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73
◈ 273화. 개방 서안분타
화창한 하늘 아래.
그보단 어두운 다리 밑이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구수한 냄새가 풍기자 옹기종기 모인 움막에서 하나둘 거지들이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온다.
“아직이냐? 기다리다가 뱃가죽이랑 등가죽이 달라붙을 참이다.”
허름한 움막과 달리 차려지는 밥상이 제법 호화롭다.
이곳이 바로 서안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드나드는 교통의 요지인 탓에 분타로 쓸 만한 빈집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구걸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눈이 쭉 찢어진 날카로운 인상의 거지가 잔뜩 심통 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급하면 형님이 하시든가.”
얼굴에 땟국물이 가득한 더벅머리 거지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뭐시여? 불만 있냐?”
족제비 눈의 거지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내가 형님 밥이나 해 바치려고 개방에 들어온 줄 아시오?”
“이놈이 그래도? 매맛이 그리워진 것이냐?”
더벅머리 거지가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흥! 아직도 내가 예전의 종삼인 줄 아나 보오? 그래! 한판 붙읍시다!”
두 팔을 걷어붙인 거지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더니 개싸움을 시작했다.
이내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상다리가 부러지고 솥의 국이 바닥에 쏟아진다.
소란을 듣고 나온 육봉개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여. 시펄.’
안으로 들어간 육봉개가 늘어지게 잠을 자는 소걸개를 흔들었다.
“스승님. 일어나보세요. 스승님.”
“으음.”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은 소걸개가 귀찮은 듯 한쪽 눈꺼풀을 들었다.
“밥이냐?”
“…….”
그 태평한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곁에 털썩 주저앉은 육봉개가 하소연을 했다.
“우리 언제 개봉으로 돌아가요?”
“밥은?”
“사천의 동초개란 놈은 벌써 사결제자가 된 것도 모자라 광룡의 수족처럼 움직인단 말이에요. 내가 명색이 소방주의 제자인데 허구한 날 어린 거지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이게 뭡니까?”
공위맹에 찾아갔던 날.
자신과 뒷간 뒤에서 크게 한판 붙었던 소걸개는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도 구걸이나 하고 다리 밑에서 끼니때만 기다리고 있으니 처지가 한심한 것이다.
머리를 벅벅 긁은 소걸개가 다시 물었다.
“밥은 아니고?”
“아닌데요.”
“밥때 되면 깨워라.”
“…….”
돌아누운 소걸개 뒤로 육봉개가 주먹을 부르르 떤다.
밖에선 연신 뭔가 깨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온다.
갑자기 화가 치민 육봉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 부술 거요? 왜? 개방도 부숴 먹지!”
순간 엉켜붙은 채 바닥을 나뒹굴던 두 거지가 싸움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봤다.
“왜? 더 싸우지 그러오? 아직 덜 부쉈잖어!”
버럭 소리친 육봉개는 묘한 정적 속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두 거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뒤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 돌린 육봉개의 눈에 면사를 쓴 여인과 섭선을 살랑이는 젊은 청년이 들어온다.
“뉘십니까?”
“여기 개방의 분타가 맞죠?”
“그런데요?”
단려화는 그제야 포권을 취하며 웃었다.
“소방주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두 사람을 살피는 육봉개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진다.
“대체 누구시길래…….”
순간 그의 귓속으로 나직한 전음이 스며든다.
[진무립이다.]육봉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 자, 잠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한 육봉개가 다급하게 움막으로 뛰어들었다.
“스, 스승님!”
소걸개가 귀찮은 듯 인상을 썼다.
“뭐냐? 밥이냐?”
“밥은 다 엎었고요.”
육봉개의 눈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밥 줄 사람이 왔습니다.”
벌떡 일어난 소걸개의 눈이 여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누구냐.”
저녁노을이 짙게 걸린 서안의 성곽.
하서회랑을 지나온 사람들이 노곤한 몸을 이끌고 속속 성안에 들어선다.
모래 먼지 가득한 피풍의를 벗은 사내가 서안의 거리에 접어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오늘은 객잔에서 쉴 수 있겠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대행수. 서두르길 잘한 듯합니다.”
마차와 수레를 끌고 온 사내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골목 깊숙한 객잔을 찾았다.
“어서 옵쇼!”
쪼르르 달려온 점소이가 사내를 알아보며 활짝 웃었다.
“종대협이 아니십니까?”
“하하하. 잘 지냈는가?”
“저, 저야…….”
점소이의 안색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서풍상단 소속인 이들은 서안에 올 때마다 이 객잔의 별채를 빌리곤 했다.
내일쯤 도착할 줄 알고 별채를 내주었는데 하필 예정보다 빠르게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요.”
“응?”
점소이가 울상을 하며 말했다.
“오늘 오실 줄 모르고…… 별채에 손님을 받았습니다요.”
“허…….”
“송구합니다.”
점소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종영은 빙그레 웃으며 점소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닐세. 오늘은 다른 곳을 찾아보겠네.”
“다, 다음에 꼭 찾아주셔야 합니다요.”
종영과 서풍상단의 무인들은 올 때마다 은자 한두 개씩을 두둑하게 챙겨주고 떠나는 귀한 손님들이다.
그런 손님을 잃을 지경이 되었으니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물론일세. 다음에 보세나.”
객잔을 나선 종영이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별채가 찼다는구먼.”
“허……. 그럼 다른 곳을 찾아볼까요?”
“그러게.”
주변을 살핀 종영이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개방의 분타에 다녀오겠네.”
서풍상단 일행이 골목을 나설 무렵, 객잔의 별채에선 진무립 일행이 술잔을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얼마 전부터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오. 이놈아. 좀 조용히 처먹어라.”
술잔을 내려둔 소걸개가 육봉개의 머리를 짓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단려화가 빙그레 웃으며 육봉개의 앞으로 음식을 옮겨주었다.
“음식은 많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육봉개가 우적거리던 음식을 꿀꺽 삼켰다.
“고맙습니다. 하하.”
히죽 웃는 모습이 왠지 동초개를 보는 것만 같아 더욱 반갑다.
진무립이 조용히 잔을 들이켜고 말했다.
“천산에 숨어든 세작은 없습니까?”
소걸개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으로 마기가 없는 자들은 천산에 들어서지 못한다오. 아니, 사방 백 리 안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소. 우리가 수집하는 정보들은 대부분 근방을 지나는 상인에게서 얻는 것들이오.”
“교주는 어떤 자입니까?”
일순 소걸개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굉장히 강한 자요.”
단려화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소숙. 그런 당연한 얘길 묻는 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일침에 소걸개가 멋쩍게 웃었다.
“그, 그렇지? 하하.”
한 팔을 탁자에 걸친 소걸개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화아야. 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폐관에 드신 이유를 아느냐?”
“아버지야 원체 무공을 좋아하시니까 폐관에 드신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다.”
소걸개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진무립이 물었다.
“혹시 그게 천산과 관계가 있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군. 그렇소.”
소걸개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곡이 종적을 감추고 그들에 대한 추적도 시들해지던 무렵이었소.”
평화를 되찾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한 무림이 과거의 활기를 되찾은 시기.
세상에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진무립이 상천의 기틀을 잡고 미래를 계획할 때였다.
부상의 후유증을 떨쳐낸 단소룡은 장자 단자룡과 함께 화령도를 떠났다.
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과 모처럼 인사를 나누고 아들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단소룡이 그와 만난 것은 구강현의 칠맥을 거쳐 남궁세가의 안휘현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장강의 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가던 그날은 밤이 올 때까지 마을을 찾지 못했다고 하오. 다행히 한여름이기에 노숙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고 하더군.”
흐르는 강물 소리를 벗 삼아 강변에 자리를 잡고 누울 무렵, 그가 나타났다.
“당시 상대는 어림잡아 이립에 조금 미치지 못했을 것이오. 자룡이보다는 확실히 많았지. 별안간 나타난 그자는 대뜸 십 장 밖에 앉아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웠다고 하더군.”
아들과 함께 있던 단소룡은 그자를 유심히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를 감지하는 특유의 육감이 강렬한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당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싸웠습니까?”
소걸개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더군. 고기 한 마리를 낚은 상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하오. 그리곤 대목을 보며 말했다더군.”
단려화의 눈에 짙은 호기심이 번진다.
“무슨 말이었나요?”
소걸개의 입이 작게 열렸다.
“십 년 뒤엔 다를 것이오.”
순간 무거운 긴장감이 실내를 잠식한다.
그 말은, 지금은 부족하지만 십 년 뒤엔 반드시 당신을 넘어서겠다는 의미였다.
짧은 침묵이 지나간 뒤, 소걸개가 다시 말했다.
“그는 잡은 물고기를 바닥에 내려두고 사라졌다고 하오. 대목은 시꺼멓게 변색된 물고기에서 무저갱의 어둠보다 지독한 암흑을 느꼈다고 하오.”
진무립이 짧게 말했다.
“마기.”
소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산의 마교는 수백 년간 여러 파벌로 나뉘어 암투를 벌이고 있었지. 그가 바로 수백 년의 내분을 정리하고 교주에 오른 천마였던 거요.”
단려화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럼 아버지는…….”
“그래. 그 길로 무림행을 멈추고 돌아와 무공을 재정립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곤 몇 해 전 폐관에 드셨던 것이지.”
단려화는 그제야 천하제일인인 아버지가 그 이상의 경지를 바라보며 폐관에 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그 뒤로 천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론 없다오. 그런데 또 모르지. 강남에 나타난 것도 우린 알 수 없었으니 모르는 사이 또 나왔을지도.”
당시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지금은 무인으로서 절정의 몸 상태를 유지할 시기다.
소걸개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소방주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천하를 떠돌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소. 천하에 암약하던 팔황문처럼, 마교 또한 그들과 같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단려화가 물었다.
“찾은 건 있었나요?”
소걸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행히도 찾지 못했다. 천산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확실해. 그 뒤로 나는 서안에 터를 잡고 꾸준히 그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된 육봉개가 소리 없이 우물거리던 음식을 꿀꺽 삼켰다.
“매일 낮잠만 자던 게 아니었습니까?”
“……너 좀 나가 있어라.”
육봉개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혼자 다 먹으려고요?”
소걸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이 새끼가.”
그때 문밖에서 은무대원의 기척이 느껴졌다.
“서풍상단의 종영이라는 자가 개방의 소방주를 찾아왔습니다.”
“종형이?”
벌떡 일어난 소걸개가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후원으로 이어지는 객잔의 뒷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오. 소방주.”
소걸개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오셨구려!”
종영이 허탈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분타까지 다시 다녀왔지 뭐요?”
“하하하! 어서 이리 오시구려. 내 종형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오.”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라?”
활짝 열린 별채의 문 안으로 좀처럼 보기 드문 미공자와 미녀가 보인다.
소걸개가 재촉하듯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드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