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5
◈ 235화. 홍월루의 거래
홍월루의 최상층.
한낮부터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진 가운데, 둥근 탁자에 세 사내가 둘러앉았다.
루주 화명이 두 중년인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탁대협.”
잔을 받는 눈가에 짙은 검상이 새겨진 중년인은 무림 사왕(四王)의 일원, 악왕(岳王) 탁이신이었다.
당금 무림에서 두 자루 쌍검을 가장 잘 사용하기로 유명한 그는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기도 했다.
“그렇군. 전보다 훨씬 헌앙해졌구나.”
화명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숙부께서는 잘 계십니까?”
“그놈이야 늘 그렇지.”
탁이신이 진대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서신을 보낸 이유가 상천 때문인가?”
“그건 위사영에게 물어봐야지. 난 그저 녀석에게 받은 걸 전했을 뿐이야.”
이번엔 진대천이 술잔을 들이켜곤 물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중원에 있었던 게냐?”
과거 화령도에서 삼 년을 머문 진대천은 탁이신과도 친분이 깊은 상태였다.
탁이신이 답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위사영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무슨 일로?”
“그건 나중에 녀석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중원의 피해가 제법 크다고 들었다.”
삼가의 무인 수백이 목숨을 잃었고 중추를 이루던 중소방파가 전부 몰락했으니 힘의 공백이 작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진대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지금 중원의 수장들은 복잡한 마음일 거다.”
“그런가?”
“이번 전투에서 삼가의 무인 수백이 죽었다. 그에 비하면 상천의 피해는 극히 미미하지. 게다가 화무신검을 죽이고 일기당천을 해낸 광룡은 만천하에 실력을 증명했다. 중원도 표국에 맞서 함께 싸웠음에도 어딜 가나 광룡과 상천의 이야기만 하질 않은가?”
화명이 그의 말을 받았다.
“상천의 정체가 드러났음에도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도리어 상천이 중원을 구했다며 칭송하고 있지요.”
진대천이 말했다.
“전투가 끝나고 차분히 과정을 돌이켜봤다. 그런데 묘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더군.”
“묘한 구석?”
“상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개방의 제자. 하나씩 이어지던 폭로전 끝에 결정적인 순간 나타난 광룡과 부하들. 이 모든 게 잘 짜여진 각본이 아닐까 싶더군.”
화명이 술잔을 매만지며 끄덕인다.
“은곡 출신인 상천을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한 계획. 제 생각도 진대협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추측이 옳다면 광룡은 정말 치밀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월루의 별채를 빌려주며 진무립과도 짧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육군명과도 이야기해본 경험이 있었다.
차분히 돌이켜 보니 그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 무섭게 느껴진다.
탁이신이 나직이 물었다.
“그자의 진정한 목적은 뭐지?”
상천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이 먼저 강남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움직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미리 알아두어 나쁠 것은 없었다.
진대천이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천하와 상생하고자 한다는군. 전투가 끝나고 중원에 제시한 조건도 나쁘지 않아.”
“음.”
탁이신이 생각에 잠기자 진대천은 잔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신룡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아직도 폐관 중인가?”
탁이신은 생각을 거두고 웃었다.
“그래.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건지 모르겠다. 참으로 지독한 대목(大木)이야.”
커다란 나무, 대목.
신룡 단소룡의 측근들은 사석에선 그를 대목이라 부르고 있었다.
화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광룡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세인들은 북광남신(北光南神)이라며 신룡 대협과 같은 반열에 올리는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화령에서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탁이신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혈기왕성한 젊은 무인들이야 조금 거슬리긴 하겠지만 대목이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은 아니지.”
진대천은 역시 하는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천하대전을 경험한 무인들에게 단소룡은 무림을 지탱하는 거목과도 같았으니까.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루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화명이 두 사람을 슬쩍 살피며 말했다.
“뒤로 미룰 수는 없겠습니까?”
“중요한 대화 중이시라 미루려 했으나 상대의 신분이…….”
“누굽니까?”
“상천의 총사가 바로 그 손님입니다.”
순간 탁이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치듯 사라졌다.
“제천지사 수문화.”
광룡 진무립이 무면산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조차 불분명하던 시기.
상천의 대외 활동을 모두 감당한 것은 바로 총사인 수문화였다.
탁이신이 화명에게 허락을 구했다.
“동석할 수 있겠는가?”
직접 눈으로 본다면 소문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 층에서 기다리던 수문화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며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개봉 제일의 기루라고 하더니 과연.”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오색연등과 값비싼 족자에 고급스러운 도자기가 사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이상이 답했다.
“천하상단의 재력이 투입된 기루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건물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기루에 납품되는 식자재와 술, 여인들의 필수품은 모두 천하상단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동초개가 죽립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천하상단과 협상을 하려면 상단주를 직접 찾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수문화가 씩 웃었다.
“가끔은 돌아가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지요.”
상단주 화영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
반면 상천의 주축은 그의 자식뻘과도 같다.
그렇다면 상단주가 아닌 다음 세대와 직접 안면을 터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앞으로 대외적인 활동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에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천하상단과의 거래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그때 계단으로 총관이 내려오며 고개를 숙였다.
“안내하겠습니다.”
“갑시다.”
동초개가 슬쩍 뒤로 빠지며 빈자리에 앉는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수문화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두 사람을 최상층으로 안내한 총관이 접객실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화명이 활짝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정이상의 눈이 빠르게 그 뒤의 두 사내를 훑는다.
‘저자는 분명 화검 진대천. 다른 자는 누구지?’
그 곁으로 복면을 끌어 올린 사내는 무기조차 패용하지 않아 누군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단순한 인물은 아니다.’
기도를 갈무리한 수법이 자신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은밀하다.
수문화가 예로 화답하며 말했다.
“예고 없는 방문에 흔쾌히 응해주시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없이 정중한 예법에 탁이신은 이채를 떠올렸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돼.’
그간 표국이 퍼트린 악의적인 소문과는 사뭇 다르다.
“이쪽은 제 일을 도와주시는 화검 진대천 대협이십니다.”
진대천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진대천이오.”
“수문화입니다. 진대협과 같은 무림의 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화명은 이어서 탁이신을 소개했다.
“이쪽은 제 호위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앉으시지요.”
그 말을 믿을 수문화가 아니었지만 그저 미소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상천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천하로 번지고 있더군요.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별말씀을. 우린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화명이 손수 차를 따르며 웃었다.
“훌륭한 수장과 능력 있는 무인들이 많으니 무엇이든 뜻한 바를 이루실 겁니다. 한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모처럼 개봉에 왔는데 사내로 태어나 어찌 홍월루를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맹에 들어가기 전에 술도 한잔할 겸, 루주님과 인사도…….”
찻잔을 잡아가던 수문화가 등 뒤의 복면인을 살피더니 씩 웃었다.
“나눌 생각이라는 건 핑계고 거래를 좀 해볼까 해서 왔습니다.”
수문화가 감추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자 화명이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홍월루와 거래를 바라신다는 말씀입니까?”
시치미 떼고 물었으나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일개 기루와 거래하기엔 상천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커진 상태.
당연히 자신의 배경인 천하상단과 거래를 하고자 왔다는 걸 알고 있다.
수문화도 상대가 대화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돌려서 말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시 장사꾼의 아들인가.’
수문화는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습니다. 본 천은 홍월루와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순간 화명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홍월루와 거래를 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추태를 깨달은 화명이 당황한 내심을 감추며 물었다.
“일개 기루와 무슨 거래를 하고자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수문화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들어오면서 보니 기루의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더군요. 어째서 개봉 제일, 아니 중원제일루라고 불리는지 알겠습니다.”
“음.”
“루주께서 허락하신다면 각 성에 홍월루의 지점을 세우고자 합니다.”
“홍월루의 지점을 말입니까?”
“홍월루를 찾기 위해 개봉까지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예. 분명 그렇습니다.”
가깝게는 산동과 섬서, 멀게는 사천과 복건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물론 홍월루가 주목적이 아닌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개봉의 명소를 둘러볼 때 홍월루는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장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수문화가 말했다.
“사천에 사는 사람이 홍월루를 방문하려면 먼 길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비도 적지 않게 들겠지요. 그러나 사천에도 같은 홍월루가 있다면, 그 여비까지 온전히 홍월루에서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음.”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화명은 나직이 침음했다.
‘그리되면 본점의 매출은 조금 감소하겠지만 만일 천하 각지에 분점을 세운다면…….’
수문화는 고심하는 그를 보며 미소를 감췄다.
‘완전히 빠져들었군. 장사꾼은 장사꾼이야.’
어느새 대화의 흐름은 수문화가 주도하고 있었다.
“급히 결정하기보다는 조금 검토가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시지요. 결정을 내리신다면, 그 뒤에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하기로 합시다. 루주님 입장에서 불리한 제안이 아닐 것을 약속합니다.”
할 말을 마친 수문화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명이 살짝 놀라며 물었다.
“설마 이대로 가신다는 겁니까?”
수문화가 천하상단과의 거래를 위해 이곳에 온 줄 알았다.
물론 그 생각은 그가 일어나기 전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대로 깔끔하게 일어서니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완벽하게 말려든 기분이다.
수문화가 말했다.
“이만 맹으로 들어가 주군을 뵈어야 합니다. 혹시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아닙니다.”
“당분간 중원무림맹에 머물 생각입니다. 결정을 내리시거든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수문화는 정중히 포권을 갖춘 뒤 방을 나섰다.
멍하니 선 화명을 보며 진대천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네가 당황하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언변이 탁월한 자로구나.”
화명이 멋쩍게 웃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속내를 읽지 못했습니다. 휘둘리다 끝난 기분입니다.”
잠자코 있던 탁이신이 복면을 내렸다.
“언변만 탁월한 게 아니다. 그는 고수다.”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이따금 수문화에게 송곳 같은 기운을 노출했던 탁이신이었다.
그럼에도 수문화는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쏘아낸 기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라는 것과 같다.
탁이신은 슬며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니면 완전한 하수이거나.’
어찌 되었든, 상천이 방심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기루를 나선 정이상이 곁으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뒤에 서 있던 복면인 말입니다.”
“그래. 일개 호위로 보긴 어려운 고수였다.”
“대체 누굴까요?”
“화령의 무인이다.”
놀란 정이상이 눈을 치켜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누굽니까?”
“그건 모르지.”
“…….”
당금 무림에서 그만큼 은밀한 수법으로 기운을 쏘아낼 수 있는 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만일 상대가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라면, 화령의 무인일 확률이 높았기에 그리 추측한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천하상단과 거래를 트는 게 아니었습니까?”
“분명 그럴 생각이었지.”
“어째서 홍월루로 상대를 바꾸신 겁니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자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상대는 분명하게 내가 방문한 의도를 읽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거래를 제안해봐야 좋은 조건은 가져올 수 없어.”
정이상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그럼 정말 홍월루와 거래를 하겠다는 말입니까? 천하상단에 비하면 별로 얻을 게 없는 거래 같은데요.”
고개 돌린 수문화가 홍월루의 최상층을 바라보았다.
“홍월루에 들어가는 물자는 모두 천하상단에서 대고 있지. 천하에 홍월루의 분점이 생긴다면 상단에서도 각지로 물자를 운송할 것 아니냐?”
그 말을 이해한 정이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면…….”
상천에는 대량표국이 있다.
통행세 없이 물자를 운송하자면 대량표국을 이용하는 것이 천하상단의 입장에서도 이득인 것이다.
수문화는 홍월루에서 시선을 거뒀다.
“본래 인연이란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거지.”
정이상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아직 상대가 제안을 수락한 건 아닐 텐데요.”
“반드시 수락할 거야.”
“확신하는 이유가 뭡니까?”
“화명은 대공자가 아닌 이공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