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65
◈ 265화. 하산
적막이 내려앉은 소실봉의 정상.
콰르르…….
타오르던 전각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불씨가 춤을 추듯 흩날린다.
진무립은 서둘러 장문인 청화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다소 창백한 청화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비친다.
“피를 조금 흘린 것 빼면 괜찮다오.”
저녁 무렵, 이들이 갑작스럽게 방문해 무당을 비워야 한다고 했을 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들의 결정에 따른 자신의 판단은 옳았다.
이들 덕분에 전각 몇 개를 태우고 육신의 작은 부상을 입는 대신 수십 명의 제자를 살릴 수 있었다.
청화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정말 고맙소. 우리 무당은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천하대전에서 입은 피해를 절반도 채 복구하지 못한 지금 또다시 저들의 공격을 받았다면 무당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진무립이 고작 서른에 달하는 마적을 무당의 도사로 위장한 것도 개봉에 파견되지 않고 남은 도사의 수가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예를 갖추고 휘청이는 청화를 진무립이 부축한다.
전투가 생각보다 길어진 탓에 지혈이 늦어 어지럼증이 생긴 것이다.
그의 곁으로 다가온 단소룡이 품에서 단약을 꺼내 그의 입에 넣었다.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운용하시오. 한결 운신이 편해질 것이오.”
“고맙소. 영주.”
청화는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정심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 가운데 진무립이 단소룡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양쪽 옆구리에 패인 얕은 검상을 묻는 것이다.
상처를 살핀 단소룡은 담담하게 답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살을 내주는 대가로 두 명의 적을 단숨에 처리했다.
상대는 그만한 실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진무립과는 사뭇 다른, 단소룡이 평생을 쌓아온 방식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뭔가?”
“죽일 생각이었습니까?”
성유기를 말함이다.
그를 향한 단소룡의 투지와 살기는 화령도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이었다.
단소룡은 솔직하게 답했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
죽은 형제의 복수를 위해서.
천파를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내렸을 때만 해도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청화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쏟아내던 초식에 힘을 뺐다.
만일 그게 아니었더라면 성유기는 두 발로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진무립이 그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덕분에 계획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당과 친분 있는 단소룡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청화를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무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소룡은 미소를 감추며 돌아섰다.
‘보통이 아닌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적의 눈을 속일 판을 만드는 건 화윤일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진무립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도리어 부족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수고했다.”
그때 외곽에 머물던 단려화가 신법을 전개해 달려왔다.
“그들이 산을 벗어났어요. 이제 무당의 도사들을 모셔와도 될 것 같아요.”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와서 확인할지 몰라. 시신을 태워 흔적을 지우고 남은 도사들은 대별채로 옮긴다.”
단소룡이 그를 거들었다.
“천주의 말이 옳다. 상대는 그리 녹록한 자들이 아니야.”
직접 싸워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그만한 전력을 음지에서 양성한 자들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세 사람은 진무립의 뜻에 따라 마적들의 시신을 타오르는 전각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 * *
무당산을 내려온 운화결 일행은 컴컴한 숲속을 빠르게 질주했다.
구홍을 등에 업은 운화결이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뒤따르는 성유기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이다.
구홍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작게 입을 열었다.
“운공. 그만 내려주시오.”
“쉬어가지.”
잠시 발을 멈춘 운화결이 구홍을 내려두며 성유기에게 물었다.
“괜찮소?”
달빛 아래 멈춰선 성유기는 옷섶을 풀어 몸을 살폈다.
가슴 밑이 시꺼멓게 죽은 채 퉁퉁 부어오른 것을 보면 적어도 갈빗대 두세 대는 부러진 모양이다.
성유기의 창백한 얼굴에 쓴웃음이 맺힌다.
“괜찮아 보이나?”
그와 마주 선 두 사람의 얼굴에도 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구홍이 고개를 숙였다.
“임무 실패는 중원으로 향하던 신룡이 무당을 지날 수 있다는 걸 간과한 제 잘못입니다. 두 분께 사죄드립니다.”
성유기는 다시 옷을 정돈하며 말했다.
“그놈과 마주치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비록 장문인은 죽이지 못했으나 전각을 불태우고 도사들은 전부 죽였으니 실패라고 할 순 없다. 가자.”
입술을 지그시 깨문 구홍은 운화결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
“운공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이미 신룡에게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운화결은 담담하게 답했다.
“임무였을 뿐이다. 다시 출발하지.”
운화결은 사양하는 구홍을 등에 업고 멈췄던 행보를 재개했다.
[노존.]곁을 따르던 성유기의 눈동자가 운화결을 향한다.
[뭐냐?] [당신이 죽인 도사들은 누구였소?]안에서 튀어나온 도사를 베었을 때, 그들이 무당의 무인이 아니라는 것은 대강 짐작했다.
그러나 도무지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
[마적이다.] [마적?] [상천에서 잡아둔 마적을 도사로 위장했고 너희들이 도착할 시점에 죽이기 시작한 거다. 모두 진무립과 수문화라는 자의 계책이었다.]시선을 거둔 운화결이 어둠 속, 빠르게 접근하는 수풀을 비집고 달려나간다.
‘말도 안 되는 녀석들이로군.’
억울하지만 자신의 패배도 납득이 간다.
구홍의 눈빛과 태도를 보면 자신을 향한 의구심은 완전히 걷힌 것과도 같다.
분명 돌아가면 천주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운화결이 성유기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복령천을 등진 것이오?]팔존이라는 틀에 속해 있으나 성유기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황천패가 직접 데려왔을 만큼 신임을 받는 인물.
그런 이가 복령천을 배신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죄다.] [속죄?]그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성유기가 복령천이라는 복마전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무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사정이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고비는 넘겼다. 교영. 난 반드시 네 곁으로 돌아간다.’
새까만 어둠 속에 그리운 임교영의 얼굴이 그려진다.
결연한 각오를 되새긴 운화결은 신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소실봉을 정리한 진무립 일행은 동료들이 기다리는 숲에 돌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분들을 대별산까지 잘 모시거라.”
대별팔수의 수장 이고가 절도 있게 예를 갖춘다.
“예. 천주님.”
무당의 도사들이 조용히 진무립과 단소룡을 향해 포권을 취한다.
“두 분 대협 덕분에 본 파는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빈도들은 두 분 대협의 은혜를 기억할 것입니다.”
장문인 청화가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별산은 우리가 살던 무당과는 사뭇 다른 곳일 게다. 이번 일을 세상을 배울 기회로 삼고 대별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살펴보아라.”
“그리하겠사옵니다. 장문인.”
수문화가 이고에게 말했다.
“어서 출발해라.”
“예. 총사. 그럼 가보겠습니다.”
대별팔수를 필두로 무당의 도사들이 일제히 숲속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수문화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지요. 개봉까지 가는 길목의 숙소들을 수배해두었습니다.”
화윤이 물었다.
“며칠이나 걸릴 것 같소?”
“숙소는 여유 있게 네 개를 구해두었습니다.”
그 말은 나흘 안에 도착하겠다는 소리다.
수문화의 거침없는 대답에 화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인간도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군.’
이곳 무당에서 개봉까지는 쉬지 않고 말을 갈아타도 이레는 걸리는 거리.
진무립이 청화에게 물었다.
“달릴 수 있겠습니까?”
대별산으로 보낸 다른 도사들과 달리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청화는 개봉에 함께 가야 한다.
청화가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끄덕였다.
“물론이오. 힘이 들면 말씀드리리다.”
단소룡이 준 내상약 덕분에 신법을 전개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수문화가 선두에 섰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를 따라 다섯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 * *
무당을 떠난 진무립 일행은 고작 몇 시진 만에 하남성의 경계를 넘었다.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수문화는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일행을 이끌었다.
쭉쭉 나아가는 경이로운 속도에 청화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도리어 내가 짐이 될 줄이야.’
비록 자신이 부상 중이라곤 하나 신법만큼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전개하고 있었다.
진무립과 단소룡, 화윤은 논외로 두더라도 단려화와 수문화의 신법 또한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이것이 상천과 화령인가.’
화령과는 교류가 있었으나 소문만 무성한 상천의 무인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벽 나절 천여 가구의 민가가 있는 제법 큰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조용한 거리를 지나 작은 객잔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 있던 사내가 마치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 예를 갖췄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수문화의 지시에 따라 객잔을 수배하고 기다리던 대별채 소속 영윤이었다.
진무립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했다.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다.”
영윤이 감읍한 얼굴로 고개 숙였다.
“별채를 빌려두었습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그래.”
조용한 객잔에 들어선 일행은 긴장한 점소이의 인사를 받으며 뒷문을 넘었다.
아담한 마당이 딸린 별채엔 여섯 개의 방이 있었다.
영윤이 말했다.
“제일 오른쪽 방에 목욕물을 준비해두었습니다. 간단히 식사도 준비 중이니 씻고 객잔으로 와주십시오.”
진무립과 수문화가 같은 방에 들어가자 다른 이들도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수문화가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화령도에서 신룡 대협과 한판 붙었다면서요?”
등을 돌린 진무립이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자신들은 이제 막 중원의 경계를 넘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수문화가 화령도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의아한 것이다.
수문화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원래 발 없는 말이 더 빠른 법이지요. 이미 중원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무슨 소문이냐?”
“광룡과 신룡이 한판 붙어 동수를 이뤘다. 광룡이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는 말도 있고 신룡이 후학에게 조금 봐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소문이란 으레 번지면 번질수록 사실관계에 첨삭이 더해지는 법이다.
진무립이 피식 웃자 수문화가 물었다.
“뭐가 진짭니까?”
“돌아가면 진환에게 물어봐라.”
“신룡 대협이 조금 봐준 것으로 알겠습니다.”
수문화의 도발적인 말에도 진무립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러든가.”
“……안 통하네.”
봇짐을 정리한 수문화가 탁자 위의 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음 같아선 하루 쉬며 술이라도 진탕 마시고 싶군요.”
“뭐가 또 벌어진 거냐?”
“그런 건 아니고요.”
의자에 걸터앉은 수문화가 뿌듯한 얼굴로 진무립을 응시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여동생을 토굴에 숨긴 채 적과 맞닥뜨렸던 그날.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작은 아이가 이제는 천하제일인과 당당하게 실력을 겨룰 만큼 굉장한 무인으로 성장했다.
세상의 죄인이 되어 도망자로 살던 이들에게 빛을 보여준 구원자.
자신들을 이끌고 천하에 우뚝 선 진무립의 모습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수문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립이 문을 열며 말했다.
“장문인의 부상도 있으니 하루쯤 쉬어가도 괜찮겠지. 오늘은 푹 쉬고 한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