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50
◈ 250화. 회담
회담은 속전속결로 성사됐다.
예정보다 조금 빠르긴 하나 모든 준비를 갖춘 진무립의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사전에 회담장이 마련된 가운데 양측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거리마다 진무립을 살피는 눈빛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만큼 전각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이다.
단소룡의 호위 영기가 직접 길을 안내하는 가운데 진무립과 동행하는 이는 당천과 서진환이었다.
당천이 생각에 잠긴 진무립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지?”
“이번 전쟁,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군.”
“너답지 않은 말이로군. 무슨 뜻이냐?”
“주변을 돌아봐라.”
다수가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양민이었으나 이따금 강렬한 무인들의 기도가 느껴진다.
서진환이 작게 말했다.
“다른 곳에선 쉬이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무인들이 이같이 많소. 한 번 패했던 복령천이 다시 나타났다는 건 이런 화령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당천은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풍기는 기도만 보면 상천 거산채의 무인들이 우위에 있었으나 화령은 수준 높은 무인의 숫자만 오천에 달한다.
물론 상천에 거산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산채의 무인들은 보통 산적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진무립은 표정을 굳힌 당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걱정할 건 없다. 저들의 계획엔 중대한 오류가 있으니까.”
“그게 뭐지?”
“나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고 세운 계획이 아니라는 거다.”
진무립이 눈까지 빛내며 진심을 보이자 당천은 인상을 구겼다.
“……결국 자화자찬인가.”
“하하하!”
진무립 일행이 회담장에 들어설 무렵.
태천각을 나선 단소룡과 화윤도 회담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지사전까지 이어지는 한적한 골목.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단소룡이 화윤에게 물었다.
“화무신검 운화결이라는 자. 만나본 적이 있지 않나?”
“음. 본가에 갔을 때 잠시 마주쳤던 적이 있었지.”
화윤의 본가는 개봉의 천하상단.
모친의 산수연(傘壽宴) 자리에서 몇 마디 나눈 기억이 있다.
“호락호락한 자는 아니었지. 정말 그런 자를 쓰러뜨렸다면 소문만큼의 능력은 갖고 있을 거야.”
“그건 잘된 일이로군.”
“사윗감으로 잘된 일이라는 건가?”
입에 물고 있던 풀잎이 바스러진다.
“그만해라. 널 두들겨 패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하하.”
단소룡은 반쯤 부서진 풀잎을 탁 뱉었다.
“일단 진심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소문만큼의 능력을 가진 게 반가워할 일인지, 아닌지는 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아.”
탁이신은 마지막까지 진무립에 대한 의문을 놓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진무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이곳에 온 게 아닌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진무립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자신인 만큼 그를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안다.
포광사의 노승이자 팔황문주 황운천의 스승.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황운천이 그랬던 것처럼 진무립이 복령천 소속일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걱정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수밖에.’
화윤은 단소룡의 우려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놈들이 회천대계를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방심할 수 없지.”
천하를 집어삼키기 위해 무려 수십 년이나 다른 방파에 세작을 심어왔던 자들.
그런 자들이 천하를 방심에 젖게 만들고자 상천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오대표국을 지운 것이라는 가설도 얼마든지 세울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회담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위사가 정중히 예를 갖춘다.
“상천의 일행은 먼저 도착해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고가 많다.”
그의 어깨를 두드린 단소룡이 문을 열었다.
넓은 실내에 가구라곤 덩그러니 놓인 원형 탁자와 의자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진무립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지요.”
진무립은 마치 그 자리의 주인처럼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낯짝 한번 두꺼운 녀석이로군.’
전각을 무너뜨리고도 뻔뻔하게 물어주겠다고 응수한 답변하며 지금의 모습까지.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서 이토록 당당한 젊은 무인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방심할 수 없다.
“앉지.”
원형탁자의 우측에는 진무립과 당천이, 좌측에는 단소룡과 화윤이 자리했으며 양측의 뒤에는 호위인 서진환과 영기가 시립했다.
이들이 자리하기 무섭게 옆방에 대기하던 시비가 차를 내왔다.
화윤이 은밀히 전음을 보냈다.
[어때?]단소룡의 육감은 상대의 감정조차 읽을 수 있을 만큼 예리하다.
그런데 진무립에게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속내를 감추는 능력이 탁월한 자다. 쉽지 않아.] [그렇군.]묘한 긴장감과 함께 은은한 다향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시비가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럼…….”
단소룡을 주시하던 진무립은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먼저 말을 꺼냈다.
“천하를 아우를 무림맹. 대협께서 그곳의 수장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
자신의 말을 자른 진무립이 훅 치고 들어와 본론부터 꺼내자 단소룡은 말문이 막혔다.
그를 대신해 화윤이 입을 열었다.
“복령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발상은 훌륭합니다. 오대표국을 물리친 상천의 힘도 인정하지요. 그런데 냉정하게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없겠군요.”
탁자에 가슴을 붙인 화윤이 냉정하게 눈을 빛냈다.
“중원과 산동, 사천의 무인들이 전쟁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촌철살인 같은 일침에 순간 당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쉽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오대표국과 싸워본 당천은 그들의 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물었다.
“화령은 지난 천하대전에서 천하 무림의 힘을 끌어모아 팔황문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요.”
화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본 령이 이백 년 만에 부활해 막 힘을 되찾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만으로는 그들을 대적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힘이 충분하다?”
“복령천의 전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거기에 천산까지 함께한다면 본 령의 힘만으로는 쉬이 미래를 점칠 수 없겠지요. 하여 이쪽에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화령과 상천.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복령천과 마교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은곡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상천과, 그들에게 승리한 경험이 있는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보이는데.”
화윤의 두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진무립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진심이오?”
복령천의 위협은 단지 화령과 상천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 천하를 집어삼킬 야욕을 품고 있다.
만일 화령과 상천만이 손을 잡고 적과 싸울 계획을 수립한다면, 적의 칼끝이 다른 방파로 향했을 때 대처할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화윤이 웃으며 말했다.
“오대표국과의 전투에서 중원삼가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혈교와 전쟁을 벌인 사천 역시 마찬가지. 산동 무림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으니 논외로 두도록 하지요. 그들이 정녕 전력이 되리라고 보십니까?”
진무립은 문득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눈앞에 앉은 두 사내는 천하 무림을 구한 영웅.
화령이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무림 본연의 기치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무림은 어찌 되건 상관없다는 말인가?”
나직한 진무립의 목소리에 옅은 분노가 실린다.
그럼에도 화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게 아니지요. 발목에 족쇄를 차고 싸우는 것보다 전력이 되는 자들끼리 모여 적과 맞서자는 말입니다.”
“만일 저들이 먼저 움직여 다른 방파를 친다면?”
“꼬리를 잡아 추격해야지요. 그편이 이쪽의 피해를 줄이고 확실하게 적을 잡아낼 수 있는 방편이 아니겠습니까?”
적의 실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미끼를 던지고 뒤를 쫓는 것은 왕왕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 미끼가 죄 없는 다른 방파가 된다면 그 죄책감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음.”
생각에 잠긴 진무립과 달리 당천은 화를 참지 못했다.
“더는 말할 가치도 없군. 그만 일어나지.”
천하제일방파 화령.
천하를 위기에서 구한 이들이라면 응당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다른 방파를 발밑으로 깔아보는 이들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해온 화령과 너무도 달랐다.
이런 자들이라면 함께 싸울 이유가 없다.
당천이 굳은 얼굴로 일어날 때였다.
진무립이 그의 팔을 잡으며 단소룡을 쳐다봤다.
“그만합시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닙니까?”
단소룡이 느긋하게 물었다.
“무슨 말인가?”
“자극적인 말로 내 감정을 흔들어 속내를 읽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내가 정말 그들과 싸우고자 하는지, 아니면 복령천의 하수인이 되어 천하를 속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당신의 육감으로.”
“…….”
당천이 놀란 얼굴로 진무립을 쳐다본다.
“뭐라고?”
기묘한 정적이 짧게 스쳐 간 뒤.
단소룡이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화윤의 언변이 절묘한 탓에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진무립은 그마저도 읽어버렸다.
화윤이 실소를 삼키며 말했다.
“천주께서는 어떻게 아셨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령의 영애께 들었던 두 분과는 너무 다르더군요.”
화윤이 단소룡을 쳐다본다.
단소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에 맞서 무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다.”
진무립이 속으로 감춘 미약한 분노를 확실하게 감지한 것이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화윤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모든 것을 확실히 하고자 천주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그에 이어 단소룡이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보였다.
‘멋지게 자랐구나.’
문득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의 감정을 채워간다.
무너지던 절벽 밑에서, 두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
“여긴 위험하니 먼저 가시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가란 말이에요?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오. 상관하지 말고 가시오!”
절벽을 한 번 쳐다본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단소룡 앞에 등을 보이며 앉았다.
“업혀요.”
“제정신이오?”
“정신은 멀쩡하니 같이 죽기 싫으면 업히기나 해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왠지 모를 쓴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그녀의 고집 덕분에 자신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포광사에서 돌아오던 길.
천음지체를 타고난 그녀의 아들에게 자신은 굳세게 우뚝 서라는 의미로 무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네가 적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구나.’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진무립은 진심으로 복령천과 싸워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지키고자 한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나 지금은 중요한 협상을 이어가는 자리.
‘사적인 대화는 잠시 미루자꾸나.’
단소룡은 반가운 미소를 애써 지웠다.
“나를 맹주로 추대하고자 하는 이유는 알겠다. 그런데 자네를 따르는 이들이 과연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무립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많은 것을 이룬 상천의 수장이다.
혈교의 위협에서 사천을 구하고 오대표국의 야욕에서 산동과 중원을 지켰다.
아마도 그들은 모두 진무립이 맹주가 되길 바랄 것이다.
진무립이 차려둔 밥상에 수저만 올리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진무립이 말했다.
“그들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제가 마음 놓고 일선에서 싸우기 위해선 믿고 뒤를 맡길 사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