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4
◈ 34화. 실리
바짓단을 붙잡은 당우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간절하게 애원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으헝헝!”
진무립은 당우를 물끄러미 내려봤다.
‘이 정도면 됐겠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계획이니까.
아직은 당가와 척을 질 때가 아니었을뿐더러 당우를 이용해 모든 계획을 꾸민 묵혈방주는 죽었다.
이 정도면 철없는 행동의 대가는 충분히 치른 셈이다.
진무립의 검집이 당우의 뺨을 두드렸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시퍼렇게 질린 당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예, 예, 예. 버, 번쩍 들었습니다.”
“보고 들을 준비가 됐다면 이제 현실을 보여주마. 그들을 데려와라.”
진무립의 명에 광룡대가 움직이자 금정무문의 무인들도 뒤를 따랐다.
그들이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진무립은 당우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네놈이 누구에게 동조했는지 알려주마. 똑바로 서서, 지금부터 묵혈방이 한 짓을 똑똑히 지켜봐라.”
얼마 지나지 않아 불타는 전각 너머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여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막 소녀 태를 벗은 처녀부터 눈가에 옅은 주름을 간직한 여인까지 하나같이 혀를 찰 만큼 초췌한 몰골이었다.
당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들은 대체······.”
“네놈을 떠받들던 묵혈방이 납치한 여인들이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당우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물론 묵혈방주의 곁에 머무는 동안 그가 그다지 올곧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가에서와 달리, 자신을 왕처럼 떠받드는 그 모습이 기꺼워 작은 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 또한 평소 깨끗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묵혈방의 짓이라면 자신은 악적을 도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묵혈방이 이런 짓을 했단 말이냐? 그, 금정무문의 짓이 아니라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선을 넘어도 훨씬 넘었다.
현실을 부정한 당우의 손이 머리를 움켜쥘 때, 한 걸음 나선 진무립이 외쳤다.
“그동안 고초가 많았습니다! 이제 묵혈방은 사라졌으니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한 여인들은 저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쌓여온 억울한 심정이 폭발한 것이다.
“흐흑······.”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들이 표출하는 격한 감정이 순식간에 장내를 장악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단려화는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여인을 납치해 파는 얘기는 소문으로나 들어봤을 뿐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자신도 당우처럼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생각보다 비정하구나.’
모두가 오열하는 가운데 한 여인이 무릎으로 걸어와 진무립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은공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여인들의 눈과 귀과 집중된 가운데 진무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들을 구한 이는······ 당가의 삼공자 당우대협이오.”
참담한 얼굴로 서 있던 당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지금 무슨 소리를······.’
꿇어앉은 여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라구요?”
뇌옥에 갇혀 있던 시기, 간수들이 지나가며 하는 소리를 들은 까닭이다.
“당가의 공자는 우리를 납치한 묵혈방의 배후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있으니 누구도 묵혈방을 손대지 못할 거란 말까지 했습니다.”
비록 무림과 동떨어진 세상에 살아온 여인들이었지만 사천에서 제일가는 무림세가를 모를 리 없다.
그녀들이 희망을 버렸던 것도 바로 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우는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묵혈방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 무슨 짓을 했는지, 독사 같은 혓바닥에 놀아난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에 동조했는지.
무너지듯 주저앉은 당우가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크흐흐······.”
진무립의 시선이 당우에게 닿았다.
벌을 받아야 할 놈에게 보일 동정심 따위는 없다.
당우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 진무립이 여인들에게 말했다.
“그건 오해입니다. 당가의 공자가 묵혈방에 들어간 것은 모두 여러분을 구하기 위한 것. 우리는 당우대협의 요청에 따라 여러분을 구한 것입니다.”
금정무문주 신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맞소. 당공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대들을 구할 수 없었을 거요. 인사를 하려거든 그에게 하시오.”
자신들을 뇌옥에서 꺼내준 이들의 말이다.
오랜 시간 걱정과 불안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녀들은 다른 생각 없이 당우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은인을 몰라뵙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오늘의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아이가 이제 두 살입니다. 은공께서 구해주신 덕분에 아이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인사에 당우의 마음은 찢어질 듯 괴로웠다.
자신이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피해자에게 예를 받고 있으니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당우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나, 나는······.”
수혈이 찍힌 당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스르륵 쓰러졌다.
“으, 은공!”
진무립이 쓰러지는 당우를 부축했다.
“공자께선 묵혈방주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당한 상태입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시고 우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진무립과 시선을 교환한 신환이 문도들을 불렀다.
“너희는 이 여인들을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어라.”
“예. 문주님.”
여인들은 거듭 감사의 예를 표하며 금정무문 무인들을 따라갔다.
남은 무인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장내를 정리하는 가운데 신환이 다가왔다.
“소공자.”
“예.”
“당우가 비록 철이 없긴 하나 당가의 아들이오. 괜찮으시겠소?”
진무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가에서 알면 뭘 어쩌겠습니까?”
“후환이 두렵지 않다는 말이오?”
“모든 공은 당우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당가가 자식놈 좀 때렸다고 나를 핍박한다면 숨은 내막이 만천하에 알려지겠지요. 자식을 쓰레기로 만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당가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은 진무립은 그들이 해코지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했을 뿐더러 도리어 당가에 빚까지 만들어두었다.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래서 공을 당우에게······.’
신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움직였단 말이오?”
“놈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초를 겪었습니다. 철이 없다는 이유로 용서될 일이 아닙니다. 시간만 허락했다면 삼박사일은 두들겼을 겁니다.”
담담하게 말하니 도리어 더 무섭다.
신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도 무서운 인물이구나.’
그는 진무립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진무립은 말하지 않았지만 공을 넘긴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천의 명문 당가.
소문이 사실대로 퍼진다면 그들이 가만 보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들에겐 힘이 있고 든든한 동맹도 있다.
최악의 경우 금정무문에 모든 죄를 덮어씌울지도 모르는 일, 어쩌면 마도림도 함께 휘말릴 수 있다.
대처하기 힘든 변수를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명예를 주고 실리를 얻는 게 낫다.
진무립이 생각하는 실리는 바로 금정무문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금정무문은 반드시 필요하다.’
금정무문은 사천맹의 일원.
진무립의 눈은 벌써 다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유대하가 다가왔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시신은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 포로들을 끌고 와라.”
“예.”
광룡대의 일부가 시신을 옮기는 사이 다른 인원들은 창고에 가둬두었던 포로들을 끌고 나왔다.
진무립의 명을 충실히 이행한 광룡대로 인해 포로중엔 제대로 걷는 놈이 없을 지경이었다.
진무립이 신환을 바라보았다.
“살려둔 포로들에 대해서는 문주께서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이제 평창현은 오롯이 금정무문의 영역이니 이들의 처분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그간 묵혈방이 관리하던 사업장에 손대지 않겠다는 의미.
도움을 대가로 어느 정도 손해를 예상하고 있던 신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묵혈방이 관리하던 구역을 온전히 우리에게 맡기겠다는 말이오?”
“이곳은 오랜 시간 금정무문의 터전이었습니다. 어찌 과욕을 부리겠습니까? 당연히 금정무문에서 수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주면 되겠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신환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다못해 옆집의 잡초를 뽑아줘도 품삯을 받는 게 세상일이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들을 도왔단 말인가?
신환의 얼굴에서 의문이 가시질 않자 진무립이 슬쩍 물러나며 말했다.
“저희가 지금 당장 평창현을 나가면 믿으시겠습니까?”
신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말씀을. 나를 몰염치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오.
신환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그간 묵혈방으로 인해 본 문의 입지는 말할 수 없이 좁아진 상태였다오. 오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포로들의 처리가 남았으니 우린 먼저 돌아가겠소. 무인들이 쉴 곳을 마련하고 기다릴 테니 소공자께서도 꼭 와주시구려.”
“예.”
신환과 무인들이 포로를 수습해 나가자 진무립은 부하들을 소집했다.
“이제 속이 좀 풀리나?”
부대주가 당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것은 그들에게 더없는 치욕이었다.
진무립은 묵혈방주와 당우를 응징하며 그들의 분노를 확실히 풀어주었다.
광룡대는 밝은 표정으로 목청을 키웠다.
“예!”
진무립의 시선이 유대하를 향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텐데 잘 참아줬다.”
“대주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 자존심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참지 못했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유대하는 꾹 참고 진무립에게 알린다면 분명 해법을 찾아낼 거라 믿었다.
그 생각대로 진무립은 확실하게 유대하의 믿음에 보답했다.
진무립은 조장들에게 말했다.
“치욕을 감내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적장의 신발을 핥는 것도 마다하지 마라.”
풍연이 물었다.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부대주는 대주의 가르침대로 그 자리에서 모욕을 참았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어째서 이번 임무를 내리신 겁니까?”
금정무문의 요청이 있긴 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묵혈방주가 유대하를 건드린 순간 이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만일 내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부대주처럼 얼마든지 참았을 거다. 하지만 내 부하가 당한 모욕을 갚아주지 않는다면 어찌 너희들을 이끌 자격이 있겠나?”
그 말은 결국 자신들을 위해 묵혈방을 지웠다는 것과 같다.
광룡대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모두를 위해 모욕을 감내한 부대주, 그런 부하를 위해 끝내 복수를 해준 대주.
떠나지 않고 마도림에 남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진무립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고생했다. 다친 자들은 얼마나 되지?”
유대하가 가슴을 문지르며 답했다.
“경상자가 스물둘, 두 소저께서 적절히 보완해준 덕분에 중상자는 없습니다.”
진무립이 의외라는 듯 쳐다보다 단려화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은 우리도 광룡대의 일원이니까요.”
“고맙군.”
진무립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단려화에게 던졌다.
“상이다.”
“이건······.”
“기루에서 빌린 돈 갚는 거야.”
그녀의 손에 안착한 것은 다름 아닌 당우의 전낭.
조금 전 놈을 패다가 떨어진 걸 챙겨둔 거다.
안을 열어본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걸 정말 다 주는 건가요?”
흠칫 놀란 진무립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왜 그래? 얼만데?”
“안 봤어요?”
“은자만 들어 있는 거 아니었어?”
“전표도 섞여 있는데요?”
그녀가 꺼낸 전표는 무려 은자 십만짜리였다.
‘아, 내가 미쳤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부하들 앞에서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도 없다.
‘아까워도 할 수 없지. 이게 전부는 아니니까.’
진무립은 고개를 돌렸다.
“유대하. 내가 말한 건?”
유대하가 씩 웃었다.
“보이는 건 확보해뒀습니다. 방주의 처소는 태우지 않았으니 뒤져보면 더 있을 겁니다.”
단려화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무엇을요?”
“묵혈방주 같은 놈은 부하들 몰래 뒷주머니를 차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루에서 업혀 나갈 때 그걸 챙겨두라고 전음을 보내셨습니다.”
“방에서 다급하게 나온 것도 설마 그것 때문?”
“아파죽겠는데 그게 아니면 뭐하러 일어나겠습니까? 누워서 쉬지.”
“······.”
그녀는 어이가 없었는지 할 말을 잃었다.
진무립과 부하들은 유대하를 따라 묵혈방주의 처소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유대하는 침상 밑에 손을 넣어 커다란 궤짝을 끌어냈다.
“놀라지 마십쇼.”
모두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유대하는 궤짝의 뚜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