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76
◈ 276화. 놈들에겐 있다
지난밤 느꼈던 간질간질한 감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소화산에 도착한 지금에서야 확신이 든다.
당우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눈으로 모두를 돌아봤다.
“느, 느껴집니다.”
단려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진짜야?’
사천 무림이 손가락질하던 당가의 망나니는 어느덧 어엿한 무인이 되어 상대의 의표를 찌를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런 당우가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진무립이 당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훌륭하다.”
몇 차례 눈을 껌뻑거린 당우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서 가요. 이 감각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래. 이번엔 네가 선두에 서라.”
“네.”
진무립이 단려화를 바라본다.
“당신이 당우의 바로 옆에 붙어줘.”
누구보다 예리한 감각을 가진 그녀라면 혹시 모를 위기에도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단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출발하지.”
소화산에서 등을 돌린 당우가 가볍게 뛰어 나뭇가지에 올라선다.
“갑니다.”
달려나가는 당우의 뒤로 동료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 * *
완연한 여름의 훈풍이 거대한 협곡을 휩쓸어갔다.
스르르르…….
융단처럼 깔린 잔디가 파르르 몸을 누이며 협곡의 절경에 운치를 더한다.
들판에 살짝 솟아오른 나지막한 바위 위에, 마치 얼음조각을 깎아놓은 듯 냉막한 인상의 장년인이 올라섰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들어오는 협곡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숨겨진 동굴 안에선 복령천의 무인들이 수련에 매진하며 움직일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떠돌며 지저귀던 산 새가 냉막한 사내의 어깨 위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앉는다.
사내를 자연 그 자체로 인식한 것처럼, 어깨에 앉은 새의 눈동자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 돌린 사내가 새와 시선을 교환한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산 새는 한참을 어깨 위에서 노닐더니 작은 날개를 휘적여 날아가 버렸다.
사내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스치듯 사라졌다.
‘아직인가.’
그토록 바라던 물아일체의 경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경지가 못내 아쉽다.
천천히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내는 바로 복령천의 일사령 주유성이었다.
“일사령.”
등 뒤의 목소리에 주유성이 고개를 돌린다.
집채만 한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중년인, 삼사령 평사군이 진중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돌아왔는가?”
“조금 전에.”
평사군이 그대로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신룡이 무림맹의 수장에 올랐다.”
주유성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겐 잘된 일이다.”
복령천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모조리 무릎 꿇려야 한다.
신룡과 광룡을 중심으로 무림맹이 세워졌으니 그 수뇌만 모조리 쓸어버리면 천하는 간단하게 자신들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주유성이 물었다.
“독왕 건은 어떻지?”
“말할 것도 없지. 사천이 발칵 뒤집어졌다. 거기에 무당산까지 불타올랐으니 다들 전쟁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을 거다.”
“그런 것치곤 생각보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던데.”
“신룡과 광룡 때문이지. 둘이 한판 붙었다는 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더군. 그 둘만 있으면 누가 와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그들이 의도한 건가?”
“그럴 수도 있겠지.”
무림맹에는 진무립과 화윤이 있다.
그들이라면 능히 그런 술수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부하들과 주변을 둘러본 이사령 곽인평이 들판에 나타났다.
멀리서 이들을 발견한 그는 부하들을 돌려보내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평사군이 물었다.
“자네가 직접 경계를 서는 건가?”
곽인평이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순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매사에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곽인평이다.
평사군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군께서 보이지 않던데.”
곽인평이 답했다.
“군사와 함께 출타하셨다. 달포 뒤에 돌아오실 거다.”
평사군이 고요한 협곡을 눈에 담는다.
“조용하군.”
분명 동굴 안에 백 명이 훌쩍 넘는 무인들이 있을 텐데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유성이 말했다.
“수백 년의 숙원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들 수련에 바쁘겠지.”
그 말에 곽인평과 평사군이 주유성을 바라본다.
화령의 초대 영주 천룡 한사운에 의해 무너진 팔황(八皇)의 천하.
화령의 이대 영주 신룡 단소룡에 의해 물거품이 된 첫 번째 회천대계(回天大計).
선조들의 한은 후예인 자신들의 손으로 풀어야 한다.
주유성이 결의에 찬 눈동자를 차갑게 빛냈다.
“회천(回天).”
그에 화답하듯 곽인평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의 계획에 빈틈은 없다.”
평사군이 주먹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이번엔 반드시.”
바위에 우뚝 선 세 사내가 결연한 의지와 함께 시선을 교환했다.
들판에서 백여 장 떨어진 절벽 위.
‘주유성. 곽인평. 평사군.’
십이사령 중 차원이 다른 세 명의 고수를 바라보는 이는 바로 운화결이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주유성까지 나타났다는 것은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 세 사람이 한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보기 드문 일이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도 운화결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상대가 접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화결이 슬쩍 고개 돌리며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나?”
평범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장년인은 바로 오사령 자현이었다.
자현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동굴 안에만 있는 건 답답하지 않나. 잠시 바람을 쐬는 중일세.”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인자한 인상의 사내였지만 성유기는 그 속에 수백 마리 구렁이가 들어있다고 했다.
운화결의 두 눈이 자현을 지그시 응시한다.
‘이놈까지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
십이사령의 위 세 사람은 백병흑궤가 있더라도 승패를 가늠할 수 없다.
백화무단주 양무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사령 자현은 확실히 자신보단 아래다.
운화결이 물었다.
“저 세 사람과 백화무단주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하지?”
“어려운 질문이로군. 음.”
각진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자현이 입을 열었다.
“백화무단주는 확실히 강하지. 그러나 일사령은 주군조차도 쉽게 보지 못하는 강자일세.”
“주군조차 쉽게 보지 못한다고?”
“물론 주군께서 이기지 못할 자는 천하에 존재하지 않지.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네.”
“한번 붙어보고 싶군.”
호승심을 드러낸 운화결의 눈이 번뜩이자 자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협곡을 울리는 웃음소리에 들판에 서 있던 주유성의 고개가 휙 돌아왔다.
“이크!”
움찔한 자현이 겸연쩍게 손을 흔들었다.
주유성이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자 자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또 혼날 뻔했군. 나는 이게 문제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책한 자현이 운화결에게 말했다.
“자네가 비무를 원한다면 우리 십이사령은 언제나 환영일세. 자네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무인이니 말이야.”
십이사령 중 운화결의 무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자현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일사령은 예외일세. 그에게는 비무를 신청하지 말게.”
“이유는?”
“그는 중간이 없으니까. 그와의 비무에서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다네. 정 비무를 하고 싶거든 생사결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지.”
운화결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그는 수련 중에도 비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자현은 고개를 저었다.
“주군이 계시질 않나? 그는 주군께서 직접 비무를 청하는 유일한 무인이지.”
“음.”
자현은 침음하는 운화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비무 상대가 필요하거든 언제든 찾아오게. 난 언제든 환영일세.”
스치는 손결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내력을 운화결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의 진신 내력을 가늠하고자 수를 쓴 것이다.
‘역시.’
성유기의 말대로 방심할 수 없는 놈이다.
자현이 사라지자 운화결은 어깨로 침투한 내력을 즉시 털어냈다.
* * *
소화산을 벗어난 진무립 일행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움직였다.
단려화가 느끼는 불안한 감각은 소화산을 떠난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신법에 속도를 붙인 일행은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선두에 선 당우가 손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눈을 빛냈다.
‘점점 뚜렷하게 느껴진다.’
사방을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운 숲속이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하게 안다.
당명에게 뿌린 만리추종향의 이끌림이 점차 강렬해졌다.
숲속의 작은 공터를 지나 백여 장을 나아갔을 때였다.
[당소협.]경계심이 섞인 나직한 목소리에 이어 단려화가 당우의 어깨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멈춘 은무대가 습관처럼 산개해 수풀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진무립이 물었다.
“적인가?”
가만히 고개 저은 단려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소화산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진무립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역시 진법인가.”
소화산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진법은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간과 지형, 날씨를 비롯해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만 완벽한 진법을 펼칠 수 있다.
진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것도 노력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
드넓은 무림을 전부 뒤져도 진법이라 할 만한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제갈세가 정도밖에 없다.
진법을 펼치는 자가 있다는 건 역시 그만큼 머리 좋은 자가 있다는 것과도 같다.
진무립이 당우에게 물었다.
“거리는 얼마나 되지?”
당우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느낌이 처음보다 훨씬 강렬해졌어요. 이 앞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당우의 손가락이 전방의 수풀 너머를 가리켰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다.
진무립이 손을 들어 은무대를 소집했다.
“이 앞에 놈들의 은신처가 있다면 진의 바깥까지 경계할 확률이 높다.”
진무립은 이어서 은수련에게 말했다.
“한 시진 전 지나왔던 절벽의 잔도를 기억하느냐?”
“예. 주군. 분명 밑에 작은 마을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우와 함께 마을 동쪽의 숲에서 기다려라.”
진무립이 이런 지시를 내린다는 건 안에 들어갈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은수련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예.”
당우가 진무립의 소매를 잡으며 간절하게 눈을 빛냈다.
“소공자.”
저 안에는 부친의 원수인 광마가 있다.
이대로 놈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됐으니 가슴이 쓰린 것이다.
진무립은 당우의 어깨를 잡으며 눈을 직시했다.
“내 반드시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 안이 복령천의 근거지라면, 지금의 전력으로 전투를 벌이는 건 어불성설이다.
단려화가 진무립을 거들었다.
“전투를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요.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어요. 지금은 참아야 해요.”
입술을 질끈 깨문 당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만리추종향을 다오.”
“예. 소공자.”
만리추종향과 손바닥만 한 호리병을 건네받은 진무립이 은수련에게 턱짓했다.
“출발해라.”
“예.”
마지막으로 단려화를 쳐다본 은수련이 눈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동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단려화가 물었다.
“안에 들어갈 방도가 있어요?”
“내겐 없다.”
“그럼 어떡하려고요?”
진무립은 손으로 삼 장 앞의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게는 없지만.”
그의 손끝이 닿은 곳엔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발자국이 있었다.
진무립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놈들에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