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70
◈ 270화. 사천
진무립도 당천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굳이 첫 목표가 독왕 당조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 수월하고 효율적인 상대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당조 일행을 공격하고 당우만을 살려줬다는 것에는 의미심장한 구석이 많다.
부슬비가 짙게 깔리는 저녁.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위태롭게 선 당천이 웅장한 협곡을 눈에 담았다.
“그때 시체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뒤에서 진무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는 모든 일이 끝난 뒤로 미뤄도 충분해.”
나란히 선 진무립이 같은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당가의 소가주다.”
진무립을 슬쩍 쳐다본 당천이 실소를 머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실을 이야기하는 진무립이 왠지 모르게 야속하게 느껴진다.
진무립도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위로의 말과 함께 술 한잔 거하게 사주마. 그때까지는 너도, 나도 함께 견뎌야 한다.”
복령천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그것이 수장이라는 위치에 오른 자의 숙명이다.
위로의 말 한마디 듣지 못했지만 진무립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덕분에 소가주라는 자리에 대한 무게를 다시금 상기한 당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내가 마련해두지.”
* * *
칠흑 같은 어둠 속.
근거지를 완벽하게 복구한 복령천은 새로운 은신처를 향해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황운천과 약환이 선두에 선 가운데 백화무단이 그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뒤를 힐끔 쳐다본 약환이 말했다.
“결국 무림맹이 창설되었다고 하더군요. 킬킬킬.”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황천패가 말했다.
“신룡이 화령도를 비운 것은 잘된 일이다. 그놈이 거기 틀어박혀 있으면 이쪽도 곤란하니까.”
이미 수십 차례나 화령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상태다.
한두 명이 잠입한다면 모를까 백화무단까지 들키지 않고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화령도는 철옹성 같은 방비를 자랑했다.
결국은 신룡을 처리하자면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알아서 나와주었으니 기껍지 않을 리 없다.
약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잘하면 일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되겠습니다.”
“잠깐.”
약환을 쳐다보는 황천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영감. 설마 이것도 예상하고 있었어?”
“우리가 등장한 이상 언젠가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킬킬!”
시선을 거둔 황천패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고 신법에 박차를 가했다.
‘좋군.’
두 번째 회천대계에 방점을 찍을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차후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가고 있을 때, 성유기와 운화결은 대열의 후미에 섞여 있었다.
캄캄한 산새를 살핀 운화결이 성유기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요?]이제 겨우 근거지의 위치를 대강 파악했다 싶었는데 다시 이동하고 있으니 속이 답답한 것이다.
성유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길을 아는 이는 오로지 황천패와 약환뿐이다.
캄캄한 밤에, 그것도 열흘째 깊은 산만 골라서 움직이니 여기가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선두를 살핀 운화결은 다시 물었다.
[천주의 옆에 있는 괴상하게 생긴 노인은?] [약환이라고 하더군. 나도 며칠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황천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것을 보면 복령천에서 제법 지위가 높은 모양이다.
오랜 시간 복령천을 조사해왔기에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이 자꾸 나온다.
이번엔 성유기가 말했다.
[임무를 받고 나서기 전까지는 절대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알고 있소.]연락을 자주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
단 한 번.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해 연락을 취한다면 이들을 일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 속, 운화결의 두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 * *
마치 성벽처럼 세워진 절벽 속의 분지.
무릎 높이로 솟아난 수풀이 가득한 이곳을 수십 명의 무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칠 척이 넘는 장신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사내가 무인들을 다그쳤다.
“곧 주군께서 도착하실 거다! 서둘러라!”
“예!”
짐을 든 무인들이 속속 절벽의 동굴로 움직이는 가운데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 오늘 안에 전부 하겠어?”
사내가 고개 돌린 곳에는 싱긋 웃는 팔사령 구소군이 있었다.
구사령 우화신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한가하면 좀 돕지 그러나?”
“아랫것들 놔두고 내가 뭐 하러.”
“돕지 않을 거면 방해하지나 마라.”
“방해한 적은 없잖아?”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함께 냉랭한 공기가 피어난다.
십이사령의 숫자는 철저하게 실력으로 정해진다.
팔사령과 구사령.
십이사령에서도 서열이 비슷한 두 사람은 틈만 나면 티격태격하기로 유명한 사이였다.
그때 두 사람 사이로 훈풍이 불어오며 팽팽한 긴장감을 깨뜨렸다.
“곧 주군께서 도착하실 거다. 그분 앞에서 싸운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마치 송충이처럼 굵은 눈썹에 사내다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년인은 이사령 곽인평이었다.
구소군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 싸운 거 아니야. 그렇지?”
구사령 우화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십이사령에서 상위 세 사람은 다른 이들과 한 차원 다른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언제나 과묵한 일사령 주유성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십이사령의 기강을 잡는 이는 바로 곽인평이었다.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곽인평이었기에 두 사람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곽인평이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거사가 머지않았다. 답답한 건 알지만 조금만 참아라.”
그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지자 구소군과 우화신은 마주 보며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팔사령의 자리는 천하를 거머쥔 뒤에 가져가지.”
구소군이 짓궂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때도 내가 팔사령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우화신도 지지 않고 웃었다.
“다른 사령들이 들으면 참으로 좋아하겠군. 어쨌든 대계를 이룩할 때까지는 잠시 휴전이다.”
“그야 당연하지.”
서로를 향해 경쟁심을 불태우는 두 사람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 * *
내리는 부슬비에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속의 공터.
당소소와 원방대는 새까맣게 타버린 마차의 잔해 속에서 조심스럽게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현장.
지시를 내리던 당소소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순식간에 당했어.’
전투의 흔적 대부분은 가주인 당조의 것일 뿐, 다른 이들이 저항한 흔적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렸다곤 하나 지면의 발자국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남아있다.
압도적인 숫자 차이가 있었다곤 하나 이 정도로 당했다는 건,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소소가 유심히 주변을 살필 때였다.
“대주.”
흔적을 찾아 주변을 수색하던 부대주 조영성이 동료들과 함께 복귀했다.
“어떻게 됐죠? 뭔가 찾았나요?”
조영성이 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인근 백 장을 샅샅이 살폈는데 정확히 십 장 밖에서 발자국이 끊겼어.”
“나무를 밟았군요.”
“비가 내리기 전에 왔으면 뭔가 찾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내리는 비만큼은 이들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관도 쪽에서 장평문의 무복을 입은 무인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원방대주님!”
“무슨 일인가요?”
사내는 훌쩍 말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당가의 소가주께서 하루 안에 도착하신답니다. 광룡 대협도 함께 오고 계시답니다!”
조영성이 다급히 당소소의 어깨를 잡았다.
“여긴 내가 수습할 테니 어서 다녀와.”
“부탁할게요!”
날 듯 말에 오른 당소소가 장평문도와 함께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 * *
쏴아아아!
점점 굵어지던 빗줄기가 천지를 뒤덮어간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임에도 하늘은 당천의 마음을 대변하듯 먹먹하기만 하다.
높은 산 능선에 오른 진무립 일행이 비에 젖은 평무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단려화가 물었다.
“이곳인가요?”
당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이 말했다.
“가지.”
하강하는 비조처럼 순식간에 산을 내려온 일행은 거리를 가로질러 장평문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때마침 전서를 받고 대기하던 무인이 정문 옆의 종을 두드리고 달려왔다.
“장평문의 위사 조홍이 태종무사를 뵙습니다.”
진무립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텐데도 바라보는 눈빛에는 무한한 존경심이 엿보인다.
그의 더없이 정중한 예에 진무립은 옛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종무사.’
무림맹 태종무단의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천 역시 자신을 잊지 않고 있었으니 내심 반가웠던 것이다.
이윽고 정문이 활짝 열리며 장평문주 안여문이 뛰쳐나왔다.
“어서 오시구려!”
안여문의 예에 화답해 진무립 일행도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비도 오는데 어서 안으로 드십시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평문도들이 일제히 나와 은무대를 숙소로 안내했다.
“이때쯤 오실 것 같아 목욕물을 데워두었다오. 할 일이 많으시겠지만 일단 피로부터 풀고 이야기하십시다.”
은무대가 장평문도들을 따라가는 가운데 진무립과 당천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당우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안여문은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감췄다.
“의원이 하루 한 번씩 살피고 있다오. 육신의 상처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진무립이 발을 멈춘 부하들에게 말했다.
“먼저 씻고 쉬거라. 나는 당우를 만나보고 가겠다.”
“예. 주군.”
명을 받은 은무대가 숙소로 향했으나 단려화와 진설란은 좀처럼 발을 돌릴 수 없었다.
그녀들도 당우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안여문이 말했다.
“함께 가십시다. 내 직접 안내하겠소.”
그는 지체 없이 진무립 일행을 후원의 별채로 안내했다.
위사가 정중히 예를 갖추는 가운데 일행은 당우가 머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벽에 기대앉은 당우의 공허한 눈동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진설란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삼공자…….”
입술을 지그시 깨문 단려화가 진설란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는 가운데 안여문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는 문 앞을 지키고 선 위사에게 물었다.
“오늘도 한마디도 하지 않더냐?”
잠시 머뭇거린 위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전에 뭔가를 중얼거린 것도 같았는데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인가 하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깜짝 놀란 안여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입을 열었다고?”
“속하의 착각일지도 모릅니다만…… 분명 안에서 말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안여문이 위사의 어깨를 움켜쥐며 다그쳤다.
“무엇이든 좋다. 말해보아라.”
“아, 예. 분명…… 만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만?”
“예. 거기서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음.”
안여문이 위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방 안에선 진무립과 당천이 당우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바로 앞에 사람이 앉았음에도 당우의 눈에 생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진무립은 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삼켰다.
‘본 것이냐.’
말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면, 분명 그만한 일을 경험했을 터.
그것은 아마도 부친 당조의 죽음일 것이다.
당천은 손끝의 떨림을 억누르며 동생의 어깨를 잡아갔다.
“우야.”
“…….”
그 목소리에 반응했는지 초점 없는 당우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인다.
희뿌연 세상 속, 몽실거리던 두 사내의 얼굴이 점점 선명한 선으로 변해간다.
그들을 알아본 것인지 당우는 히죽 웃었다.
“만…….”
진무립의 귀가 쫑긋거린다.
“만?”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운데, 이윽고 당우의 입이 작은 소리를 내뱉었다.
“만…… 리추종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