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1
◈ 41화. 그와 그녀의 의지
진무립은 실소를 머금었다.
“용추가 제법 정이 든 모양이다. 죽이면 나중에 화낼 거다.”
“천주님을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 많은 그 성격은 아직 못 고친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놈들은 마도림에 필요한 녀석들이다. 부탁한다.”
“노력해보지요.”
싱긋 웃은 백채륜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서장 무림의 동태가 심상치 않더군요.”
서장은 사천과 인접한 곳이지만 중간을 가로막은 대설산맥으로 인해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사천 무림에 비해 규모가 크다곤 할 수 없으나 포달랍궁과 혈교가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했다.
진무립이 물었다.
“뭐 들은 것이 있나?”
“최근 몇 달간 장남평에 마적 떼가 출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적?”
백채륜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선을 넘으며 거슬리게 하길래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섬뜩한 말을 웃으면서 하니 보통 사람이라면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진무립은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수장 한 놈만 살려놓고 물어봤더니 서장에서 왔다더군요. 혈교가 포달랍궁과 자신들 중 한쪽을 택하라고 했답니다. 한쪽 편을 들었다가 패하면 살길이 사라지니 이곳으로 도망친 거지요. 조만간 서장에서 큰 전쟁이 있을 모양입니다.”
“음.”
그간 두 세력이 서로를 견제한 탓에 가까운 사천 무림이 해를 입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서장 무림을 통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느 한쪽이 승리한다면 다음은 사천이겠군.”
“그렇겠지요.”
입술을 매만지며 생각하던 진무립이 씩 웃었다.
“좋은 정보다.”
진무립과 백채륜이 망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단려화와 유대하는 가경의 안내로 산채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경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민가부터 여인들이 소일을 하는 일터와 글을 가르치는 학당까지 차례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곳곳을 구경하던 두 사람은 어째서 무림에 진무립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천주님이 더 중요하다. 목이 잘려나가도 결코 입을 열지 않을 거야.’
이곳 사람들의 진무립에 대한 경외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대하가 가경에게 물었다.
“어른과 노인 중엔 사내의 숫자가 매우 적은 것 같습니다.”
가경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드리웠다.
“여인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도 많죠.”
“아······. 미안합니다.”
가경은 애써 웃었다.
“괜찮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니까요.”
가경은 다시 이들을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를 따라가며 단려화를 힐끔 쳐다본 유대하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나야 상천에 투신한 몸이니 그렇다 해도 단소저에게 이렇게 내부를 보여줘도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무립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려화는 달랐다.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를······.’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세상에선 악귀의 핏줄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들도 겪어보니 자신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다.
진무립은 보통 사람과 똑같은 이들을 세상에 어떻게 대했는지 직접 보고 느끼라고 데려온 것이다.
‘당신은······. 상천은 정말 전쟁을 바라지 않는군요.’
부모 잃은 아이들과 자식 잃은 노인들을 책임진 사람이 전쟁을 원할 리 없다.
겉으로 드러낸 여유 속에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또 한 명의 진무립이 숨어 있다는 걸 그녀는 확실히 깨달았다.
노을이 사라진 산채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곳곳에 횃불이 켜지는 가운데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시끄럽던 거리가 적막에 잠겼다.
백채륜과 식사를 함께하고 처소로 돌아온 진무립을 마당에서 단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정가장에선 그의 의도를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진무립이 무림에 해악을 끼칠 만한 사람인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도 빤히 보이는 그의 의도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상천이 세상을 위협할 의지가 없다는 걸 네 눈으로 확인해라.
진무립의 의도는 이것이었고 그녀는 그의 의도대로 그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진무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제는 알겠어요. 정가장에서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평상에 걸터앉은 진무립의 눈에 둥근 달이 떠올랐다.
“난 미련한 팔황문주와는 달라. 그저 이들이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혈겁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벼랑 끝 가시밭길을 걸어갈 생각인가요?”
그녀는 진무립의 계획을 묻는 것이었다.
“증명해야겠지.”
“증명?”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세상과 상생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을 거예요.”
진무립은 웃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나?”
왠지 익숙한 이 말은 그녀가 금정객잔의 별채에서 들었던 말이다.
진무립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해왔다. 분명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야.”
읊조리듯 내뱉는 말.
앞의 말은 그녀에게, 뒷말은 자신에게 하는 격려였다.
진무립이 선점한 작은 평상, 반대편에 앉은 단려화는 그의 넓은 등에 자신의 등을 기댔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느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순박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넉넉하진 않아도 정이 듬뿍 느껴지는 여인들의 미소.
단려화는 진심으로 이곳의 평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랐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진무립의 등으로 전해진다.
천하제일인의 딸, 천하제일방파의 무인.
보여주고 싶은 것, 알려주고 싶은 것은 전부 알려줬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녀라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깨뜨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그녀를 보내야 할 때다.
돌아가서 상천의 의지를 화령에 전한다면, 어지간해선 그들과 충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이제 궁금한 것을 해결했으니 강남으로 돌아가겠군. 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할까?”
“난 가지 않아요.”
“응?”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진무립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안 간다고?”
“당신과 상천에게 세상을 위협할 의지가 없다는 것은 알겠어요.”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하지만 혈겁의 생존자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들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세상은 다시 혼란에 빠질 거예요.”
단려화가 천천히 일어나자 진무립도 따라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돌아선 두 사람은 달빛 아래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단려화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굳건한 의지가 떠올랐다.
“상천이 세상에 그 의지를 증명할 때까지, 내가 당신을 지켜야겠어요. 이게 나의 의지입니다.”
정확히는 진무립과 상천이 세상과 충돌할 일이 없도록 지키겠다는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본 것처럼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다.
행여 상천의 정체가 알려지더라도 세상을 구한 신룡의 딸이 함께 있다면, 그들은 적어도 행동하기 전에 한 번은 더 생각할 것이다.
단려화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진무립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피식 웃었다.
“그대는······ 정상이 아니군.”
그녀도 마주 웃었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니네요.”
***
산채에서 이틀을 더 머문 진무립 일행은 새벽이슬을 밟으며 산채를 나섰다.
배웅 나온 백채륜이 말했다.
“성도로 가십니까?”
“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 그 뒤엔 성도로 가겠지.”
먼저 북천도문에 들러 돈을 돌려줘야 한다.
진무립이 말했다.
“녀석들을 잘 부탁한다.”
“시일이 좀 촉박하긴 하지만······. 노력해보지요.”
싱긋 웃은 백채륜은 단려화를 쳐다봤다.
“곁에서 챙기지 않으면 끼니조차 거르시는 분입니다. 우리 천주님 좀 잘 부탁드립니다.”
마주칠 기회가 없던 두 사람의 첫 대화였다.
그의 뱀 같은 눈이 향하는 순간, 단려화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것만 같았다.
‘무림 칠군의 일원이라더니······.’
보통 사람이라면 잠깐 움찔하고 넘어가겠지만 단려화는 다르다.
남들보다 예리한 그녀의 감각은 눈앞의 이 사내가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며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을 감추고 애써 웃었다.
“그러죠.”
백채륜은 진무립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살펴 가십시오.”
“다음에 보자.”
진무립과 함께 돌아서는 단려화의 귀로 백채륜의 전음이 도착했다.
[화령의 아가씨. 천주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하는 두 번째 환란을 맞게 될 겁니다.]슬쩍 고개 돌린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백채륜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상천팔기가 전부 저 사람 같은 건 아니겠지.’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장 높이의 절벽을 뛰어내린 세 사람이 좁은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조용히 뒤따르던 단려화가 진무립에게 물었다.
“혹시 그가 내 정체를 알고 있나요?”
진무립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무슨 문제 있나?”
“나를 화령의 아가씨라고 부르더군요.”
“속이 시꺼먼 놈이니 짐작하고 찍어봤겠지. 그대는 넘어간 거고.”
“······.”
그녀의 면사가 파르르 떨리자 진무립이 피식 웃었다.
“참 속이기 쉬운 사람이야.”
면사 속 단려화의 눈꼬리가 샐쭉하게 올라갔다.
“아니거든요?”
***
부곡채를 떠나 용추와 합류한 진무립 일행은 서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북천도문은 중경과 성도의 길목인 낭중현(廊中縣)에 자리한 방파로, 절기인 파성도법(破星刀法)은 패도적인 무공으로 유명했다.
낭중현까지 하루를 앞둔 거리, 진무립의 곁에서 말을 달리던 단려화가 물었다.
“그런데 성도로 가지 않고 북천도문에 들르는 이유가 뭐죠?”
마도림이 사천맹에 입맹하고자 한다는 것은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무립이 음야살귀를 죽이고 돈을 빼앗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빚을 만들어 두려고 가는 거다.”
“빚?”
진무립에게 백연곡의 동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단려화가 눈을 부릅떴다.
“은자 이, 이백만? 정말 그 돈을 음야살귀에게 바쳤단 말인가요?”
“가봐야 알겠지만 매우 힘든 상태일 거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돌려주면 그들은 어떻게 나올까?”
“말도 안 되게 고마워하겠네요?”
진무립의 미소가 왠지 음흉했다.
“그걸 노리고 가는 거지.”
행보를 재촉한 진무립 일행은 다음 날 저녁 낭중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이 조용한 거리를 비추는 가운데 주변을 둘러본 단려화가 말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객잔에서 쉬고 내일 가보는 게 좋겠어요.”
“바로 가지 않고?”
“지금 가면 곧 잘 시간이니 길게 대화를 못 하겠지만 아침에 방문해서 돈을 돌려주면 온종일 고마워할 거 아니에요?”
진무립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런 영악한 생각을 할 줄은 몰랐거든.”
“나도 보고 배우는 건 있거든요. 바로 당신에게.”
“······칭찬인가?”
그녀는 싱긋 웃었다.
“글쎄요.”
용추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객잔을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유대하가 다급하게 그의 앞을 막았다.
“내, 내가 갈 테니 그냥 계십쇼.”
용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지?”
슬며시 눈을 피한 유대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용형이 가면 수금하러 온 줄 알 거요.”
“풉!”
입을 틀어막은 단려화가 웃음을 참는 가운데 용추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유대하가 사라지자 용추가 입술을 잔뜩 내밀며 물었다.
“쟤 좀 때려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