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4
◈ 24화. 연기가 아닌 거 같은데
정인령 모녀의 실종 사실은 순식간에 마을로 퍼져 나갔다.
“장주님과 소장주님도 모자라 그분들마저 납치되셨단 말인가?”
“그렇다는군. 아가씨를 되찾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랬다는 거야.”
“근데 마도림에서 온 사람들이 돈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체 왜 또 납치를 했단 말인가?”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흉수가 둘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는 마을 사람들은 좀처럼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그냥 미친놈인가?”
“놈이 아니라 년일세. 사건 해결을 돕겠다며 들어간 여인들이 흉수라더군.”
“허, 그것참.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구먼.”
마을 사람들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더욱 당황한 이가 있었다.
‘대체 어떤 개새끼냐!’
혈천수라 악위청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멀리서 백기를 발견하고 들떴던 마음은 웅성거리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차갑게 식어 내렸다.
‘감히 내 돈을!’
무려 은자 삼백만의 거금이다.
눈앞에 있다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여도 성에 찰 것 같지 않았다.
악위청은 뜨거운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대로 빼앗길 거 같으냐?’
주먹을 움켜쥔 악위청이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
광룡대의 숙소, 진무립의 처소에 용추와 다섯 조장이 모였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부하들에게도 말하지 마라.”
진무립의 눈빛은 이제까지 봐온 모습 중 가장 차갑고 진지했다.
침을 꿀꺽 삼킨 조장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은 다시 입을 열었다.
“동쪽 관제묘다. 오늘 밤 흉수가 반드시 그곳에 나타날 거다.”
풍연이 물었다.
“장주님을 납치한 흉수도 그 요망한 년들일까요?”
요망한 년이 된 것을 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단려화의 얼굴을 떠올린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아니다. 두 여인에게 숙모님을 납치하라고 지시한 건 바로 나다.”
“예?”
조장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진무립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흉수의 입장에선 두 달 넘게 고생한 끝에 얻게 된 결실이다. 자그마치 은자 삼백만의 거액이 다른 놈에게 넘어가게 생겼는데 가만 보고 있겠느냐? 놈은 반드시 나타난다.”
말도 안 되는 계획.
하지만 듣고 보니 이해가 된다.
‘나였다면 걸렸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눈을 멀겋게 뜬 조장들은 좀처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비로소 대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사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순순히 항복하기로 한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도.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오늘 밤 너희들은 동쪽 관제묘로 가야 한다. 부하들의 투기를 끌어올려라. 누가 봐도 싸울 태세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차갑게 눈을 빛낸 조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씩 눈을 마주친 진무립이 풍연에게 말했다.
“유대하가 없으니 네가 대신 이들을 이끌어라. 만일 놈이 늦는다면 싸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진무립은 풍연에게 손바닥만 한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이걸 돈이라고 생각해라. 나머지는 그쪽에서 알아서 할 거다.”
“대주께서는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나는 백하촌으로 간다.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인질을 찾아서 구해오마.”
적이 혼자가 아닐 경우도 간과할 수 없다.
부하들을 보내는 것보다 직접 가는 게 확실하다.
풍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호위장께서 계시니 큰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용추는 너희들과 함께 갈 거다.”
“예?”
오조장 전유가 우려를 표했다.
“대주. 혼자 가시기엔 너무 위험하외다.”
한경과 후영도 거들었다.
“그곳에 누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호위장은 데려가십시오.”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소문대로 흉수가 정말 천하삼흉인 경우.
십대고수에 준한다고 알려진 자를 광룡대만으로 상대하게 둘 수는 없다.
“그곳엔 적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부하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웃어 보인 진무립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절대 새어나가선 안 된다.”
후영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떠드는 놈이 있으면 제 화살로 입을 꿰매놓겠습니다.”
“니가 제일 걱정이다.”
“······.”
***
어느덧 찾아온 밤.
짙은 어둠과 적막 속에 출진 준비를 마친 광룡대가 집결했다.
진무립은 어둠 속에 빛나는 눈들을 마주하며 나직이 말했다.
“흉수의 목을 베는 것도, 대부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희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거다. 바닥을 굴러도 좋고 도망을 치거나 적에게 무릎을 꿇어도 좋다. 절대 죽지 마라.”
지난 한 달간 지겹게 들어온 이야기.
자존심도 뒈지면 다 소용없다.
이제는 진무립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
복면을 눈 밑까지 끌어올린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광룡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진무립은 용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부탁한다.]히죽 웃은 용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광룡대의 후미를 쫓았다.
“후우.”
홀로 남으니 한숨부터 나온다.
차라리 다 때려 부수고 죽이는 일이라면 쉬웠을 것을.
내원으로 들어간 진무립은 즉시 총관을 찾았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정가장의 식솔과 무인을 내원에 불러들여라. 밤이 지날 때까지 안에서 대기해야 한다.”
총관 금자윤이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예. 대주님.”
만일의 만일까지 대비한 진무립은 즉시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백하촌 인근을 전부 살피려면 서둘러야 한다.’
단서는 그게 끝이다.
하지만 진무립은 놈의 은신처를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
어둠 속을 진군하는 광룡대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다.
마도림에서의 첫 임무. 생존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선두에 선 풍연이 은밀히 눈을 빛냈다.
‘소공자는 결코 사천의 한쪽 귀퉁이에 만족할 남자가 아니다. 맡겨진 일, 반드시 완벽히 해내서 그와 함께할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대검문의 대주에서 마도림의 조장으로.
어떤 놈이 자신들 위에 서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인간이었다.
다른 조장들의 생각도 풍연과 다르지 않았다.
‘광룡대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우린 더 큰물에서 놀 수 있다.’
결의를 다진 조장들은 진무립과의 약속대로 부하들을 독려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예.”
나직한 울림이 퍼져 나가는 곳은 동문 밖의 작은 숲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움직이는 광룡대.
후미의 은밀한 눈동자가 그들을 쫓고 있었다.
‘저놈들 중 돈을 가진 놈이 있을 텐데. 그냥 다 죽여버리고 찾아볼까?’
풍기는 기도가 제법이었으나 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니지. 만약에 돈이 없다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 거래하는 순간을 노리자.’
혈천수라 악위청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거리를 유지했다.
***
저녁 무렵 밀실을 나선 단려화 일행은 관제묘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중턱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길목에서 은밀히 관제묘를 살피던 연소정은 광룡대를 발견하고 돌아왔다.
“아가씨. 일다경 안에 도착합니다.”
정인령과 초유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미소로 그들을 안심시킨 단려화는 연소정에게 물었다.
“혹시 추격자는 없었나요?”
흉수가 광룡대를 따라오는지 묻는 거다.
“송구합니다. 제 능력으로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음.”
단려화는 흉수가 이곳에 나타날 거라는 진무립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자신의 예리한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천하에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군요.”
복면에 면사까지 드리운 단려화는 포승줄을 들었다.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정인령은 굳은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답니다. 소저는 걱정하지 말고 계획에 집중하세요.”
포승줄에 꽁꽁 묶인 초유림은 긴장, 공포, 억울함 가득한 눈빛으로 벌벌 떨었다.
단려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초유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꼭 지켜줄게.”
“그게 아닌데.”
“응?”
초유림은 언제 떨었냐는 듯 히죽 웃었다.
“이 정도는 떨어줘야 그놈도 속을 거 아니야?”
정인령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배로 낳았지만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아이다.
임신 중에 먹은 약이 잘못되었나 싶은 생각도 가끔 들었다.
단려화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고 연소정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미래가 궁금해지는 아이로군.’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반드시 오늘 임무를 성공시켜야 한다.
단려화와 연소정은 한 명씩 어깨에 들쳐메고 발을 옮겼다.
***
관제묘에 도착한 광룡대는 빠르게 주변을 수색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동료들과 눈을 마주친 풍연이 작게 끄덕였다.
“일단 놈이 올 때까지 대기한다.”
광룡대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원진을 형성하고 주변을 주시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이어진 기다림은 일각이 지날 무렵 깨졌다.
관제묘 뒤편 오솔길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풍연은 즉시 조장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 움직임이 신호다. 그 전에는 대기해라.]조장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관제묘의 지붕에 단려화가 나타났다.
정인령을 발견한 풍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대부인!”
포승줄에 재갈까지 문 정인령은 짐짓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다.
“감히 마도림의 대부인을 납치하고도 살길 바라는가!”
단려화는 웃었다.
“호호호. 그런 식으로 나와도 되겠어요? 인질은 여기 두 사람이 전부가 아닌데?”
연소정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단려화를 쳐다봤다.
처음 하는 연기가 제법인 까닭이다.
풍연은 이를 갈며 외쳤다.
“장주님은 어디 계시느냐!”
“그 전에 내게 줘야 할 것이 있지 않나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단려화의 감각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장주님을 확인하기 전까지 돈은 넘겨줄 수 없다!”
“그건 잘못된 판단이에요.”
검을 뽑은 단려화는 망설임 없이 초유림의 목에 들이밀었다.
‘아가씨!’
놀란 연소정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초유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악을 쓰듯 외쳤다.
“살려줘! 그냥 돈을 주란 말이야!”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는 잔혹함에 광룡대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봤다.
단려화가 다시 말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선 한 명쯤 죽이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누구를 먼저 죽일까요?”
목소리에 짙은 살기까지 섞인 것이 영락없는 악인이다.
풍연은 순간 이게 계획대로 되어가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연기가 아닌 거 같은데······ 진심인가?’
그녀의 연기는 계획을 알고 있는 풍연조차 속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풍연은 진무립이 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네년이 말했던 은자 삼백만이다.”
“던지세요.”
풍연이 지붕 밑에 도착한 순간 단려화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왔다!’
놈의 오싹한 기운이 그녀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다가온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지붕 위로 주머니를 던지는 풍연의 귀에 날카로운 전음이 틀어박혔다.
[물러나세요!]풍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뒤로 빠지는 순간,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정체불명의 흑의인이 나타나 주머니를 잡아갔다.
내뻗는 그의 손이 주머니에 닿기 직전, 단려화가 던진 암기는 정확히 주머니를 터트렸다.
펑!
사방을 뒤덮은 어둠, 그것보다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흑의인을 덮쳤다.
다급하게 물러난 풍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독?’
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다.
‘설마 대주는 이런 상황까지 눈에 그리고 있었단 말인가?’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올 지경이다.
그때 지붕 밑으로 추락했던 흑의인, 혈천수라 악위청이 번개같이 솟구쳤다.
“이 망할 년이!”
그와 거의 동시에 연소정이 움직였고 단려화가 외쳤다.
“마지막 계획,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