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38
◈ 38화. 독기
그날 저녁, 광평장의 숙소 앞에 작은 모닥불이 타올랐다.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가운데 주변에 광룡대가 둘러앉았다.
“전부 남을 줄이야. 다들 각오가 대단하군.”
풍연의 말에 전유가 부드럽게 웃었다.
“대주 같은 사람과 함께 할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닐세. 무인으로 살고자 마음먹었다면 어찌 이런 기회를 버릴 수 있겠나?”
불빛과 함께 스며든 밤공기에 모두가 차분히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유독 조용한 사람이 있었다.
주초의 등 뒤에 숨어 쪼그려 앉은 한경이다.
후영이 말했다.
“야. 거기 쭈그리고 있으면 시간이 되돌아가냐?”
“말 걸지 마. 죽고 싶으니까.”
“······.”
피폐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목소리에 더는 말을 걸 수 없었다.
후영은 화제를 돌렸다.
“이렇게 모아놓고 대주와 부대주는 어디 가신 거지?”
풍연이 답했다.
“부대주는 낮부터 지하 연무장에 계시고, 대주께서는······. 저기 오시는군.”
죽림의 그림자 속에서 진무립이 나타나자 광룡대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모였나?”
“예.”
곧이어 어둠 속에서 용추가 커다란 술독을, 단려화가 손질된 돼지를 들고 나타났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줄이야.’
단려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진무립이 피식 웃으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지금부터 보름간 마지막 휴식을 취한다. 보름 뒤엔 지옥 같은 수련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아둬라.”
마도림에 뼈를 묻기로 뜻을 모은 이상 이젠 앞만 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
“예!”
광룡대의 우렁찬 외침에서 전과 다른 끈끈함이 느껴졌다.
부하들에게 술을 베풀고 광평장을 나선 진무립은 마도림의 무고(武庫)로 향했다.
컴컴한 실내, 서늘한 공기와 먹 냄새가 짙게 풍기는 가운데 안으로 들어간 진무립은 미리 생각해둔 사람처럼 네 권의 비급을 챙겼다.
검법과 창법, 도법과 봉법.
마도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무고를 들락거리며 봐둔 책들로 조금만 보완하면 저들의 무공보단 훨씬 강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저들은 마도림의 무공으로 강해지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
숙소로 돌아온 진무립은 책을 필사하며 비급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천음지체의 뛰어난 오성을 타고난 진무립에게 비급의 단점을 개선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치 폐관 수련하듯 방에 틀어박힌 지 보름이 되던 날, 초무강의 허가를 받은 진무립은 광룡대와 함께 중경을 떠났다.
***
무르익은 가을 산새가 화폭에 그려놓은 듯 수려하다.
서늘한 아침 공기가 깃든 관도에 광룡대가 올라섰다.
정가장의 임무 때와는 달리 도보로 이동하는 그들은 들뜬 마음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진무립의 뒤를 따랐다.
진무립의 곁을 따르던 단려화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씩 웃은 진무립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부터 지옥문으로 들어간다! 뛰어!”
화살처럼 쏘아진 진무립의 신형이 야산을 날 듯이 뛰어오르자 광룡대가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바짝 뒤따르던 용추가 전음을 보냈다.
[천주님. 설마 부곡채주를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우린 성도로 가야 한다. 날 대신해 이들에게 독기를 심어줄 인물은 그놈밖에 없지.]용추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저는 안 가면 안 될까요?]부곡채주 백채륜은 둔감한 성격인 용추가 상천에서 유일하게 껄끄러워하는 상대였다.
그는 상천팔기로 불리는 여덟 명의 대채주 중 가장 젊은 인물로 좋게 말하면 진무립 못지않게 심계가 깊은 인물이고 나쁘게 말하면 속내를 알 수 없는 음흉한 사람이었다.
[닥치고 따라와.] [으으.]용추는 울상을 지으며 마지못해 뒤를 따랐다.
진무립과 광룡대의 행보에는 밤낮 구분이 없었다.
신법에 소모된 내력을 보충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잠자는 시간, 먹고 싸는 시간마저 최소한으로 줄였다.
검황 천영에게 무공을 배운 단려화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광룡대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잘 닦인 관도도 아니고 걷기도 힘든 야산을 신법으로 내달리니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첫 사흘은 조금만 쉬어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다음 사흘은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끝내 우는 소리는 내뱉지 않았다.
진무립은 강요하지 않았고 선택한 것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엿새가 지난날.
광룡대는 스스로에게 조금씩 놀라기 시작했다.
매 순간 한계라고 생각했음에도 팔과 다리는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진무립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앞으로 이들이 맞이할 수련은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고난이 뒤따를 것이다.
만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속단하고 주저앉는다면 힘든 싸움을 이겨낼 수 없다.
진무립의 의도대로 광룡대의 눈에 점점 독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가나 해보자.’
이를 악문 그들은 필사적으로 진무립의 뒤를 추격했다.
그렇게 중경을 떠난 지 열흘이 되던 날.
전원의 발이 부르트고 악다문 이빨에서 피가 새어 나올 무렵,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광룡대의 지옥 같은 강행군이 막을 내렸다.
깎아지를 듯한 높은 절벽 위에 광룡대가 멈춰섰다.
가쁜 숨을 몰아쉰 유대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말 이곳이 맞습니까?”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절벽과 높은 산에 바로 밑의 골짜기는 운무에 휩싸여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짙은 운무를 응시하는 진무립의 얼굴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이 아래다.”
다신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으나 올 수밖에 없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광룡대를 단련시키려면 부곡채에서 가까운 이곳밖에 없었으니까.
그놈이라면 반드시 이들에게 부족한 독기를 심어줄 것이다.
진무립의 눈에서 아픔을 읽은 단려화는 이곳이 어딘지 눈치챘다.
‘은곡.’
아마도 생존자가 없는 은곡일 것이다.
‘이들을 왜 이곳에 데려왔을까.’
진무립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내려가자.”
절벽을 등진 진무립은 십 장 정도 떨어진 바위 앞에 멈췄다.
“열어라.”
“예.”
바위를 감싸 안은 용추는 두 발을 지면에 단단히 틀어박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커다란 바위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잠시 후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크기의 동굴이 나타났다.
“이런 곳이······.”
“따라와라.”
진무립이 먼저 들어가자 광룡대가 차례로 뒤따랐다.
입구를 닫는 것은 여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용추가 벽의 기관을 작동하자 스르륵 움직인 바위가 동굴에 짙은 어둠을 선사했다.
“한 점 빛도 들지 않는 곳이니 안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앞이 보이지 않을 거다. 앞사람의 옷깃을 잡고 천천히 따라와라.”
“예.”
나직한 울림이 끝도 없이 퍼져 나간다.
동굴은 때론 굽어지기도 하고 벽을 잡고 뛰어내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유대하의 옷깃을 쥔 풍연은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이 끝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걱정과 기대 섞인 마음으로 진무립의 뒤를 따라간 그들은 무려 한 시진 만에 어스름한 빛과 조우했다.
이어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하더니 동굴 밖의 새하얀 안개가 일행을 감싸 안았다.
“그대로. 앞사람의 옷을 잡고 그대로 따라와라.”
진무립은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발을 내디뎠다.
무거운 침묵 속에 일각을 걸어가자 마침내 안개가 옅어지며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 마을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렵게 동굴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대하는 생각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단 말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정해야 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부러진 칼 조각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느끼게 했고.
무너진 돌담에 깔린 옷자락과 아이의 신발은 머릿속으로 당시의 처절함을 그리게 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이다.
단려화는 왠지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다니······.’
그들은 진무립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이런 곳에 숨어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무거운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그들은 천천히 마을에 진입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보는 마을은 훨씬 규모가 컸다.
큰길의 좌우로 좁은 골목 끝에도 집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우물도 있었다.
마을 중앙에 도착한 진무립이 마침내 발을 멈추자 누군가 물었다.
“여긴 대체 어딥니까?”
진무립의 입가에 그답지 않게 서글픈 미소가 번졌다.
“오래전 지옥이었던 곳.”
이마에 올린 손이 얼굴을 지나가자 그 미소는 씻은 듯 사라졌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지옥이 될 곳이다.”
맨 뒤에 서 있던 용추가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무겁게 깔았다.
“이곳에서 본 것, 들은 것, 경험한 모든 것은 머릿속에만 담아두겠다고 맹세해. 안 그러면 반드시 죽어.”
용추의 엄포에 침을 꿀꺽 삼킨 광룡대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공기가 가실 줄 모르자 진무립은 애써 밝게 웃었다.
“그렇게 기죽을 것 없다. 네놈들이라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조장들은 앞으로 나와라.”
“예.”
“나는 이제 성도로 갈 것이다. 이곳에서의 과정이 끝나면 날 찾아와라.”
“저희와 함께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먼저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진무립은 다섯 권의 비급을 꺼냈다.
“오늘부터 부하들과 함께 이걸 수련해라.”
“이게 뭡니까?”
“마도림의 무인이 마도림의 무공을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되지. 신공절학은 아닐지라도 완숙해진다면 지금보다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다.”
후영이 물었다.
“마도림에 궁술도 있었습니까?”
“활 좀 줘봐.”
“예.”
후영은 자신의 활을 풀어 진무립에게 건넸다.
“조장만 남고 전부 물러나라.”
후영은 진무립이 무얼 하려는지 눈치챘다.
“활을 써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버지가 사냥꾼이셨지.”
“······.”
“물러나서 잘 지켜봐라.”
“화살도 드립니까?”
“그럼 쟤들 죽어.”
씩 웃은 진무립이 앞으로 나서자 후영은 목 좋은 자리로 이동했다.
‘대주라면 분명 뭔가 보여줄 거다.’
그럴 것만 같은 기분······. 아니, 그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후영이 눈을 크게 뜬 가운데 진무립은 네 명의 조장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날 죽여봐라.”
진무립의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것은 조장들도 알고 있었다.
자세를 잔뜩 낮춘 풍연이 검을 뽑았다.
‘허세라면 저런 투기를 뿜어낼 리가 없지. 진짜 죽일 생각으로 간다.’
조장들이 시선을 교환한 끝에, 가장 먼저 거구의 주초가 몸을 날렸다.
“활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무기지.”
진무립의 목소리는 후영의 귀를 파고들었고 후방으로 미끄러지는 신형은 그의 눈에 담겼다.
아무것도 없는 허리춤을 훑은 손이 활시위로 옮겨갔다.
‘세 대다. 쏜다.’
아무것도 없는 활시위를 튕기는 순간, 조장들은 마치 화살이 날아드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대체?’
허깨비 같은 뭔가가 날아드는 것을 확실히 느낀 까닭이다.
단려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궁성의 환영시(幻影矢)?’
당금 무림에서 궁술의 일인자는 궁황 투월초다.
그로부터 직접 천하대전의 이야기를 들은 단려화는 진무립이 보여준 한 수가 자신이 들었던 무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진무립의 일격에 조장들의 간격이 넓어지자 진무립은 지체 없이 그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후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뛰어든다고? 궁을 들고?’
전유의 봉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는 사이, 진무립의 활대는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억!”
전유의 몸이 붕 떠오른 순간 우측에서 주초의 창이 쏘아졌다.
바닥을 구른 진무립의 비어있는 오른손이 주초의 발목을 스쳐 지나갔다.
후영은 그 움직임의 의미를 알아챘다.
‘화살이다.’
손에 화살이 들려있었다면 주초의 발목은 힘줄이 끊어졌을 것이다.
후영의 귀에 진무립의 전음이 도착했다.
[물러날 걸 아는 궁사에게 접근을 망설이는 무인은 없지. 하지만 붙어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접근전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가 접근전의 가능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망설인다면 그 틈에 화살 한 대는 더 날릴 수 있다.
후영은 다행히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주초의 발목을 강하게 밀어 차고 풍연의 공격을 피한 진무립은 누운 상태로 미끄러지며 시위를 튕겼다.
‘등으로 보법을 펼치는 것 같다. 저런 방식으로도 쏠 수 있구나.’
후영은 마치 신세계를 접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숨 가쁘게 이어진 비무는 일각 뒤에 멈췄다.
화살 없이 치른 비무였으나 조장들은 승패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화살이 있었다면 세 번은 죽었을 거다.’
‘이거 장난이 아니군. 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활까지 쓸 수 있다고?’
‘대체 대주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진무립의 궁술은 마치 평생을 그것만 수련한 사람처럼 까다롭고 날카로웠다.
그들이 비무를 복기하고 있을 때 진무립은 후영에게 다가갔다.
“궁사에게 접근전은 독이다. 하지만 그 독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상황도 온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네게 준 비급은 권사가 사용하는 보법이다. 하지만 그것만 파고들어도 곤란하지.”
후영의 전통에서 화살 한 대를 뽑은 진무립은 몸을 돌리기 무섭게 시위를 튕겼다.
파공성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히 날아간 화살은 이십 장 밖의 돌부리에 틀어박혔다.
‘쥐?’
화살에 맞은 것은 손바닥만 한 쥐였다.
몸을 돌리고 시위를 걸며 화살을 쏘기까지의 과정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이십 장 밖의 쥐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돌아서며 쏘는 순간 표적을 정한 것이 된다.
‘부친께서 사냥꾼이었다고?’
이건 단순히 사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적이 늘 기다려 주는 건 아니다. 보이는 표적만 생각하지 마라. 자다가도 쏠 수 있게 항시 준비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진무립은 다른 조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비급을 완벽하게 익히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머릿속엔 넣어둬라. 석 달 뒤엔 그걸 볼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때마침 바람이 불어오며 진무립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정확히 석 달 후. 사신이 너희를 찾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