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92
◈ 293화. 불타오른 장원
구름이 달빛을 집어삼킨 캄캄한 밤.
적막한 어둠 속, 마을 외곽의 거대한 장원이 시뻘건 화마에 휩싸였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하늘로 솟구치기 무섭게 곳곳에서 거친 쇳소리가 터져 나온다.
“저, 적이다!”
“습격이다!”
밤하늘로 솟구치는 날카로운 비명은 곤히 잠든 마을 사람들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담장 위로 떠오른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장원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쇳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고작 일각.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이 아니었더라면 잠시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원은 적막한 정적에 사로잡혔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떨리는 눈빛을 마주한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정가보가…….”
그때 피 칠갑을 한 노인이 담장 너머로 몸을 날려 들어왔다.
“자, 장석이…….”
고개 돌린 장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보, 보주님?”
피에 젖은 노인은 바로 정가보주 정병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장석이 정병을 부축하며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오랜 세월 인망을 쌓아온 정병은 인근에선 군자로 이름난 무인이다.
그런 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정병은 한탄하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한밤중에 갑자기 정체 모를 자들이 기습을 가했네. 자네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니 그만 들어가게.”
말을 마친 정병이 힘겹게 담을 넘어 사라졌다.
타오르는 장원과 정병이 사라진 담을 번갈아 보던 장석이 떨리는 입술을 매만졌다.
그때 우측 담장 위로 추레한 몰골의 중년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보게. 장석이. 누가 다녀갔는가?”
“아아.”
담장 아래로 달려간 장석이 조금 전 상황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새벽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깊은 산속, 하늘을 슬쩍 쳐다본 팔사령 구소군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슬슬 가볼까?”
찌뿌둥한 몸을 푼 구소군이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싱글싱글 웃었다.
다섯 명의 부하들이 일제히 그의 곁으로 모여든다.
“가자.”
“예. 팔사령.”
산 능선을 따라 비조처럼 움직인 그들이 반 시진 뒤, 정가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
전방을 향한 구소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자신들의 목표가 되어야 할 정가보가 새까맣게 타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뭔 일이야?”
흑의인 한 명이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속하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서둘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처럼 몸을 날린 흑의인이 순식간에 정가보의 담을 넘었다.
불씨가 사그라드는 전각, 곳곳에 뿌려진 시뻘건 피.
새까맣게 탄 채 바닥을 나뒹구는 두 구의 시신이 눈동자에 빨려든다.
흑의인이 내부를 자세히 살피려 할 때였다.
장원의 담장 밖에서 술렁이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떡하지? 들어가봐?”
“안 되네. 섣불리 무림의 일에 개입해서 좋은 꼴을 본 자는 없었어.”
“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정가보가 정체 모를 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하네. 전부 죽고 보주께서만 가까스로 도망치신 모양이야.”
순간 흑의인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보주님께 받은 은혜가 있는데.”
“자네 말이 옳아. 일단 들어가 보세.”
흑의인에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반쯤 부서진 정문이 열리는 순간.
장원을 빠져나온 흑의인은 구소군이 기다리는 언덕으로 달려갔다.
“정가보가 정체 모를 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구소군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본다.
“뭐?”
살면서 이보다 황당한 경험은 한 적이 없었다.
대체 자신들이 아닌 누가 강남에서 정가보를 공격한단 말인가?
흑의인이 이어서 말했다.
“전부 죽고 살아남은 보주만 도망쳤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구소군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감히 겁 없는 어떤 새끼가 내 밥그릇을 뺏어간 거야?”
부하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
잠시 고민하던 구소군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돌아섰다.
“화령도로 간다. 변수가 생기면 무리하지 말고 백화무단과 합류하라는 게 지시였으니까.”
구소군을 필두로 다섯 명의 흑의인이 꺼지듯 언덕에서 사라졌다.
정가보에서 벌어진 한밤의 습격은 비단 그곳만의 일이 아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정명문의 장원을 눈에 담은 주유성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
그의 눈치를 슬쩍 살핀 운화결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화령의 군사도 보통이 아니군.’
자신이 남긴 정보를 확인했다면 회동이 정월로 앞당겨진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화산과 강남의 일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진무립도 알았을 터, 그는 황천패를 잡기 위해 북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것은 화령의 군사 화윤의 계획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 방식이 진무립이나 생각할 법한 것이었으니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든 극에 달한 자들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지.’
그때 주유성이 새까맣게 탄 시신 한 구를 발로 뒤집더니 단숨에 목을 잘라냈다.
쪼그려 앉아 잘린 단면을 확인한 주유성의 눈이 가늘어진다.
“전투가 아니군.”
굳어버린 피가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건 이미 오래전에 죽은 시신이라는 것이다.
“후후후.”
쓴웃음을 지은 주유성이 몸을 돌렸다.
“출발하지.”
운화결이 물었다.
“화령도로 가는 건가?”
“그래야겠지. 곤륭.”
“예. 일사령.”
“마을에 다녀와라. 도강할 강변에서 기다릴 테니 오는 길에 술 몇 병 구해와라.”
“예.”
흑의인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주유성은 부하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꼬박 한나절을 쉬지 않고 달린 그들이 거침없이 흐르는 장강의 한적한 강변에 도착했다.
수풀이 우거진 작은 공터에 몸을 숨긴 주유성은 부하를 기다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수 시진.
무거운 적막 속에 운화결이 하늘을 슬쩍 쳐다봤다.
‘늦는군.’
그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주유성의 명을 받고 떠났던 부하가 술병 몇 개를 들고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주유성에게 술병을 건네는 흑의인의 입술이 작게 달싹거렸다.
일순 주유성의 눈에 스쳐 간 한기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다들 앉아라.”
나직한 목소리에 흑의인들이 바닥에 앉는다.
주유성이 부하를 불렀다.
“곤륭. 네가 늦은 이유를 설명해라.”
“일사령의 명으로 양목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의 사영방도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불타올랐습니다.”
순간 운화결의 눈에 낭패한 기색이 스치고 사라졌다.
‘그것이었나.’
늦는다 싶었더니 부하를 보내 가까운 곳의 상황을 확인했던 것이다.
주유성이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목표로 했던 곳에 같은 일이 벌어졌군. 운화결. 네 생각은 어떠냐?”
“……모르겠군.”
“그런가?”
피식 웃은 주유성이 운화결에게 호리병을 던지며 말했다.
“너도 한잔해라.”
“…….”
술을 권하는 그의 전신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호리병을 받은 운화결이 미간을 좁혔다.
‘이건…….’
술병에서 주향과 함께 옅은 피 냄새가 풍긴 까닭이다.
주유성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진다.
“지금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뭐든 지금 들어서 재밌을 건 없을 거 같은데.”
“아니다. 네 녀석에겐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일 거다.”
주유성이 검파에 손을 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자네의 화가보가 불타오르던 날 말이다. 나와 주군도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
“나를 얻기 위해 일부러 화가보를 지웠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이미 약환이 자신을 시험하며 했던 말이다.
자신은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시험을 통과했었다.
주유성은 운화결을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맞는 말이지.”
“반이라고?”
“내가 머물던 은곡은 때마침 화가보의 근처에 있었네. 적도들이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와중에 우리에겐 그들의 추격을 뿌리칠 방도가 필요했지. 그게 바로 화가보를 미끼로 던지는 것이었지.”
운화결의 눈빛이 옅은 떨림을 보인다.
‘약환의 말이 진실이었단 말이냐?’
그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했던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철천지원수 밑에서 일을 해왔던 것과도 같다.
운화결은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삼켰다.
여기서 분노를 드러낸다면 절대 임교영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주유성이 말을 이어갔다.
“적의 눈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 무재가 탁월하기로 유명한 자네를 얻는 게 두 번째 이유였지. 화가보의 멸문은 말이야.”
운화결을 응시하는 주유성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연기가 제법이군.”
“…….”
“사실 그대도 알고 있었잖아? 화가보의 진실을.”
주유성의 말이 끝나는 순간 튕기듯 일어난 운화결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서걱!
순식간에 갈라진 옷자락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운화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약환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오로지 자신을 자극하기 위한 시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오늘의 배신은 복수를 위함이었나!”
벼락같은 일갈과 함께 꺼지듯 사라진 주유성이 운화결의 정면에 나타난다.
다급히 물러난 운화결은 육병백궤로 손을 뻗어 귀접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운화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아니?’
귀접을 전개했음에도 육병백궤에서 아무것도 빨려 나오지 않은 것이다.
오는 길에 주유성의 지시를 받은 구홍이 이미 속을 비워버린 것이었다.
구홍이 시선을 피하며 뒤로 슬쩍 물러나는 사이 벼락같이 쏘아진 섬광이 운화결의 어깨를 관통했다.
“크윽!”
시큰한 통증과 함께 물러나는 사이 흑의인들이 일제히 주변을 포위하며 퇴로를 차단한다.
쉬익!
생각할 틈도 없이 주유성의 검극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운화결의 전신을 압박해온다.
허공을 가득 메운 검영.
물러날 곳 없는 공터의 중앙에서.
내력을 머금은 운화결의 두 손이 허공에 원을 그려간다.
운화결이 전개한 원선지벽에 수십 다발의 검영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마치 포탄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운화결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쿨럭!”
튕겨 나가는 운화결의 등으로 흑의인의 날카로운 일검이 쏘아진다.
운화결이 거친 일갈을 토해냈다.
“고작 그런 실력으로 내 등을 노리느냐!”
몸을 비튼 운화결이 찔러오는 검신을 붙잡더니 그대로 끌어당겨 목을 움켜쥐었다.
일사령의 수하로 목숨 건 수련 과정을 이겨낸 그였으나 운화결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컥!”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다.
우두둑!
운화결은 그대로 놈의 목을 꺾고는 검을 뺏어 들었다.
그사이 방향을 튼 주유성이 가공할 기세를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슈아아아!
좌에서부터 우로, 수평하게 그어지는 검신이 부릅뜬 운화결의 눈에 빨려든다.
지면을 강하게 박찬 운화결이 허공에 몸을 띄우며 팔천영신공 소리신야검(小利迅惹劍)의 초식을 전개했다.
슈슈슈슈!
그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극한의 쾌검이 그어가는 검신을 거칠게 후려친다.
카아아아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하늘로 치솟는 사이, 주유성의 좌장이 비산하는 기파 아래로 쭉 뻗어 나왔다.
쏴아아아!
피할 틈도, 막을 겨를도 없다.
일격을 각오한 운화결이 이를 악다문 순간.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 장력이 그의 가슴을 거칠게 강타했다.
콰앙!
화살처럼 튕겨 나간 운화결의 신형이 거목을 뚫고 나가 바닥에 처박힌다.
바닥을 나뒹구는 운화결을 향해 네 명의 흑의인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운화결은 치미는 울혈을 가까스로 삼키며 튕기듯 일어났다.
좌측의 적이 둘, 우측의 적이 둘이다.
놈들이 일 장 안쪽까지 짓쳐 든 순간, 움켜쥔 운화결의 검신이 새하얀 백광을 토해냈다.
콰콰콰콰콰콰콰!
춤을 추듯 흔들리며 사방의 적을 압도하는 검초는 팔천영신공 경천검무(驚天劍舞)의 초식.
눈앞에서 휘어지는 극강의 쾌검에 흑의인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적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든 검극이 순식간에 네 명의 전신을 벌집처럼 난도질했다.
“크윽!”
억눌린 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며 달려들었던 네 명의 흑의인이 마른 짚단처럼 쓰러졌다.
“후욱…….”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살아서 반드시 임교영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생의 각오를 다진 운화결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기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