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47
◈ 247화. 북쪽의 절대자
순간 꿈틀거린 천진서의 눈썹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대주께서는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감히 북광남신이라니요. 어찌 천하를 구한 영주님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이어 동료들이 입을 모아 토로했다.
“저희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단소룡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
존경하는 인물과 진무립이 함께 거론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때 문으로 청색 무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왔다.
“납득하지 않으면? 한판 붙자고 할 거야?”
서글서글한 인상에 머리를 단정히 묶은 청년은 무령대주 양천이었다.
그는 단자룡과 함께 출타 중인 양삼의 장남이기도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났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양천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래도 손님인데 그건 곤란하지.”
천진서는 냉정한 말투로 무인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너희에게 그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
“대주.”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항명으로 간주하겠다.”
벽을 치듯 단호한 말에 젊은 무인들은 연무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양천이 능글맞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팍팍하구만.”
“이것이 내 일이다.”
천진서 특유의 차갑고 무뚝뚝한 말투는 섬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 자는 없었다.
그저 부친을 너무 많이 닮았을 뿐이다.
“언제 돌아왔지?”
“지금.”
달포 전 임무를 받고 떠났던 양천은 조금 전 부대원들과 함께 복귀한 참이었다.
“수고했다.”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천진서가 객잔을 떠났다.
그가 나가기 무섭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 무령대 부대주 검중호가 들어왔다.
“방금 숭무대주 아니었습니까? 그분이 이 시간에 객잔이라니…….”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천진서가 한낮에 객잔에서 나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탁자에 턱을 괸 양천이 피식 웃었다.
“술이 한잔하고 싶었나 보다.”
“저도 한잔하고 싶습니다만.”
양천은 검중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마디 툭 내던졌다.
“너 말이야.”
검중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예?”
“네 아버지랑 너무 안 닮은 거 아니냐?”
그의 부친 무결천검 검신운은 무뚝뚝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무인.
어떻게 보면 검황 천영보다 더 과묵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식인 검중호는 잘 웃고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대주는 뭐 양대협과 닮았습니까?”
“아버지는 내 동생이 많이 닮았지.”
양천이 모친 선이화를 닮았다면 동생 양춘은 부친과 동일인물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양춘을 떠올린 검중호가 피식 웃으며 맞은 편에 앉는다.
“오면서 들었습니다. 상천의 천주께서 섬에 왔다면서요?”
진무립 일행의 도착은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화령도 전체에 큰 화젯거리였다.
“그래. 다들 난리도 아니더군.”
“존경하는 영주님과 같은 반열에 오른 인물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을 겁니다. 아마 강남 전체가 그렇지 않을까요?”
천하를 구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강남 무림이다.
그들에게 천하제일인 단소룡의 아성에 도전하는 북쪽의 절대자가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요.”
비록 소문으로 접했을 뿐이지만 중원무림맹의 맹주 위사영이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생긴 건 려화 누님 못지않게 아름답고 귀태가 줄줄 흐른다던데 말입니다.”
“모친이 과거 사천제일미였다는군. 모친을 닮아서 그런지 눈에 띄는 미공자인 건 확실한 모양이더라.”
“음.”
“내 동생이 정말 싫어할 부류지. 미공자.”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도 되는데요.”
진무립 일행을 처소로 안내한 임표는 일련의 지시를 내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고운 자태에 인자한 인상의 노파가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일찍 오셨군요.”
아내 이숙정이 마중을 나오자 임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부인이야말로 이 시간에 집이라니, 일이 벌써 끝나셨소?”
그녀는 삼십여 년이나 대내총관부를 든든하게 지켜온 화령의 내총관이었다.
이숙정이 남편을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제 슬슬 부총관에게 일을 넘길까 해요.”
“음.”
나직이 침음한 임표가 작게 끄덕였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단소룡을 만나 화령의 일원이 된 두 사람도 어느덧 여든을 바라본다.
비록 무인의 시간이 보통 사람에 비해 느리다곤 하나 언제 일선에서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임표가 서글픈 미소를 보인다.
“세월 참 빠르구려. 이곳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오.”
“그렇지요? 그사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허허벌판이었던 섬에 하나둘 건물이 올라가더니 이제는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화려한 전각으로 가득하다.
임표는 애틋한 얼굴로 주름진 아내의 손을 매만졌다.
“그렇지. 이젠 슬슬 물러날 때도 되었지.”
두 사람은 단소룡의 부탁으로 여전히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조금씩 실수가 잦아지는 등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물러납시다.”
“복령천이라는 자들 말이지요?”
탁이신이 보낸 서신으로 대강의 정보는 파악한 상태였다.
임표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렇소. 팔황문의 후신이 나타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완벽하게 뿌리 뽑지 못했기 때문이오. 마무리는 제대로 짓고 물러납시다.”
“그래요. 상공의 뜻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무거운 이야기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숙정은 애써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상천의 천주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음.”
임표는 허연 수염을 매만지며 진무립을 떠올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 같은 젊은이라오.”
“어른스럽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늙은이 같은 젊은이라오.”
똑똑한 그녀는 부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곧 눈치챘다.
“속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노고수와 같다는 말이로군요.”
임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야 십대고수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 내가 감히 짐작할 게 아니지.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감출 줄 아는 사람이오. 그런 이가 적이 된다면 정말 무섭지.”
처소까지 안내하면서 진무립을 틈틈이 관찰했으나 전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 나이에 그와 같은 무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숙정이 물었다.
“소문대로의 사람이던가요?”
진무립에 대한 정보는 화령에서도 확보하고 있었다.
임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르지 않을 것 같소.”
신룡 단소룡은 숨길 줄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게.
무엇이든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한번 믿음을 준 자에겐 얼마든지 뒤를 맡기는 무인이다.
적의 앞에서 절대 도망치지 않고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굽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광룡 진무립은 다르다.
무엇이든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하며 필요하면 적에게 등도 보일 수 있는 무인이다.
이숙정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북쪽의 절대자는 남쪽의 절대자와는 다른 사람이로군요.”
“그렇소. 주군과는 닮은 듯하면서도 많은 것이 다른 것 같더구려.”
“역시 천하는 넓군요.”
“이번엔 오지 않은 듯하나 휘하의 상천팔기 역시 뛰어난 자들이라고 하더군. 복령천의 문제로 이곳에 온 것이니 이야기만 잘 성사되면 분명 큰 힘이 될 것 같소.”
“게다가 같은 뿌리를 가졌으니 상대에 대해서도 잘 알 테구요.”
“그렇지.”
수십 년의 세월을 부부로 살아온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생각이 통하는 사이.
같은 생각을 공유한 그들이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그런데 말이에요. 려화가…….”
흐린 말끝의 내용을 짐작한 임표가 허허롭게 웃었다.
“광룡의 곁에는 언제나 광녀가 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돌게 되었을까요?”
임표가 넌지시 물었다.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지 않으시었소?”
이숙정이 민망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그건 그렇네요.”
“지금쯤 대부인과 만나고 있을 것이오.”
“부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과연…….”
마주 본 두 사람이 걱정스럽게 한숨을 내뱉었다.
같은 시각, 단려화는 모처럼 만난 모친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불안한 눈초리가 슬쩍 모친을 피해간다.
“재미있는 무명을 얻었더구나.”
나직한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있다.
화령의 대부인 백설하.
이숙정과 같은 칠맥 연화봉 출신의 그녀는 지천명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미색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단려화는 모른 척 물었다.
“사천검화요?”
“광녀.”
고개를 푹 숙인 단려화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머니. 그게 아니고요.”
백설하의 아미가 거꾸로 치솟는다.
“내 그러게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언제나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절대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라고 말이다.”
뒤에 선 연소정이 초조하게 단려화를 바라본다.
‘아가씨. 참으셔야 합니다.’
욱하는 걸 참지 못하고 모친과 싸울 때마다 사흘씩 대치현의 객잔을 잡았던 단려화다.
“…….”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아라. 대체 무엇을 하면 시집도 안 간 여인에게 광녀라는 무명이 붙는단 말이냐?”
고개 숙인 단려화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립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전 같았으면 참지 못하고 대들었겠지만 사 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한층 더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단려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깟 광녀라는 허명 따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양숙부를 보세요. 대변마도라는 오명을 자신의 실력으로 걷어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분과 너는 다르다.”
“물론 그렇지요.”
그녀는 당당하게 모친의 두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무인으로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소녀는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사천 무림을 구하고자 혈교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일.
오대표국의 그릇된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진무립과 함께 싸운 일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일이 아니다.
“소녀는 하늘을 우러러 절대 부끄러운 싸움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질타는 부당합니다.”
“부끄러운 싸움을 한 적이 없다?”
“예.”
백설하의 투명한 눈빛이 딸의 당당한 눈동자를 마주한다.
예전에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항변한 적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이런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언제나처럼 움츠러들지도 않았고 눈을 피하지도 않는다.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 연소정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찰나.
백설하의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성장했구나.”
“그럼요. 사 년이나 흘렀으니까요.”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도 사 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광룡이라는 사내 때문이더냐?”
그런 소문이 돌고 있으니 당연히 그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변한다는 말, 그와 함께하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어요. 그는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에요.”
한평생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진무립은 단려화에게 그런 존재였다.
백설하가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존경스러운 사람이라.”
그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 역시 남편에게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어떤 청년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분명 어머니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그를 연모하느냐?”
단려화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