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04
◈ 305화. 먼저 죽는 놈이 지는 싸움
하늘이 무너질 듯 쩌렁쩌렁 솟구치던 굉음도.
더 이상 찢어질 듯한 비명도 들려오지 않는 호숫가.
“전투가…….”
“끝난 건가?”
저 멀리 화령도가 보이는, 겨울의 싸늘함으로 가득한 숲속에는 수백 명의 무인이 숨어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은수련이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준비하라.]화윤의 부탁으로 백설하를 호위하러 온 은무대다.
만일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났다면 즉시 움직여야 한다.
은무대가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외총관 임표가 백설하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부인.”
그 뒤로 임표의 아내이자 화령의 내총관인 이숙정이 보인다.
언제나 온화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궁소소를 비롯해 함께 온 수뇌들이 차례로 백설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연소정이 수풀 사이로 섬을 살피며 물었다.
“명하신다면 제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백설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곧 신호가 올 테니까.”
전투가 승리로 끝나면 사방의 망루에 화령의 깃발을 높게 걸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의 침묵 끝나면 간절히 바라온 승리의 깃발이 올라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처럼 그들이 기다리는 깃발은 올라오지 않았다.
밖에서 대기하는 무인들이 애타게 깃발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전투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섬의 무인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를 힘조차 없었다.
그나마 운신할 수 있는 이들은 급하게 부상자를 수습하는 중이었고 탈진한 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대자로 누운 양춘이 곁에 누운 부친을 툭 치며 말했다.
“아버지. 깃발 좀 걸어요.”
양삼이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삭신이 쑤셔서 꿈쩍할 힘도 없다. 네놈이 가라.”
“아까부터 이상하게 몸이 안 움직여요. 점점 졸린 거 같기도 하고…….”
일순 양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아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질 뿐만 아니라 말투 또한 어눌해지는 것이다.
‘설마?’
놀란 양삼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더니 아들의 전신을 꼼꼼히 살핀다.
‘응? 다친 곳은 없는데?’
양춘의 의복은 흙이 좀 묻은 것을 제외하면 놀랄 정도로 깨끗했다.
그때 양춘의 눈꺼풀이 스르륵 흘러내리더니 나직한 코골이가 들려왔다.
양춘에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격렬한 사투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온 것이다.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삼이 이내 대견한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수고했다.”
같은 시각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은 당가의 무인들과 독랑 막월이었다.
화윤의 부탁으로 후방에서 지원했던 당가 무인들은 부상이 덜한 상태였다.
지독한 혈향과 약 냄새가 뒤섞인 천의각.
침상 위의 부상자들이 빠르게 늘어가는 가운데 구석의 침상에는 백채륜과 시평이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 앞에 앉은 당천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본다.
뒤에 선 연길상이 물었다.
“괜찮겠는가?”
그의 부리부리한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당천은 좀처럼 입을 열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게 맞는가.’
전신의 혈맥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끊어진 시평은 의식이 없었고.
부러진 검 끝이 가슴에 틀어박힌 백채륜의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침묵이 길어지자 참다못한 연길상이 울먹이며 물었다.
“제발 뭐라고 말 좀 해주게.”
고개 돌린 당천이 손을 들었다.
“당신도 쉬어야 하오.”
앞에 누운 두 사람만큼은 아니었으나 전신이 피로 물든 연길상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창백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때 이하빈이 다가와 연길상을 끌어당겼다.
“엇.”
이하빈은 휘청이던 연길상을 부축해 침상에 눕혔다.
“난 괜찮다니까.”
“시끄럽다. 치료에 방해되니까 누워 있어.”
“…….”
연길상의 입을 막은 이하빈이 시평과 백채륜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은 언제나 서로를 의식하며 수련해왔었지.”
무슨 말을 하건 대답이 들려올 리 없다.
당천이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오늘 전투에서 보인 너희들의 활약은 무승부였다.”
창백한 두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하빈이 그대로 돌아선다.
“내가 공증인이 되마. 지금부터 너희들은 먼저 죽는 놈이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거다. 반드시 살아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냉랭한 말투였으나 두 사람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직한 말을 남긴 그녀가 밖으로 나갔다.
천의각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때.
화윤은 쓰러진 그들을 대신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촌각도 걸리지 않을 거리가 오늘따라 유독 멀게만 보인다.
“하아.”
비 오듯 식은땀을 쏟아내며 언덕을 올라간 화윤이 힘겹게 망루를 올라간다.
하나씩, 하나씩.
느릿하게 사다리를 잡고 올라간 화윤이 혈투가 벌어진 전장을 돌아보았다.
“……이겼나.”
쓴웃음과 함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전장을 적신 피의 절반은 부하들의 것일 테니까.
입술을 질끈 깨문 화윤은 눈물을 훔치고 깃발을 걸었다.
“우리는 이겼다.”
나직한 읆조림이 끝나는 순간, 호숫가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지친 이들이 내지르지 못한, 전투에 온 힘을 쏟아부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는 것이다.
그들의 함성이 점점 가까워지는 가운데 화윤의 시선이 북쪽 하늘로 향한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하루.
내일은 새로운 한 해를 알릴 정월의 초하루다.
화윤은 움켜쥔 주먹을 북쪽 하늘로 뻗었다.
“승전보를 기다리겠다.”
* * *
내리는 밤과 함께 겨울의 찬바람이 오싹하게 옷깃을 파고든다.
자정이 지나가며 밤 깊은 산 속에 새로운 한 해가 도래했다.
“정월 초하루인가.”
누군가의 긴장 섞인 목소리가 모두의 귓속을 선명하게 파고든다.
순간 어둠 속의 눈빛들이 쏟아지자 입을 열었던 사내는 움찔하며 고개 돌렸다.
단려화가 진무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강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진무립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이지.]상천팔기를 보냈을뿐더러 강남에는 천하의 대군사 화윤이 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진무립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다시 말했다.
[지금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우리의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단려화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쪽에서 마른 수풀이 바스락거린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무인들이 조용히 병기에 손을 올리는 가운데 개방의 추영당주 봉추개가 나타났다.
“방주님.”
“왔구나.”
벌떡 일어난 철표개가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되었느냐?”
봉추개와 추영당은 혹시 모를 황천패의 위치를 수색한 참이었다.
회동이 머지않은 이상 황천패는 소화산에서 하루 거리에 있을 것이다.
마교가 나타나기 전에 그를 먼저 제거한다면 전쟁이 보다 수월해질 터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봉추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날 모양입니다.”
철표개가 아쉬운 얼굴로 쳐다보자 진무립은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소화산의 회동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으니 괜찮습니다.”
봉추개의 등장으로 수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며 회의가 벌어진다.
진무립이 봉추개에게 물었다.
“마교의 동태는 확인된 게 있습니까?”
“적어도 소화산 인근에선 확인된 바가 없소.”
개방의 감시망이 서천림에 집중되었던 탓에 추가 정보는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복령천이 소수라는 건 알고 있을 테니 굳이 회동 장소에 모든 무인을 데려오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방도가 있다.’
복령천이 그런 것처럼 마교 역시 상대의 힘을 필요로 한다.
복령천이 소수라는 건 그들도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굳이 첫 대면에서 머릿수로 위압감을 줄 이유는 없다.
모두가 숨죽인 채 진무립을 바라본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은 바닥에 소화산의 지형을 간략히 그렸다.
“회동 장소에 전 교인을 끌고 오지는 않을 겁니다. 교주를 비롯해 수뇌 일부가 황천패와 접촉할 겁니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경이 말했다.
“하지만 그리 먼 거리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부르면 바로 올 수 있는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겠지요.”
진무립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소화산의 기슭이거나 적어도 산이 보이는 곳에서 대기할 겁니다.”
철표개를 비롯한 수뇌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이 설명을 계속했다.
“뒤에서 대기하는 마인들이 들킬 위험을 감수하며 굳이 먼 곳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갈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소화산을 덮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 그들은 분명 소화산의 서쪽이나 남쪽 기슭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진무립이 그리 추측하는 것은 마교가 통과한 서천림이 소화산에서 남서쪽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진무립은 협곡 사이로 우뚝 솟은 남서쪽의 봉우리를 가리켰다.
“여기라면 남쪽과 서쪽에서 오는 적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화산에 진입하는 순간 추영당은 이곳에 숨어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태종무단은 협곡에서 대기하다 적이 들어오는 곳을 막습니다.”
길목이 좁은 협곡에서라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산으로 우회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책도 머릿속에 있었다.
철표개가 물었다.
“그럼 황천패와 천마는 누가 잡는가?”
진무립의 검지가 자신을 가리킨다.
“황천패는 제가 잡습니다. 천마를 상대할 무인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그의 손가락이 위사영에게 닿았다.
“부단주.”
모두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자리에 있는 무인 중 진무립 다음으로 강한 이는 누가 뭐래도 전 중원무림맹주 위사영이었다.
천마를 상대하라 했음에도 위사영의 눈엔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알겠소.”
제갈세가주 제갈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수가 있을 것입니다.”
천마 장천무가 몇이나 되는 숫자를 데려올지 모르는 이상 진무립과 위사영 단둘이 가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게다가 천마 장천무는 단소룡조차 경계할 만큼 엄청난 고수.
위사영이 천마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진무립은 둘의 협공을 받게 된다.
물론 진무립이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
제갈경은 위사영을 자극하지 않도록 돌려서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각해두신 대책은 있겠지요?”
“대책은 제 눈앞에 있습니다.”
진무립의 눈앞에 있는 이는 바로 제갈경이었다.
영민한 머리를 가진 그는 바로 이해한 듯 웃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황보한이 의아한 듯 물었다.
“경제. 그게 무슨 말인가?”
“회동에 참가하는 마인의 수가 많다면 태종무단에서 그만큼 더 많은 이를 차출해야 합니다. 반대로 황천패와 천마 단둘이 회담을 나눈다면 회동 장소를 덮치는 데 많은 숫자는 필요치 않지요.”
계획의 핵심은 마교의 무인들과 회동 장소를 완전히 분리해 적의 수뇌부터 잡아내는 것이었다.
제갈경은 진무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중간에서 균형을 맞춰주길 바라시는 게 아닙니까?”
전황에 따라 위사영이 위기에 빠진다면 태종무단의 고수 일부를 지원한다.
반대로 그가 천마를 묶는 것에 성공한다면 협곡의 수비에 전력을 투입한다.
제갈경이 단번에 이해하자 진무립은 흡족한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회동에 참가하는 상대의 전력에 맞춰 가주께서 무인들을 움직여주길 바랍니다.”
제갈경은 결연한 눈빛으로 포권을 취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큰 줄기가 정리되자 진무립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