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53
◈ 253화. 단소룡의 결정
서산에 걸친 노을이 사라지자 화령도의 하늘은 어둠을 머금었다.
밤이 찾아왔음에도 오색 연등이 밝게 빛나는 객잔은 젊은 무인들로 가득했다.
“정말 엄청났지?”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사람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니…….”
전투가 끝난 지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좀처럼 한낮의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단소룡과 천영의 비무를 비롯해 십대고수들의 무공을 본 적은 있으니 오늘처럼 실전 같은 전투는 처음이었다.
“설마하니 주군과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무인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해보지 못했네.”
“상천의 천주라는 자. 정말 여간내기가 아니야.”
소문만 무성하던 상천의 천주 광룡 진무립.
북광남신이라는 광오한 무명을 얻었을 때만 해도 기껍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앞에서 단소룡을 상대로 당당하게 그 실력을 입증했다.
화령의 무인 대다수는 무공에 미친 이들.
비무를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은 진무립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분 다 절대 물러나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
“만일 마지막에 말리지 않았더라면 둘 다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검황께서 적절히 나서주셨지.”
그런 싸움을 직접 본 이상 승패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도리어 두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반가울 일이었다.
객잔의 이 층.
구석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남궁도가 마주 앉은 천진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광룡.”
모처럼 만난 고모 남궁소소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궁도와 남궁설은 전투가 중반에 접어들 시점에 연무장에 도착했다.
남궁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진서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군.”
누구보다 단소룡을 존경하는 천진서였기에 승패가 갈리지 않은 이 상황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남궁도는 피식 웃으며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무인은 분명 자룡과 자네라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났군.”
곁에 앉아 술잔을 홀짝이던 남궁설이 턱을 괴며 읊조렸다.
“복병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렸네요.”
사천에서 그 이름을 알린 게 고작 이 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훌쩍 커버린 진무립은 천하제일인 단소룡과 정면 승부를 겨룰 정도로 엄청난 거인이 되어버렸다.
남궁도는 동생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네 말이 옳구나.”
다음 세대로 함께 묶이기에 진무립의 존재감은 이미 천하를 뒤덮고 있었다.
남궁도가 천진서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친구도 절치부심한 모양이야.”
“그 친구?”
“당천.”
“아.”
그제야 전장으로 달려들던 당천의 마지막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를 잠시 잊고 있었군.”
천파를 향해 일시에 암기를 쏟아내던 그 모습은 과거 풍천지회에서 단자룡에게 무력하게 패한 당천이 아니었다.
남궁도가 웃었다.
“살면서 오늘만큼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네.”
천진서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아직 자신은 젊고 시간은 많다.
당장은 오르지 못할 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오르리라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일렁이는 호롱불이 실내를 은은히 비추는 가운데 한 사내가 침상에 누워있었다.
“괜찮으냐?”
곁에 앉아 안부를 묻는 사내는 진무립, 누워있는 이는 당천이었다.
당천이 진무립을 올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왠지 처지가 바뀐 것 같군.”
단소룡과 비무를 벌인 사람은 진무립인데 정작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었으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치료하지 않아도 괜찮나?”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자잘한 상처에서 제법 많은 피가 흘렀다.
그러나 진무립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침만 바르면 낫는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진무립이 말했다.
“고맙다.”
“어째서 물러나지 않은 거냐? 너라면 명성에 집착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명성에 집착한 게 아니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럼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자존심을 세운 이유는 뭐지?”
만일 자신을 비롯한 양측 고수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죽는 이가 나왔을 것이다.
진무립의 대단은 간단했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 때문이지.”
“…….”
창가로 걸어간 진무립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따라 유독 눈 부신 달빛이 실내로 쏟아지는 가운데 진무립은 창틀에 걸터앉았다.
“왈패에게 얻어맞던 시절과는 달라. 지금의 나는 사천과 중원, 산동의 지지를 받는 상천의 천주 진무립이다. 그들이 내게 거는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진무립의 뒤로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이 마치 후광처럼 눈부시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답구나.”
진무립의 행동에 그 자신을 위한 것은 없다.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자신을 믿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상적인 수장의 모습이다.
부친은 아마도 진무립의 이런 면모를 간파하고 자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너처럼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아닌, 동료들과 부하, 가족과 식솔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수장.
그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진무립의 투명한 눈동자에 둥근 달이 떠오른다.
“네가 나처럼 될 필요는 없지. 나는 진무립. 너는 당천. 너라면 너답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나직한 목소리가 왠지 믿음이 간다.
진무립이 가능하다고 하면 정말 가능할 것만 같다.
당천의 미소가 실소로 변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네가 사기꾼이었다면 난 분명 속았을 거다.”
쏟아지는 달빛이 화령도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정상에서 백여 장 떨어진 포구.
포구에서 다시 우측으로 십여 장 떨어진 곳에는 살짝 솟아난 사슴뿔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후우.”
바위 너머에서 새어 나온 한숨 소리는 이내 포구에 부딪히는 물결에 파묻혔다.
반짝이는 호수를 눈에 담고 한숨을 내쉬는 이는 바로 단려화였다.
“그만 올라가시지요. 아가씨.”
생각에 잠겨 누가 오는 줄도 몰랐던 단려화가 깜짝 놀라 돌아본다.
“은소저?”
언제 왔는지 은수련이 복면을 내리며 웃고 있었다.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이곳은 화령도.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기에 조용히 단려화를 찾느라 제법 시간이 걸린 것이다.
뭔가가 떠오른 단려화는 재빨리 고개 돌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결과라면 듣고 싶지 않아요.”
누구의 패배 소식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일념에 굉음이 잦아드는 즉시 처소를 나와 이곳에 숨어든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은수련은 그녀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아가씨.”
“안 들을 거예요.”
눈을 질끈 감은 단려화를 말없이 바라보던 은수련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옅은 혈향을 감지한 단려화가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 돌렸다.
“다쳤어요?”
은수련은 멋쩍게 웃었다.
진무립을 지키고자 뛰어들었을 때, 비산하는 기파에 어깨가 살짝 갈라졌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충격 직전 단소룡과 진무립이 공격의 방향을 조정했고, 모두가 함께 나선 덕분에 큰 내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수련이 차분히 말했다.
“승패는 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이 마지막 초식을 전개할 때 모두가 개입해 비무를 중단시켰습니다. 누구도 승패에 관심을 갖지 않을 만큼 엄청난 비무였습니다. 결과에 아쉬워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게 아니고요.”
“네?”
그녀의 관심사는 비무의 승패가 아니었다.
“다쳤냐구요. 피냄새가 나잖아요.”
걱정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따뜻한 진심이 느껴진다.
은수련은 웃으며 옷을 살짝 내렸다.
“비무를 말리다가 아주 조금 베였을 뿐입니다.”
“이제 보니 내상도 입은 거 같은데요?”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했다.
은수련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것도 조금……. 쉬면 나을 겁니다.”
먼저 일어난 단려화가 은수련을 일으켰다.
“미안해요. 우리 어서 돌아가요.”
“네.”
비탈을 올라가던 두 사람이 중턱에 도착할 무렵.
단려화가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조금 전에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부상은요?”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나 두 분 다 치명상은 피하신 듯합니다.”
“후우.”
단려화의 입에서 복잡한 한숨이 새어 나오자 은수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다.
“기쁘지 않으십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럼 무엇 때문에…….”
단려화가 갈등이 가득한 얼굴로 애써 웃으며 물었다.
“누구에게 먼저 가면 좋을까요?”
같은 시각.
태천각의 최상층에선 단소룡 내외와 측근들이 모여 있었다.
화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도 되겠어?”
진무립과 마찬가지로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으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제법 많았다.
단소룡은 담담하게 고개 저었다.
“이 정도는 침만 바르면 낫는다.”
그의 아내 백설하가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상공께서 상처를 입고 돌아오신 것은 정말 오랜만이로군요. 광룡이라는 청년이 제법 강했던 모양이에요.”
단소룡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정말 강하더군.”
천영과 투월초조차도 자신에게 정면에서 승부를 걸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진무립은 달랐다.
그는 시종일관 정면에서 정교하게 판을 짜며 자신을 상대했다.
곱씹을수록 즐겁고 재미있었던 비무다.
창틀에 기대서 있던 천영이 물었다.
“죽은 팔황문주와 비교하면?”
“타고난 재능이 달라. 도리어 너와 비교하고 싶군.”
단소룡의 시선이 닿은 곳엔 화윤이 있었다.
“나?”
“언뜻 본능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너처럼 치밀하게 머리를 굴려 싸우는 자다. 이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자신과 화윤을 섞어둔 듯하다는 탁이신의 평가.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투월초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말리지 않았더라면 누가 이겼을까요?”
모두의 이목이 단소룡에게 모여든다.
단소룡은 피식 웃었다.
“적어도 나는 살았을 거다.”
승패가 아닌 생존을 논한다.
진무립은 천하제일인인 단소룡에게도 목숨을 논할 만큼 굉장한 상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화윤이 물었다.
“그래서 대목의 결정은?”
원대로 시원하게 한판 붙어봤으니 이젠 선택을 해야 한다.
진무립과 손을 잡고 새롭게 창설될 맹의 수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움직임으로 적을 상대할 것인지.
단소룡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뜻에 따라도 좋을 것 같군.”
무공, 두뇌, 부하들을 생각하는 책임감까지.
거기에 상대를 잘 아는 진무립은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만하다.
단소룡의 눈동자가 모두를 차례로 담았다.
“우리 화령은 새롭게 창설될 무림맹의 일원이 될 것이다.”
투월초가 앞머리를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왠지 그때 생각이 나네요.”
팔황문에 맞서 천하를 구하고자 구천맹(求天盟)을 창설했던 그날.
시산혈해의 참상을 딛고.
기어코 천하대전의 승리를 거둔 영웅들이 다시금 무림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내고자 한다.
짝.
화윤이 손뼉을 쳐서 비장한 공기를 환기했다.
“좋아. 그와 다시 만나 세부적인 사안을 다듬어야겠어.”
단소룡이 말했다.
“그건 네게 맡기지.”
언제나 그랬듯 머리 쓰는 일은 화윤이 적임자였다.
단소룡이 당부하듯 말했다.
“이번엔 사마진에게 떠넘기지 마라.”
금릉원주 사마진은 화윤이 떠넘긴 일을 처리하느라 잠도 못 자고 서탁 앞에 앉아있을 것이다.
“……나도 놀기만 하면서 월봉 받아가는 건 아니라고.”
화윤이 인상을 구기자 모두가 실소를 흘렸다.
대화가 일단락되자 백설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어떤 청년이었나요?”
“음?”
“예를 들면 성격이라던가…….”
딸이 연모하는 사내가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단소룡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당돌한 놈이야.”
“…….”
별로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다.
주변을 돌아본 단소룡이 물었다.
“그런데 려화는 어디에 갔지?”
잠자코 앉아있던 탁이신이 묘한 미소를 보였다.
“광룡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