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1
◈ 31화. 당가의 삼공자
진무립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왜?”
“먼 길을 오신 마도림의 대협께 술 한잔 대접해도 되겠냐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오늘 숙박료는 모두 금정무문에서 지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점소이는 아까 진무립이 지불한 돈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단려화를 슬쩍 쳐다본 진무립이 씩 웃었다.
“공짜라면 나쁠 것도 없지. 이쪽으로 모셔라.”
“감사합니다.”
점소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단려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냥 있어.”
진무립이 소매를 잡아당기자 단려화가 말했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요?”
“야밤에 무시무시한 사람이 날 찾아왔는데 호위는 안 할 거야?”
천하삼흉을 한 줌 혈수로 만든 사람이 할 말인가?
단려화는 기가 차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지금 강호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럼 제대로 감시하라고.”
진무립이 씩 웃는 사이 후문이 열리며 탐스러운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 나타났다.
정자에서 내려간 진무립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어서 오십시오. 마도림의 광룡대주 진무립입니다.”
신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광룡대주가 대검문을 무너뜨린 소공자였단 말인가?’
진무립의 이름은 중경과 가까운 지역부터 조금씩 알려지는 중이었다.
금정무문주 신환이 두 손을 모으며 예에 화답했다.
“본인은 금정무문을 책임지고 있는 신환이라고 하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폐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구려.”
진무립은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곳은 금정무문의 영역,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더없이 정중한 인사에 뒤에 선 단려화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럴 땐 또 다른 사람 같네.’
신환 또한 그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겸손한 청년이군.’
폐쇄적인 사천 무림의 거파들은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강하다.
사천맹의 일원으로 콧대 높은 명가의 자제들을 수두룩하게 봐온 신환이다.
비록 마도림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곤 하나 금정무문과는 천양지차.
그들과 전혀 다른 진무립의 태도에 신환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잘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신환은 진무립을 따라 별채로 들어갔다.
향긋한 주향이 풍기는 별채의 객실.
탁자를 가득 채운 점소이가 밖으로 나가자 진무립이 먼저 술병을 들었다.
“제가 먼저 올리겠습니다.”
“고맙소.”
두 명의 호위가 시립한 가운데 진무립과 신환이 서로의 잔을 채워주었다.
“중경의 패권을 차지했다는 소식은 들었소이다. 마도림이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구려.”
진무립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가벼운 인사말이 지나간 뒤, 진무립이 먼저 물었다.
“문주께서 이 밤에 저를 찾아오신 걸 보면 따로 하실 말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뭐든 편히 말씀하시지요.”
어떻게 말하나 고민하던 신환은 상대가 먼저 얘길 꺼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고맙소. 그럼 사양 않고 말하리다.”
술잔을 비운 신환이 작심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전에 사천맹부터 설명해야겠지. 우리 금정무문은 사천맹의 일원이라오.”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사천맹은 중원무림맹에 대응해 사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명목으로 만든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소.”
마도림의 몰락 이후 사천당가와 청성, 아미, 점창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천맹.
맹이라는 이름 아래 뭉쳤으나 중원무림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무슨 권익을 보호한단 말인가?
실상은 네 개의 거파가 중소방파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신환은 사천맹의 현실, 그리고 금정무문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진무립이 물었다.
“당가의 아들이 어째서 맹의 일원도 아닌 묵혈방과 어울리는 겁니까?”
“몇 번이나 찾아가 직접 물어보려 했으나 묵혈방 놈들이 접근을 차단해서 만날 수 없었소. 사천맹과 당가에 서신을 보내도 묵묵부답이라오.”
“그냥 그자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신환은 고개를 저었다.
“철부지로 유명한 놈이지만 그래도 핏줄은 핏줄인지 어미가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오. 가주도 아내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하니 잘못 건드렸다간 좋을 게 없다는 말이오.”
당우를 등에 업은 묵혈방은 서서히 금정무문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마치 마도림에게 대검문이 그랬던 것처럼.
신환은 참담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내가 오죽 답답하면 사천맹도 아닌 마도림을 찾아가려 했겠소이까?”
“음.”
진무립은 사천맹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금정무문이라.’
마도림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등을 밀어줄 아군이 필요하다.
음야살귀를 죽이고 되찾은 돈을 북천도문에 돌려주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당가를 비롯한 네 개의 거파들은 사천맹까지 세워 입지를 굳힌 상태.
비록 묵혈방에 당가의 아들놈이 있다곤 하나 이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나쁠 것은 없다.
신환은 고개까지 숙이며 간곡히 청했다.
“우리를 도와주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부탁하오.”
“묵혈방은 어떤 곳입니까?”
“음지에서 도박장을 운영하고 고리대금에 인신매매까지 손대고 있는 곳이라오.”
“그건 관에서도 두고 보지 않을 텐데요.”
신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만 있다면 안 될 게 무어 있겠소이까?”
신환의 말이 사실이라면 쓸어버려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당가의 아들놈만 없다면.
‘뭐 방법을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지.’
잠시 고민하던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지요.”
신환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그, 그게 정말이오?”
“거짓말은 종종 하는 편이지만 한 입으로 두말은······. 두말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은 진무립이 씩 웃었다.
“어쨌든 믿어보십시오.”
“······.”
그다지 믿음이 가는 눈치는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단려화가 작게 한숨을 내쉴 때, 밖에서 전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주!”
호위의 임무에 충실한 단려화가 밖으로 나갔다.
“안에 손님이 계세요.”
단려화가 검지를 입술에 붙이자 전유는 전음을 보냈다.
[기루에서 싸움이 벌어졌소.] [싸움이라니요? 누구와?] [묵혈방이오. 당가주의 아들이라는 놈도 함께 왔소.]달빛에 비친 민머리가 벌게진 것이 적잖이 흥분한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단려화가 돌아오자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으니 얘기해.”
신환을 슬쩍 살핀 단려화가 침착하게 말했다.
“기루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해요.”
“싸움? 상대는?”
“묵혈방과 당가의 아들이라고 하는군요.”
신환은 눈살을 찌푸렸고 진무립의 머리는 비상하게 회전했다.
“문주님. 잠시 부하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러시오.”
“들어와!”
진무립의 부름에 전유가 들어왔다.
“땡중. 설명해라.”
“예. 옷을 편히 갈아입고 술을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묵혈방주와 당가의 삼공자가 들어오더니 자리를 비우라며 난리를 치는 겁니다.”
“상대의 숫자는?”
“묵혈방주와 그의 호위 열 명, 당가의 삼공자까지 모두 열둘입니다.”
진무립은 고개를 갸웃했다.
쉰 명이 넘는 광룡대를 상대로 시비를 걸기엔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도림의 무인이라는 것을 모르나?”
전유는 고개를 저었다.
“평상복엔 표식이 없으니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고 부대주가 자칫 당가와 충돌이 생길지 모른다며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대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이번 일은 자칫하면 당가와 마도림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 일.
자신에게 진무립만큼의 지혜가 없다는 걸 아는 이상 신중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상대를 모르고 싸움부터 벌일 정도면 묵혈방이 당가의 이름을 제대로 믿는 모양이야. 그런데 당가에선 아들에게 호위도 안 붙여주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금정무문주 신환이 말했다.
“당가의 아들이 나왔다고 하니 그를 만나볼 겸 가서 중재를 해보겠소.”
“그럴 필요는 없고, 지금 하겠습니다.”
“지금? 무엇을 한단 말이오?”
진무립이 싱긋 웃었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준비하시죠.”
***
한밤의 유월루가 집기 깨지는 소리로 요란하다.
부서진 탁자와 집기 파편이 일 층 내부를 가득 채운 가운데 피투성이의 유대하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묵혈방주의 발이 유대하의 등을 짓밟았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인지 모르겠으나 나가라고 할 때 나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엉?”
제법 심상치 않은 기도를 가진 놈이길래 잠시 긴장했으나 상대해보니 의외로 별 것 아니었다.
정체도 못 밝히고 싸우길 피하는 걸 보면 분명 당가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뒤에 당우가 있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의 큼직한 발이 연신 유대하를 짓밟는 가운데 광룡대원들은 핏발 선 눈으로 주먹만 부르르 떨고 있었다.
‘하필 당가주의 자식놈이······.’
당우의 뒤에는 사천맹의 일원인 당가가 있다.
이제 막 중경의 패권을 되찾은 마도림이 사천맹을 적으로 돌린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들은 절대 나서지 말라는 유대하의 엄명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는 것이다.
성격과 달리 제법 말끔하게 생긴 당우는 옷에 묻은 피를 보며 혀를 찼다.
“허,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덩치가 산만 한 묵혈방주는 굽신거리며 미소 지었다.
“송구합니다. 공자. 힘 조절이 조금 덜 된 모양입니다.”
“그래. 잘 좀 하라고.”
당우는 흡족한 듯 웃었다.
가문에선 잘난 형제들에게 무시만 당하다가 이토록 과한 대접을 받으니 내심 기꺼웠다.
고작 술 한잔하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자신을 위해 힘까지 쓰는 이가 있으니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도 들었다.
당우는 웃음을 참으며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거, 적당히 하고 내보내. 피를 많이 보면 술맛 떨어지니까.”
“알겠습니다.”
묵혈방주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사천맹의 일원인 금정무문을 평창현에서 몰아내려면 당우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철모르는 당우를 구워삶아 금정무문을 죽일 놈으로 만들고 막대한 뇌물까지 바쳤다.
그간 들인 공을 생각하면 여기서 당우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묵혈방주는 유대하의 복부를 걷어차 문 앞까지 날려버렸다.
“컥!”
“당공자께서 안 계셨더라면 네놈은 목이 떨어졌을 거다. 썩 꺼져라.”
얼굴이 시퍼렇게 부은 유대하는 꿈틀거리며 신음했다.
“크······.”
결국 참지 못한 조장들이 나서려 할 때, 기루의 문이 벌컥 열리며 진무립이 들어왔다.
“대주!”
피투성이가 된 유대하. 분을 참고 있는 부하들.
묵혈방주와 당우. 그리고 십여 명의 무인들.
상황을 파악한 진무립의 표정이 굳었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전부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것 같았다.
묵혈방주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당가의 아들이 있는 이상, 그가 어떤 놈인지 확인하기 전엔 이 자리에서 섣불리 검을 뽑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될 거면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지.’
아마도 취한 부하들을 챙긴다고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진무립은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래. 지금은 즐기게 해주마.’
그들 모두를 차례로 눈에 담은 진무립은 당가의 옷을 입은 당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진무립의 수려한 용모를 본 당우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넌 또 뭐야?”
당우를 향한 진무립의 두 눈에 언뜻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 눈빛에 당우가 움찔하는 순간, 진무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예를 갖췄다.
“마도림의 광룡대주입니다. 제 부하들이 감히 당가의 대협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를 범한 모양입니다.”
묵혈방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마, 마도림이라고?”
심상치 않은 눈빛에 잠시 위축됐던 당우는 진무립이 저자세로 나오자 애써 시큰둥하게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마도림 따위가 뭐라고 기분 나쁘게. 내가 누군지 잊었어?”
마도림이 사천제일세의 영광을 가졌던 때는 당우가 태어나기 전이다.
당가라는 우물 안에서 자란 당우에게, 든든한 배경을 가진 그에게 마도림은 전혀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묵혈방주는 경우가 다르다.
‘우라질. 하필 마도림이란 말이냐?’
이곳 평창현은 당가가 있는 성도보다 마도림의 중경이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 당공자가 있는 이상 마도림도 우릴 어쩌지 못할 것이다.’
금정무문을 몰아내고 적당히 흑도의 구정물을 씻어낸다.
그 뒤에 당우의 힘을 빌리고 막대한 돈을 기부해 사천맹에 들어간다면 마도림은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묵혈방주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우리 묵혈방은 당공자의 뜻대로 이곳에서 술을 마셔야겠다. 지금이라도 나간다면 오늘 일은 불문에 붙여주마.”
당당하게 나서놓고 당우의 이름을 파는 걸 보니 그래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진무립은 그의 불안감을 씻어주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당장 비워 드리겠습니다.”
문밖에서 지켜보던 단려화는 속으로 혀를 찼다.
뒤로는 섬뜩한 계획을 준비해 두고도 상대 앞에선 웃으며 고개 숙인다.
‘이 사람을 적으로 만난다면 정말 무서울 거야.’
부하를 보는 척하며 슬쩍 고개 돌린 진무립은 문밖의 단려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부탁한다.]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