들어왔다.
“예. 주군.”
천천히 두 발로 선 진무립이 장포를 걸쳤다.
“그놈을 만나러 갈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길을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