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1
◈ 322화. 백년지약
참과 거짓을 교묘하게 뒤섞는 능력으로 치자면 천하에 진무립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다.
순간 장천무의 머리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렸다.
그와 달리 단순한 군도는 여과 없이 노기를 드러냈다.
“네놈이 감히 본 교의 지존을 협박하는 것이냐!”
장천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물러나라.”
“아닙니다. 제가 당장 저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물러나라고 했다.”
“지금이라면…….”
순간 장천무의 손이 군도의 목덜미를 낚아채더니 거칠게 끌어당겼다.
“컥!”
군도를 치운 장천무는 한숨을 토해내며 검파에서 손을 떼었다.
“모두 무기에서 손을 떼라.”
장천무가 전쟁을 이대로 멈추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무림맹 무인들은 내심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진무립은 칼도 아닌 세 치 혀로 천하의 천마신교를 완벽하게 농락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명령에 당황한 마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지, 지존!”
“교주님!”
하지만 장천무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머리가 되어줄 임화교는 죽었다.
고작 진무립의 말 한마디에 머리가 복잡해진 순간부터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싸움, 천산에서 기다릴 교인들을 생각하면 절반의 확률을 믿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참담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장천무의 눈동자가 부하들을 훑어본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두 번 하게 하지 마라.”
그 단호한 태도에 고개 숙인 마교도들이 비참한 얼굴로 병기에서 손을 뗐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제법 냉정하게 생각할 줄도 아는군. 그렇다면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그는 즉시 단소룡에게 전음을 보냈다.
[수문화에게 전음이 닿겠습니까?]수문화가 선 봉우리로부터 여기까지의 간격은 무려 이백여 장.
범인의 전음이 닿을 만한 거리도, 내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자신의 전음이 닿을 거리도 아니었다.
단소룡의 눈에 흥미로운 빛이 떠오른다.
‘또 무엇을 꾸미려고 하는 게냐?’
어느 하나 예측할 수 있는 게 없는 진무립이다.
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문화와 조부님께 포위를 완전히 풀지 말고 언제든 다시 가둘 수 있게 유지하도록 전해주십시오.] [그러마.]단소룡의 입술이 작게 달싹거리자 움찔한 수문화가 이쪽을 돌아본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수문화가 빠르게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색한 긴장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교도들이 길을 열었고 그 사이로 초평천 일행이 협곡에 내려와 부상자를 수습한다.
그렇게 태종무단의 안전이 확보된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진무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럼 지금부터 협상을 시작하지.”
부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철군 준비를 하던 장천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협상이라고?”
말투에서 불쾌한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가 물러나는 것 외에 다른 조건이 있단 말이냐?”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염자성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장천무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협상을…….”
순간 진무립을 쳐다본 염자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차!’
휙 돌아간 고개가 소화산의 전경을 확인한다.
여전히 언제든 포위망을 갖출 수 있는 무림맹의 무인들.
반면 사천 무인들의 진입으로 태종무단에 대한 포위는 풀린 상태였다.
‘이대로 다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필패다.’
태종무단이라는 인질이 없어졌다면 수적 우위에 있는 상대는 거리낄 것이 없다.
진무립은 당황한 염자성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상황파악이 된 모양이군. 그럼 이쪽의 조건을 말해볼까?”
두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은 염자성이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놈! 네놈에겐 양심이란 게 없느냐!”
“세상을 참 편하게 사는군. 천하를 먹어치우겠다고 온 녀석들이 양심을 찾느냐? 이만이 넘는 숫자로 백 명을 공격하는 건 양심이 있는 일인가?”
염자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건 전쟁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숫자가 무슨 소용이냐?”
“권모술수 또한 전쟁의 일부가 아닌가?”
“…….”
날카로운 일침에 순간 염자성은 말문이 턱 막혔다.
천마신교의 교인이 성화령 앞에서 한 약조는 절대 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진무립이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제시했다.
“성화령의 앞에서 다신 천하를 노리지 않겠다고 약조해라. 대신 신강은 천마신교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중원의 무인들이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약속하지.”
진무립의 제안은 아군조차 놀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던진 제안이 아니다.
일련의 대화에서 진무립은 장천무가 감정보다 실리를 우선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라면 진즉에 태종무단을 공격했을 거다.’
장천무의 눈매가 차갑게 번뜩인다.
“일평생 척박한 천산에 틀어박혀 살라는 말이냐?”
“지금까지도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
황당하다는 듯 진무립을 쳐다보던 장천무가 이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농도 짙은 살기가 줄기줄기 솟구치더니 일진광풍이 협곡을 휘몰아친다.
한참을 웃던 장천무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힌다.
“진무립. 너는 나를 너무 구석으로 몰아넣는구나.”
진무립의 제안은 천마신교의 오랜 숙원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았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천마신교를 해체하는 게 낫다.
장천무의 손이 검파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백 년!”
진무립의 날카로운 외침이 장천무의 손을 멈추게 했다.
이어서 진무립의 전음이 장천무의 귓가에 속삭이듯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서 피를 보는 것보다는 그쪽이 낫지 않겠는가?] [감히 내게 백 년이나 봉문을 하라는 말이냐?] [전쟁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생각해라. 과연 전쟁의 겁화가 소화산만 불태우고 끝날 것 같으냐?]‘…….’
진무립의 속삭임이 장천무의 갈등에 불을 지폈다.
당초 자신이 전투를 포기한 것도 천산의 교인들을 위함이었다.
이대로 다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만에 하나 승리를 거둘지라도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에 진무립의 말처럼 이 자리 없는 화령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진무립은 갈등에 사로잡힌 장천무에게 쐐기를 박았다.
[우린 우리대로, 마교는 마교대로. 그저 살아왔던 방식으로 백 년을 더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그땐 내가 없겠지.] [나도 없을 거다.]두 사람이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 탁소혜가 부친 탁이신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 [그냥 전면전을 벌여도 되지 않을까요? 내일이면 본 령의 고수들이 온다면서요?]탁이신은 진무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딸을 보면 실소를 참았다.
[그들은 오지 않는다.]아마도 화령의 무인들은 지금쯤 강남에서 전후 수습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탁소혜가 다시 말했다.
[그들이 오지 않아도 숫자는 우리가 우위에 있는데요?]탁이신은 실소를 참았다.
[우리가 어떻게 마인들을 막았는지 잘 생각해보아라.]고작 백여 명으로 이만에 달하는 무인을 막아냈다.
소화산은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기 적합한 전장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숫자의 우위가 있다곤 하나 만일 지금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승리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누구도 그건 바라지 않을 것이다.
탁이신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멀찍이 주변을 포위한 아군을 담는다.
‘상대는 이곳에서 이틀을 쉬었다. 반면 며칠이나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저들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생각하니 숫자만 우위일 뿐 전력의 우위라곤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진무립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입장에선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겠지.’
아군인 탁소혜조차도 싸우면 반드시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인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새삼 진무립이 무섭게 느껴지는 탁이신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정말 완벽하게 이용하는구나.’
마교의 백 년 봉문은 현 상황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다.
진무립과 전음을 주고받던 장천무가 하얗게 물든 소화산의 전경을 둘러본다.
‘중원.’
이대로 진무립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다신 볼 수 없는 풍경이 될 것이다.
“후후후.”
조소에 실린 뿌연 입김이 불어온 바람에 연기처럼 흩어진다.
장천무의 시선이 진무립에게 닿는다.
“성화령의 앞에서 약속하지.”
내뻗은 손으로 궤짝에 들어있던 성화령이 스르르 빨려들었다.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든 장천무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본 교는 향후 백 년간 신강 밖으로 무인을 파견하지 않겠다.”
체념한 마교도들이 눈을 질끈 감는다.
교주 장천무가 무엇을 위해 이런 치욕을 감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에 이어 진무립이 말했다.
“무림맹의 무인이 신강에 진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겠다.”
염자성에게 성화령을 넘긴 장천무가 진무립에게 묻는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 없다.”
고개를 끄덕인 장천무가 훌쩍 뛰어오르더니 천경봉의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섰다.
“천하는 듣거라!”
쩌렁쩌렁한 메아리가 물결처럼 소화산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본 교의 꿈은 잠시 멈췄을 뿐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기억에서 우리가 지워지는 날!”
먹먹한 외침이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장천무의 두 눈이 시뻘건 혈루를 흘려냈다.
“우린 반드시 돌아와 천하를 거머쥘 것이다.”
서슬 퍼런 경고가 무인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반대편 절벽 위로 뛰쳐 오른 진무립이 그에 화답하듯 외쳤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도전하라! 무림은 절대 새외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전이라…… 후후후.”
핏발 선 눈동자로 진무립을 노려보던 장천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 채 몸을 돌려 사라졌다.
진무립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수문화가 포위망의 한쪽을 뒤로 물려 마교도들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부교주 군도를 필두로 마인들이 일사불란 퇴각하는 가운데 후미에 선 염자성이 뒤를 돌아본다.
‘광룡 진무립.’
죽는 날까지 잊어서는 안 될 얼굴이다.
오늘의 수모는 반드시 후대에 갚아줄 것이다.
진무립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염자성이 대열에 섞여 사라졌다.
천하를 뒤흔든 두 번째 천하대전이 천마신교와 천하 무림의 백년지약(百年之約)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선두에 선 부교주 군도가 피눈물을 쏟아내며 이를 갈았다.
“자성.”
“예.”
염자성의 비참한 표정이 붉어진 눈동자에 선명하게 틀어박힌다.
군도가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신강에 진(進) 씨 성을 가진 놈은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해라.”
이젠 진무립의 진 자만 들어도 치가 떨려올 것 같다.
소매로 눈가를 훔친 염자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교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무림맹 무인들의 함성이 하늘로 솟구쳤다.
“우와아-!”
“마교가 물러난다!”
“광룡이 해냈다!”
자칫 엄청난 혈전으로 번질 수 있는 전쟁이었다.
진무립은 황천패를 죽여 복령천의 야욕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몇 마디 말로 천마신교까지 완벽하게 물리친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전쟁의 일등공신은 단연 진무립이었다.
물결처럼 번지는 함성 속에 우수에 찬 눈빛들이 진무립에게 쏟아진다.
“진무립!”
“광룡 대협!”
수문화를 비롯한 상천의 무인들, 진무립을 지켜봐 온 사천의 동료들과 존경심을 표하는 중원의 무인들이 연이어 진무립의 이름을 외친다.
쏟아지는 시선을 하나씩 마주하던 진무립의 얼굴에 지친 미소가 깃들었다.
어느새 곁으로 올라온 단려화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진무립을 부축했다.
“무립.”
무인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한 진무립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려화.”
단려화의 어깨에 손을 올린 진무립이 그녀에게 의지하며 말했다.
“조금…… 쉬고 싶구나.”
단려화는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