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5
◈ 25화. 천하삼흉(天下三凶)
연소정의 검과 혈천수라의 검이 스치는 순간, 광룡대 조장들이 외쳤다.
“흉수는 흑의인이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무인들은 일순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조장들을 뒤따랐다.
그제야 함정에 빠진 걸 알게 된 혈천수라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독분을 조금 마시긴 했으나 복면을 쓴 탓에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리자 활화산 같은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혈천수라의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단려화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혈천수라 악위청.’
무면산왕이 아니라는 게 내심 아쉽긴 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다.
스르릉.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스승에게 물려받은 사자검(死子劍)이 은은한 달빛을 머금었다.
***
관제묘의 싸움이 시작될 무렵, 진무립은 백하촌에 도착했다.
‘시작했겠지.’
계획에 변수는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들이라면 잘 해내리라 믿는다.
백하촌 뒷산의 정상.
높은 나뭇가지 위로 솟구친 진무립은 가늘어진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어디냐?’
진무립의 진짜 정체는 천하 산적의 수장이자 상천의 천주인 무면산왕.
게다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사냥꾼인 부친을 따라다녔으니 산이라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진무립은 주변 지형을 머리에 담고 훌쩍 뛰어내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숨으려면 땅속이겠지.’
음기가 흐르는 땅속이나 동굴이라면 천음지체를 타고난 진무립이 못 찾을 리 없다.
두 개의 능선을 지나 해가 들지 않는 북쪽 경사면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천음지체의 음기가 다른 곳보다 한층 더 짙은 음기에 반응했다.
이곳 어딘가에 깊은 동굴이 있는 것이다.
속도를 늦춘 진무립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주변을 살피며 몸이 이끄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로부터 대략 일각이 지날 무렵.
오장 남짓한 절벽의 경사면에 도착한 진무립은 바위틈에서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날 법한 입구를 발견했다.
‘하여간 뒤가 구린 놈들은 항상 동굴 속에 은신처를 만들어둔다니까.’
산속에 집을 짓기엔 시간도 걸리고 금방 노출된다.
그렇다고 민가에 은신처를 두기도 어려우니 적당한 동굴을 찾아 숨어드는 것이다.
입구 옆에 등을 기댄 진무립은 바람의 흐름을 감지했다.
‘입구는 여기뿐인가?’
내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없는 걸 보면 이곳이 유일한 통로 같았다.
진무립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일장 정도를 나아가니 통로가 점점 넓어졌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나아가던 진무립은 무거운 고요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느꼈다.
‘살수!’
생각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후방으로 미끄러졌다.
간발의 차이로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굴 벽에서 불꽃이 튀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벽에 튄 불꽃 대신 목에서 피가 튀었을 거다.
[네놈은 누구냐?]육성이 아닌 귓속을 스며드는 전음.
전음이라고 완벽히 기운을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육성으로 내뱉는 것보다야 훨씬 은밀하다.
위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살수의 특징 중 하나다.
진무립의 손이 은광검에 닿았다.
‘이곳에 남아있었나? 아니면 둘 이상인가?’
관제묘의 상황을 모르는 진무립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적.
게다가 상대가 살수라면 이보다 반가울 수는 없다.
‘후후후.’
웃음을 삼킨 진무립의 신형이 어둠에 녹아들었다.
어둠 속의 살수, 천하삼흉의 일인 음야살귀(蔭夜殺鬼) 조양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기척을 읽지 못한다고?’
음야살귀의 무령파혼공(無靈破魂功)은 무림 칠경(七勍)의 일인 사해검(死海劍) 척광현조차 암살했을 정도로 뛰어난 살법이다.
그러나 진무립이 익힌 팔천영신공(八天映神功)은 무림을 지배했던 팔황의 신공들을 집대성한 무공.
그중 살황(殺皇)의 음혼귀영공(陰魂鬼影功)은 천하 살수를 발아래 두었던 신공이다.
비록 제한된 내력으로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지만 어둠 속 좁은 공간의 승부라면 자신 있었다.
‘기다린다.’
몸을 숨긴 진무립은 인내했다.
신공절학도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살수 간의 대결에선 방심은 금물이다.
음야살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장기인 살법에서 우위를 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런 상황은 당혹스러웠다.
마음의 요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부로 표출됐다.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솜털에 와닿는다.
진무립은 놓치지 않았다.
기척과 함께 죽은 듯 숨어있던 내력이 일시에 기경팔맥으로 치솟았다.
서걱!
피가 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소리 없는 일격이 어깨를 스쳐 지나갔지만 음야살귀는 악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소리를 낸다면 다음은 어깨가 아니라 목이다.
‘진정해라. 진정해라!’
속으로 되뇌며 정신을 차린 음야살귀는 반격 대신 습관처럼 숨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진무립의 후각은 허공에 떠도는 혈향을 놓치지 않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살수란 놈이 발소리까지 흘린다.
저벅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흑광이 번뜩이더니 허벅지가 갈라졌다.
“큭!”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흩어지는 핏방울.
반사적으로 휘두른 음야살귀의 소검은 허공을 갈랐다.
상처 입고 둔해진 상대에게 쇄도한 진무립은 멱살을 낚아채며 무릎으로 명치를 찍었다.
“컥!”
숨이 턱 막히면서 어제 먹은 만두까지 게워낼 것 같았다.
진무립은 순식간에 상대의 마혈을 제압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지만 음야살귀의 흥건한 식은땀을 걷어낼 순 없었다.
“크······.”
“죽기 싫으면 입 다물어.”
싸늘한 협박이 정신을 일깨우자 음야살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패배의 굴욕보다 더한 수치는 장기인 살법에서 완벽히 졌다는 사실.
치미는 모욕감에 눈물마저 나올 지경이다.
절벽 위로 이동한 진무립은 음야살귀를 바닥에 팽개쳤다.
“크으으······.”
신음이 커지자 진무립은 그의 아혈을 찍었다.
“말할 생각이 들면 눈을 열여섯 번 깜빡여라. 아니면 그냥 뒈지던가.”
진무립은 그의 손에서 빼앗은 소검을 냅다 허벅지에 꽂았다.
음야살귀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졌다.
마치 그것을 즐기듯 씩 웃은 진무립은 그의 팔을 부릅뜬 눈앞에 들어 보였다.
“껍데기가 얼마나 질기나 한 번 볼까.”
팔뚝에 닿은 소검이 천천히 피부를 파고들기 시작하더니 선명한 혈선을 그려갔다.
‘이런 미친놈이! 크아아!’
눈앞에서 살이 찢어지는 참상. 음야살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열일곱 번이네. 내 노력이 부족했나?”
진무립이 광기 어린 미소와 마주친 음야살귀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당장 팔이 잘려가는데 열여섯 번을 샐 경황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소검을 움직이던 진무립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이러다 잘리겠는데?”
기겁한 음야살귀는 온 신경을 기울여 가까스로 열여섯 번 눈을 깜빡였다.
진무립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아혈을 풀었다.
“큰 소리 내면 죽는다.”
“아, 아, 알았다.”
“정신을 못 차렸군.”
진무립의 손이 다시 아혈을 점하려 하자 음야살귀는 다급하게 말을 고쳤다.
“알겠습니다.”
“버릇없는 놈은 이 세상에 나 하나로 족하단 말이지. 그럼 질문을 시작한다. 네놈은 누구냐?”
“조양입니다.”
“조양?”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음야살귀가 다시 말했다.
“음야살귀라고도 부릅니다.”
진무립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네가 천하삼흉이라고?”
너무 수월하게 잡았기에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무립과의 상성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난생처음 살법에서 우위를 내준 탓에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음야살귀는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예.”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정가장주와 납치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모두 동굴 안에 있습니다.”
“무사한가?”
“예. 예. 내력만 막아두었을 뿐 건강합니다.”
“계획을 꾸민 것은 너 혼자냐?”
“아, 아닙니다. 저는 오늘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일은 모두 혈천수라가 혼자 꾸민 겁니다.”
진무립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스치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네놈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는 얘기도, 재물을 탐낸다는 말도 들어본 적도 없거든. 대체 왜 돈을 요구한 거냐?”
음야살귀는 아주 잠시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적이 너무 많습니다. 손을 잡고 세력을 만들어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세력을 만드는 것은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닐뿐더러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이들의 의도를 확인한 진무립이 다시 물었다.
“설마 광마도 한 패냐?”
“그놈은 본 적도 없습니다.”
“혈천수라와 네놈 둘뿐이란 얘기지.”
“그렇습니다. 놈은 지금 돈을 받으러 정가장에 갔습니다.”
음야살귀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혈천수라는 관제묘에 간 것이 확실할 거다.
알아낼 것은 모두 알아냈다.
곧장 숨통을 끊으려던 진무립이 멈칫했다.
‘잠깐, 이번 일을 모두 혈천수라가 꾸몄다면 이놈도 다른 곳에서 같은 짓거릴 하고 왔을 거란 말인데?’
진무립이 몸을 뒤지기 시작하자 음야살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기랄. 어디서 이런 놈이.’
가슴 안쪽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낸 진무립은 안을 확인했다.
“허, 은자 삼백만? 이건 어디서 뜯어냈지?”
“······북천도문(北川刀門)입니다.”
들어본 적이 있다.
성도와 중경의 중간에 자리한 북천도문은 정가장보다 조금 더 큰 중소방파였다.
정가장보다야 사정이 낫겠지만 은자 삼백만을 준비하는 것은 그들도 불가능하다.
‘풍비박산이 낫겠구만.’
아마 가산을 털고 여기저기 돈을 꾸어달라고 사정했을 것이다.
진무립이 돈을 챙기자 음야살귀는 눈물을 머금었다.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
“제가 누구에게 패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자신을 살법으로 제압한 이라면 적어도 무명소졸은 아닐 터, 이번 질문은 음야살귀의 진심이었다.
“음.”
허공을 응시하던 진무립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상은 나를 삼두육비의 괴물이라고 부르더군.]음야살귀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금 무림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인 상천의 천주.
게다가 십대고수에 속해있으면서도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신비 고수.
“무, 무면······.”
진무립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검을 가슴에 쑤셔 박았다.
“컥!”
진무립의 미소가 비릿하게 변해갔다.
“그간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즐겁게 잘 살아왔잖아. 죗값은 치러야지. 어디 양심도 없게 더 살길 바라나?”
음야살귀의 손에 겁탈당한 여인만 기백이 넘는다.
살려준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을뿐더러 이런 놈과의 약속을 지킬 만큼 호인이 아니다.
음야살귀의 눈에 담긴 진무립이 점점 뿌옇게 흐려진다.
그는 마지막 힘을 쏟아 유언을 남겼다.
“개······ 새끼······.”
“너만 하겠냐. 멍청한 새끼야.”
단호한 말과 함께 소검을 뽑으니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진무립은 숨이 끊어진 음야살귀의 가슴에 두 손을 붙였다.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장심으로 쏟아지더니 섬뜩한 홍염이 시신을 집어삼켰다.
“지옥 불이다.”
싸늘한 눈으로 돌아선 진무립은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극음과 극양의 기운.
무공을 쓴 뒤엔 언제나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던 놈들이 오늘따라 잠잠했다.
지난번 종비웅과 싸웠을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
‘이제 이 정도는 허용해준다 그거냐?’
씩 웃은 진무립은 서둘러 동굴로 향했다.
“유대하! 대답해라!”
쇳소리가 울린 뒤로 숨죽인 채 청각에 집중하던 유대하는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이 목소리는 소공자?’
그렇다면 조금 전 들려온 쇳소리는 분명 진무립이 놈과 싸운 소리라는 게 된다.
‘잠깐, 소공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놈을 제압하셨다는 말인데?’
진무립의 강함을 어렴풋이 예상해본 유대하였으나 설마 천하삼흉까지 능가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천하삼흉 위에는 누가 있는가?
무림 칠경 중 최상위에 속하는 고수, 그리고 천하십대고수다.
‘소공자께서 정말 그 정도의 고수였다고?’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던 유대하에게 진무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유대하! 죽었냐?”
유대하는 철창까지 흔들며 소리쳤다.
“죽긴 누가 죽습니까? 여깁니다! 여기!”
진무립의 목소리가 이토록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