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05
◈ 306화. 결전임박
어둠이 짙게 깔린 깊은 산중의 숲속.
진무립을 중심으로 한 마지막 회의가 끝나갈 무렵, 다른 곳에선 전쟁을 앞둔 무인들의 조용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나무에 걸터앉은 탁소혜의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하다.
투백비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요?”
그 말에 탁소혜의 고운 눈썹이 꿈틀거린다.
“누가 무섭대? 난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고.”
짐짓 대담하게 말했지만 떨리지 않을 리 없다.
태종무단은 고작 백여 명.
반면 상대는 이만 명이 넘는 숫자의 강적이니까.
맞은편에 앉아있던 양천이 말했다.
“우린 지금 무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에 함께하는 걸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그 역사를 다시 쓰게 될 수도 있지.”
눈을 감은 채 침묵하던 천진서가 작게 입을 열었다.
“자라. 전투가 길어지면 지금 자두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양천이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저 녀석이 긴장할 때도 있군.’
다른 이는 몰라도 언제나 그와 함께해 온 자신은 알 수 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천진서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그때 회의에 참가했던 탁이신이 돌아왔다.
화령에선 젊은 고수들을 무림맹에 파견하였으나 그들의 부족한 경험을 보충하기 위해 탁이신이 함께 따라온 것이다.
탁소혜가 벌떡 일어나며 돌아본다.
“아버지.”
“앉아라.”
탁이신이 탁소혜의 머리를 꾹 누르며 다시 앉혔다.
“우리의 임무는 협곡에서 적을 틀어막는 거다. 여기에 전투조와 지원조의 구분은 없다. 너희들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싸워야 한다.”
천진서가 물었다.
“황천패와 천마는 누가 상대합니까?”
“광룡과 검제가 상대한다. 상황에 따라 몇 명이 지원을 가게 될 것이다.”
회동 장소에 나타난 숫자가 많다면 제갈경이 적절히 인원을 파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천진서의 얼굴에 짙은 아쉬움이 떠오른다.
그 마음을 잘 아는 탁이신이 담담하게 앉으며 말했다.
“천하의 명운이 걸린 싸움이다. 호승심은 넣어둬라. 강자를 상대할 기회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있을 테니까.”
“예.”
탁이신의 시선이 투백비에게 옮겨간다.
“백비.”
“네. 숙부님.”
투백비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자 탁소혜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이 새끼 가식 떠네.’
자신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환라궁전(幻羅弓電)은 어디까지 익혔느냐?”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어요.”
부친의 초식을 모두 전수받은 투백비였으나 물론 그와 같은 위력을 낼 수는 없었다.
탁이신이 다시 물었다.
“금안(金眼)은 얼마나 사용할 수 있지?”
“이각이요.”
세 배의 내력을 소모하는 대신 평소보다 두 배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금안은 투월초조차도 쉽게 사용하지 않는 가공할 무공이었다.
“금안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에만 사용해라. 그 전에는 금지한다.”
“알겠어요.”
“너는 내일 제갈세가주와 함께 움직이며 그의 지시에 따라라.”
“네.”
탁이신은 이어서 자신의 딸인 탁소혜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투가 벌어지면 너는 백비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져선 안 된다. 백비를 지켜라.”
탁소혜의 눈동자에 슬픔이 깃든다.
“어째서 제게 그런 시련을?”
무공을 익힌 순간부터 오늘까지, 주야장천 천진서의 곁에서 싸우는 꿈만 꿔왔기 때문이다.
“……단주의 명이다.”
태종무단과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진무립이었으나 수문화가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검신운의 아들 검중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주님. 혹시 강남에서 들려온 소식은 없습니까?”
탁이신은 고민 없이 물었다.
“네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검중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그 모습에 탁이신이 실소를 삼켰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무뚝뚝한 부친과는 참으로 다른 성격이다.
탁이신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눈앞의 싸움에 집중해라. 분명 적의 숫자는 우리보다 많다. 그러나 태종무단은 애당초 백화무단을 목표로 구성된 집단. 상대 중 너희보다 강한 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의 고수를 상대할 자는 얼마든지 있으니 두려워할 것 없다.”
시선을 교환한 후기지수들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서 화령의 후기지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의 반대편 언덕 밑에선 상천의 무인들과 광룡대가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후영이 철궁을 매만지며 히죽 웃었다.
“드디어 소공자의 곁에서 싸울 날이 왔군.”
풍연이 침착하게 말했다.
“결과가 중요하다. 이 정도에 흥분해선 안 된다.”
“나도 아니까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그러니까 주름살이 늘어나는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이마의 주름이 짙어진다.
“……이놈이.”
전유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들 하시게. 오늘만을 기다리며 그토록 힘든 수련을 겪어온 게 아니던가?”
몰락한 대검문의 패장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무립과 만났기 때문에 천하 무림의 역사에 기록될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에 이어 한경이 말했다.
“그렇지. 그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련해온 결과를 내일 보여주는 거야.”
과묵한 주초가 그를 툭 친다.
“오늘.”
“……그래. 이제 오늘이지. 미안하다.”
일 장 밖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유대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곁에 앉은 육군명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모처럼 웃는구나.”
폐관에 든 순간부터 오늘까지 유대하의 입가에 한 번도 웃음기가 머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여온 유대하였다.
유대하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가.”
마주 앉은 용추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 얼굴을 가리면 못 알아볼 정도야.”
그만큼 유대하가 풍기는 은은한 기도는 과거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용형이 그렇게 말해주니 나쁘지 않군요.”
육군명의 눈동자가 밤하늘을 향한다.
“마지막 전쟁인가.”
문득 지나온 나날이 떠오르며 죽은 스승의 얼굴이 하늘에 그려진다.
천하를 피로 물들인 악적과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살아온 자신이 이제는 천하의 명운을 건 전쟁에 당당히 참여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유대하가 물었다.
“왜 웃는 건가?”
“좋아서.”
마음 놓고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미소 띤 육군명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대하가 피식 웃으며 읊조렸다.
“그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하나둘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하늘 가득하던 별무리가 서서히 사그라들며 결전의 아침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 * *
새벽 서리가 하얗게 내린 광활한 평야.
족히 이만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거침없이 들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단내 섞인 입김이 연기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누구도 발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향하는 곳에서 무림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질 터.
쓰러질 때까지 달릴지언정 뒤처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선두에 선 수문화가 뒤를 돌아보며 무인들을 독려한다.
“아직은 달려야 한다! 조금만 더 버텨라!”
“예!”
우렁찬 외침이 수문화의 목소리에 화답한다.
새벽하늘을 향한 수문화의 눈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주군. 금방 가겠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까지 반드시 무사하셔야 합니다!’
간절한 바람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 * *
“조금 더 힘을 내라!”
웅장한 산새에 메아리치는 외침은 바로 초평천의 것이었다.
“예!”
그 뒤로 녹의를 입은 수천의 무인들이 신법에 박차를 가한다.
바로 사천의 무인들이 천하의 명운을 건 마지막 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아미타불.”
판천라마의 나직한 불호와 함께 천여 명의 라마승도 그들의 후방을 뒤따랐다.
선두에서 뒤를 슬쩍 쳐다본 마도림주 초무강이 애타는 마음을 억누르며 기도했다.
‘무립아.’
작은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온 조카가 이제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있다.
자신과 함께 달리는 사천의 무인들은 오로지 진무립을 위해 험난한 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청성의 장문인 강유월이 그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림주. 마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구려.”
속내를 들킨 초무강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언제 왔는지 그 곁으로 점창파 장문인 하종보가 다가왔다.
“바로 그 사천의 광룡이오. 천하 무림 두 명의 절대자 중 한 명인 북광남신의 광룡이라오. 필승의 전략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이다.”
초평천의 뒤를 따르며 그들의 대화를 듣던 지랑 현진학이 뒤를 슬쩍 돌아본다.
반짝이는 눈으로 신법을 전개하는 무인 중 누구도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하종보의 말처럼 진무립을 향한 사천 무림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무인들의 다리가 가벼운 것도 바로 그곳에 진무립이 있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혈천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라면 반드시 해낼 것이란 믿음이 있다.
현진학의 고개가 다시 전방으로 돌아간다.
‘정말 대단한 대장이로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천하를 움직이는 자가 신룡 단소룡이었다면.
당금 무림을 움직이는 인물은 확실히 광룡 진무립이었다.
* * *
흔한 철새조차 보이지 않는 적막한 산속.
나무 위를 비조처럼 뛰어넘던 일곱 명의 무인이 눈 덮인 정상에 선명한 족적을 새겼다.
절벽 끝으로 다가간 약환의 눈동자에, 수백 개의 웅장한 산봉우리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담긴다.
“오…….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눈 부신 햇살이 어둠에 봉인된 세상을 어루만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느긋하게 뒷짐을 진 황천패가 말했다.
“천하 무림의 정점에 선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겠지.”
담담한 목소리에서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약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지요.”
“마두 놈들은?”
황천패의 수신호위, 흑무대 대주 왕조가 답했다.
“서천림을 돌파하고 보내온 연락에 따르면 늦지 않게 도착할 것입니다.”
약속한 시간은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를 오시(午時).
약환이 말했다.
“광룡과 무림맹 수뇌들만 박박 긁어모은 태종무단이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황천패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금 상기했다.
‘태종무단만 무너뜨리면 마교 놈들이 중원을 유린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놈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잘 차려둔 밥상을 뒤집지는 않을 것이다.
“가자.”
“예. 주군.”
돌아선 황천패를 따라 복령천 마지막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 *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화창하다.
며칠간 쌓인 눈이 언덕 위를 소복이 덮은 가운데 시꺼먼 장포를 두른 천마 장천무가 나타났다.
“저곳이 소화산인가.”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산새.
툭 튀어나온 남서쪽의 깎아지를 듯한 봉우리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에 이어 마치 까마귀 떼처럼 시커먼 물결이 새하얀 언덕을 검게 물들였다.
서천림을 통과한 마교의 무인들이 전원 도착한 것이다.
임화교가 장천무의 곁으로 다가가 예를 갖췄다.
“천경봉(天京峰)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겠다.”
“예.”
고개 돌린 임화교가 부교주 천살염마 군도에게 말했다.
“부교주께선 이곳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군도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뭐? 나는 빠지란 말이냐?”
“상대는 소수입니다. 전 병력을 이끌고 들어간다면 이쪽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협상을 하자면 많은 수를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부교주…….”
그때 장천무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에게 닿았다.
“군도.”
나직한 목소리에 움찔한 군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물었다.
“어디에서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임화교가 말했다.
“회동이 끝나면 바로 중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남쪽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알았다.”
군도가 부하들을 이끌고 움직이는 가운데, 장천무와 임화교를 비롯해 일곱 명의 무인들이 협곡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