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2
◈ 232화. 변수를 이용한 계획
운화결의 기억이 천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분명 살존이 데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분이 신분인 만큼 처음엔 모두가 그놈을 의심했었지.”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그놈은 스스로 돌아갈 길을 잘라내며 자신을 증명했다.”
“그건 무슨 소리지?”
이어진 운화결의 대답은 간단했다.
“천하삼흉.”
순간 진무립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광마가 그놈이란 말이냐?”
혈천수라와 음야살귀는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살아남은 천하삼흉은 광마밖에 없었다.
“그래. 지독한 놈이다. 위로 올라가겠다고 마을 다섯 개를 지워버렸으니까.”
당명이 복령천에서 살아남는 길은 당가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가 택한 수단은 바로 살생이었다.
“당가에서는 모르는 모양이던데.”
“당연히 모르겠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거나.”
“놈이 복령천에 들어간 이유는?”
운화결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치듯 사라졌다.
“당가를 지우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진무립의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건너편의 작은 방에선 여인들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가련한 여인.’
임교영을 바라보는 단려화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그녀가 무림을 증오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신이 그녀처럼 무인들의 손에 잡혀 수모를 당하다 해적에게 팔려갔다면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상공과 만난 것은 어머니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였어요. 그날 그분은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한 제게 빛을 보여주셨지요.”
그녀의 입가에 처연한 미소가 번졌다.
“사실 무림이 어떻게 되든 내겐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단지 그분이 바라는 일이니까. 나 역시 그분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랐을 뿐이지요.”
“이후의 삶을 위해서인가요.”
“그래요. 바라시던 일이 모두 해결되면 함께 조용히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지여령의 눈이 한없이 서글퍼진다.
이젠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려화를 바라보았다.
“두 분을…….”
단려화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며 고개 저었다.
“나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어요.”
마음 같아선 임교영을 살려주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동정심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이들을 옹호할 수는 없었다.
임교영은 이해한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상천의 천주를 마음에 두고 있지요?”
“…….”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운화결이 죽더라도 원망이 진무립에게 향하지 않도록 설득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대화는 그녀의 계획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임교영의 미소를 계속 마주하다간 왠지 정이 들 것만 같았다.
약간의 침묵 끝에 멋쩍게 웃은 단려화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순간 무릎에 걸린 탁자가 기우뚱하며 임교영 앞에 놓인 물잔이 쓰러져갔다.
“앗.”
동시에 내민 두 여인의 손이 쓰러지기 직전의 잔을 겹쳐 잡았다.
“미안…….”
곧장 사과하려던 단려화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어?’
임교영이 맑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게 아니고요.”
그녀를 바라보는 단려화가 저도 모르게 울상을 지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뭐가요?”
그녀의 예리한 감각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두 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서진환이 들어왔다.
“아가씨.”
돌아보는 단려화의 입에서.
“아…….”
절망 섞인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운화결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알아냈다.
천천히 일어난 진무립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네 여인은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런 약속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내 부하가 한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거든.”
“하나만 묻지.”
“짧게.”
“무엇을 위해 이날까지 싸워왔는가?”
“나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그들에게 머물 곳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가.”
천하대전의 여파가 미친 것은 서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은 세상을 향해 복수를 선택했고 진무립은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틀린 것일까.’
만일 지옥에서 벗어난 그 날.
자신의 앞에 진무립과 같은 이가 나타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한들 달라질 건 없겠지.’
죽음은 예견한 일이다.
운화결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마지막을 부탁했다.
“사천이다. 그녀를 사천으로 보내다오.”
“그러지.”
죽음의 손길이 서서히 운화결의 목을 쥐어갈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울상을 한 단려화가 뛰쳐 들어왔다.
“무립!”
손을 거둔 진무립이 뒤를 돌아본다.
“무슨 일이지?”
“그거……. 그게요.”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울먹거렸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진무립의 선택에 방해되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넘어가기엔 그녀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다.
“미안해요. 정말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요.”
진무립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으니까 차분히 말해봐.”
“임소저가.”
운화결이 감았던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교영이 어떻게 됐다는 거지?”
“그게 아니고…….”
한참을 울먹이던 단려화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가진 거 같은데요.”
“뭐라고?”
진무립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 등 뒤에서 운화결이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그럴 리 없다. 그녀는…….”
오랜 세월 해적의 소굴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그녀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단려화는 어쩔 바를 모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분명 맥이 두 개였어요.”
진무립은 그녀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림의 평화를 지키겠다며, 자신을 감시하겠다는 명분으로 오늘까지 함께 해온 그녀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판단에 개입하거나 행보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오늘을 제외하면.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단려화였기에 같은 여인으로서 임교영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짧은 고민 끝에 진무립은 문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환.”
대기하던 서진환이 들어왔다.
“예.”
“의원을 데려와라. 조용히.”
“알겠습니다.”
안가를 떠났던 서진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든 의원을 데려왔다.
모두의 긴장된 시선 속에서.
지그시 눈 감은 채 임교영의 맥을 짚던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지여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원님.”
“그렇소. 수태요. 아이의 맥이 미약하니 몸보신을 잘하셔야겠소이다.”
순간 운화결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수태라고?’
임교영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월사(月事)를 하지 않는 여인이 수태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의원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물었다.
“월사를 하지 않는다고?”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소. 그런데 맥이 잡히는 걸 어째.”
침구를 챙긴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 바람은 쐬지 마시오. 좋은 약으로 써줄 것이니 사흘 뒤에 찾아오시구려.”
마지막 말을 남긴 의원이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
기묘한 정적이 실내를 무겁게 지배한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응당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우두커니 선 진무립이 문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너무 어이가 없다 보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때 벽에 기대 힘겹게 서 있던 운화결이 진무립을 불렀다.
“광룡.”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그의 다리가 천천히 굽혀지더니 이내 두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상공!”
놀란 임교영과 지여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굽히지 않았던 운화결이 남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건 경악할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살아야겠다.”
운화결은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부탁한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진무립이 물었다.
“나는 무림을 없앨 생각이 없다. 내게 후환을 남기라는 말이냐?”
“지금은 그저 살아서 교영의 곁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무엇이든 하겠다. 복령천을 지우라면 지울 것이고 복령천주를 죽이라면 죽일 것이다.”
“너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그때였다.
운화결의 곁으로 달려간 임교영이 무릎을 꿇었다.
“저를 인질로 삼으세요! 제가 천주님의 곁에 남아있겠습니다!”
“나는 여인을 인질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공과 함께 저도 죽여주세요.”
그녀의 두 눈에 단호한 빛이 떠오른다.
운화결을 죽이면 정말 함께 죽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단려화는 후회에 사로잡혔다.
‘말하지 말 걸 그랬어.’
자신만 입 다물고 있었다면 모든 것이 진무립의 뜻대로 이뤄졌을 것이다.
‘그냥 나 혼자 괴로워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때 고개 숙인 단려화의 어깨에 따스한 손길이 닿았다.
“자책할 것 없어. 당신 잘못이 아니야.”
“미안해요.”
그녀의 귓속으로 진무립의 전음이 스며들었다.
[내가 누구지?]고개 든 단려화는 스치듯 사라지는 진무립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진무립이다. 이런 상황쯤은 충분히 내게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지.]지금의 짧은 시간, 빠르게 회전하는 진무립의 머리는 이미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진무립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살려준다면 무엇이든 한다고 했었나?”
“그렇다.”
“좋다. 살려주지.”
순간 장내에 머무는 모든 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두 사람과 눈높이를 맞춘 진무립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결코 쉬운 일을 맡기지는 않을 거다. 그 과정에서 죽더라도 두 사람 다 날 원망하지 마라.”
“물론이다.”
“상공.”
임교영의 걱정 섞인 눈빛에 운화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를 믿어라. 너와 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것이다.”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임교영이 진무립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 역시 무슨 일이 생겨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이어진 진무립의 목소리는 운화결의 귓속을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복령천으로 돌아가라.]이번 전투에서 주인환이 죽었다.
운화결을 살려 보내자면 죽은 부하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의 뭔가를 확실히 얻어내야 한다.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복령천.
진무립은 운화결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할 생각이었다.
만일 성공한다면, 적의 기습에 확실히 대처해 상천의 가족들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다.
‘그 정도라면 인환도 이해해줄 거다.’
비록 그는 볼 수 없었지만 상천을 반석 위에 올리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복령천이 남아있는 이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동료들의 피해를 줄일 방법이 있다면 그 역시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진무립의 전음이 무슨 의미인지 운화결도 모르지 않았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는 결심한 듯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알겠다.”
* * *
저녁노을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개봉의 거리.
멀찍이서 진무립을 따르던 단려화가 조심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립.”
미안한 듯 눈을 피하는 그녀에게 진무립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덕분에 좋은 계획을 만들 수 있었어.”
그저 빈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진무립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보답으로 저녁을 사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