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83
◈ 283화. 서장과 사천
서장을 점거한 천마신교의 수뇌들이 포달랍궁의 대전에 집결했다.
판천라마가 사용하던 태사의에 오른 장천무가 오연한 눈빛으로 부하들을 바라본다.
“시작해라.”
“대머리 새끼들. 불경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치워두고 갔더군요.”
입을 연 산적 같은 풍채의 사내는 부교주 천살염마 군도였다.
군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청소할 시간은 아꼈습니다.”
장천무의 차가운 눈빛이 쏟아진다.
“부교주는 여기 청소하러 왔나?”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군도가 움찔하며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인상을 쓴 장천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건 사내, 천산육마의 수장인 화마 염자성을 쳐다봤다.
“화마.”
베일 듯 날카로운 턱선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찰랑이는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청년이 앞으로 나선다.
“예. 교주님.”
정중히 예를 갖추는 화마 염자성은 신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엄청난 고수였다.
“포달랍궁의 분궁도 텅 비었습니다. 전원 사천으로 넘어간 듯합니다.”
그에 이어 부드러운 인상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중년인, 살마 부교악이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오기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단시간에 꺼지듯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부드러운 음성과 말투를 가진 그는 적 앞에선 누구보다 잔혹한 살귀로 변하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음.”
장천무의 시선이 말석에 앉은 이지적인 외모의 사내, 자신의 심복 임화교에게 닿는다.
하루 종일 무공 생각밖에 없는 다른 마인들과 달리 머리를 굴릴 줄 아는 그는 장천무가 아끼는 인재였다.
임화교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오대표국을 무너뜨린 광룡과 신룡이 손을 잡고 무림맹을 세웠습니다. 한창 사기가 드높을 때이지요. 굳이 지금 사천을 공격해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하라.”
“저희는 숫자가 많습니다. 이대로 중원에 들어서면 세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지요. 왕래가 드문 겨울을 노려 중원에 들어가는 게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습니다.”
“예정대로 여월에 소화산에서 회동을 갖는다?”
“복령천과 회동을 갖기 전까지 전투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와 무림맹의 전쟁이 시작됐을 때 복령천이 뒤로 빠진다면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될 겁니다.”
부교주 군도가 험상궂게 인상을 썼다.
“그때는 무림맹과 복령천 전부 쓸어버리면 될 일이 아닌가?”
천상 무골다운 그의 대답이 이제는 익숙하다.
임화교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피해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림을 손에 넣은 다음의 일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갈등에 사로잡힌 장천무가 미간을 좁힌 채 침묵한다.
마음 같아선 단숨에 천하를 거머쥐고 싶었으나 임화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까닭이다.
그때 대전의 정문이 열리며 수문위사가 들어왔다.
“복령천에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공손히 무릎 꿇은 위사는 머리 위로 새하얀 서찰을 들어 올렸다.
장천무가 손을 내밀자 이십 장 밖의 서찰이 둥실 떠올라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서찰을 읽은 장천무가 그것을 임화교에게 던졌다.
쉬익!
“엇.”
화살같이 날아드는 서찰에 놀란 임화교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순식간에 속도를 죽인 서찰이 그의 손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읽어봐라.”
“예. 교주님.”
임화교는 서찰을 펴고 내용을 천천히 살폈다.
‘여월의 회동을 정월로 앞당기자고?’
여월과 정월은 고작 한 달 차이.
‘혹시 정보가 유출됐나? 아니면 상대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가진 정보로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임화교의 고민이 길어진다.
그렇다면 교주인 자신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때다.
기다리던 장천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월에 소화산에서 회동을 가질 것이다. 그때까지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예. 교주님.”
마인들의 목소리가 드넓은 대전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이 일제히 대전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장천무가 임화교를 불렀다.
“송구합니다. 교주님.”
“지금부터 너는 우리가 적의 눈을 속이고 소화산에 도착할 방도를 찾아내라.”
지금 포달랍궁에 머무는 무인의 숫자만 이만이 넘는다.
이들이 들키지 않고 소화산까지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임화교에게 교주의 명을 거역할 배짱은 없었다.
강자존의 천마신교에서, 다소 무공이 처짐에도 천정각의 각주가 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교주에게 능력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명이 떨어졌다면 이번에도 반드시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임화교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준비하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임화교는 즉시 천정각(天靜閣)의 요원들을 소집했다.
“소걸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정보를 다루는 천정각은 오래전부터 중원에서 세작을 운용하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개방의 소방주 소걸개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중원에 스며든 천정각 요원을 찾아다니는 통에 잠시 정보망이 어그러진 적도 있으니까.
이마의 길쭉한 검상이 인상적인 중년인, 비흔사조(秘痕四曹)의 조장 영창이 답했다.
“서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상인을 상대로 정보를 구하는 모양입니다.”
“달포 주겠다. 섬서성에 펼쳐진 개방의 감시망을 파악해라.”
천정각의 비흔조가 일제히 부복하며 포권을 취했다.
“명을 받듭니다.”
* * *
황금빛 들판을 어루만진 바람이 지평선 너머로 아득히 사라져간다.
화창한 하늘 아래, 거대한 목책으로 둘러싸인 공위맹의 대전에 사천의 기둥들이 집결했다.
상석의 초평천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의 자소와 청성의 강유월이.
우측에는 점창의 하종보와 새롭게 당가의 가주가 된 당천이 자리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사이마다 각 중소방파의 수장들이 집결한 가운데 대전의 문이 열리며 판천라마가 도착했다.
초평천이 두 팔을 벌려 그를 환영했다.
“어서 오시오. 불존. 간밤엔 편히 주무시었소이까?”
“아미타불.”
합장을 취한 판천라마가 초평천을 바라보았다.
“맹주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편히 쉴 수 있었소. 다시 한번 라마승들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전하오.”
초평천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젠 맹주가 아닌 사천의 일개 필부에 불과하다오. 앉으시구려.”
무림맹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공위맹은 조만간 무림맹 사천 지부로 재편될 예정이다.
맹주 초평천은 사천을 대표하는 대사주(大四州)로 내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결정된 지 얼마 안 된 지금 맹주라는 호칭이 좀처럼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판천라마가 자리에 앉자 초평천이 당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세가의 일은 잘 수습하셨는가?”
“도와주신 덕분에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당천을 바라보는 좌중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제나 자신밖에 모르던 당천이 중원에 다녀온 이후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진 것이다.
담담하게 예를 갖추는 당천의 모습은 당가의 가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마교가 서장을 점거한 이상 우리의 턱밑에 비수가 드리운 것이나 다름없소. 우선 계획의 진척부터 듣지 않을 수 없겠군.”
가장 먼저 청성의 장문인 강유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 파의 신물과 비급을 모두 안전한 곳에 숨기고 삼대 이하의 제자는 여비를 주어 내보냈습니다. 전력이 될 일대 제자와 이대 제자는 모두 이곳 공위맹에 집결한 상태입니다.”
그에 이어 아미의 자소가 말했다.
“우리 아미 역시 철저하게 군사의 계획에 따라 내보낼 제자와 남을 제자를 구분했다오. 맹주께서 결정만 내리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어요.”
“점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사가 보내준 계획서 덕분에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초평천의 곁에 선 현진학은 쏟아지는 시선에 다소 어색함을 느끼며 멋쩍게 웃었다.
‘역시 이런 자리는 내게 안 맞아.’
초평천의 간곡한 청에 따라 임시로 사천의 군사가 되었으나 평생을 낭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이런 격식 있는 자리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화윤. 어서 전쟁을 끝낼 계책을 세워라.’
초평천은 중소방파의 수장들에게 물었다.
“가족이 없는 도문과 불문의 제자들은 움직이기 수월했을 테지만 그대들이 걱정이로군. 혹여 아직 정리를 마치지 못한 방파가 있소?”
침묵하던 현진학이 입을 열었다.
“지운각과 화공단의 무인들을 총동원해 소산 계획을 돕고 있습니다. 아직 소산을 완수하지 못한 방파도 사흘 안에 작업이 끝날 것입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꾼들과 무인의 식솔들, 무공이 약한 제자를 제외한 사천의 정예들은 지금 이곳 공위맹에 집결한 상태였다.
북천도문주 이정명이 말했다.
“군사께서 보내주신 무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운 결과 대부분의 방파들이 소산을 완료했습니다.”
“이젠 무림맹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당장 마교가 서장을 점거한 이상 사천을 비우고 떠날 수는 없다.
만일 서장을 비운 포달랍궁처럼 이곳을 비워야 한다면, 그건 상황이 그만큼 어려워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금정무문의 수장 신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만, 맹의 자금 사정이 조금 걱정됩니다.”
공위맹에서 보유하던 거의 모든 자금은 소속 방파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상태.
이대로는 얼마 못 가 맹에 머무는 무인들의 끼니조차 걱정할 처지였다.
현진학이 말했다.
“그건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초평천이 그를 보며 말했다.
“소산 작업은 군사에게 전권을 넘긴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켜봐 왔소. 군사께서는 출중한 능력으로 내 기대에 부응했지. 그런데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구려. 부족한 자금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오?”
“계획을 구상한 시점에 무림맹으로 사람을 보내두었습니다. 곧 답을 보내올 겁니다.”
“무림맹에?”
“제가 속한 흑사칠랑은 지금껏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 적은 없었습니다.”
천하 낭인 중 최강을 자랑하는 흑사칠랑은 그만큼 보수가 높기로 유명했다.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현진학은 입을 가려 웃음을 참았다.
“사천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무운전 최상층의 집무실.
단소룡과 마주 앉은 화윤이 지도를 펼쳐놓고 이야기했다.
“정보전에 너무 많은 수를 투입하면 자칫 습격을 당했을 때 피해가 너무 커. 정보는 개방에게 맡기고 그들을 전력으로 지원하는 게 옳겠지.”
“음.”
단소룡이 묵묵히 끄덕일 때였다.
“맹주님.”
문밖 위사의 목소리가 둘의 대화를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인가?”
“맹주님을 뵙고자 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
“예. 사천대사주의 사신으로 왔다고 합니다. 공위맹주의 인장이 찍힌 배첩을 가져왔습니다.”
“데려오게.”
“예.”
위사가 밖으로 나가더니 곧이어 두 개의 발소리가 복도를 나직이 울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상대의 기도에 단소룡이 반갑게 웃었다.
“하하하. 그 녀석인가?”
“누군데?”
단소룡이 화윤의 질문에 답하게 전에 문이 열리며 죽립을 눌러쓴 검사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룡.”
단소룡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어서 와라. 오랜만이구나.”
“그렇군요.”
가볍게 예를 갖춘 상대가 천천히 죽립을 들어 올렸다.
상대를 알아본 화윤의 눈이 함지박만 해진다.
“그대는…….”
“안색을 보니 그간 무탈하게 잘 지내신 듯합니다.”
옅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사내는 흑사칠랑의 검랑 서천휘였다.
그는 천하대전에선 같은 편으로 싸웠으나 전대의 흑랑 구중천이 살아있을 땐 적이 되어 싸운 적도 있는 사이였다.
단소룡이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자네가 올 줄은 몰랐군. 어서 이리 앉게.”
“감사합니다.”
서천휘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화윤이 말했다.
“흑사칠랑이 마도림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공위맹의 일까지 함께하는 건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흑사칠랑이 아닌, 사천 무림의 사자로서 이 자리에 왔으니 본론부터 꺼내야겠습니다.”
서천휘는 품에서 현진학이 써준 서찰을 꺼내며 말했다.
“당분간 사천 지부를 운영할 자금이 필요합니다.”
단소룡이 서찰을 받아 들며 묻는다.
“운영할 자금?”
“예. 서찰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단소룡이 그것을 읽는 사이 서천휘는 화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화윤이 떨떠름한 얼굴로 묻는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공위맹이 무림맹 사천 지부로 바뀌었지요.”
“그렇지.”
“당분간 저희도 사천 지부에서 일하게 된 만큼 흑사칠랑의 고용 대금도 무림맹에 청구해야겠습니다.”
화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현진학이 시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