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
◈ 32화. 대협을 위한 연회
당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놈이 왔군.”
“하하하. 제가 원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 편입니다.”
진무립의 태도에 광룡대원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존심을 버리라는 게 그의 가르침이었지만 부하가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는데 굽히고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진무립은 그들의 속도 모르고 호통을 쳤다.
“감히 당가의 삼공자가 계신 자리에서 무례를 범했단 말이냐? 너희들은 당장 객잔으로 돌아가 근신토록 해라.”
부하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사조장 후영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대주. 진심이시오?”
“내 언제 농담하는 걸 본 적이 있느냐?”
분을 참지 못한 후영의 주먹이 부르르 떨릴 때, 풍연이 담담한 얼굴로 걸어가 유대하를 등에 업었다.
“대주의 명이시다. 모두 돌아가자.”
광룡대원들은 참담한 얼굴로 풍연을 따라 기루를 나섰다.
부하들이 모두 나가자 진무립은 활짝 웃으며 당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좁은 중경 땅에서 살아온 놈들이기에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당가의 대협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지요. 사죄의 의미로 오늘 대협께서 드시는 술값은 이것으로 내시지요.”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게 숙인 진무립은 손을 들어 전낭을 내밀었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분이 풀리지 않을 리 없다.
‘형이고 아버지고 마도림 따위가 뭐라고 그토록 주시하는 거야?’
부모 형제가 주목하는 마도림의 무인이 눈앞에서 이토록 비굴한 모습을 보이자 당우는 왠지 마음이 흡족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아낸 당우가 전낭을 받았다.
“내 자네를 봐서 이번 한 번은 봐주는 게야.”
진무립은 히죽 웃었다.
“역시 듣던 대로 호인이십니다. 대협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우는 그제야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진무립입니다.”
묵혈방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왠지 익숙한 이름인데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당우는 짐짓 어른스러운 말투로 진무립에게 자리를 권했다.
“진무립. 좋아. 기억해두겠어. 자네가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였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대협의 예법이 아니지. 앉아서 내 술 한잔 받으시게.”
진무립이 자리에 앉으며 활짝 웃었다.
“대협께서 하사하시는 술을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그럼 한잔 받겠습니다.”
한 잔의 술이 오고 간다.
당우에게는 어느 때보다 달콤한, 진무립에게는 어느 때보다 쓰디쓴 한잔이었다.
***
객잔으로 자리를 옮긴 조장들은 유대하를 방 안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나왔다.
“제기랄!”
단려화는 탁자를 걷어차려는 후영을 제지했다.
“그만두세요. 여긴 금정무문의 객잔이에요.”
그 말에 멈칫한 후영은 자신의 뺨을 후려치며 분풀이를 했다.
“내가 대주를 단단히 잘못 봤군.”
한경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일은······ 너무 심했다.”
후영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탁자를 쾅 내려쳤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돌아가면 사직서부터 쓸 거다.”
단려화가 입을 열기 직전, 용추가 먼저 말했다.
“임무다.”
후영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임무는 무슨 임무란 말이오? 때려치우겠다니까!”
“정말 안 할 거야?”
그래도 용추는 무서웠는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후영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안 해! 못 해!”
용추는 단려화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끼리 합시다.”
단려화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임무인지는 설명을 해줘야죠.”
풍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임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때 연소정이 굵은 나뭇가지를 한 아름 들고 들어왔다.
“묵혈방을 칠 거예요. 여인과 노인, 아이를 제외하곤 두 발로 서있는 자들은 전부 두들겨 패래요.”
조장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라고?”
후영이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 그게 정말이오? 그래도 당가가 있는데?”
“당가의 아들은 대주가 기루에 잡아두고 있잖아요?”
“그, 그럼 대주가 그놈한테 굽히고 들어간 건······.”
“싫으면 여기 남던가요.”
냉큼 달려간 후영이 나뭇가지를 받아들었다.
“누가 싫다고 했소? 내가 대주처럼 똑똑한 것도 아니고 말은 끝까지 해줘야 알아듣지.”
풍연이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사직서 안 쓰냐?”
“임종 전에 쓸 거야.”
후영이 나뭇가지를 치켜들었다.
“가자!”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유대하가 앞으로 고꾸라지듯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나도 데려가 주시오.”
단려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는 괜찮소.”
성큼성큼 걸어간 용추가 유대하를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쳤다.
“받은 건 갚아줘야 사내지. 같이 가자.”
유대하의 퉁퉁 부은 얼굴이 씰룩거렸다.
“고맙소.”
***
캄캄한 어둠 속, 용추의 뒤로 광룡대가 따라붙었다.
용추가 물었다.
“근데 묵혈방이 어디냐?”
말이 끝나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튀어 나갔다.
“알아보겠습니다.”
사라진 광룡대원은 일다경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돌아왔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현판이 걸린 장원이 있답니다.”
고개를 끄덕인 용추의 눈이 독기로 번들거렸다.
그간 정이 쌓인 모양인지 엉망으로 돌아온 유대하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가자.”
“예.”
싸늘하게 눈을 빛낸 광룡대는 일제히 신법을 전개하며 묵혈방으로 달렸다.
이윽고 도착한 정문, 문에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던 문지기는 광룡대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누, 누구냐?”
과묵한 성격에 늘상 말이 없던 주초가 창대를 움켜쥐고 나섰다.
“적.”
짧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창대가 휘둘러졌다.
쾅!
문지기의 등이 정문을 뚫고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피를 한 사발이나 쏟아낸 문지기는 힘겹게 일어서는 듯하더니 털썩 쓰러졌다.
정문의 굉음에 전각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냐!”
가장 먼저 나온 묵혈방도가 정문을 넘는 광룡대를 발견했다.
“적이다! 기습이다!”
찢어질 듯한 그 외침에 사방의 건물에서 무기를 든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삼백에 달하는 무인들이 사방을 포위했으나 광룡대원들은 기죽지 않았다.
용추가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었다.
“사천당가의 삼공자, 당······. 당······.”
용추가 떨떠름한 얼굴로 단려화를 쳐다봤다.
“걔 이름이 뭐더라.”
한숨을 내쉰 단려화가 용추의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사천당가의 삼공자, 당우대협의 명으로 묵혈방의 현판을 내리러 왔다!”
그녀의 외침에 묵혈방도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조금 전까지 방주와 시시덕거리며 술 마시러 간 당우가 왜 그런 명을 내린단 말인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말도 안 된다!”
용추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쌩하고 날아가더니 묵혈방도의 정강이에 꽂혔다.
“크악!”
“말이 안 돼? 맞다 보면 말이 될 거다.”
풍연의 눈에 짙은 살기가 떠올랐다.
“가자!”
“예!”
분기탱천한 외침이 장원을 쩌렁쩌렁 울린다.
쉰 명의 광룡대원은 해일처럼 묵혈방을 덮치며 싸움이 시작됐다.
단려화가 연소정에게 말했다.
“우리는 후방 지원이야. 저들의 빈틈을 보완해야 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즉시 광룡대의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삼백 남짓한 묵혈방, 쉰 명에 불과한 광룡대.
하지만 시골의 흑도방파가 당해낼 만큼 광룡대의 실력은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터지며 묵혈방도들이 짚단처럼 쓰러져 갔다.
이런 싸움에서 가장 맹위를 떨치는 이는 봉을 사용하는 전유였다.
자유자재로 봉을 휘두르는 전유는 순식간에 스무 명을 때려눕혔고 뒤를 따라 내달린 조원들은 질풍처럼 적을 휩쓸었다.
고작 일다경만에 쓰러진 적의 숫자가 일백.
그때 부서진 정문으로 금정무문의 무인들이 들어왔다.
“시작됐구나.”
신환이 검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사천맹의 일원인 당우 공자의 명으로 묵혈방을 지운다!”
“예!”
금정무문의 역할은 쓰러진 적 중에 죽일 놈과 살릴 놈을 구분하는 것.
이곳의 정보에 취약한 진무립이 부탁한 일이다.
과부가 된 아녀자를 납치한 놈, 사기도박으로 빚을 떠안겨 일가를 무너뜨린 놈, 남의 여인을 강제로 겁탈하고 팔아먹은 놈.
금정무문의 무인들은 쓰러진 자들을 구분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버렸다.
사방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솟구치는 사이, 몽둥이에 비껴 맞은 횃불이 전각으로 쓰러지며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올랐다.
***
묵혈방의 밤하늘에 화광이 치솟을 무렵, 유월루의 일 층은 귀가 즐거운 풍악과 향긋한 주향으로 가득했다.
“나보다 아주 조금 잘났다고 동생을 그렇게 개무시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조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좋은 건 지들이 다 처먹고 약빨로 큰 주제에 말야.”
당우의 푸념에 진무립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야~. 그래도 그렇지 동생을 그렇게 무시합니까? 그거 좀 심한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형님이라는 것들도 하나같이 재수가 없다니까. 두고 봐. 내가 이번에 묵혈방과 함께 금정무문을 몰아내고 깜짝 놀라게 해줄 테니까.”
감히 사천맹의 일원이면서 고리대금에 인신매매까지 하는 자들.
당우가 아는 금정무문은 그런 악독한 자들이다.
진무립은 웃으며 말했다.
“대협이라면 반드시 해내실 겁니다. 그리되면 가문에서도 분명 대협을 인정해주시겠지요.”
진무립을 힐끔 쳐다본 묵혈방주는 내심 안도했다.
‘별로 아는 건 없는 것 같군.’
당우를 속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부하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며 당우 앞에서 눈물 몇 번 흘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게 먹혔다.
당가라는 견고한 우물과 성도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온 철없는 공자.
능력을 증명하겠다며 호위까지 뿌리치고 나온 당우의 첫 무림행이 이곳 평창현이라는 것은 묵혈방주에게 큰 행운이었다.
‘금정무문을 정리하고 그간 벌인 일을 모두 놈들에게 덮어씌우면 사천맹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묵혈방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진무립에게 잔을 권했다.
“오늘 일은 너무 마음 쓰지 말게. 소형제와 같은 걸물이 대주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리 과하게 손을 쓰지는 않았을 게야.”
아무리 사천맹에 들어갈 생각이라지만 세상사 어찌 돌아갈지 모르니 굳이 마도림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진무립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무참히 짓밟힌 유대하를 생각하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진무립은 적에게 속내를 드러낼 만큼 하수가 아니었다.
“사내가 술 좀 마시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요. 이미 잊었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안도한 묵혈방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과연 배포가 큰 사내로군.”
그때 기루 문이 열리며 풍연이 들어왔다.
“끝났습니다.”
풍연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자 당우와 묵혈방주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뭘 끝나?”
진무립은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제 부하들이 두 분 대협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를 저질렀지요. 사죄의 의미로 두 분만을 위한 연회를 준비하도록 일렀습니다. 마침 준비가 끝난 모양이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당우가 환한 얼굴로 일어났다.
“오, 그래? 하하하! 덕분에 오늘 아주 호강을 하겠구만.”
진무립이 말했다.
“진귀한 술에, 기루에선 보기 드문 미녀까지 대협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시지요.”
당우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좋지! 내 마음에 들면 일간 성도로 한 번 초대하겠네.”
“그럼 저야 감사하지요.”
씩 웃은 진무립은 풍연을 따라 기루를 나섰다.
묵혈방까지는 신법을 펼치면 고작 일다경 남짓.
장원까지 빠르게 가까워지는 가운데, 하늘을 한 번 쳐다본 당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술을 너무 마셨나? 왜 밤하늘에 노을이 보이지?”
방향을 본 묵혈방주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으나 진무립은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대협을 위해 장원에 불을 환히 밝혀두라 일렀습니다. 아마도 그 탓일 겁니다.”
“이거 자네의 부하들이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야. 이러면 아까 일이 조금 미안해지는데?”
“하하하!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묵혈방주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공자.”
“뭐야?”
“저기는······. 본 방의 장원입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뭐라고?”
묵혈방주와 수하들이 신법을 전개해 달려가자 인상을 찡그린 당우도 할 수 없이 뒤를 따랐다.
타오르는 전각이 눈에 들어오자 묵혈방주의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금정무문 놈들인가? 아니다. 당가가 있는 이상 놈들은 나설 리 없다. 대체 어떤 놈들이냐!’
깨져나간 정문, 반 토막 난 현판.
치솟는 시뻘건 불길은 사방을 대낮처럼 환히 밝힌다.
장원으로 뛰어들어간 묵혈방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시산혈해의 참상, 사방에 널브러진 시신은 자신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던 부하들이었으며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핏물 또한 그들의 것이었다.
“어떤 찢어 죽일 새끼냐!”
묵혈방주의 진노가 하늘로 솟구칠 무렵, 당우와 함께 진무립이 도착했다.
당우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끔찍한 참상에 구역질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이,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무립은 핏물을 밟고 걸어나갔다.
“어, 어이. 기다려.”
당우가 손을 내뻗는 순간, 화광(火光)을 등진 진무립이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대협을 위한 연회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