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85
◈ 286화. 대도 서진환
굽이치는 장강을 곁에 낀 나직한 야산.
태양을 가린 구름 아래,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진눈깨비가 내려앉는다.
올해의 다소 이른 첫눈이었다.
높은 나무에 위태롭게 올라선 사내가 강변의 넓은 들판으로 손을 뻗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비치는 들판은 아군의 진영.
중지와 약지 사이로 비치는 들판은 적군의 진영.
그렇게 그들은 이곳, 장강의 강변에서 천하대전 마지막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문득 부친의 얼굴을 떠올린 황천패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조롱 섞인 읊조림은 다름 아닌 부친을 향한 것.
당시 팔황문의 힘은 오랜 암흑기에서 벗어난 화령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만일 자신이 당시 문을 이끌었더라면 지금 천하는 팔황문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무능한 아버지시여. 나를 후계로 점하고 죽었더라면 멍청한 형들을 죽일 필요도 없었을 거요. 그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자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지 그러셨소? 그랬다면 지금 천하는 내 것이 되었을 텐데 말이오.”
그립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자신은 태생부터 그의 아들이 아닌 무인으로 자라왔으니까.
안타깝다는 감정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확실히 부친의 의도대로 자라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핏줄이 이어지긴 했으니 복수는 해야겠지. 형이란 놈들이 전부 뒈졌으니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밑에서 킬킬거리는 웃음과 함께 대답이 들려온다.
“물론입지요. 주군께선 해내실 겁니다.”
훌쩍 뛰어내린 황천패가 약환에게 물었다.
“마두 놈들은?”
“개방의 감시망을 파악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적어도 우리와 접촉하기 전까진 전투를 피하고 싶겠지요. 자칫 무림맹의 화살이 온전히 그들에게 쏟아질지 모르니 말입니다.”
“늦지 않아야 할 거다.”
“그 정도로 멍청한 놈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무림맹이 남았군. 그놈들, 확실하게 소화산으로 오는 거냐?”
“개방의 추영당이 은밀히 감시하는 걸 보면 확실합니다. 놈들의 입장에선 적의 수괴들이 회동을 갖는데 오지 않을 리가 없지요.”
봉추개의 추영당은 진무립의 부탁으로 계속해서 소화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황천패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내디뎠다.
“가자.”
“예. 주군. 킬킬킬!”
바람에 흩어지는 기괴한 웃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 * *
수백 개의 봉우리로 빼곡한 산새.
앙상한 나무 사이를 빠르게 움직인 서진환이 큰 바위 뒤에 숨어 전방을 살폈다.
‘이것이 바로 그 천산인가.’
시야를 가득 채운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 숨통을 옥죄어오는 듯하다.
중원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아찔한 환경이었다.
‘상인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폐쇄적인 천산이라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식자재를 비롯해 산에 필요한 물건을 납품하는 이들이 이따금 출입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천산은 오래 왕래한 상인조차 안내 없이는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였다.
하늘을 슬쩍 쳐다본 서진환이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고수들이 전부 서장으로 빠져나갔다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거다.’
나무 사이를 빠르게 움직인 서진환은 바닥에 미세하게 남은 수레바퀴 자국을 찾았다.
나무를 타고 바퀴 자국을 쫓던 서진환은 커다란 절벽 사이로 뻥 뚫린 구멍 앞에 도착했다.
동굴이 아니다.
크게 뚫린 구멍 뒤로도 해가 비치고 있었으니까.
‘두 명.’
인근에서 은은한 마기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여기가 산문인가.’
음혼귀영공을 전개한 서진환이 나무의 그림자를 따라 은밀히 산문 옆으로 접근했다.
스스스…….
불어오는 바람 속에.
슬며시 올라선 나무 아래로 몸을 숨긴 문지기가 보인다.
‘무림맹의 위사보다는 수준이 높군.’
정확한 무공의 고하야 싸워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풍기는 기도만큼은 무림맹 위사보다 위였다.
‘이대로 기다린다.’
문지기라면 언젠가 교대를 할 터, 홀로 천산을 배회하며 내원을 찾느니 이들의 뒤를 따르는 게 훨씬 수월하다.
나무에 기대 휴식을 취하던 서진환은 두 시진이 지난 뒤에야 눈을 떴다.
‘왔다.’
정문 너머에서 눈앞의 문지기들보다 강한 마기가 느껴진다.
이어서 탐탁지 않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숨어있느냐? 여길 누가 온다고.”
정문을 당당하게 걸어 나온 사십 대 장한이 손짓하며 사내들을 불렀다.
“교대다.”
말투와 행동을 보아하니 숨어있는 문지기보다 높은 직위의 무인인 듯했다.
그제야 숨어있던 문지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 조장.”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어라.”
아직은 해가 남아있는 하늘.
조심스럽게 일어난 서진환은 들어가는 문지기를 은밀히 추격했다.
정문에서 일각가량을 나아가지 문지기들이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너무 태평한 거 아닌가?”
“조장 말인가?”
“그렇지. 행여 지금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하하. 어떤 겁 없는 놈이 감히 본 교를 공격한단 말인가?”
“혹시 모르지. 무림맹 놈들이 무인을 파견했을지도.”
“천정각주가 그리 허술한 위인인가. 그런 걱정은 말게나.”
두 사내는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일 장 폭의 잔도를 올라갔다.
조용히 그 뒤를 따라 절벽을 오른 서진환은 쩍 벌어지는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이게 뭔가?’
놀랍게도 절벽 위의 넓은 평지에는 족히 수천 채가 넘는 민가가 있었다.
상천의 산채도 대부분 산꼭대기에 있었으나 그곳을 시골에 비유한다면 이곳은 대도시였다.
놀란 가슴을 문지르며 사방을 돌아본 서진환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려 다섯 개의 봉우리에 이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중에는 채소를 키우는 밭과 목장까지 있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는 굵은 쇠사슬로 묶은 다리가 이어져 있었고 주민들은 천 길 낭떠러지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무인들이라면 강할 수밖에 없다.
넋을 놓고 주변을 돌아보던 서진환은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대화에 정신을 차렸다.
‘경계할 만한 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생각대로 전력이 될 무인 대다수가 교주와 함께 원정을 나간 상태였다.
장로와 원로들을 비롯한 일부 고수들이 머물고 있었으나 이곳에선 그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던 서진환은 가장 안쪽 봉우리에 높게 치솟은 웅장한 전각을 발견했다.
‘태청전(太廳殿).’
태청전이라 이름 붙은 전각의 좌우로 그보다 조금 낮은 전각이 호법을 서듯 세워져 있었다.
‘확실하다. 저곳이 바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목표한 장소는 확실히 찾았다.
그러나 그와 다른 문제가 서진환을 괴롭혔다.
‘어떻게 건넌다.’
건너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다리뿐이다.
그것도 양쪽에 한 명씩 무인이 지키고 있었다.
제아무리 음혼귀영공으로 눈을 속일지라도 다리의 흔들림 없이 건너는 건 불가능했다.
은밀히 움직여 다리 앞에 도착한 서진환이 건널 방법을 찾을 때였다.
바로 뒤에서 커다란 물통을 진 사내가 다리 앞에 나타났다.
다리를 지키던 무인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슬쩍 길을 비켜준다.
‘이때다!’
물지게를 진 사내가 출렁이는 다리에 발을 올리는 찰나의 순간, 서진환의 신형이 구렁이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흔들리는 다리 밑으로 스며들었다.
다리 밑에 붙자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안개가 등 뒤로 펼쳐진다.
‘실수하면 죽는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집중력이 극도로 활성화된다.
서진환은 사내의 걸음에 맞춰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 위를 걷던 사내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흔들리지.”
바람이 불어도 버틸 수 있게 단단히 묶은 다리가 평소보다 더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멈칫한 사내는 빠르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있던 무인이 사내를 알아보고 말했다.
“어서 오게. 청소인가?”
“예. 위사님.”
“태청전은 교주께서 돌아오시기 전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네.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오늘은 진환각과 운별각만 치우고 가겠습니다.”
“그러시게.”
사내가 다리를 완전히 넘어서는 순간, 절벽 끝을 잡은 서진환이 무인의 등 뒤로 빠르게 올라섰다.
“조만간 다리 정비를 한번 해야겠습니다. 오늘따라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알겠네. 위에 보고해두지.”
가볍게 묵례한 사내가 좌측 전각으로 들어가는 사이,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서진환은 어느새 태청전의 담장을 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전각을 살핀다.
‘기관은 없나.’
은무대의 수련과정에서 기관장치를 파악하고 해제하는 것은 질릴 정도로 해왔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서도 기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침략도 허용하지 않은 곳에 기관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들이 기관을 대신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풍기는 기운은 이곳에 오기까지 느꼈던 것 중에 가장 강렬하고 매서운 마기였다.
‘하지만 내가 감당하지 못할 기운은 없다.’
서진환은 상천의 천주를 지키는 은무대의 수신호위.
상대가 약한 게 아니라 그의 능력이 상대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서진환은 작은 돌 뒤에 넙죽 엎드린 채, 서두르지 않고 어둠을 기다려 행동을 개시했다.
전각의 뒤편으로 은밀히 움직인 서진환은 통풍을 위해 작게 열린 창문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무려 오 장 이상 치솟은 천장.
족히 수백 명은 들어설 법한 넓은 실내.
이곳은 천마신교가 초대 천마이자 신으로 섬기는 마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
제법 오래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곳곳에 쌓인 먼지가 가득하다.
교주가 외부에 머물 땐 절대 문을 열 수 없는 규칙 때문이었다.
어둠 속, 반짝이는 서진환의 눈동자가 제단 위를 향했다.
‘저거다.’
사뿐히 몸을 날린 서진환이 단숨에 제단 위에 올라섰다.
* * *
칠흑 같은 어둠 속.
달빛마저 가려진 숲속의 작은 공터에 시꺼먼 인영들이 속속 모여든다.
“남동쪽 백 장 밖에 하나.”
“동쪽 칠십 장 밖에 하나.”
“북동쪽 백 장 밖에 하나입니다.”
천마신교 천정각 소속, 비흔대 사조장 영창이 이마의 검상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제법 정교하게 감시망을 만들었군.’
이곳 서천림(西天林)은 서장에서 대설산맥을 거치지 않고 중원에 들어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할 숲이었다.
마차가 다니는 탁 트인 길도 있었으나 들키지 않고 그곳을 지날 수는 없었으니까.
눈 덮인 대설산맥을 지날 수 없는 이상 멀리 돌아가지 않으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그 사실을 정확히 아는 개방은 이곳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영창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일단 돌아가자.”
“예.”
몸을 돌린 그들이 영창을 필두로 일사불란 퇴각을 개시했다.
백여 명의 비흔조가 확보한 정보는 곧장 천정각주 임화교에게 보고됐다.
지도를 펼친 임화교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차피 이만이라는 숫자가 완벽하게 종적을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화산에서 회동을 마칠 때까지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 전에 들킨다면 무림맹이 가만있을 리 없다.
회동도 없이 전투부터 벌인다면 모든 이득은 복령천이 보게 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지도를 챙긴 임화교는 곧장 교주 장천무를 찾았다.
“교주님. 지금 움직여야겠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던 장천무가 한쪽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설명하라.”
“서천림에 개방의 거지 이천이 깔려있습니다. 감시가 철저하다곤 하나 본 교에는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나눠서 이동하자는 말이냐?”
“교주님을 비롯해 감시를 통과할 수 있는 고수들이 먼저 서천림을 통과해 황하 이북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임화교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일부를 돌려 감시망의 한 축을 공격할 겁니다. 마인의 수가 적고 해볼 만하다고 여기면, 거지들은 죽어가는 동료를 외면하지 않고 도우러 올 겁니다.”
“음.”
“그렇게 감시망이 무너진 사이 남은 병력이 빈 곳을 돌파해 교주님의 뒤를 따를 겁니다. 거지들을 공격한 마인들을 서천림에 남겨 허장성세를 유지한다면 한동안 놈들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장천무는 고민 없이 일어나 장포를 걸쳤다.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