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0
◈ 40화. 상천의 산채
진무립의 뒤를 따르는 유대하는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였다.
‘상천의 산채.’
이들이 무림에 등장한 뒤로 단 한 번도 외인의 침입이나 방문을 허락한 적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을 상천의 일원으로 오르게 되었으니 가슴이 떨려왔다.
단려화 역시 그에 못지않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체 어떤 곳일까?’
무면산왕의 소문을 좇아 사천까지 왔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워낙 유언비어가 무성한 무인이니까.
그런데 진짜 무면산왕을 만난 것도 모자라 그와 함께 상천의 산채를 오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소협이야 상천의 일원이 되었으니 상관없겠지만 내가 함께 가도 괜찮은 거예요?”
진무립이 말했다.
“천주가 데려간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야 그렇겠지만······,”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인질로 삼아서 화령을 협박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진무립의 농담에 단려화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러기만 해봐요. 아버지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거예요.”
진무립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거 무섭군.”
외인을 들인 적이 없음에도 그녀를 데려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천하제일인의 딸이자 화령의 무인이다.
천하대전의 중심에 있었던 화령은 은곡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상천의 산채들은 은곡을 통째로 옮긴 곳.
진무립은 화령의 무인인 그녀에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경의 뒤를 따라 일각 정도 걸었을 무렵, 눈앞에 이 장 높이의 절벽이 나타나자 유대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길이 맞습니까?”
가경이 웃으며 답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여길 올라가야 합니다.”
단려화의 존재 때문에 말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곳은 침입을 대비한 함정과 기관이 설치돼 있었다.
훌쩍 뛰어오른 가경은 중간에 솟아난 돌부리를 밟고 꼭대기에 착지했다.
“사다리를 내려드리겠습니다.”
단숨에 뛰어오른 진무립이 밑을 보며 말했다.
“그냥 올라와.”
“예.”
지면을 박차고 도약한 유대하가 중간의 돌부리를 밟을 무렵, 뒤늦게 솟구친 단려화는 순식간에 절벽 끝을 잡고 올라섰다.
“헉!”
놀란 마음에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던 유대하는 가까스로 돌부리를 박차고 정상에 착지했다.
“단소저. 이러면 내가 제일 약한 것 같잖아요.”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그게 사실인데요.”
“······.”
웃는 낯으로 말하니 더욱 아프다.
절벽 위의 언덕을 오르자 거대한 분지에 들어선 산채가 나타났다.
중앙의 공터를 중심으로 수백 채의 가옥과 다섯 개의 전각이 들어선 풍경은 마치 하나의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놀라웠다.
유대하는 휘둥그레진 두 눈에 산채를 가득 담았다.
“부곡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몇 해 전 상행을 따라서 지나친 적이 있었으나 정상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놀란 것은 단려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곤 하나 부곡채는 섬 위에 세워진 화령의 총단과 매우 비슷했다.
두 사람이 놀라는 사이 좌우에서 십여 명의 젊은 무인들이 나타나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진무립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륜은?”
“출타 중입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그래. 들어가자.”
“예.”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행을 호위하는 구도로 위치를 옮겼다.
진무립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는 단려화는 녹의인들의 기도를 감지하곤 미간을 좁혔다.
‘혹시 내가 오는 것을 알고 강자들을 내보낸 걸까?’
이들의 기도는 화령의 뛰어난 후기지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만일 이런 자들을 고작 경계 임무에 투입할 정도라면······.’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뭐 좀 물어봐도 돼요?”
“그래.”
“너무 궁금해서 그러니까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이분들의 위치는 상천에서 어느 정도인가요?”
진무립은 순순히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가경을 제외한 이들은 산채와 외곽을 경계하는 예비대다. 아직 자신의 무공을 완성하지 못한 이들이지.”
단려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비대? 예비대라고요?”
“화령에선 은곡의 힘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지?”
“지휘관도 아닌 일개 무인조차 어지간한 중소방파의 대주보다 강하다고 들었어요.”
“제대로 배웠군. 알고 있었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
단려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어?’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곡의 힘을 경시하지 말라는 의미로 어느 정도 부풀려 가르친 줄만 알았다.
진무립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들의 뿌리는 무성의 무공.
한때 세상을 휩쓸었던 무공인 만큼 상천의 무인이 매우 고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 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곳 부곡채의 정식 무인도 백 명이 조금 넘는 정도이기에 수련생들까지 경계 임무에 투입하는 것이다.
언덕을 내려가 마을에 접어든 순간, 다섯 번의 종소리가 울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천주님이다.”
“천주님께서 오셨다!”
무인뿐만 아니라 부곡채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거리를 채워갔다.
“천주님!”
눈대중으로 보아도 족히 수백이 넘는다.
군중이 일제히 무릎 꿇는 광경은 마치 황제를 영접하는 백성을 연상케 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우렁찬 외침에 진무립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고, 이러지 말라니까.”
매번 이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으나 이들은 진무립을 볼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고 악귀의 핏줄, 죄인의 자식으로 불리는 자신들을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한 진무립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바꿔주고자 고군분투하는 주군에게 경외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만 일어나라.”
그 한 마디에 군중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올 때마다 이렇게 호들갑 떨면 다시는 안 올 거야.”
초유림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주님! 정말 안 오실 거예요?”
진무립은 씩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헝클었다.
“농담이다. 식사는 했느냐?”
“이제 먹을 거예요.”
진무립은 아이의 뒤에 선 모친에게 물었다.
“우리 세 사람이 한 끼 얻어먹을 수 있겠는가?”
젊은 아낙이 황망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주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어찌 마다하겠사옵니까? 한데 찬이 마땅치가 않아 천주님의 입에 맞으실는지······.”
단려화는 그녀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표정은 나무랄 데 없이 밝았으나 차림새에 부유한 느낌은 없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겠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상천이니 그만큼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진무립은 통이 큰 것 같았지만 모두 부하들에게 베풀기만 했을 뿐 자신에게 쓰는 돈은 거의 없었다.
‘상천의 산채는 이곳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마 다른 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나는 정말 온실 속의 화초였구나.’
자신이 화령도의 안락한 집에서 주어진 것들을 누리고 있을 때 진무립은 수천 명의 목숨을 짊어지고 벼랑 끝을 아슬아슬하게 걸었을 것이다.
그녀는 진무립이 새삼 다시 보였다.
빙그레 웃은 진무립이 아낙에게 말했다.
“밥 한 그릇에 물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럼 소인의 집에서 모시겠사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군중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그만 돌아가서 일들 봐라!”
“지난번처럼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밤에 조용히 떠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찔끔한 진무립은 고개를 돌렸다.
“안 간다니까.”
좁은 골목길을 지나간 그들은 방 두 개가 딸린 아담한 집 앞에 도착했다.
“천주님. 누······.”
“누추하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내가 더 미안해지니까.”
아낙은 빙그레 웃으며 일행을 평상으로 안내했다.
“금방 내올 테니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천천히 해. 바쁜 것도 아니야.”
“네.”
진무립 일행과 아이가 작은 평상에 마주 앉았다.
“명아. 무공은 잘 익히고 있느냐?”
“어?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어요?”
진무립이 씩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천하에 내가 모르는 건 없다.”
경명이 해맑게 웃었다.
“알아요. 천주님은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똑똑하신 분이라고 어머니가 그랬거든요.”
진무립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제대로 배웠구나.”
주변을 둘러본 유대하가 물었다.
“아버지께서도 상천의 무인이시냐?”
“아버지는······.”
경명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유대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진무립이 경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유대하를 바라봤다.
“내가 경명의 아버지다.”
이들을 거두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부모 잃은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가슴에 새긴 진무립은 이들을 부족함 없이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진무립은 경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학문 대신 무공을 선택했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
“그럴게요.”
진무립의 다정한 모습을 처음 본 단려화는 생각에 잠겼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야.’
부친 단소룡은 화령도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철의 성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진무립이 가는 길은 그보다 훨씬 험난한 길.
단려화는 문득 그가 가는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진무립이 경명에게 말했다.
“십 년 정도 부지런히 수련하면 여기 이 아저씨 정도는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거다.”
진무립이 유대하를 가리키며 농담을 던지자 경명은 히죽 웃었다.
“열심히 배우겠어요.”
유대하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하, 하하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사이, 여인이 부엌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비록 마도림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소박한 차림이었으나 수북한 밥과 정갈하게 담긴 반찬에선 그녀의 정성이 듬뿍 느껴졌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단려화는 진무립에게 은자 십만 개짜리 전표를 내밀었다.
“뭐야?”
“돌려줄게요.”
당우를 두들겨 패고 빼앗았던 돈이었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진무립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돈이 필요하잖아요.”
“이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면 원치 않아. 마음만 받을 테니 넣어둬.”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상천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의 손이 머뭇거리는 사이, 골목 끝에서 새하얀 무복의 젊은 사내가 나타났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한달음에 달려와 공손히 무릎 꿇는 사내는 부곡채주 백채륜이었다.
부곡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망루.
탁 트인 시야처럼 가슴 시원한 바람이 진무립의 옷깃에 스며들었다.
“산채가 많이 달라졌어. 네가 고생했구나.”
진무립의 치하에 백채륜은 빙그레 웃었다.
상천팔기 중 가장 잔혹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나 진무립을 위해 가장 먼저 죽어줄 사람을 찾는다면 그것도 바로 백채륜이었다.
그만큼 그의 충성심은 상천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백채륜이 물었다.
“데려오신 여인.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왜 묻는 거냐?”
“우리와는 다른 냄새가 납니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우리와 같은 냄새가 나는 놈들은 누구고?”
백채륜의 뱀 같은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마교나 혈교처럼 흉악한 놈들이 좀 비슷하지 않을까요?”
진무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리라는 말은 빼라.”
“그렇다면 천주님께서 저보다 훨씬 음흉하시니······.”
“내게 그런 농담도 하는 걸 보니 많이 컸구나.”
백채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젠 저도 대채주니까요.”
실소를 머금은 진무립은 본론을 꺼냈다.
“서랑곡에 사람을 넣어놨다.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시간이 없구나. 네게 맡기겠다.”
“마도림의 무인입니까?”
“그래. 다들 나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무재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석 달의 시간을 주기로 했으니 그 뒤에 찾아가 봐라.”
“어디까지 끌어올리면 되겠습니까?”
“무공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놈들은 알아서 올라올 테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떠올린 진무립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명이 떨어지면 천하제일인에게도 주저 없이 덤빌 수 있는 독종으로 만들어다오.”
“까다로운 말씀이로군요.”
턱을 매만지던 백채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몇 놈 죽여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