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77
◈ 277화. 침투
기울던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지며 세상에 어둠을 드리운다.
한낮의 열기가 한풀 꺾인 산속.
진무립과 단려화는 빼곡한 나무로 가득한 산중에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집중하던 단려화가 진무립에게 물었다.
[언제쯤 올까요?]당우가 없으니 상대가 이곳을 떠났다고 해도 알 방법이 없다.
한 시진이 훌쩍 지나도 좀처럼 누군가 나타날 기미가 없으니 초조해진 것이다.
그녀의 맞은편에 숨어 있던 진무립이 말했다.
[지루해도 참아.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작게 끄덕인 단려화가 다시 눈을 감았다.
진무립의 말처럼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반 시진이 지날 무렵이었다.
숨죽인 채 주변 상황에 집중하던 단려화의 귀가 쫑긋거렸다.
‘짐승?’
불어오는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야! 무인이야!’
바람에 섞인 미세한 쇠 냄새가 그녀의 후각에 감지된다.
그녀는 흥분을 억누르며 진무립을 찾았다.
[왔어요.]나무를 붙잡은 진무립은 언제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준비했다.
‘역시.’
부친을 닮았는지 단려화가 가진 감각은 자신보다 훨씬 예리하다.
진무립은 천천히 움직이는 단려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달빛을 머금은 두 개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빛을 감춘 진무립의 눈동자는 즉시 상대를 포착했다.
‘저자는?’
분명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다.
무당산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백화무단원.
수풀을 가볍게 뛰어넘어오는 사내는 바로 칠조장 구홍이었다.
‘후우.’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구홍의 얼굴이 여느 때보다 복잡하다.
비록 상대가 신룡 단소룡이었다곤 하나 한 번의 전투에서 모든 조원을 잃었다.
임무에서 복귀한 뒤로 자신을 향한 조장들의 달라진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근거지 외곽 순찰은 조 단위 편성.
다른 조는 모두 수를 나누어 일시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반면 자신은 홀로 모든 구역을 움직이며 점검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처지는 너무 곤궁하다.
“후우.”
순찰 중엔 입을 열지 말라는 명에도 불구하고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다.
기척을 감춘 채 조용히 근거지 외곽을 돌아본 구홍이 진의 생문(生門)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생각 속에 생문을 완전히 통과한 구홍은 입구 옆의 작은 동굴에 발을 들였다.
이곳은 생문을 감시하는 초소 역할을 하는 동굴.
“이상 없네.”
구홍의 말에 안을 지키던 백화무단원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게 끄덕이며 돌아선 구홍이 밖으로 나왔다.
은은한 달빛에 휩싸인 협곡.
복잡한 생각 속에 자신의 동굴로 돌아온 구홍은 침상 옆에 놓인 작은 술병을 발견했다.
‘아. 그렇지.’
회복이 끝나는 대로 운화결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고자 챙겨둔 것이었다.
‘그분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운화결 역시 오랜 세월 공들인 표국을 잃고 돌아왔다.
한 번의 임무에서 부하를 전부 잃은 자신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
문득 그의 행보가,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구홍은 술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운공의 처소는 분명 저쪽이었지.’
순찰을 나서고 물자를 옮기며 몇 차례 본 기억이 있다.
구홍이 조용히 움직일 때였다.
주변을 살피는 진무립의 귀로 단려화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진무립도 그에 동의하듯 작게 끄덕였다.
곳곳에 감춰진 동굴에서 무시하지 못할 기운들이 느껴진다.
무당산에서 보았던 백화무단도 결코 쉽게 볼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 이상의, 차원이 다른 고수들의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십이사령인가.’
백화무단을 능가하는 고수라면 분명 그들일 것이다.
협곡을 천천히 눈에 담는 진무립은 내심 감탄했다.
‘이런 곳을 잘도 발견했구나.’
상천의 천주로서, 천하의 영산들을 두루 둘러본 진무립이었으나 이런 협곡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시선을 돌려 운화결의 처소를 찾고자 할 때였다.
다섯 개의 동굴을 지나친 구홍이 커다란 바위에 가려진 동굴 앞에 멈춰섰다.
“운공. 주무십니까?”
순간 진무립과 단려화의 귀가 쫑긋거린다.
‘운공?’
‘운화결!’
곧이어 동굴 안에서 답이 들려왔다.
“누구냐.”
진무립의 입가에 반가운 미소가 번진다.
나직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운화결이었다.
운 좋게도 구홍이 바로 그를 찾아간 것이다.
“구홍입니다.”
“들어와라.”
입구를 막은 나뭇가지들을 밀어낸 구홍이 등불조차 켜지지 않은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때마침 심상 수련을 마친 운화결은 면포로 땀을 닦고 있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냐?”
탄탄한 근육으로 가득한 그의 전신에선 식지 않은 열기가 뜨겁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중히 포권을 취한 구홍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인사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운화결이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본다.
“인사?”
“그날 운공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었지요. 다시 한번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그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딱히 널 살리고자 인질을 잡았던 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압니다. 하지만 제가 운공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것도 사실이지요.”
“술은 잘 받겠다. 두고 가라.”
바닥에 술병을 내려둔 구홍이 입구를 슬쩍 살피더니 나직이 물었다.
“운공. 앞으로 운공께서 어떤 행보를 보이실지 궁금합니다.”
술병을 든 운화결이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게 궁금한 이유가 무엇이냐?”
구홍은 감추지 않고 당당히 물었다.
“제 처지가 운공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운화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죽고 싶은 모양이로군. 감히 나를 조롱하러 온 것이냐?”
구홍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정중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를 쏘아보던 운화결이 시선을 거뒀다.
“대계가 코앞이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틀에 박힌 듯한 대답은 구홍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령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운화결의 무공이라면 한두 번 실패해도 버리는 패로 사용할 리 없으나 구홍은 다르다.
처지는 비슷할지라도 상황이 다른 것이다.
운화결이 물었다.
“불안한 것이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복령천은 소수의 정예.
전쟁이 끝나면 백화무단은 해체되어 각지의 요직에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 정해진 수순에 따라 직책을 맡게 될 터.
그러나 임무에 실패한 지금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으니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운화결은 쓴웃음을 삼켰다.
‘날 찾아온 걸 보면 어지간히 심란한 모양이군.’
그는 선심 쓰듯 말했다.
“본 천이 소수이기에 네게도 만회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지.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면 기회는 다시 온다. 이럴 시간에 돌아가서 수련에 매진해라.”
말을 듣고 보니 왠지 그럴듯하다.
한 번의 실패로 버릴 것이라면 자신의 목은 그날 날아갔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중히 포권을 취한 구홍이 밖으로 나갔다.
운화결은 시선을 거두며 생각했다.
‘내 행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교영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그녀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선 운화결이 옷을 걸치고 술병을 들었을 때였다.
입구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운화결은 차분히 몸을 돌렸다.
“누구냐.”
어둠 속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내 그의 시선이 닿은 벽이 일렁이더니 빠르게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어 간다.
[잘 지냈나?]차분한 전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진무립이었다.
“하…….”
어이가 없어 실소가 흘러나온다.
‘제정신이냐?’
황천패가 없다곤 하나 제아무리 진무립일지라도 여기서 발각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복마전의 한복판에 들어왔음에도 진무립의 표정에선 한 치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놈이다.
아니면 미친놈이거나.
어둠 속 진무립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개봉을 떠난 뒤로 하루의 절반 이상은 그녀의 생각으로 가득한 운화결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영악한 놈이라는 건 알지만 이런 것까지 거짓으로 말할 인사는 아니다.
이번엔 운화결이 먼저 말했다.
[먼저 연락을 취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대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약환이 이곳에 펼친 것은 무인의 들어오는 순간 즉각 알아챌 수 있는 진법이었다.
진무립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궁금한 것이다.
[조금 전 이곳을 나간 자가 진법 밖에서 순찰을 돌더군.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것을 따라왔다.]진무립의 음혼귀영공이라면 그도 어쩔 방법이 없었을 거다.
운화결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힌다.
당사자인 자신조차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복령천의 근거지를 찾아낸 것도 모자라 정확히 자신을 찾아온 진무립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놈은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황천패는 분명 무서운 사내다.
그러나 누가 더 껄끄럽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진무립을 말할 것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검존과 함께 논의할 일이 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화결의 신형이 스르륵 허공에 녹아들었다.
그 역시 음혼귀영공을 펼친 것이다.
[따라와라.]밖으로 나온 운화결이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깨어있기에는 제법 야심한 시각.
그 어디에서도 움직이는 것의 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단려화를 제외하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단려화가 펼친 소완공은 맞닥뜨리지 못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은밀했다.
‘제정신이 아닌 한 쌍이다.’
자신이라면 절대 임교영을 이런 곳에 데려오지 못할 것이다.
그녀를 외면한 운화결이 조용히 벽을 타고 올라간다.
진무립이 그 뒤에 바짝 붙으며 단려화를 찾았다.
[주변을 잘 감시해줘.] [알고 있어요.]그녀는 무겁게 끄덕이며 진무립을 따랐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유기의 처소는 제법 외진 곳에 있었다.
순식간에 절벽을 타고 올라간 세 사람이 그의 동굴 앞에 도착했다.
단려화가 밖을 지키는 가운데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이 음혼귀영공을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침상에 누워있던 성유기가 미간을 좁히며 일어난다.
“그대는…….”
진무립의 검지가 입술에 붙었다.
“목소리는 작게.”
외진 곳이라곤 하나 큰 소리를 낸다면 누군가 들을지도 모른다.
미간을 좁힌 성유기의 눈에 진무립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광룡 진무립인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상대의 수려한 용모에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 것이다.
진무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구면인데, 그대에겐 초면이겠지.”
“역시 무당산에서 지켜보고 있었군.”
수문화와 함께 계획을 세운 이가 진무립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성유기는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여길 찾아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
자신을 본 운화결과 그 표정이 흡사하다.
진무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집 나간 간은 복령천을 무너뜨린 뒤에 회수하도록 하지. 그보다 말이야.”
조용한 정적 속에 진무립의 두 눈이 성유기를 직시한다.
“당신은 분명 화윤에게 계추월 초닷새에 소화산에서 회동이 있을 거라고 했었지.”
“분명 그랬다.”
“그렇다면 다른 팔존은 어째서 한겨울인 여월에 회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까?”
성유기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화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진법이 펼쳐져 있더군. 아마도 이곳에 펼쳐진 것과 같은 것이겠지.”
진무립의 나직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위에선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