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7
◈ 237화. 팔사령 구소군
나무 사이로 드리운 햇살이 찡그린 도운수의 얼굴을 비춘다.
“복령천이라고? 그게 뭐냐?”
막월이 답했다.
“듣기론 팔황문의 후신이라고 하더군.”
“복수인가?”
천하대전 당시 흑사칠랑은 권성 대연무를 죽인 이력이 있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르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우기와 서천휘는 막월의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비무에 집중하는 상태.
현진학이 그들을 확인하며 물었다.
“숫자는?”
“여섯이다.”
가만히 생각하던 현진학이 발을 내디뎠다.
“내가 다녀올 테니 저들은 방해하지 마라.”
도운수가 말했다.
“같이 가지.”
현진학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여길 지켜.”
누군가는 비무 중인 저들을 지켜보며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
두 자루 쌍검을 재차 확인한 현진학이 비탈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둘을 바라보던 도운수의 귀로 현진학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이각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저들을 데려와라.] [……그러지.]산 중턱의 작은 공터.
여덟 개의 초옥이 담장처럼 공터 주변을 두른 가운데, 눈썹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중앙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하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앳된 청년은 무료한 듯 하품을 하며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청년의 뒤로는 청색 무복에 같은 색 복면을 착용한 다섯 무인이 서릿발 같은 기도를 풍기며 늘어서 있었다.
“팔좌(八座).”
그중 한쪽 눈을 가린 사내가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속하가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팔좌라고 불린 청년이 짓궂게 웃었다.
“이봐. 그리 쉽게 잡힐 검랑이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어?”
“…….”
초옥의 처마 밑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던 여인, 비랑 비사령이 그늘 밑에 숨은 은랑 장청에게 물었다.
[팔좌?]장청은 예리한 눈동자로 상대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사령이 당부하듯 말했다.
[기도를 전혀 읽을 수 없어. 방심하지 마.] [내가 할 소리다.]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청년의 눈에, 시꺼먼 천으로 눈을 가린 창랑 진야가 들어온다.
“이봐. 뭐 좀 물어볼게.”
바위에서 엉덩이를 뗀 청년이 검파를 툭 치며 싱글싱글 웃었다.
“한두 놈 죽이면 금방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서늘해진 등골에 식은땀이 맺힌다.
‘이자는…….’
창을 쥔 손에 자연히 힘이 들어간다.
그때였다.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군.”
숲의 외곽에서 현진학이 나타났다.
청년은 그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오. 그대가 지랑 현진학이지?”
지적인 외모에 쌍검을 든 현진학을 알아본 것이다.
“권성 대연무를 죽일 계책을 꾸민 자. 사자곡에서 대군사 화윤과 싸웠던 흑사칠랑의 지낭. 내 말이 맞지?”
현진학은 침착하게 상대를 살피며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청년은 해맑게 웃으며 두 손을 활짝 펼쳤다.
“나는 구소군이야. 복령천 십이사령(十二士令)의 팔사령이지.”
“십이사령?”
구소군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희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적어도 너 같은 자가 열두 명이 있다는 건 알겠다.”
“하하하! 이제 곧 천하에 널리 알려질 이름이니 잘 기억해둬.”
호방한 웃음이 마른 수풀을 뒤흔들며 퍼져 나간다.
‘고수.’
장우기보다도 어려 보이는 외모였으나 웃음에 섞인 내력만큼은 노회한 노고수를 연상케 할 만큼 강렬하다.
“무엇 때문에 우릴 찾아왔지?”
“의뢰를 하려고 말이야. 돈은 얼마든지 줄게. 물론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나중에.”
“나중이라면?”
순간 해맑던 구소군의 미소가 흉신악살처럼 매섭게 일변한다.
“천하를 집어삼킨 뒤에.”
“…….”
불어온 바람이 무거운 정적을 남기고 흩어져 간다.
“의뢰 내용은?”
그 순간 현진학의 귀로 날카로운 전음이 파고들었다.
[지랑.]미간을 좁히는 이는 비사령이었다.
[원칙을 어길 순 없어.]이미 흑사칠랑은 먼저 온 의뢰를 받은 상태.
여기서 다른 의뢰를 받는 것은 수십 년간 지켜온 흑사칠랑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다.
전대 흑랑 구중천이 수립한 원칙을 어길 수는 없었다.
현진학은 곁눈질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도 안다.’
구소군이 묘한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의뢰를 받아줄 거야?”
“들어보겠다.”
알려지지 않은 복령천의 고수가 자신들을 찾아왔다.
향후 무림에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진학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싶었다.
“후후후. 좋아. 일단 말해주지.”
구소군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밑으로 들어와. 나중에 천하를 차지하면 한쪽 귀퉁이 정도는 내어줄 수 있어.”
“한쪽 귀퉁이라면?”
“중경이나 성도 정도?”
현진학이 실소를 삼키며 물었다.
“윗선에서 허락한 일인가?”
구소군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내가 그런 일까지 굳이 허락을 구해야겠어?”
현진학의 두 눈에 번뜩이는 빛이 스치고 사라졌다.
‘전대의 팔성. 그와 비슷한 위치이거나 수장의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위치겠군.’
한 번의 질문으로 이들이 복령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간파한 것이다.
“전대 팔황문주는 신룡을 넘지 못했다. 그를 넘어설 확신이 있나?”
“하하하! 신룡이 무섭다면 다시 나타났을까? 그보다…….”
순간 구소군의 두 눈이 차가운 빛을 쏟아냈다.
“자꾸 내게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거 같은데, 개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아.”
마치 무저갱의 심연과 마주한 듯한 그 눈빛은 대담한 현진학조차 일순 위축시킬 정도로 매서웠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는가.’
현진학은 내심을 가라앉히며 답했다.
“당장 정할 문제는 아니군. 생각해볼 테니 연락할 방법을 두고 가라.”
현진학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구소군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지랑.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내민 그의 손에 복면인이 들고 있던 봇짐이 얹어진다.
구소군은 천천히 봇짐을 풀었고, 잠시 후 드러난 것은 얼마 전에 다녀간 상천 무인의 머리였다.
순간 현진학을 제외한 칠랑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듯 사라졌다.
구소군은 그들의 반응이 기꺼운 얼굴로 말했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듯한데. 그거 놓고 새로운 밧줄을 잡는 게 어떨까?”
“거절한다면?”
“신중히 판단하는 게 좋아. 우린 그때와 다르거든.”
“그때?”
“구중천을 잃은 너희들이 권성에게 복수했을 때와는 다르다는 말이지. 우린 그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킬킬킬!”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공터에 나직하게 깔린다.
“여기서 선택해. 우리 손을 잡을 건지, 아니면 썩은 줄을 잡고 절벽에서 떨어질 건지 말이야.”
현진학은 나직이 호흡을 고르며 슬쩍 보폭을 벌렸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굳이 속내를 감출 수는 없겠군.”
일단 수락하고 이 자리를 피할 수도 있겠지만 만일 상대가 인질이라도 요구한다면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현진학은 솔직하게 답했다.
“거절하지. 전대 흑랑이 세운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
“그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소군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눈앞에서 나타났다.
“그럼 죽어.”
벼락같이 뽑혀 나온 검신이 현진학의 목을 그어왔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현진학은 즉시 쌍검을 출수해 눈앞으로 교차시켰다.
카캉!
번갯불이 튀며 현진학의 신형이 주르륵 미끄러진다.
‘큭!’
손끝의 떨림이 강렬하다.
만일 대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목이 잘려도 이상이 없을 만큼 상대의 공격은 신속했다.
“지랑!”
현진학의 위기에 창랑 진야가 몸을 날렸고 비사령이 비도를 출수했다.
쌔애애액!
그와 동시에 솟구친 다섯 명의 복면인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따다다다당!
다섯 자루 비도가 순식간에 튕겨 나가자 비사령의 두 눈에 어둠이 떠올랐다.
‘빨라.’
복면인들의 무공은 일개 호위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흑사칠랑 또한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창랑 진야가 선두에 서자 비사령이 비도로 좌우를 보조한다.
바람의 방향을 계산하며 순식간에 이동한 독랑 막월이 독장을 쏟아내고 그늘에 숨어있던 은랑 장청이 적의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연신 물러나며 동료들을 살핀 현진학이 쓴웃음을 삼켰다.
‘이각은 너무 길게 잡았나.’
이각이 지나도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분명 도운수가 장우기와 서천휘를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런데 그 이각이라는 시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쾌검을 상대로 도무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슈슈슈슈슉!
공간마저 뚫고 나온 쾌검이 현진학의 옷자락에 선명한 구멍을 늘려간다.
현진학은 전력을 다해 쌍검을 휘저었고, 활짝 웃는 구소군은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하며 따라붙었다.
“제법 피하는데?”
쐐애액!
사선에서 보이지도 않는 공격이 솟구친다.
노련한 현진학은 그것을 예측해 우검을 휘둘렀다.
치잉!
부르르 떨리는 검신이 선명한 쇳소리를 터트렸다.
“이건 팔성의 무공이 아니로군.”
구소군은 즉시 방향을 틀어 좌측으로 움직였다.
“백연사검(百聯死劍)이라는 거야. 패배자들이랑은 다르다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쾌검의 향연이 현진학의 전신을 압박해온다.
콰콰콰콰콰콰!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 될 법한 날카로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검영의 중심에 선 현진학은 이를 악물고 양손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슈아악!
들이치는 공격이 육신을 타격하기 직전, 현진학의 앞에 수십 개의 실선이 그어졌다.
따다다다다다당!
이선정검 천수막(川囚膜)의 초식.
빗줄기가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쏟아져 나오더니 현진학의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콰직!
바위에 부딪힌 현진학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탓!
어느새 지척까지 달려든 구소군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검신을 내질렀다.
“키히히히! 어때? 후회스럽지?”
쐐액!
빗살처럼 쏘아지는 검극이 흔들리는 현진학의 눈에 빨려들 듯 확장된다.
‘이런.’
낭패한 현진학이 상처를 각오하고 몸을 비틀 때였다.
콰앙!
눈앞에서 강렬한 폭음이 터지더니 짓쳐 들던 구소군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별안간의 기습이 당혹스러울 법도 했으나 구소군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오셨군.”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검을 출수한 자세로 멈춰선 서천휘가 있었다.
“공격을 멈추십시오.”
“싫다면 어쩔 거야?”
“반드시 피를 보게 될 겁니다.”
가늘어진 구소군의 눈동자가 서천휘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간다.
‘음.’
이내 씩 웃은 그는 손을 들어 부하들을 뒤로 물렸다.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겠어. 하지만 기억해둬. 우리와 맞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말을 마친 구소군이 부하들과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보내줄 거 같으냐!”
뒤늦게 나타난 도운수가 도를 움켜쥐고 지면을 박찼다.
“도랑!”
다급한 현진학의 외침이 그의 발을 붙잡았다.
멈칫한 도운수가 고개를 휙 돌렸다.
“팔황문의 후신이다. 저 위험한 놈을 이대로 보내겠다는 거냐?”
현진학은 턱짓으로 서천휘를 가리켰다.
“무슨…….”
고개 돌린 도운수의 눈에, 허전한 소맷자락울 바라보는 서천휘가 떠오른다.
‘그 틈에.’
불시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가공할 반응속도로 반격까지 취했다.
만만치 않은 쾌검의 고수가 나타난 것이다.
서천휘는 착검하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지 않은 탓에 부상자는 가벼운 내상을 입은 현진학이 전부였다.
현진학이 소매로 입가의 피를 훔치며 일어났다.
“흑랑은?”
그때 장우기가 수풀 너머에서 태연하게 바지춤을 붙잡고 나타났다.
“무슨 일 있었어?”
타박할 시간조차 아껴야 한다.
현진학은 쌍검을 회수하며 말했다.
“여길 뜬다.”
만일 지금 나타난 자들이 전부가 아니라면, 인근에 놈들의 부하가 더 있다면 여긴 위험하다.
도운수를 말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장우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뜨다니?”
서천휘가 빙그레 웃으며 장우기에게 말했다.
“떠날 시간입니다. 들어가서 짐을 챙기세요.”
장우기는 얼떨떨한 얼굴로 동료들을 따라 초옥에 들어갔다.
잠시 후, 짐을 챙겨 나온 칠랑이 마당에 모였다.
비사령이 물었다.
“어디로 가지?”
현진학은 지체 없이 돌아섰다.
“일단 중경으로 가자. 나머지는 가면서 이야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