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41
◈ 241화. 신룡 단소룡
깎아지를 듯한 협곡.
아찔한 절벽 사이로 한 척의 배가 물결을 따라 도도히 흘러간다.
갑판에 나온 양춘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잔뜩 움츠렸다.
언제 나왔는지 뒤에 선 양삼이 묻는다.
“뭐냐?”
“넘어질 거 같아서요.”
“뭐가?”
“절벽이.”
좌우로 늘어선 절벽은 마치 금방이라도 배를 덮쳐올 듯 웅장했다.
“……쯧쯧.”
양삼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디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양춘이 가자미눈을 뜨고 말했다.
“전투 중에 바지에 변까지 지리신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과거 사자곡의 전투에서 흑사칠랑과 싸우던 양삼은 바지에 실례를 한 경험이 있었다.
그 무렵 얻었던 무명이 바로 대변마도였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과거를 덮을 수 있었으나 그날의 기억이 반가울 리 없다.
양삼은 도파에 손을 올렸다.
“내 오늘 네놈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겠다. 도를 들어라!”
“이젠 아들한테 칼까지 휘두르려고 하시네? 어머니께서 아셔도 상관없습니까?”
“…….”
어느새 갑판으로 올라온 단자룡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보는 눈이 많으니 숙부님께서 참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갑판에서 풍광을 감상하던 손님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만일 얼굴의 반을 가린 죽립이 없었더라면 누군가는 분명 이들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볼살을 부들부들 떨던 양삼이 마지못해 도를 놓았다.
“너는 섭섭하게 시리 매번 저놈 편만 들더라?”
단자룡이 속삭이듯 말했다.
“부자간에 피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 녀석은 나중에 제가 단단히 손봐줄 테니 이번엔 숙부께서 참으십시오.”
“그 약속 꼭 지켜라. 두고 볼 것이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이쪽을 향하던 시선이 씻은 듯 사라진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운치 있게 들려오는 가운데 곳곳에 모인 이들이 하던 얘길 계속했다.
“화무신검 운화결이 무면산왕에게 패했다더군.”
“그뿐인가? 무면산왕의 정체가 사실은 사천의 광룡 진무립이었다는 게야. 상천과 오대표국 모두 그 은곡 출신이었다는군.”
“그럼 내분인가?”
“듣자 하니 천하대전 직전에 주전파와 온건파로 갈라진 모양일세. 전쟁에 패한 주전파가 온건파를 미끼로 던지고 도망친 모양이야.”
“누가 주전파였지?”
“물론 오대표국이지. 광룡이 온건파의 피해자들을 수습해 상천을 세운 모양이야.”
“거참 신기한 일일세. 어쩌다 마도림의 소공자가 그들과 인연이 닿았을까?”
누군가가 마치 진무립의 측근인 것처럼 술술 그의 과거사를 읊는다.
개봉에서 나온 소문에 상천의 무인들이 틀린 것을 바로잡고 살을 붙인 까닭이었다.
자연스레 모여든 시선 속에 턱이 길쭉한 사내가 말했다.
“십대고수의 한 자리를 차지할 때만 해도 소천무군과 함께 차기 천하제일을 다툴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광룡은 진짜야.”
“북광남신(北光南神). 중원에선 이미 그를 신룡 대협과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하더군.”
“신룡 대협밖에 해내지 못한 일기당천을 해내지 않았는가? 그만한 실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일세.”
“화령에서 기분 나쁘지 않을까?”
“모르지. 그런데 신룡 대협이라면 크게 신경 쓸 것 같지 않은데.”
중원에서 시작된 소문은 장강의 물결을 따라 강남에도 번지고 있었다.
난간에 기댄 양춘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쭉였다.
“북광남신은 얼어 죽을.”
진무립이 존경하는 단소룡과 비교되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단자룡이 그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성을 내느냐? 그는 분명 능력 있는 무인이다.”
“흥. 그래도 정도가 있지. 영주님과 비교되는 건 어불…… 어불…….”
“성설.”
“그렇지. 성설어불.”
“아니지. 어불성설.”
“…….”
양춘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협곡을 벗어나자 투명한 하늘이 펼쳐진다.
단자룡의 곁에 털썩 주저앉은 양춘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소. 그가 해낸 일이 대단하다는 건 말이오.”
존경하던 무인과 같은 업적을 이뤄낸 이가 대단하지 않을 리 없다.
그저 심술이 났을 뿐이다.
단자룡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이지.”
그와 시선을 공유하던 양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혹시 말이오. 천산과 복령천이라는 자들이 손을 잡았다면…….”
단자룡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온 천산을 되새기며 말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 많은 피가 흐르겠지.”
먼발치에서 지켜봤을 뿐이지만 마교의 무인들은 전투 준비를 확실하게 갖춰가고 있었다.
“여유가 얼마나 있을 거라고 보시오?”
“일 년 안에 움직일 거라고 본다.”
“그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것은 어떻소?”
“돌아가면 그렇게 건의할 생각이었다. 복령천이라는 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팔황문의 후신이라면 그들은 분명 화령을 좌시하지 않을 터.
천산을 치겠다고 화령도를 비웠다가 기습을 당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봄날의 따스함이 부쩍 다가왔으나 가슴 한구석엔 겨울의 서늘함이 여전하다.
단자룡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어쩌면 올해는…… 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 * *
나직한 야산의 정상.
해진 옷을 입은 남루한 행색의 사내가 높은 나무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살짝 쳐진 눈꼬리에 두꺼운 목, 사내다운 이목구비의 중년인은 나뭇잎을 툭 꺾어 입에 물었다.
“벌써 봄인가.”
까끌한 수염을 매만진 그는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살랑이는 바람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사내의 이마를 어루만진 바람이 맑은 하늘로 솟아올랐다.
푸른빛 바다가 사방을 둘러싼 이곳은 복건의 작은 섬, 무자도(無子島)였다.
바람을 움켜쥔 사내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쏴아아아!
주먹에서 벼락같이 뻗어 나간 권영이 불어오는 바람을 후려친다.
콰앙!
일순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권영이 사방으로 기파를 흩뿌렸다.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오른 그는 불어오는 바람을 상대로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슈슈슈슉!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쾌속한 공격이 바람을 생사대적 마냥 강타하며 강렬한 폭음을 터트린다.
콰콰콰콰쾅!
뻗어가는 주먹엔 태산 같은 위력이 깃들었고 휘두르는 다리엔 햇살마저 갈라낼 날카로움이 담긴다.
순식간에 열 개의 초식을 전개한 사내가 사뿐히 지면에 착지했다.
“후우.”
나직이 숨을 고르는 사내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천하제일방파 화령의 영주.
당금 무림 최강자인 단소룡이 바로 중년인의 신분이었다.
단소룡은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돌아왔다.’
천하대전의 마지막 싸움, 황운천과의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의 여파에서 완벽하게 회복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화령의 개파조사 천룡 한사운의 성천투공(成天鬪功)을 마침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폐관에 들었던 보람이 있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단소룡은 문득 인기척을 느끼며 우측을 돌아보았다.
“대목.”
고급스러운 비단에 섭선을 살랑이는 잘생긴 사내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단소룡이 피식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화윤.”
“완벽, 그 이상으로 돌아온 건가?”
“아마도.”
마주 보는 두 사내의 눈에는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천하를 구한 영웅 신룡과 그의 지낭 화윤.
무림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고 오늘날의 화령을 만든 주역이 이 자리에 있었다.
단소룡이 물었다.
“설마 빈손으로 온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화윤은 품에서 호리병을 꺼내 툭 던졌다.
사뿐히 병을 받아든 단소룡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좋군.”
“사천에서 어렵게 구해온 술이야. 당연히 좋아야지.”
“그런데 네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얼굴도 좀 보고 밀린 이야기도 할까 해서 왔지.”
단소룡이 미간을 좁혔다.
“설마 천산이 움직인 거냐?”
“곧 움직일 모양이더군.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중요한 일?”
섭선을 접은 화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팔황문. 놈들의 후신이 나타났다.”
술병을 내린 채 화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소룡이 발을 돌렸다.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두 사람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절벽 끝에 나란히 앉았다.
“오대표국의 배후에 복령천이라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야.”
“뭔가 수상한 놈들이라고는 생각했었지.”
“그렇지. 명분이 없어 깊게 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긴 했지.”
화령은 강남 밖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너무 강대한 힘을 가진 화령이 천하의 일에 관여하다간 무림이 본연의 가치를 잃고 화령의 눈치만 살피게 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무림은 무림답게.
그것이 단소룡과 화윤의 의지였다.
단소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녀석들이 또 있었지.”
“상천?”
“그래.”
사 년 전, 폐관에 들기 직전 나타난 그들은 순식간에 천하 산적을 일통하고 상천이라는 집단을 세웠다.
화윤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대목은 감이 좋아. 그 녀석들의 출신도 은곡이거든.”
“그랬군.”
단소룡은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없는 사이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군. 그간의 이야기를 좀 해봐라.”
“그래.”
오랜 시간 폐관에 든 단소룡을 대신해 화령의 대소사를 챙긴 것은 화윤이다.
찰랑이는 물결 소리, 푸른 하늘 아래에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이어지던 그의 긴 이야기는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무렵에서야 끝이 났다.
긴 이야기가 끝이 난 뒤, 단소룡의 뇌리에 맴도는 것은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광룡 진무립?”
화윤이 싱긋 웃었다.
“어디서 들어본 기억 없어?”
미간을 좁힌 단소룡이 고개를 휙 돌렸다.
“설마 천음지체를 타고난 그 아이란 말이냐?”
“그래. 무너지던 절벽 밑에서 대목을 구했던 마도림의 영애. 바로 그 초이린의 아들이 진무립이야.”
휘둥그레 눈을 뜬 단소룡이 이내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에 지축이 흔들리며 갈매기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과거 무성이 남긴 보물을 찾고자 오대산의 포광사로 향했던 단소룡은 때아닌 지진을 만나 절벽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두 다리가 부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던 단소룡을 낙석에서 구한 것이 바로 만삭의 초이린이었다.
포광사에 다녀오던 단소룡은 그에 보답하고자 때마침 출산한 그녀를 도와주었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게 바로 진무립이었다.
“역시 살아있었구나. 은곡을 이끄는 것을 보면 포광사의 노승이 무공을 가르친 모양이로군.”
“팔천영신공을 사용한다고 하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지금 무림에서 그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
“뭐라고 부르냐?”
“북광남신(北光南神). 중원맹의 전투에서 일기당천을 해낸 그를 세인들은 대목과 같은 반열에 올려두었더군. 확실히 천음지체는 대단한 모양이야.”
무명에 크게 연연치 않는 단소룡이었기에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는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화윤이 이어서 말했다.
“무림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그보다 재밌는 이야기가 있더군.”
“뭐냐?”
“광룡의 곁에는 언제나 광녀가 있다.”
“그 아이의 여인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데 광녀는 대목도 잘 아는 사람이야.”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순간 불길한 느낌이 단소룡의 전신을 관통했다.
화윤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려화가 바로 그 광녀야.”
“…….”
무거운 침묵 속에 시퍼런 살기가 줄기줄기 솟구친다.
두두두두두두…….
절대자의 전신에서 솟구친 태산 같은 기운에 절벽이 지진을 만난 듯 진동했다.
벌떡 일어난 단소룡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돌아섰다.
“화령도로 복귀하겠다. 그 새끼 당장 내 앞에 데려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