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89
◈ 290화. 전운이 감도는 무림
서천림에서 보내온 두 통의 서신이 비각을 발칵 뒤집었다.
“부각주가…….”
서신을 확인한 제갈문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처음 육봉개가 보낸 전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과 한 시진 만에 다시 도착한 동초개의 전서는 지금 자신들이 전쟁을 하고 있음을 되새겨주었다.
제갈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읊조렸다.
“호위라도 데려갔더라면…….”
혼자 빠르게 다녀오겠다는 적모개를 그대로 보낸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다.
개방에게 정보를 일임한 것은, 복령천이라는 가까운 적이 있는 이상 맹의 고수를 함부로 변경에 파견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적이 별동대를 보내 외부에 파견된 고수를 하나씩 암살한다면 전쟁이 더욱 힘들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것이 개방에게 정보를 일임한 이유였고 적모개가 호위도 뿌리치고 홀로 간 이유였다.
전서를 관리하는 조방의 이륭이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군사께서 자릴 비우신 지금…….”
진무립의 서신으로 복령천의 무인들이 강남으로 향했다는 걸 알게 된 그가 직접 움직인 것이다.
일선에 진무립이 있고 맹에는 믿을 만한 수문화가 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우선 부군사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서신의 내용은 당분간 함구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부하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예. 각주님.”
비각을 나선 제갈문은 즉시 군사부로 달렸다.
위사들의 예를 받는 둥 마는 둥 한 제갈문이 빠르게 계단을 올라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부군사.”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친 채 생각에 잠겨있던 수문화가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입니까?”
“서천림에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수문화가 미간을 좁혔다.
“또?”
육봉개가 서신을 보내온 지 한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도착한 서신에 좋은 내용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동초개가 보내온 서신입니다. 부각주가…….”
제갈문이 말끝을 흐렸으나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거 주군께서 아시면 크게 낙심하시겠는데.’
적에겐 단호하고 자비가 없으나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한 게 진무립이다.
그런 이가 적모개의 죽음에 슬프지 않을 리 없다.
수문화는 손을 들어 제갈문의 입을 막았다.
“슬퍼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서신부터 봅시다.”
제갈문은 즉시 동초개가 보낸 서신을 건넸다.
한 글자 한 글자 빠르게 읽어간 수문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마교가 감시망을 흔들고 서천림을 돌파했다고?’
서신에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동초개는 지금쯤 사천에 연락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만일 상대가 회동을 앞당겼다면 먼저 출발한 진무립과 태종무단은 이만이 넘는 마인들의 공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회동이 앞당겨진 걸 알고 계실까?’
확신은 없어도 복령천이 움직인 순간 짐작은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화무단이 강남으로 향했음에도 태종무단을 소화산으로 부른 것일 테니까.
하지만 조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화윤을 대신해 군사부를 책임진 이상 변수에 대응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었다.
‘제법 머리를 쓰는구나.’
회동의 앞당긴 게 복령천의 군사라면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닌 게 분명하다.
수문화는 지도를 접었다.
“준비합시다. 지금 당장.”
제갈문이 영문 모를 얼굴로 물었다.
“무슨 준비입니까?”
“이대로는 자칫 태종무단이 고립될 수 있습니다.”
벌떡 일어난 수문화가 문을 열었다.
“맹주께 출정 허가를 구할 겁니다. 반 시진 안에 출발하도록 준비하세요.”
제갈문을 뒤로한 수문화는 즉시 단소룡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무림맹에 비보가 전해지기 며칠 전.
근거지를 떠난 복령천의 무인들은 어느새 호광성에 도착한 상태였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가득한 산중의 골짜기.
겨울을 맞아 눈 덮인 무당산의 전경이 황홀하게 눈에 비친다.
주변을 둘러본 주유성이 말했다.
“여기서 쉬어간다.”
휴식과 잠을 최소화하며 이곳까지 달려왔다.
제아무리 천하를 뒤집을 고수일지라도 장기간의 강행군에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유성의 명에 부하들이 일사불란 자리를 잡고 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먼저 회복을 마친 운화결의 곁으로 오사령 자현이 다가왔다.
“자네. 강남에 다녀온 적이 있는가?”
“없다.”
“이런. 사내로 태어나 강남의 절경 한 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니 참 아쉬운 일이로군.”
“가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자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하하하. 소싯적에 항주와 소주를 둘러본 적이 있었네. 노을 진 동정호의 전경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구먼.”
그때 이사령 곽인평이 다가왔다.
“회의다. 집합해라.”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머쓱해진 자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허. 가보세나.”
곽인평을 따라 커다란 바위 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십이사령과 백화무단주 양무화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을 쳐다본 주유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앉아라.”
그들이 착석하자 주유성은 품에서 약환이 준 서신을 꺼냈다.
“임무를 하달하겠다. 곽인평.”
오늘의 주유성은 천주 황천패의 대리인.
곽인평이 포권을 취하며 답한다.
“예.”
“네 목표는 포중현의 소청문이다.”
“명을 받듭니다.”
주유성은 이어서 삼사령 평사군을 찾았다.
“평사군.”
“예.”
“너는 철인방을 지워라.”
평사군이 절도 있게 예를 갖추며 고개 숙인다.
“명을 받듭니다.”
차례로 십이사령에게 약환의 명을 전한 주유성은 백화무단주 양무화를 바라보았다.
“화령은 강남 무림의 버팀목이자 기둥이다. 강남의 방파들이 멸문한다면 화령에선 십이사령을 잡기 위해 무인들을 파견할 수밖에 없다. 너는 하루를 기다려 화령도에 남은 자들을 몰살시켜라.”
양무화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유성은 마지막으로 운화결을 바라보았다.
“너는 사사령과 함께 움직인다.”
“그게 군사의 명령인가?”
“내 판단이다.”
“그렇다면 싫군.”
주유성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싫다고?”
운화결이 말했다.
“나는 그대와 함께 가겠다.”
“굳이 나와 함께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초 나는 진무립을 죽이기 위해 모욕을 견디고 살아 돌아왔다. 그런데 그놈이 강남에 나타날 것 같지는 않군. 그놈과 싸우지 못할 바엔 당신 곁에 남아 가장 큰 싸움을 맡아야겠다.”
“…….”
짧은 정적이 지난 뒤 삼사령 평사군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실력도 모자람이 없겠다 원대로 해주는 게 어떤가?”
지난 몇 달간 운화결과 수도 없이 비무를 해온 평사군은 그에게 제법 정이 든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주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는 이어서 십이사령을 둘러보며 말했다.
“임무를 성공했다면 들키지 않게 우회해 놈들보다 먼저 화령도에 모여라.”
이사령 곽인평이 물었다.
“혹시 모를 변수가 발생한다면?”
열 곳이 넘는 방파 중 한두 군데 변수가 생긴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주유성은 망설임 없이 약환의 지시를 전했다.
“무리할 것 없이 백화무단과 합류한다. 이것으로 군사의 명은 모두 끝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무화를 쳐다봤다.
“화령을 중심으로 뭉친 강남은 정보의 전달이 빠르다. 단원 일부를 대치현에 보내 소문을 수집하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야 할 거다.”
“그러지.”
“마지막 휴식이다. 두 시진 뒤에 움직일 테니 충분히 쉬어둬라.”
회의가 끝나자 운화결은 바지춤을 붙잡고 무리에서 잠시 이탈했다.
주변을 살핀 운화결은 미리 준비해둔 손바닥만 한 목판을 꺼냈다.
‘소청문. 철인방. 장성문…….’
검지 끝으로 쏟아지는 미세한 기운이 목판에 또렷한 글자를 만들어간다.
빠르게 계획을 적은 운화결은 남은 만리추종향을 자신의 몸에 묻혔다.
일사령 주유성에게만큼은 만리추종향을 묻히지 못한 까닭이다.
운화결이 굳이 그와 함께 가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다.’
목판을 숨긴 운화결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무리에 합류했다.
* * *
한 무리의 시꺼먼 바람이 깊은 산중을 화살처럼 질주한다.
고저 차이가 심한 산 능선을 지날 때도,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지나칠 때도 상천의 무인들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추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하빈의 등에 업힌 당우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알았다.”
그녀는 즉시 방향을 틀어 높은 언덕을 단숨에 뛰어내렸다.
그 뒤로 상천팔기와 은무대가 빠르게 따라붙는 가운데 당우가 미안한 듯 말했다.
“제가 좀 무겁죠?”
복령천 무인들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따라잡기에 당우의 신법은 한계가 있었다.
이하빈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문제없다.”
당우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뒤를 따르는 무인들 사이에는 의외의 인물도 섞여 있었다.
“힘들면 내가 대신 업을까?”
싱긋 웃으며 이하빈에게 말을 거는 사내는 바로 천하 무림의 대군사 화윤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화윤이 웃으며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 말하게.”
몇 개의 골짜기를 더 지난 그들은 복령천이 휴식을 취하다 사라진 골짜기에 도착했다.
발을 멈춘 이하빈이 당우를 내려두고 전원을 소집했다.
“만일 운화결이 그들과 함께한다면, 휴식을 취한 장소에 뭔가 남겼을지도 모른다.”
“수색하겠습니다. 채주님.”
은무대와 상천팔기가 일사불란 흩어지자 화윤은 내심 감탄했다.
‘상당히 훈련이 잘되어 있군.’
상천팔기뿐만 아니라 은무대의 수준도 단소룡의 호위대보다 명백히 한 수 위였다.
진무립이 얼마나 이들을 공들여 가르쳤는지 알 수 있었다.
은수련은 당우에게 말했다.
“소협은 움직일 것 없이 계속해서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하세요.”
“예.”
당우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가운데, 금성우가 목판을 들고 돌아왔다.
“부대주. 바위틈에 이게 있었습니다.”
달빛에 비친 목판에는 깨알 같은 글자로 상대의 계획이 적혀 있었다.
화윤이 손을 내밀자 금성우는 그에게 목판을 건넸다.
“오.”
빼곡한 글씨에는 강남에 도착한 복령천의 계책과 십이사령의 정보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회동이 앞당겨졌다?’
변수가 발생하자 그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였다.
‘혹시 광룡은 이걸 짐작하고 태종무단을 소화산으로 부른 건가?’
태종무단은 백화무단을 노리고 구성한 정예.
그런 자들을 강남이 아닌 소화산으로 부를 때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었다.
어차피 지금 연락해도 늦을 것이다.
화윤이 은수련을 보며 말했다.
“운화결을 살려둔 이유가 있었군.”
“주군의 결정은 항상 옳습니다.”
“그래. 자네 주군이 대단한 건 나도 잘 알지.”
진무립이 개방의 추영당에게 소화산을 주시하게 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그 덕분에 복령천의 군사가 마교와 무림맹의 상잔을 꾀하고 후방을 노리게 되었으니까.
북쪽에서 약간의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진무립과 단소룡이라면 잘 대처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북쪽의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강남에 집중한다.
‘어쨌든 이 정도로 판을 깔아줬으면 완벽으로 답하는 게 내 역할이지.’
천하대전 때는 모든 계획을 자신이 주도했다면 이번 전쟁의 주인공은 단연코 진무립이다.
지금의 자신은 그가 만든 계획에 정교함을 더할 뿐이었다.
그때 당우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놈들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졌던 무인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은수련이 화윤을 보며 판단을 요구했다.
“어느 쪽을 쫓아갑니까?”
화윤이 물었다.
“내가 상천의 무인들을 잠시 빌릴 수 있겠나?”
이하빈이 답했다.
“필요하다면.”
“고맙군.”
화윤은 이하빈을 대신해 당우를 등에 업으며 말했다.
“우린 화령도로 간다. 나머지는 가면서 설명하지.”
잠시 멈췄던 행보가 재개되자 거련채주 연길상이 당부하듯 말했다.
“소화산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틴다면 주군께서 태종무단을 이끌고 오실 거요.”
“누구더러 버티라고 하는 거야?”
미간을 좁힌 화윤이 어둠 속 전방으로 눈을 돌렸다.
“난 화윤이야.”
과거, 신룡의 곁에서 천하를 구한 대군사 화윤.
빠르게 회전하는 그의 머릿속엔 이미 강남에 스며든 복령천을 일소할 계획이 정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