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6
◈ 327화. 남겨진 사람들
조용한 방 안에 그윽한 다향이 번져간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동초개가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이젠 괜찮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야.”
“정말 다행이다. 다들 많이 걱정했거든요.”
“네 덕분에 소화산의 전쟁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고 많았다.”
“헤헤. 매번 짐만 됐었는데 소공자께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애써 웃는 동초개의 모습에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동초개.”
“네?”
동초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진무립이 작게 말했다.
“내 앞에선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아.”
“저는 억지로 웃은 적이…… 어?”
순간 말을 하던 동초개의 눈에서 마치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억눌러왔던 감정이, 참아왔던 슬픔이 진무립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동초개가 다급하게 소매로 얼굴을 훔친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동초개가 어쩔 바를 모르며 울상을 지었다.
“하하. 이, 이거 왜 이러지?”
“슬픔은 억누르지 않아도 돼.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라. 네가 운다고 흉볼 사람은 없으니까.”
“…….”
쏟아지는 눈물 너머로 진무립을 바라보던 동초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크흑…….”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동초개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흐아아!”
한 맺힌 절규가 괴롭게 울려 퍼진다.
친구처럼, 아비처럼, 스승처럼 따르던 적모개를 잃은 동초개의 슬픔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진무립은 시린 가슴을 움켜쥐고 동초개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동초개가 두 팔로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고개 들었다.
진무립은 슬픈 미소로 동초개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었구나.”
입술을 질끈 깨문 동초개가 고개를 떨구며 읊조리듯 말했다.
“전쟁은 끝났는데……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모두가 기뻐하는데 정작 나는 돌아갈 곳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거의 평생을 적모개와 함께 사천에서 살아온 동초개다.
그에게 적모개가 없는 개방의 총단은 낯선 집처럼 느껴지기 충분했다.
“만남 뒤에는 헤어짐이 이어지는 법이지. 단지 너와 적모개의 만남은 헤어짐이 조금 빨랐을 뿐이다.”
동초개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진무립이 말을 이어갔다.
“네 곁에는 내가 있고, 용추도 있고, 추억을 공유할 동료들이 있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언제든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말이지.”
진무립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초개가 그제야 씩 웃었다.
“그렇겠죠?”
처음에 비하면 많이 가벼워진 웃음이다.
진무립은 반갑게 웃었다.
“그래.”
“소공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이든 말해봐라.”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던 동초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분타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 천하를 구한 영웅이 기억해준다면 분타주도 분명 기뻐할 거예요.”
“어떻게 잊겠느냐. 나는 그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그거면 됐어요. 헤헤.”
맑게 웃은 동초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네요. 그럼 가볼게요.”
“그래. 일간 다시 보자꾸나.”
“네!”
힘차게 대답한 동초개가 포권을 취하곤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진무립이 차를 들이켜며 생각했다.
‘남겨진 자의 슬픔. 의(義)란 이런 것인가.’
새삼 스승의 말이 다시 떠오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벼운 걸음으로 후원을 나선 동초개가 무림맹의 정문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동초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오냐?”
“아앗!”
화들짝 놀란 동초개가 움찔하며 돌아섰다.
“어? 소방주?”
씩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이는 바로 소걸개였다.
“진대협을 만나고 오는 모양이지? 속이 좀 후련해졌나?”
“덕분에요. 이젠 괜찮아요.”
“잘됐구나. 함께 돌아가자.”
“네.”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사람이 흰 눈을 밟으며 숲길에 접어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동초개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기다리신 거예요?”
“그래. 뭐가 이상하냐?”
“사실 저한테는 신경을 안 쓰실 줄 알았거든요.”
“왜?”
“분타주가 없는데도 왠지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여서…….”
“서운했느냐?”
“…….”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선뜻 찾아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초개의 마음을 이해한 소걸개가 피식 웃었다.
“나는 곧 개방의 방주가 될 예정이다.”
“그건 알고 있어요.”
“슬픔은 전염병과도 같지. 소방주인 내가 슬픔에 잠겨 있으면 누구도 웃지 못할 거야.”
동초개는 말없이 소걸개의 말을 경청했다.
“우린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이 전쟁에 승리했다. 다들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료의 죽음에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지. 우린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 만일 내가 죽었다면, 나는 남은 이들에게 그걸 바랄 거야.”
동초개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소걸개를 쳐다본다.
언제나 가벼운 것만 같던 사람이 오늘따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소걸개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적모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너다. 그라면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길 바랄 것 같으냐?”
“나는…….”
고민하는 사이 숲이 끝나가며 개봉의 성곽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심 끝에 동초개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게 네 숙제다. 시간은 많으니 잘 생각해봐라.”
적모개가 죽은 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자신에게 마침내 할 일이 생긴 느낌이다.
고개를 끄덕인 동초개가 환하게 웃었다.
“네.”
* * *
진무립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고자 후원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방문은 모두 단려화의 선에서 차단됐다.
아직 진무립에겐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탕약 냄새로 가득한 방 안.
떠들썩하던 대문 밖이 잠잠해졌음에도 진무립은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했다.
단려화가 밖을 정리하고 들어오며 말했다.
“좀 누워서 쉬는 게 좋지 않겠어요?”
“괜찮아. 움직일 만해.”
해야 할 일이 남은 이상 편히 쉴 수는 없었다.
슬퍼하는 이는 비단 동초개만이 아닐 테니까.
‘운화결.’
그는 없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다른 이를 보낼 수는 없다.
운화결에게 어려운 임무를 맡긴 자신이 직접 찾아가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야 한다.
‘어렵군.’
운화결의 아이까지 가진 임교영에게 그의 죽음을 전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진무립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주군. 주군 앞으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서신?”
문을 열고 들어온 금성우가 진무립에게 곱게 접힌 전서를 내밀었다.
“강남에서 당가의 삼공자가 보내온 서신입니다.”
강남에 갔던 당천은 진무립을 만나고자 이곳에 돌아왔으나 당우는 무슨 일인지 그곳에 남아있었다.
진무립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서신을 읽어갔다.
「소공자.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축하의 인사로 시작된 서신의 내용이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말할 것은 아니지만 걸리는 게 있습니다. 몇 번을 다시 살펴도 일사령의 시신에선 만리추종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와 연결된 그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복령천의 생존자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답신 부탁드립니다.」
서신을 모두 읽은 진무립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생존자라고?’
몇 번이나 서신을 다시 읽은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수련!”
진무립의 다급한 외침에 은수련이 뛰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당우와 함께 만리추종향을 추격할 때 말이다. 분명 운화결이 남긴 목판을 확인했다고 했었지.”
“그랬습니다. 혹시 몰라서 아직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게 다오.”
“예.”
꺼지듯 사라진 은수련이 순식간에 처소에 다녀왔다.
“여기 있습니다.”
목판을 받아 든 진무립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진무립의 미간에 실주름이 잡힌다.
‘일사령의 무위는 검황 천영조차도 전력을 쏟아부어야 했을 만큼 강하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운화결은 그에게 만리추종향을 묻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우가 일사령의 시신에서 만리추종향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의 확실할 것이다.
‘그럼 그는 대체 왜 열두 명 전원에게 묻혔다고 했을까?’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와중에 진무립의 뇌리에 벼락같은 생각이 스치듯 사라졌다.
‘설마 일사령 대신 본인에게 만리추종향을 묻히고 놈을 따라간 건가?’
그렇다면 목판의 내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벌떡 일어난 진무립이 지필묵을 가져와 서신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수련아. 강남에 흑조를 받을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은수련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거련채주가 양산채주와 복호채주를 간병한다며 그곳에 남았습니다.”
“이걸 녀석에게 전달해라.”
“예.”
곱게 접은 서신을 넘긴 진무립이 장포를 챙겨입었다.
‘당우에게 이어진 만리추종향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운화결은 아직 살아있다!’
* * *
눈 덮인 고즈넉한 장원.
빗자루를 쥔 지여령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눈을 쓸어간다.
“후우…….”
나직한 한숨이 연기처럼 흩어져 갔다.
‘어쩌면 좋을까.’
치워도 치워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눈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임교영이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운화결이 돌아오지 않는다.
안가를 지키는 무인에게 물어도 기다리라는 말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말해주지 않아도 느껴진다.
보름이 지났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은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과 같으니까.
재차 새어 나온 한숨이 뽀얗게 흩어져 갈 때, 임교영이 창문을 활짝 열며 고개를 내밀었다.
“여령. 상공께서는 어디까지 오셨을까요?”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지여령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곧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어렵게 잉태한 그녀에게 작은 걱정이라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운화결이 남긴 씨앗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렇겠죠?”
“날이 많이 추우니 창문을 닫으시지요. 건강하게 그분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잔소리.”
배시시 웃은 임교영이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그분께서도 나와 같은 하늘을 보고 계실까요.”
“물론이에요.”
“아니면…… 저 하늘 위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실까요.”
순간 지여령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임교영의 밝은 표정이 점점 서글픈 얼굴로 변해간다.
“아가씨.”
“고마워요. 여령.”
입가에 떠오른 서글픈 미소가 지여령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말문이 막힌 지여령이 어쩔 바를 모르며 입술을 깨문다.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로구나.’
한번 모든 것을 빼앗겼던 그녀에게 하늘은 남은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임교영이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킬 테니까요.”
지여령은 차마 그 눈빛과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염치없지만 여령이 조금 도와줬으면 해요.”
“물론이에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임교영이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난 언제나 여령에게 받기만 하네요.”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신은…….”
그녀들의 앞에 나타난 이들은 진무립과 단려화였다.
진무립을 향한 지여령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그와 함께 왠지 모를 원망도 피어오른다.
머리는 원망해선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가슴은 그렇지 못한 까닭이다.
임교영이 미소로 진무립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공.”
그녀의 안색을 살핀 진무립이 창가로 다가가며 물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임교영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점점 무거워지네요.”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무겁게 가라앉은 장원의 공기를 감지했다.
임교영을 살피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던 지여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진공.”
“운화결의 안위가 궁금한 것이겠지.”
진무립이 먼저 말해주자 지여령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습니다.”
진무립은 창문 너머의 임교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태연한 척하고 있으나 쿵쾅거리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다.
단려화가 조용히 다가가 임교영의 손을 잡으며 따스한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에 요동치던 심장박동이 서서히 잦아들자 진무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놀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내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임교영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무립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를 데려오지는 못했습니다.”
“…….”
진무립은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작게 열리는 진무립의 입술 사이로, 두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말이 흘러나왔다.
“대신 나는 당신과 함께 그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