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0
◈ 321화. 세 치 혀
점점 굵어지는 눈송이가 천지를 하얗게 물들여간다.
태종무단이 마인들의 삼엄한 감시를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무립은 굳이 그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마지막 변수에 대비해 만전의 상태를 회복해야 했다.
형용할 수 없이 고요한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하루가 더 지난 날의 오후, 시꺼먼 그림자가 쏟아지는 눈을 뚫고 소화산의 하늘에 나타났다.
성조를 발견한 염자성이 단숨에 천경봉 정상에 올라섰다.
끼이익!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수직으로 하강한 성조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지면에 착지한다.
활짝 펼친 날개가 무려 삼 장에 달하는 성조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염자성을 쳐다본다.
천마신교의 성스러운 신조 앞에서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무인은 교주밖에 없다.
“수고하셨소. 성조.”
포권을 취한 염자성이 성조의 다리에 묶인 전통에서 서신을 꺼냈다.
한달음에 천경봉을 내려온 염자성은 즉시 장천무를 찾았다.
“지존.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벌떡 일어난 장천무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신을 받아 들었다.
“후우…….”
나직이 호흡한 장천무가 서신을 활짝 펼친다.
「사실 무관.」
짤막한 말에 이어 상세한 정보가 이어졌다.
천산에 남은 이들은 염자성의 서신을 받고 난 뒤에도 성화령의 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장천무가 교를 비운 이상 절대 태청전의 문을 열 수 없는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화령을 확인하는 대신 현재 천산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덧붙여 두었다.
곁에서 서신을 함께 읽은 군도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저 망할 새끼들이 감히 거짓말을…….”
진무립에게 속았음을 깨달은 군도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지존. 당장 저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립시다!”
이번만큼은 언제나 침착한 염자성도 군도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이유도 없거니와 교주 장천무가 그보다 더한 살기를 줄기줄기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자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장천무가 장포를 휘날리며 매섭게 돌아섰다.
“나는 신룡과 못다 한 승부를 낸다. 한 놈도 살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염자성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마교 측 진형의 움직임은 고스란히 무림맹 무인들에게 전해졌다.
높게 솟은 바위 위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단려화가 순식간에 협곡을 내려선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첫 번째 전투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잠시 전쟁이 멈춘 사이, 상대가 절벽 위를 완전히 점령하고 배후까지 철통같이 틀어막은 까닭이다.
태종무단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셈이었다.
단소룡이 침묵하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진무립에게 쏟아진다.
그러자 단려화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무립이 단주라지만 너무 의지하는 거 아닌가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란 말이에요.”
언제나 모든 부담을 홀로 짊어지는 진무립이 안쓰러운 것이다.
하지만 진무립은 대수롭지 않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이런 상황에서 저들에게 생각을 권유한들 뾰족한 방도가 있을 리 없다.
‘생각보다 조금 빠르군.’
진무립이 모두를 돌아보며 웃었다.
“저를 믿습니까?”
위사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믿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이까.”
다들 그에 동의하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무립이라면.
이번에도 진무립이라면 기적을 만들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담을 주고자 함이 아니다.
진무립이 걸어온 행보가 그의 능력을 증명하기 때문에 어떤 판단이든 신뢰하는 것이다.
먼 하늘을 슬쩍 쳐다본 진무립은 시선을 돌렸고.
천마 장천무의 매서운 눈빛은 협곡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광룡. 네놈의 운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로구나.”
진무립이 고개를 들고 대꾸했다.
“이번엔 이쪽에서 물어야겠군.”
빙그레 웃는 진무립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돌아온 대답은 장천무가 아닌 부교주 군도의 것이었다.
“그 세 치 혀는 참으로 무섭구나. 내 손으로 직접 잘라 내주마.”
“내 혓바닥 정도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지. 그럼 이 혓바닥이 잘려나가기 전에 그대의 교주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군도가 다짜고짜 몸을 날리려는 찰나, 장천무의 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당장 저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기다려라.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하니까.”
줄곧 놈의 판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
장천무는 궁지에 몰린 진무립의 낭패한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진무립을 눈에 담은 장천무가 오연하게 턱짓하며 말했다.
“살려달라고 빌기라도 할 셈이냐?”
그때 하늘을 슬쩍 쳐다본 진무립의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갔다.
“그대들을 속인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물론 진심은 아니네만 사과는 해두어야겠지.”
“유언은 그게 전부인가?”
“그건 아니지.”
진무립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얌전히 보내주지.”
군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진무립을 쳐다본다.
“지금 미친 것이냐?”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물러날 것을 상전처럼 권유하고 있으니 황당한 것이다.
“그대의 생각에 무림맹 무인들이 천산에 없다면 어디 있을 것 같은가?”
장천무가 말했다.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말장난으로 시간을 벌고자 하는가.”
“내 말을 믿어라. 그들이 곧 이곳에 도착할 거다.”
장천무가 인상을 쓰며 검파를 쥐었다.
“살려달라고 빌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네놈의 세 치 혀에 속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때 허공에서 흑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끼이익!
그와 거의 동시에 진무립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내력이 실린 쩌렁쩌렁한 앙천대소에 협곡이 무너질 듯 몸을 떨었다.
“천산을 점령했다는 것은 알다시피 거짓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뭘 위해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나?”
그에 이어 딱딱하게 굳은 장천무의 고개가 남서쪽 봉우리 위로 휙 돌아갔다.
하나둘 마인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 옮겨갔고, 잠시 후 절벽 끄트머리로 화려한 오색 무복을 걸친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무림맹 군사부 부군사 수문화! 태종무단주의 요청에 따라 원군을 이끌고 도착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하진과 한천유를 필두로 벌 떼처럼 무수한 무인이 남쪽 입구를 빼곡히 채워간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교도들이 놀랄 겨를도 없이 북서쪽 절벽 위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시뻘건 피가 절벽 아래로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검은 장포를 두른 장대한 체구의 노인이 절벽 위에 나타났다.
“사천의 초평천이 천하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내고자 원군을 이끌고 달려왔소이다! 언제든 적을 일소할 명을 내려주시오!”
쩌렁쩌렁한 외침이 협곡을 뒤흔들며 그의 좌우로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마도림주 초무강과 청성파의 장문인 강유월, 점창의 하종보와 아미의 자소가 바로 그들이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생로를 모색하던 태종무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의 뒤와 좌우, 곳곳의 봉우리가 무림맹 무인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가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원군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젊은 무인들은 차오르는 전율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초무강의 대견한 눈빛이 진무립에게 파고든다.
‘무립아.’
그에 진무립이 미소로 화답하는 순간.
현기 짙은 불호가 마교도들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아미타불.”
사천에 피신해 있던 판천라마와 라마승들이 사천의 무인들과 함께 온 것이다.
사천과 중원의 두 무리가 동시에 도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천에 연락을 취한 동초개가 수문화와 합류해 소화산을 덮칠 시간을 완벽하게 조율해낸 것이다.
“우와아-!”
무림맹 무인들의 엄청난 함성 속에 원군의 면면을 본 염자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이것을 위해 시간을 번 것이란 말인가!’
이번에도 진무립의 흉계에 완벽하게 당하고 말았다.
태종무단을 완벽하게 포위한 마교도들.
사천과 중원의 원군이 그런 마교도를 완벽하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복령천 따위와 손을 잡는 게 아니었다.’
중원의 정보를 일임하기로 한 그들이 사라졌으니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진무립이 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게 내 원군이 온다 하지 않았는가?”
장천무의 얼굴이 터질 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무립!’
장천무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성.”
염자성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예. 파악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천경봉 정상에 뛰어오른 염자성이 원군의 규모를 파악했다.
‘보이는 수만으로도 이만이 훌쩍 넘는다.’
반면 자신들은 태종무단과의 전투에서 무려 오천에 달하는 손해를 보았으니 머릿수는 완벽하게 역전된 셈이다.
질끈 깨문 입술에서 짙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탓!
염자성은 장천무를 향해 몸을 날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태종무단의 대다수는 각기 사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
이 자리에 있는 무림의 중심축들이 일시에 사라진다면 상대도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다소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다친 저들부터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역전의 기회는 있다!’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물러난다면 천마신교의 이름을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하루 반나절 만에 부상이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을 터, 모든 힘을 집중한다면 태종무단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존.”
장천무의 앞에 부복한 염자성이 나직이 계책을 진언했다.
“신룡과 광룡, 협곡 안의 적부터 모두 제거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승산이 얼마나 있다고 보느냐?”
“오 할입니다.”
그 말은 절반은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절반의 도박에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싸움이 된다.
패한다면 이 자리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천산의 식솔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장천무가 고심에 빠진 사이.
절벽 아래에서 둘을 예의주시하던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단소룡을 제외한 동료 중 두 발로 온전히 서 있는 자는 열 명이 채 안 된다.
자신의 힘 또한 온전할 때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원군이 적의 포위를 뚫고 올 때까지 버틴다는 보장도, 장천무가 단소룡을 막아선 사이 상대의 집중 공세를 막아낼 방법도 없었다.
‘더 이상 누구도 죽게 두지 않는다.’
진무립은 장천무가 고심하는 지금이 한 번 더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장천무. 하루 안에 전쟁을 끝낼 자신이 있다면 그 검을 휘둘러도 좋다.”
미간을 좁힌 장천무의 눈동자에 당당한 진무립의 얼굴이 담긴다.
“하루 안에 끝내지 못하면 너희들은 복령천을 궤멸시킨 상천팔기와 화령까지 상대해야 할 거다.”
“……뭐라고?”
장천무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오르자 팔짱을 낀 진무립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믿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