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3
◈ 43화. 기사회생
동료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진무립은 장용과 독대했다.
차를 우려내는 장용의 손이 옅은 떨림을 보였다.
‘애가 타는 모양이군.’
느긋하게 앉아있던 진무립은 그가 건넨 차로 목을 적셨다.
“문주께서 많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마을에 소문이 퍼진 모양이구려. 다행히 이틀 전 깨어나셨습니다만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 제가 대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진무립은 그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정가장의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천도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 문 내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원래대로라면 사문 내부의 이야기를 외부인에게 쉽게 말할 장용이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가장에서 같은 일을 경험하셨을 테니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흉수가 가져간 은자 삼백만 때문에 기둥뿌리까지 뽑아야 할 판국입니다.”
장용은 북천도문의 자금 사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빚진 금액까지 남김없이.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일부러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된다.
진무립은 품에서 전표를 꺼냈다.
“받으십시오.”
장용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북천도문을 괴롭혔던 흉수는 정가장에 나타난 흉수와 손을 잡은 상태였습니다. 운 좋게 놈을 처리하고 품을 뒤져보았더니 이런 돈이 나오더군요. 돌려드리겠습니다.”
“어, 어······.”
눈앞에 은자 백만짜리 전표 두 장이 있다.
입이 쩍 벌어진 장용은 이게 꿈인가 싶은 얼굴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빚진 돈이 모두 은자 이백삼십만이라. 그렇다면 여기선 크게 쓴다.’
남은 은자 백만을 모두 돌려줄 생각은 없다.
남 좋은 일 하려고 그 고생을 한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여기서 확실히 은혜를 베푸는 모양새를 갖춘다면 이들이 느끼는 고마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진무립은 품에서 묵혈방에서 얻은 은자 사십만을 추가로 내밀었다.
진무립은 미안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쉽게도 놈의 품에서 나온 것은 은자 이백만이 전부였습니다. 이 돈은 본 림의 림주께서 곤경에 처한 북천도문을 도우라며 제게 주신 것입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제 시원하게 돌아설 차례다.
돈을 내려둔 진무립은 미련없는 얼굴로 일어났다.
“아, 아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난 장용은 의자에 다리가 걸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장용은 넘어진 상태에서 다급하게 손을 내뻗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돌아선 진무립은 가만히 장용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장용은 자신의 추태도 잊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소, 소공자. 정말 이 돈을 그냥 우리에게 준단 말이오?”
의와 협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세상.
그냥 삼켜도 모를 돈인데 웃돈까지 얹어서 준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진무립은 장용의 옷을 털어주며 싱긋 웃었다.
“오랜 세월 사천의 명문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온 북천도문입니다. 평소 군자도 대협의 명성을 흠모하시던 림주께서는 귀문의 불행에 안타까워하시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마음이 가벼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럼 용무를 마쳤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건 아니 됩니다!”
장용은 다급하게 문 앞을 막아섰다.
“워, 워낙 놀란 마음에 경황이 없어 은공께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습니다.”
차분히 포권을 취한 장용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북천도문의 총관 장용, 대협과 마도림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진무립도 예를 갖췄다.
“비 온 뒤의 땅은 더욱 단단해지는 법입니다. 폭풍이 휩쓸고 간 귀문에 머지않아 훈풍이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진무립의 뒤로 은은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창문을 등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데 이런 상황에선 그마저도 신비로워 보인다.
장용은 내심 감탄했다.
‘마도림이 그야말로 용(龍)을 얻었구나.’
입으로만 떠드는 사천의 여느 후기지수들과는 다르다.
혜성처럼 나타난 마도림의 소공자.
젊은 무인이 그만한 공을 세웠으면 다소 거만할 법도 한데 나무랄 데 없는 예법에선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공자. 내 직접 문주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올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문을 박차고 나간 장용의 신형이 바람같이 사라졌다.
병상에 누운 이정명은 아들의 부축에 상체를 일으켰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 낯빛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파리하고 눈 밑은 시꺼멓게 죽었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장용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마도림의 소공자가 찾아왔습니다!”
“마도림의 소공자라고?”
장용은 가쁜 호흡을 다스릴 틈도 없이 품에서 전표 다발을 꺼냈다.
“그가, 우리가 흉수에게 빼앗겼던 돈을 되찾아 왔습니다!”
“······.”
소리친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어색한 정적이 감돈다.
소문주 이환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꿈인가.”
장용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정명은 마치 앓아누운 적이 없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방을 나선 이정명이 어디론가 달려가자 하인들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서, 설마 문주께서.”
언제나 단정하고 점잖던 이정명이다.
잠자리에 들 때조차 의복을 단정히 하던 이가 산발한 머리에, 신발조차 신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달리고 있으니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이고······.”
나이 든 하인은 절망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뒤늦게 쫓아온 장용으로 인해 이정명은 간신히 신을 신고 머리를 다듬었다.
진무립 일행을 정중히 대전으로 초대한 이정명은 문 앞까지 나와서 그들을 기다렸다.
“아버지. 저분들인 모양입니다.”
이환의 손가락 끝에는 장용과 진무립 일행이 있었다.
아들이 말하지 않아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과거 초이린과 마주친 적이 있던 이정명이었기에 그녀를 쏙 빼닮은 진무립을 한눈에 알아본 거다.
한달음에 달려간 이정명은 예를 차릴 틈도 없이 대뜸 진무립의 손을 잡았다.
“은공. 고맙소. 정말 고맙소이다.”
상대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던 북천도문을 구해준 은인이다.
연장자의 체면 따위는 차릴 생각도 없었다.
이정명이 눈물까지 흘리며 연신 고마워하자 진무립은 멋쩍게 웃었다.
“예가 과하십니다. 모든 것은 제가 아닌 림주님의 뜻입니다.”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흉수를 잡은 것은 소공자라고 들었소. 소공자는 우리를 절망 속에서 꺼내준 은인이라오. 정말, 정말 고맙소.”
진무립이 준 돈은 무려 은자 이백사십만이다.
사천맹과 지인에게 빌린 돈이 이백삼십만이니 한 번에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을뿐더러 당분간 문파의 운영비까지 충당하게 되었다.
진무립은 과례라고 했으나 마음 같아선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환이 다가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북천도문의 소문주 이환이 은공께 인사 올립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아들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이정명이 눈물을 닦으며 웃어 보였다.
“경황이 없어 은공을 너무 오래 세워두었구려. 어서 안으로 드십시다. 총관은 문도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환아. 너는 차를 좀 내오너라.”
“알겠습니다. 문주님.”
“예. 아버지.”
대전에 들어선 이정명은 진무립 일행을 손수 자리로 안내했다.
연신 감사의 말을 건네던 이정명은 아들이 내온 차를 마신 뒤에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 흉악한 혈천수라를 제거했다고 들었소.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소이다.”
“그건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소공자와 같은 인재가 나타났으니 마도림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구려.”
“과찬이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진무립의 겸양에 이정명은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으로 겸손한 청년이로구나.’
진무립이 빙그레 웃었다.
“문주님을 사천 무림의 든든한 기둥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루빨리 쾌차하시어 굳건한 모습으로 다시 뵈었으면 합니다.”
“그러리다. 내 건강을 되찾으면 바로 중경부터 찾아갈 것이오.”
“본 림에 방문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구명지은이나 다름없는 은혜를 입었음에도 직접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부끄러워 어찌 고개 들고 살 수 있겠소?”
진무립이 웃으며 말했다.
“본 림을 찾아주신다면 림주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부친과 진무립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환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분이 사천맹에 있었으면······.’
만일 진무립처럼 바르고 능력 있는 인재가 사천맹에 들어온다면, 거파와 중소방파의 구분이 명확한 지금과는 다른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북천도문의 중역들이 들어와 진무립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으며 눈빛은 맑고 표정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들을 지켜본 진무립 일행은 사람들이 어찌 이정명을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이는 이정명의 가족과 납치되었던 손주들이었다.
“총관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은공께 진심으로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두 여인과 남편들이 길게 읍을 하며 예를 갖추자 어린아이들도 어설프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돌리다 용추와 눈이 맞은 여자아이가 활짝 웃었다.
“고맙습니다.”
씩 웃은 용추는 어젯밤 객잔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용맹하게 생긴 아이로구나.”
“······.”
순간 진무립 등이 뜨악한 얼굴로 쳐다보는 가운데 아이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가더니 종국엔 억울한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용맹해요?”
분명 어제 칭찬이라고 들었는데 아이의 반응이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한 용추가 다시 말했다.
“그래. 니 얼굴 용맹······.”
곁에 앉은 유대하는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용추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 하하하. 어제 먹은 술이 아직 덜 깬 모양입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용추가 유대하를 흘겨봤다.
‘칭찬이 아니었네. 이 시벌놈이.’
진무립은 차마 보지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
진무립 일행은 이정명의 요청으로 사흘을 더 머무른 끝에 북천도문을 나설 수 있었다.
북천도문의 모든 문도가 배웅을 나온 가운데 진무립 일행은 이정명이 내준 마차에 올랐다.
“이렇게 마차까지 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정명의 안색은 사흘 전에 비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밝았다.
“소공자 덕분에 팔았던 마차를 되찾아온 것이라오.”
밝은 미소를 보인 이정명이 다시 말했다.
“우리 북천도문은 오늘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마도림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달려가겠소이다.”
진무립이 듣고 싶었던 말이다.
금정무문에 이어 북천도문까지 마도림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이제 사천맹에 들어가기 위한, 그곳에서 마도림의 꿈을 펼치기 위한 초석을 쌓은 것이다.
문 옆에 앉은 진무립이 말했다.
“정말 감사한 말씀입니다. 문주님의 뜻은 서신으로 중경에 전하겠습니다.”
“부디 성도까지 편안한 여정이 되길 빌겠소이다.”
문을 닫은 이정명은 마부석을 보며 말했다.
“환아. 신경 써서 잘 모셔야 한다.”
마부석에 앉은 이는 바로 소문주 이환이었다.
어차피 사천맹이 있는 성도로 돌아가야 하는 몸, 스스로 마부석에 앉길 자처한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어서 출발하거라.”
“아버지. 다녀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정명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거라.”
***
잘 닦인 관도에 올라선 마차가 거침없이 질주했다.
낭중현에서 성도까지는 보름이 걸리는 거리.
그 먼 길을 마부도 아닌 이환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유대하는 한사코 사양하는 이환을 마차 안에 밀어 넣고 마부석에 올랐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니 마부석에 들이치는 바람이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
‘겨울인가.’
먹구름 가득 낀 하늘을 보니 눈이든 비든 뭐가 내려도 내릴 기세다.
유대하가 마차의 속도를 올리기 시작할 무렵, 마차 안에선 진무립과 이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도에 지부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까?”
“세운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방치해 온 지부를 다시 운영한다고 해야겠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진무립은 초무강이 준 낡은 문서를 꺼냈다.
문서에 적힌 곳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이환이 갑자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것이······.”
말끝을 흐린 이환은 몇 번이나 문서를 다시 살폈다.
진무립이 말했다.
“걸리는 게 있으면 속 시원히 얘기해라.”
잠시 머뭇거린 이환은 문서를 돌려주며 말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개방의 분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