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6
◈ 236화. 흑사칠랑
수문화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정이상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둘째?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골목을 벗어나자 거리 가득한 인파가 일행을 맞이한다.
수문화는 북적이는 대로에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천하상단. 오대표국조차 쉽게 손대지 못했던 천하제일상단이지.”
“그건 현 상단주의 친동생이 화령의 대군사 화윤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물론 화령과 마찰을 피하고자 그랬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 화윤이 어째서 천하제일상단을 떠나 화령에 들어갔는지 알아?”
“어차피 상단은 형이 물려받을 테니까…….”
정이상은 그제야 수문화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수문화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것은 홍월루주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에게 스스로 설 기회를 주었고, 바보가 아니라면 그는 내가 내민 손을 잡을 거다.”
정이상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바보라면요?”
“그럼 바보가 아닌 자와 다시 이야기해야겠지. 서두르자. 주군께서 기다리실…….”
슬쩍 뒤를 돌아본 수문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뭔가 잊고 있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수문화를 멀뚱히 쳐다보던 정이상이 슬쩍 주변을 살폈다.
“동초개?”
뒷간에 다녀온 동초개가 일 층으로 돌아왔다.
바지춤을 잔뜩 끌어올린 동초개가 계단을 슬쩍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그때 부엌으로 난 문이 열리며 깡마른 체구의 총관이 나타났다.
“공자의 일행께서는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
반 박자 늦게 동초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뭣이?”
* * *
수문화 일행이 맹으로 복귀할 무렵.
처소의 마당으로 나온 단려화가 활짝 웃으며 은수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은소저! 어서 와요!”
그녀의 맑은 미소에 은수련은 새삼 자신이 돌아왔음을 느꼈다.
“아가씨.”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은수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
“무탈하시어 다행입니다.”
중원무림맹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염려한 것은 단려화의 안위였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제법 정이 든 것이다.
단려화가 은수련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이제 괜찮아요? 다 나은 거 맞죠?”
“예.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회복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어서 들어가요.”
“주군께 인사부터…….”
“죽산채주님을 만나러 갔어요. 곧 돌아올 테니 들어가서 기다리자구요.”
단려화에게 잡혀가는 은수련의 귀로 반가운 전음이 스며들었다.
[고생 많았다.]슬쩍 고개 돌린 은수련의 눈에 보고 싶었던 얼굴이 비친다.
‘서두를 거 없어.’
공여소의 당부를 재차 떠올린 그녀가 미소를 감추며 답했다.
[총사께서도 곧 도착하실 겁니다.]서진환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주군께 전하마.]* * *
약 냄새가 짙게 번지는 방 안.
창문을 활짝 연 진무립이 답답한 공기를 환기하며 햇살을 등졌다.
“몸은 좀 어떤가?”
핏기 가신 얼굴로 히죽 웃는 왕유가 전보다 십 년은 더 늙어 보인다.
“견딜 만합니다. 얼른 복귀하겠습니다.”
진무립은 덤덤한 얼굴로 그의 곁에 앉았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새로 간 천이 검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 작은 부상이 아니었다.
‘견딜 만하긴.’
상천팔기 중 유일하게 지천명을 넘긴 그는 나이가 많은 만큼 동료들에게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온 사내.
진무립조차도 어린 시절 그에게 의지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상천에서 왕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그가 책임감이 강한 사내이기 때문일 터.
진무립은 그의 손을 차분히 잡았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살존이라는 자에게 큰 피해를 입었을 거다. 수고 많았다. 당분간 한가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라.”
일어나는 진무립의 뒤로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녀석들에게 들었습니다. 복령천의 전력을 생각하면 분명 제가 있어야 할 겁니다.”
“뒤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주군.”
“너는 그동안 충분히 수고했다.”
진무립의 손이 문을 열어간다.
“이젠 나를 믿고, 완벽히 회복할 때까지 푹 쉬어라.”
쏟아지는 햇살에 그늘진 진무립의 등이 오늘따라 유독 크고 듬직해 보인다.
탁.
문이 닫히며 드리운 어둠과 함께 왕유의 눈꺼풀도 스르륵 덮인다.
‘거목이 되어 가시는구나.’
천하대전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지던 그날.
마지막까지 황운천의 만류에 실패했던 스승과 먼발치에 숨어 전투를 지켜보았다.
하늘과 땅이 울부짖는 치열한 전장에서 천하 무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신룡처럼.
부쩍 성장한 진무립도 어느새 그와 같은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진무립을 서진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 부대주가 복귀했습니다.”
“상태는?”
“완벽히 회복한 듯합니다. 지금 단소저와 함께 있습니다.”
“전에 하던 임무를 유지하도록.”
다치기 전 그녀의 임무는 단려화의 호위.
서진환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예. 그리고 총사가 곧 도착할 모양입니다.”
진무립이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연일 이어지는 회의 속에 틈날 때마다 주변을 살펴온 진무립도 다소 지친 상태였다.
상천의 실무를 도맡아온 수문화가 도착한다면, 새로운 연맹의 창설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천이 공식적으로 무림의 일부가 되었다곤 하나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뿐이다.
직접 발로 뛰며 움직여야 할 일이 많은 만큼 수문화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다음 회의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한 시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잠시 다녀오마. 문화가 오면 내 방으로 데려가라.”
“알겠습니다.”
서진환을 보낸 진무립은 곧장 의방의 후원으로 향했다.
별채 뒤편으로 돌아가니 앞을 지키고 있던 금성우가 공손히 예를 갖춘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구나.”
“아닙니다.”
고개를 든 금성우의 눈빛이 왠지 후련해 보인다.
“잘 보내주었느냐?”
“예.”
복수는 그의 소맷자락을 자른 것으로 끝냈다.
상천을 위해 내린 결정에 후회는 없다.
운화결이 자신의 역할만 해낸다면 확실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립이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고생했다. 악계화와 자영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른 두 사람은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찾아온 이는 없었느냐?”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습니다.”
태산표국이 무너지고 복령천을 등진 이들은 실 끊어진 연과도 같은 존재였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깨어나는 대로 내게 알려라.”
“알겠습니다.”
의방을 나선 진무립은 곧장 처소로 돌아갔다.
때마침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수문화과 정이상이 정중히 예를 갖춘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산동의 마무리는?”
“세부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시평에게 맡겼습니다. 두 달 안에 상행을 시작할 겁니다.”
“수고했다.”
진무립은 서랍에서 책자를 꺼냈다.
“그간의 일을 정리해뒀다. 한 시진 안에 모두 외우고 회의에 참석해라.”
두꺼운 책을 본 수문화가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본다.
“한 시진?”
뒤에 서 있던 정이상이 진무립의 눈치를 살피며 속닥거렸다.
“알만한 분이 주군 말씀에 토 달지 마십쇼.”
아니나 다를까 진무립이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반 시진으로 줄일까?”
수문화는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한 시진으로 하시죠.”
그가 책자를 잡아가며 말했다.
“각 산채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태산표국과 회남표국의 표사들은 모두 대량표국에서 흡수했고 부채주들이 움직여 남은 세 개 표국의 일반 표사들도 포섭할 예정입니다.”
“음.”
진무립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웃었다.
상천의 모든 부하가 믿음직하지만 수문화만큼 자신의 생각을 잘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수문화는 가늘어진 눈으로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태산표국과 회남표국에서 확보한 자금이면 적어도 삼 년은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다른 표국에서 나올 자금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오 년 이상은 버틸 수 있겠군.”
“그렇지요. 물론 그 전에 불안요소를 뿌리 뽑는 게 좋겠지만 말입니다.”
순식간에 절반이나 책자를 넘긴 수문화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제법 까다로운 상대로군요.”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쳐야 한다.”
“드러나지 않은 상대인 만큼 변수가 많을 겁니다. 상대가 먼저 움직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 그래서 운화결을 살려서 보낸 거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임교영이 이곳에 있는 이상 다른 뜻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진무립이 말을 덧붙였다.
“문제는 사천이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그들이 마도림을 노린다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문화는 여전히 책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주군의 정체가 드러날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대비를 해뒀습니다.”
“대비?”
“흑사칠랑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 * *
오후의 햇살이 심산유곡을 아늑하게 감싸 안는다.
슈우우우우!
콰콰쾅!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속 공터에선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흐아아아!”
전력으로 보법을 전개한 장우기가 피어나는 새싹을 가볍게 지려 밟고 일권을 내질렀다.
마주 선 검랑 서천휘의 눈에 화살처럼 짓쳐 드는 권영이 떠오른다.
탓!
서천휘는 즉시 지면을 박차고 우측으로 미끄러졌다.
스팟!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 권영이 지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지축의 진동과 함께 솟구치는 흙먼지가 오싹하다.
서천휘는 즉시 돌진하며 검극을 내질렀다.
“전대 흑랑에 비하면 아직 간결함이 모자랍니다.”
잔뜩 수그린 장우기가 서천휘의 엄청난 쾌검을 손등으로 밀어쳤다.
쩌엉!
“자꾸 구중천이랑 비교하지 말란 말이야!”
버럭한 장우기의 발이 날카롭게 솟구친다.
“나는 나라고!”
슈아악!
태산 같은 위력을 머금은 발뒤꿈치가 지면에 처박힌다.
콰지지지…….
지면에 실낱같은 실금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더니.
콰아아아앙!
이내 단단한 땅거죽이 으깨지며 흙먼지가 역류하는 폭포수처럼 치솟았다.
비무를 지켜보던 지랑 현진학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군.’
마치 맹수를 연상케 하는 난폭함과 동물적인 전투 감각은 전대 흑랑 구중천에 못지않게 강렬하다.
물론 그에 비하면 간결함이 조금 떨어졌으나 엄청난 괴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곁에 서 있던 도랑 도운수가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정말 엄청난 녀석이야.”
“검랑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함투성이인 모양인데.”
도운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놈의 눈에 부족하지 않을 무인이 천하에 몇이나 될까?”
비록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으나 검랑 서천휘의 무공은 십대고수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당금 무림에서 쾌검으로 서천휘를 상대할 자는 화령의 검황 천영밖에 없다고 자부했다.
그때 두 사람의 뒤로 전신을 검은 천으로 두른 사내, 독랑 막월이 나타났다.
“지랑.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 의뢰인인가?”
“그래. 돌려보낼까 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가봐야 할 것 같다.”
고개 돌린 현진학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막월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서 왔기에?”
그답지 않게 긴장한 막월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복령천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