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0
◈ 30화. 환영식
이틀 거리를 앞당긴 진무립 일행은 다음 날 저녁 평창현에 도착했다.
파중현 못지않게 제법 넓은 거리.
말을 끌고 들어선 광룡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진무립이 유대하를 불렀다.
“이곳에도 무림 방파가 있나?”
“예. 묵혈방(墨血房)이라는 흑도방파와 금정무문(金正武門)이라는 이름의 문파가 있습니다. 둘 다 문도 수 삼백 정도의 작은 방파입니다.”
정사의 구분이 없는 세상이나 두 방파의 차이는 제법 큰 편이다.
흑도에 속한 이들은 온갖 더러운 일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하는 말을 덧붙였다.
“금정무문은 사천맹(四川盟)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사천맹이라.”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집 앞마당에 우르르 몰려왔으니 쉬다 가려면 언질은 줘야겠지. 금정무문에 가서 하루만 쉬어 가겠다고 전해라. 마을에서 가장 큰 기루에서 머물 것이다.”
“알겠습니다.”
유대하가 떠나자 진무립은 광룡대를 이끌고 대로 중앙의 가장 큰 기루, 유월루(流月壘)에 도착했다.
험상궂은 용추가 가장 먼저 입구로 들어서자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인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그는 아주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묵직한 전낭을 꺼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응?”
얼떨결에 전낭을 받아든 용추는 묵직한 손맛에 껄껄 웃었다.
“껄껄껄! 경우가 밝군. 자네, 앞으로 크게 되겠어.”
“감사합니다.”
그때 입구로 들어온 진무립이 용추의 어깨를 툭 쳤다.
“뭐냐?”
“저를 보더니 갑자기 돈을 주던데요?”
용추의 앞에서 잔뜩 주눅 든 총관을 보니 상납금을 걷으러 온 줄 아는 모양이다.
진무립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야. 앞으로 어디 갈 때 먼저 들어가지 마라.”
용추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죠?”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새끼야.”
진무립은 용추의 전낭을 빼앗아 총관에게 돌려주었다.
“묵혈방에서 오신 게······.”
총관은 마도림의 표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도림의 무인들은 평창현에 들르는 일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 파중현의 정가장이 있기 때문이다.
진무립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야.”
“소, 송구합니다.”
“보아하니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는 모양이군. 오늘 하루 우리가 이곳을 빌려야겠다.”
“통째로 빌리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래. 얼마면 되겠나?”
총관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은자 삼백 개는 주셔야 합니다.”
조장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들이 한 달에 받는 은자가 스무 개다.
일 년 치 봉급을 모아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부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무립은 자신의 전낭을 확인했다.
내림원에서 받은 활동비가 은자 백 개.
한 번의 임무에 사용하기론 넉넉한 편이었으나 자린고비 같은 상호군의 성격상, 사용 내역을 보고받고 남은 돈은 칼같이 회수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은자 백만 개짜리 전표를 내밀 수도 없는 일.
진무립은 대뜸 단려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의문 섞인 시선으로 물었다.
“뭐죠?”
“총단에 돌아가면 이자까지 쳐서 줄게.”
“······.”
한숨을 내쉰 단려화는 연소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하는 수 없군요. 삼 할의 이자까지 쳐준다고 하니까 손해 보는 건 아니에요.”
진무립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언제 삼 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무립의 손에 은자 오백 개짜리 전표가 올려졌다.
연소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삼 할의 이자면 육백오십 개가 되겠습니다. 대주.”
“도둑놈.”
혀를 내두른 진무립은 전표를 총관에게 건넸다.
전표를 확인한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한 터라 잔돈이 부족합니다. 거스름돈은 내일 아침에 돌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잔돈은 필요 없다. 대신 이들에게 최상의 대접을 해야 할 것이다.”
진무립이 통 큰 배포를 보이자 광룡대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입이 귀에 걸린 총관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일차로 이곳에서 한 잔씩 할 것이니 우선 술부터 내와라.”
“예.”
총관이 물러가자 진무립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앉아라! 오늘은 내가 한 잔씩 따라주마!”
“예!”
우렁찬 목소리가 일 층의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은 가운데 일꾼 여럿이 술 동이를 들고 나왔다.
진무립은 탁자를 옮겨 다니며 부하들의 빈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첫 임무, 수고 많았다.”
잔을 받은 풍연이 어쩔 바를 모르자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둔 것이냐?”
“죄송합니다.”
“너도, 그리고 나도 사람이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한다. 이번 실수에서 뭔가 느낀 점이 있다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일이다.”
대검문에선 서북로를 빼앗긴 뒤 목이 날아간 성호각주처럼 한 번의 실수로 목이 날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진무립은 타박하긴커녕 도리어 위로를 해주며 다음에 더 잘하라고 한다.
그 모습에 광룡대원들은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풍연의 잔이 가득 채워졌다.
“감사합니다.”
어깨를 두드려준 진무립은 조장들의 잔을 채우고 다음 탁자로 옮겨갔다.
진무립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전유가 민머리를 스윽 문지르며 말했다.
“마도림에 남길 잘 한 것 같으이.”
붉어진 눈시울을 감춘 후영이 애써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네놈은 갈 곳도 없었잖아.”
한경이 후영을 툭 쳤다.
“그 말은 틀렸어.”
“뭐 인마. 누가 늙은이처럼 점잖은 척만 하는 놈을 받아주냐?”
“젊고, 힘 좀 쓰고, 머리털도 없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천하의 절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다.”
“······.”
민머리를 붉힌 전유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싸울까?”
“아니.”
조장들이 투닥거리는 사이 진무립은 여인들의 자리에 도착했다.
단려화가 물었다.
“우리도 주는 건가요?”
“일단은 내 호위잖아?”
“그렇군요. 주세요.”
진무립이 씩 웃었다.
“잘 부탁한다.”
단려화의 잔이 채워지자 연소정도 하는 수없이 잔을 들었다.
“근데 네 이름이 뭐였더라.”
생각해보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소연입니다.”
“그렇다면 본명은 연소정인가?”
뜨끔한 연소정의 눈썹이 꿈틀하는 사이, 어느새 그녀의 잔을 채운 진무립은 탁자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잔을 들어라!”
“자, 잠깐!”
금정무문에 갔던 유대하가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부대주가 빠졌는데 치사하게 이럴 겁니까?”
“하하하. 어서 와라.”
뒤늦게 유대하가 잔을 채우자 진무립이 말했다.
“환영식치고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 환영한다. 앞으로도 잘 해보자!”
“예!”
뜨거운 외침이 실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첫 잔을 시작으로 사방이 떠들썩해지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부하들과 어울리던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주 앉아있던 유대하가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아무리 격의 없게 대한다 해도 내가 있으면 놀기 불편할 수밖에 없지. 나는 이 옆의 객잔에서 쉴 테니 너는 조장들과 별실에서 마셔라.”
“그냥 계셔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여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래.”
진무립이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 두 여인도 뒤를 따랐다.
유대하는 총관을 불렀다.
“이들을 각자 방으로 안내해주게.”
“알겠습니다.”
기루를 나서자 시원한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조용히 곁을 따르던 단려화가 물었다.
“유흥에는 취미가 없으신가요?”
“늘 문제가 생기더군.”
“문제?”
진무립이 턱을 슥 매만졌다.
“여인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못 가게 하는 통에 피곤하단 말이야.”
“······.”
단려화는 말을 잃었고 연소정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수려한 용모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왠지 재수 없는 말이다.
뒤늦게 진무립을 따라온 용추가 연소정을 보며 씩 웃었다.
“나도 유흥에는 취미가 없다.”
“안 물었어요.”
“응.”
실소를 머금은 진무립이 두 여인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우린 따로 한잔하자고.”
“놓으시죠.”
두 여인이 동시에 손을 뿌리치고 앞서 나가자 진무립은 바쁘게 뒤를 따랐다.
“한잔 안 할 거야?”
***
“마도림의 광룡대가 유월루에 머문다고?”
위사의 보고에 금정무문의 문주 신환이 서책을 접고 일어났다.
“예. 문주님. 광룡대의 부대주라는 사람이 찾아와 하루를 머물고 갈 것이라고 정중히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그들의 대주는 객잔에 머물기로 한 모양입니다.”
“이거 참 공교롭구나.”
사천맹(四川盟)의 일원인 금정무문은 묵혈방과 앙숙 관계다.
그런데 뇌물에 넘어간 당가의 아들놈이 맹원도 아닌 묵혈방의 뒤를 봐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비록 세상모르고 철없기로 유명한 놈이지만 그래도 당가의 핏줄.
몇 번을 사천맹에 말해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검문을 흡수한 마도림에 찾아가려 했는데 때마침 그들이 온 것이다.
“음.”
탐스러운 수염을 매만지며 침음한 신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객잔에 다녀와야겠다.”
***
금정객잔의 별채.
고즈넉한 정자 옆, 아담한 연못의 달빛이 제법 운치 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단려화의 시선이 정자로 향했다.
술잔을 앞에 두고 홀로 앉은 진무립에게서 왠지 모를 고독함이 느껴진다.
‘상천의 천주. 팔천영신공의 전인.’
그에겐 온 세상이 잠재적인 적이다.
상천이 걷는 곳은 살얼음이 얕게 깔린 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길을 자처해서 걷는 진무립이니 고독한 모습도 이해가 된다.
그녀는 어렵게 발을 내디뎠다.
어렵게 내린 결정인 만큼 곁을 따라다니는 동안 최대한 그를 파악해야 한다.
소리를 들은 진무립은 정신을 차렸다.
“씻을 때도 역용을 하나?”
“역용을 하는 순간과 푸는 순간을 제외하면 내력 소모가 없으니까요. 이레에 두 시진만 원래 얼굴로 돌아가면 돼요.”
“그거 아쉽군.”
“뭐가요?”
“우리 어머니만큼 예쁜 여인은 처음 봤거든.”
“······.”
미모에 대한 칭찬은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으나 이번에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정자에 올랐다.
“한 잔 주세요.”
“아쉽게도 잔이 하나밖에 없는데.”
“상관없어요.”
진무립은 자신의 잔을 채운 뒤 단려화에게 건넸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느릿한 속도로 잔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나직한 목소리가 오가던 가운데 진무립이 물었다.
“네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런 게 있어야 하나요?”
“꿈이라는 게 있지 않나?”
“내 꿈은 이미 아버지께서 다 이뤄놓은 탓에 특별한 건 없네요.”
천중일화(天中一花)라는 거창한 별호와 달리 그녀의 꿈은 소박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하게 사는 삶.
화령도(和嶺島)라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철의 성안에선 지금도 가능한 삶이다.
그녀는 그런 평화로운 삶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랐다.
그걸 위해 진무립을 따라온 것이고.
이번엔 단려화가 물었다.
“대주의 꿈은 역시 상천인가요?”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들을 거뒀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쉽지 않은 꿈이로군요.”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나?”
“틀린 말은 아니네요.”
다음 말은 전음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상천의 천주가 마도림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진무립의 눈에 아련함이 떠올랐다.
“어머니. 어머니가 진 빚을 갚으러.”
“빚?”
잠시 옛 생각을 하던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빚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구나. 가출한 어머니 대신 일하러 왔다고 생각해줘.”
단려화에게 잔을 넘기던 진무립의 시선이 별채로 향했다.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연소정이 보인 까닭이다.
“노려보느라 눈알 빠지겠네. 이리 와서 한잔해!”
“됐습니다.”
연소정이 창문을 턱 닫았다.
진무립이 멋쩍은 얼굴로 쳐다보자 단려화가 싱긋 웃었다.
“차가운 면이 있으나 속내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랍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속내만 따뜻하면 뭐해? 나한텐 차가운데.”
그때 객잔의 후문을 열고 나온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공자님.”
“무슨 일이냐?”
점소이는 고개를 조아렸다.
“금정무문의 문주께서 잠시 뵙기를 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