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94
◈ 295화. 습격전
빗속에 부복한 문자양이 고개를 들었다.
“화령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주변에 모여든 무인들의 전신에서 강렬한 투기가 피어올랐다.
양무화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누가 나갔느냐?”
“선두에 선 무인은 확실히 검황 천영이었습니다. 흑의를 착용한 백 명의 무인을 이끌고 포구로 향했습니다.”
당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갈까요?”
양무화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달하지 마라.”
천영과 함께 갔다면 분명 화령의 정예가 빠져나간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화령도에는 그밖에도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기다려야 한다.’
아군이 강남의 중소방파를 공격했다면 화령에서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고수들을 파견할 것이다.
십이사령을 추격한 정예가 섬을 빠져나간 뒤 기습을 가하는 게 당초의 계획.
출병한 무인들이 화령도의 이변을 알아채고 회군할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약환의 말대로 하루는 더 기다려야 한다.
양무화의 머리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조장 문자양의 부하인 조홍이 달려왔다.
“소악호(笑惡虎) 강후연, 궁황 투월초가 각기 일 백의 무인을 이끌고 섬을 나섰습니다.”
그에 이어 속속 이 조의 무인들이 돌아와 화령도의 상황을 전달했다.
탁이신과 금철운, 담대무영과 한비성을 비롯한 엄청난 고수들이 부하들을 이끌고 차례로 출병한 것이었다.
양무화는 이어지는 보고를 차곡차곡 머리에 담으며 상대의 전력을 계산했다.
‘십대고수 중 남은 자는 무결천검 검신운뿐인가.’
그의 가공할 검술은 전 중원무림맹주인 위사영에게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에 두려워할 양무화가 아니다.
‘군사의 계책은 완벽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은 것은 자신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시켜 계책에 방점을 찍는 것뿐이다.
내리는 비가 멈추고, 숨 막히는 정적 속에 새벽이 도래했을 때.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비한 양무화가 도파를 움켜쥐고 일어났다.
“움직이자.”
웅크리고 있던 백화무단이 은밀한 이동을 시작했다.
* * *
간밤의 비가 씻은 듯 사라지며 여명이 밝아오고.
짙은 안개는 새벽녘 호수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새벽이슬이 차분히 내려앉은 내총관부의 심처.
화롯불이 실내의 공기를 따스하게 데워가는 가운데, 전쟁을 앞둔 여인들이 조촐한 다과상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팔자주름이 곱게 흘러내린 나이든 여인, 내총관 이숙정이 찻잔을 손에 쥐고 말했다.
“이제 곧 시작되겠군요.”
곁에 앉아 차를 따르는 여인은 검황 천영의 아내, 남궁소소였다.
“악몽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공을 가족 다음으로 중히 여기는 그녀답게, 허리춤엔 언제든 뽑아 들 수 있는 검이 매달려 있었다.
두 사람과 마주 앉은 고운 미색의 귀부인, 화령의 안주인 백설하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과거의 망령인가요.”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안타까운 빛이 스치고 사라졌다.
수많은 피와 시신을 남기고 이룩한 오늘의 평화다.
천하에 드리운 암운이 그 평화를 짓밟으려 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 심히 걱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 여인에게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겐 참혹한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백설하가 이숙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의 숫자는 적지만 분명 섬에 남은 아군보다 강합니다. 그들이 다리를 건넌다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찰나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때를 놓치면 군사의 계획이 어긋나게 되겠지요.”
이숙정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일다경만 버티면 충분히 계획을 이행할 수 있어요.”
다시 한번 대답을 듣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화령의 큰 어른인 그녀의 미소엔 사람을 안심케 하는 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남궁소소가 백설하에게 말했다.
“대부인. 지난 경험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지난 천하대전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화령도에 침투한 살성 음조성은 단소룡을 묶기 위해 백설하를 납치하려 했었다.
다행히 그녀가 기지를 발휘해 살성을 제거할 수 있었으나 모두의 간담이 서늘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백설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릅니다.”
신룡의 아내로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한 그녀였으나 단 한 번도 손에서 검을 놓은 적은 없었다.
누가 오든 결코 쉽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세 여인이 조용한 담소를 이어가고 있을 때.
이른 잠에서 깬 백채륜은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 한적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좋군요.”
함께 걷는 사람도,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음에도 백채륜은 언제나처럼 미소 띤 얼굴로 섬을 돌아보았다.
그때 등 뒤의 발소리와 함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십니까?”
백채륜이 돌아본 곳에는 화령의 소영주 단자룡이 서 있었다.
백채륜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저 발길 따라 걷는 중입니다.”
단자룡이 웃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럼 저도 발길 따라 걸어보지요.”
젊은 나이에 칠군의 일원이 된 백채륜과 최강의 후기지수로 알려진 단자룡은 한때 무수한 비교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 두 무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막한 거리를 함께 거닐기 시작했다.
백채륜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섬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언젠가 우리 상천도 이처럼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화령이 그랬던 것처럼, 상천도 꼭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겁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아늑한 섬이 한눈에 보이는 태천각의 처마 끝에서.
함께 걷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태평하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는 인물은 바로 양산채주 시평이었다.
큰 전투를 앞두고 긴장감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내려와서 밥 먹어라.”
밑에서 거련채주 연길상이 걸걸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밥?”
훌쩍 뛰어내린 시평이 사뿐하게 그의 곁에 착지했다.
인상을 쓴 연길상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악.”
머리를 감싸 쥔 시평이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뭡니까?”
연길상이 큰 눈을 부라리며 타박한다.
“손님으로 찾아와서 주인집 지붕에 올라가는 놈이 어디 있냐?”
“…….”
대꾸할 말이 없다.
시평의 목덜미를 끌고 태천각을 나선 연길상이 화룡채주 마일관과 마주쳤다.
그 곁으로 나란히 다가오는 검산채주 대중경이 보인다.
“언제 왔나?”
화윤의 부탁으로 조금 먼 곳에 갔던 대중경은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섬에서 볼 수 없었다.
대중경은 언제나처럼 짧게 답했다.
“조금 전에.”
연길상이 말했다.
“따라와라. 밥 먹게.”
끌려가는 시평이 민소매를 입은 마일관을 쳐다보며 물었다.
“안 춥습니까?”
마일관이 히죽 웃었다.
“춥다고 덮으면 이 아름다운 근육이 안 보이잖아.”
“…….”
“그보다 복호채주 못 봤냐?”
연길상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못 봤다. 무슨 일이 있나?”
“그건 아니고 새벽부터 보이지 않길래.”
“곧 오겠지. 가자.”
네 사람이 식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 이하빈은 화령도의 망루에 올라 뿌연 안개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번을 서던 젊은 무인, 장홍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몸을 떨었다.
‘대체 여길 왜 올라온 거야.’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오한이 드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생사대적을 앞둔 사람처럼 냉기가 풀풀 풍기는 그녀에게 은연중에 압도된 것이다.
아직 전투는커녕 적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빛은 적진 한복판에 있는 사람처럼 날카로웠다.
“너.”
짤막한 말에 움찔한 장홍이 그녀를 돌아본다.
“예?”
이하빈의 시선은 여전히 뿌연 안개 너머를 향해 있었다.
“타종을 치도록.”
간단한 말을 남긴 그녀가 훌쩍 뛰어내리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
안도한 장홍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다.
“잠깐. 타종을…… 치라고?”
고개를 갸웃한 장홍의 눈이 서서히 커져간다.
“버, 벌써?”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장홍이 다급하게 줄을 당기며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댕.
단 한 번의 종소리였으나 적막에 사로잡힌 섬에서 그 소릴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각 건물의 문이 기다렸다는 듯 활짝 열렸다.
문을 박차고 튀어나온 백설하가 눈앞에 부복한 무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내총관부를 돕도록 하세요.”
십여 명의 호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예. 대부인.”
뒤따라 나온 이숙정이 서둘러 내총관부의 전각으로 몸을 날렸고.
남궁소소의 따스한 손길이 백설하의 어깨에 닿았다.
“가시지요.”
오늘 그녀가 맡은 임무는 백설하의 호위였다.
“그래요.”
시선을 교환한 두 여인이 목표한 장소로 몸을 날렸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화령도의 아침을 뒤흔들었다.
섬과 육지로 이어진 유일한 길.
선천교를 단숨에 돌파한 양무화와 백화무단이 산의 정상으로 통하는 계단에 접어들었다.
그들이 마치 산사로 이어지는 듯한 계단을 절반쯤 올랐을 때였다.
계단 위로 수십 명의 무인이 나타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적이다!”
상대가 나타나자 양무화가 즉각 명을 내렸다.
“일조. 돌파해라.”
“예.”
나직한 대답에 이어 열 명의 무인들이 화살처럼 튀어나간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공할 신법에 앞을 막아선 무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백화무단원들의 무공은 천하오대표국의 대표두에 필적할 정도.
그 사실을 미리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직접 마주치니 상대의 강렬한 살기에 피부가 아려올 지경이다.
이들은 말단 무인조차도 화령의 대주를 능가하는 실력자들이었다.
“막아야…… 컥!”
앞으로 나선 청의인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가슴이 꿰뚫렸다.
“영모!”
바로 옆의 동료가 일격에 목숨을 잃자 당황한 무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갈 때였다.
“팔자 한번 좋구나. 한눈을 팔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이냐?”
일조장 경형의 나직한 조소가 그들의 가슴을 비수처럼 파고들었고.
쏴아아!
그의 검신에서 솟구친 십여 줄기 섬광이 순식간에 열 명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그에 맞선 무인들이 다급하게 병기를 뽑아 들었다.
카카캉!
날카로운 세 개의 쇳소리가 뿌연 안개 위로 솟구쳤고.
“크악!”
쏟아지는 비명과 함께 일곱 명의 무인이 쓰러지며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경형과 일조원들은 막아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순식간에 정상까지 돌파했다.
초전의 강렬한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계단 위에 올라선 양무화가 섬뜩한 한 마디를 읊조린다.
“화령도.”
살기충천한 그의 눈에 담긴 것은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요새.
천하제일방파 화령의 보금자리인 화령도의 전경이었다.
웅장한 도시의 거리로, 화령의 무인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온다.
‘아버지. 어머니.’
빛나는 양무화의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가 떠오른다.
‘이 땅을 피로 적셔 두 분의 한을 풀어드리겠소.’
지난 삼십여 년간, 오늘만을 기다리며 복수의 칼을 갈아왔다.
불타는 가슴 속 열망을 차가운 머리로 식힌 양무화의 손이 도파를 움켜쥐었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는 그의 뒤를 따라 구십여 명의 무인들이 지독한 살기를 표출한다.
더 이상 가릴 것도, 감출 것도 없다.
남은 것은 사력을 다해 눈앞의 적을 도륙하고 화령도를 함락시키는 것뿐이다.
“백화무단.”
단주의 나직한 부름에 단원들은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어 화답했다.
도극으로 쏟아지는 적을 겨눈 양무화가 오연하게 턱 끝을 들어 올렸다.
“몰살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