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54
◈ 254화. 협상 타결
탁이신의 생각처럼 단려화는 진무립의 처소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아버지께는 어머니가 계시니까.’
미안한 얼굴로 태천각이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본 단려화가 방문을 열었다.
“무립.”
이제 막 누우려던 진무립이 반갑게 일어났다.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더군.”
단려화가 머쓱하게 웃었다.
“모처럼 근방에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다쳤다면서요?”
“크게 다친 건 아니야.”
진무립은 그녀가 사라졌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가 싸우는 걸 지켜보기 어려웠던 거지.’
은수련이 따라갔으니 아마도 결과는 들었을 터.
그렇다면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 없다.
웃옷을 걸친 진무립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달이 참 밝은 거 같더군. 섬을 안내해주겠나?”
화령도 정상의 분지 외곽으로는 마치 담장처럼 솟아난 언덕이 있다.
마을의 야경과 밤이 내린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진무립과 단려화가 올라섰다.
이따금 망루를 지나칠 때마다 번을 서는 무인들이 쳐다보긴 했으나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오로지 임무에 전념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섬을 절반쯤 둘러본 진무립이 부러운 듯 말했다.
“이런 곳을 용케 찾아 근거지로 만들었군.”
육지에서 섬으로 통하는 길은 마차 하나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은 다리가 전부다.
다리를 틀어막고 수비에 치중한다면 상대는 물을 건너와야 한다.
그러나 화령에는 천하제일을 다툴 만큼 뛰어난 수공의 고수들이 있다.
외부의 침공에 그야말로 완벽한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단려화가 말했다.
“원래 이곳은 장강수로채의 비밀 은신처였어요.”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
“아버지께서 정중히 부탁해 이곳을 넘겨받았다고 들었어요.”
“정중히…… 라고?”
단소룡을 떠올린 진무립이 실소를 감췄다.
나란히 걷던 두 사람 앞에 섬의 유일한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 끝에 선 그들의 시야에 호수 너머의 불빛이 들어온다.
“아름다운 곳에서 자랐구나.”
단려화가 배시시 웃었다.
진무립이 절벽을 등지고 돌아섰다.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없고 노인들의 주름은 미소처럼 부드러웠다. 여긴 정말 좋은 곳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나도 우리 식솔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진무립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나도 도울 테니까.”
마주 본 두 사람의 눈동자에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떠올랐다.
“부탁하지.”
달빛 아래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사람이 처소로 돌아올 무렵.
태천각의 지붕 끝에 올라선 단소룡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허허.”
단소룡의 두 눈은 백 장 밖의 사람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곁에 올라선 천영이 그의 복잡한 표정을 확인하며 말했다.
“나쁠 것 없는 상대가 아닌가?”
이립이 채 지나지 않은 나이에 단소룡과 함께 천하의 절대자로 군림한 진무립이다.
그의 신분이 모호했다면 모를까, 단소룡이 직접 확인한 이상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게다가 자신을 구한 은인의 자식이 아닌가.
천영이 그를 거들자 단소룡이 인상을 구겼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너는 딸이 없어서 몰라.”
“네 딸은 내 제자다.”
“네가 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딸과 함께 걷는 진무립을 바라보던 단소룡이 발을 돌렸다.
“그냥 내 마음이 복잡하다는 거지.”
* * *
깊은 밤, 차분한 공기 속에 모처럼 은무대가 한방에 둘러앉았다.
비무를 말리다가 가벼운 내상을 입은 탓에 진무립이 강제로 휴식을 명령한 것이다.
서진환이 은수련에게 물었다.
“아가씨께서는?”
“조금 전 주군과 함께 나가셨습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자신들은 번갈아 가며 진무립을 호위하지만 홀로 단려화를 지키는 은수련은 좀처럼 쉴 시간이 없었다.
은수련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큼 힘든 일은 아닙니다.”
단려화의 예리한 감각과 무공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배려해주는 덕분에 수월하게 호위를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입을 여는 사람은 두 사람뿐.
서진환이 부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단체로 입에 자물쇠를 채웠구나.”
다소 창백한 얼굴의 금성우가 입을 열었다.
“내 뒤에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이상 누구도 나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진무립이 전투 중 내뱉은 말이다.
“그 말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한평생 자신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온 진무립의 희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서진환은 그제야 이들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서진환이 말했다.
“오늘의 감정을 기억해둬라. 그리고 언젠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순간이 온다면 오늘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다. 그게 우리가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 * *
도래하는 새벽이 전날의 흥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각.
조용한 발소리가 진무립의 처소로 이어진다.
새벽이슬을 밟고 온 그림자가 방문 앞에 도착할 무렵.
허공에서 뚝 떨어진 서진환이 상대를 막아섰다.
[아직 주무십니다.]화윤이 섭선을 살랑이며 미소 지었다.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겠소.]서진환이 난감한 표정을 지을 때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안으로 모시거라.”
“예. 주군.”
서진환은 두말없이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서니 침상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일찍 찾아온 모양이오.”
“충분히 잤습니다. 앉으십시오.”
화윤은 자리에 앉으며 섭선 너머로 진무립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모양이군.’
얼굴의 혈색과 풍기는 기도,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아 단소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림에 위기가 오긴 온 모양이야. 이런 걸물이 나타난 걸 보면.’
무림은 언제나 위기와 함께 영웅이 탄생하곤 한다.
수백 년 전, 팔황이 천하에 군림하며 패악을 부리던 시기.
혜성같이 나타난 천룡 한사운이 화령을 세우며 그들의 시대를 끝냈다.
한사운의 실종 후 은밀히 회천(回天)을 준비한 그들이 다시금 세상에 혈겁을 일으켰을 때 나타난 인물이 신룡 단소룡이다.
그리고 이번엔 복령천의 등장에 앞서 광룡 진무립이 나타났다.
‘역시 무림은 재미있어.’
마치 하늘이 고비 때마다 인재를 보내며 균형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다.
섭선을 내린 화윤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영주께서는 천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셨습니다.”
예상한 결과다.
진무립은 흡족한 내심을 감추며 말했다.
“중원과 사천, 산동의 무인들이 저를 지지하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영주님을 맹주로 추대한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공표하지요.”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읽자 화윤은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그것까지 생각하고 계셨군요.”
“껍데기만 하나가 되어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닙니다.”
진무립이 이어서 말했다.
“정보를 관할하는 비각은 화대협께 맡기겠습니다. 다만 맹주 바로 밑의 중책은 네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산동과 중원, 사천에 강남의 대표자를 그 자리에 앉히고자 하시는군요.”
“예. 그 외의 직위는 모두 맹주께 일임하겠습니다. 저와 우리 상천은 그 어떤 인사가 있더라도 일선에서 움직일 수만 있다면 관여치 않겠습니다.”
단소룡에게 맹주를 맡기기로 한 만큼 완벽하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였다.
화윤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진무립은 이미 천하에 그 실력을 입증한 강자.
그런 인물이 맹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맹의 운영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세부 인사는 중원에 가는 동안 다시 생각해보지요.”
대화가 일단락되자 진무립은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냈다.
“설지량이라는 자가 남긴 정보의 필사본입니다. 복령천의 전력이 적혀 있으니 돌아가면 확인해보십시오.”
원본과 필사본의 차이는 단 한 가지.
바로 당가의 이공자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뿐이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복령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화령의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화윤은 책을 품에 넣으며 물었다.
“상대는 분명 만반의 준비를 다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생각해둔 복안이 있으십니까?”
진무립이 말했다.
“천산의 움직임이 불안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이미 단자룡을 비롯한 일부 무인들이 천산 인근의 정보를 수집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화윤이 답했다.
“예. 아무래도 복령천과 함께 움직일 모양입니다.”
“내년 초. 섬서성의 소화산에서 복령천주와 마교주의 회동이 있을 거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들과 싸울 만한 강자들을 추려 현장을 급습해 적 수뇌부를 처리하고자 합니다.”
자신을 복령천의 검존이라 밝힌 성유기가 알려준 것과 같은 내용이다.
“음. 저도…….”
대답하던 화윤이 순간 미간을 좁혔다.
“내년 초?”
성유기가 알려준 것은 계추월 초닷새.
내년 초라면 겨울을 말하는 것인데 계추월은 반년 뒤의 가을이 만개할 시기다.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누구에게 얻은 정보입니까?”
“운화결의 군사, 설지량이 죽기 전 화령의 영애께 은밀히 알려준 정보입니다.”
화윤은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말했다.
“이쪽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내년 초가 아니라 계추월 초닷새입니다.”
진무립이 가늘어진 눈으로 물었다.
“정보를 제공한 자가 누굽니까?”
“복령천의 검존. 성유기입니다.”
“성유기?”
뜻밖의 이름에 진무립이 고개를 갸웃했다.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화윤이 설명을 덧붙였다.
“본 령의 영주께서 과거 패천성을 무너뜨리고 화령을 세운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예.”
무명의 단소룡이 무림에 두각을 나타낸 시기가 바로 그때부터였다는 건 유명한 일이었다.
“성유기는 패천성의 삼공자였습니다. 패천성이 무너지던 날, 큰 부상을 입고 잠적했는데 얼마 전 다시 나타났더군요. 복령천의 검존으로.”
화윤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단소룡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자이니 그 복수심을 충분히 이용해볼 만하다.
“그 정보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속죄를 위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영주님의 앞에서 감출 것 없이 속내를 드러낸 자입니다.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소룡이 육감으로 파악했을 때, 적어도 그가 죄책감을 갖고 속죄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음.”
서로 가져온 정보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두 사람의 머리가 복잡한 생각에 휩싸였다.
짧은 정적 속,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함정.”
생각을 공유한 그들은 당면한 상황도 잊고 마주 웃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누굴 위한 함정인지 파악해야겠군요.”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이쪽의 고수를 끌어내기 위한 함정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화윤이 말했다.
“복령천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예. 그것은 설지량이 남긴 책자에도 없었습니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무턱대고 세작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운화결이 무사히 잠입했다면 언젠가 연락을 취하겠지만 그건 시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중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운화결에게서 연락이 없다면 천산으로 간다.’
드러나지 않은 복령천과 달리 마교의 위치는 명확하다.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회합의 시일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무립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일단 영주께서 제 의견을 받아주셨으니 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윤이 섭선을 살랑이며 말했다.
“이쪽도 준비할 게 있으니 이틀만 시간을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