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4
◈ 44화. 개방 성도분타
진무립과 동료들이 황당한 듯 쳐다봤다.
“개방?”
이환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몇 해 전부터 그곳에 눌러앉은 것으로 압니다.”
진무립이 물었다.
“개방은 중원무림맹의 일원으로 아는데 그들이 왜 성도에 분타를 만들었지?”
“사천과 다른 무림의 교류가 뜸하다곤 하나 관계를 단절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사천 주변에는 서장과 남만이 있으니 새외 무림의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겁니다.”
단려화가 물었다.
“그 분타가 왜 하필 마도림의 지부 자리인가요?”
“오랜 세월 비어있어 폐가인 줄 안 모양입니다. 그래도 개방의 체면이 있는데 문서를 보여주고 잘 설득하시면 비워주지 않겠습니까?”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거지에게 체면이 어디 있나?”
상천이 자리 잡으면서 가장 먼저 부딪혔던 것도 산채 밑까지 쫓아와 구걸하는 거지들이었다.
체면 따질 놈들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이환이 말했다.
“설마 버티기야 하겠습니까?”
“버텨도 상관없다.”
“예?”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쫓으면 그만이니까.”
***
점심나절 성문을 넘은 진무립 일행은 동문 근처의 마방(馬房)에 마차를 맡기고 거리로 나왔다.
유대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엄청나네요.”
중경도 제법 큰 도시였으나 성도의 거리는 그보다 더욱 화려하고 색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북적이는 거리엔 걸음을 내딛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시전의 가판에는 남만과 서역에서 온 상품으로 가득했다.
이환이 웃으며 말했다.
“사천의 모든 상인과 물자가 모이는 곳이라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진무립이 말했다.
“마부 노릇 하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사천맹으로 돌아가야겠군.”
사천맹 총단은 성도의 북문 밖에 있다.
아쉬운 듯 웃은 이환은 잠시 머뭇거린 끝에 입을 열었다.
“소공자. 혹시 마도림은 사천맹에 입맹할 계획이 없습니까?”
“글쎄. 아직은 모르겠군. 일단 지부의 일이 우선이니까.”
굳이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이환은 아쉬움을 삼키며 예를 갖췄다.
“저는 사천맹의 철검대에 있습니다. 소공자께 큰 도움을 드릴 위치는 아니지만 불러주신다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진무립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작별인사는 짧을수록 좋아. 어서 가라.”
“예.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이환이 돌아서자 진무립은 유대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수중에 든 돈이 무려 은자 팔십만이다. 별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사천맹까지 함께 다녀와라.]행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북천도문에 조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유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환을 따라갔다.
이환과 헤어진 진무립은 성도의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느끼며 중앙 대로에 접어들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도가 처음이었던 단려화는 신기한 듯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부는 서북쪽이라고 했었죠? 바로 갈 거예요?”
그녀가 살아온 화령도는 장강의 작은 섬.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항상 따라다니며 눈치를 주던 연소정까지 없으니 내심 조금 더 구경하고 갔으면 싶은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아이 같은 모습에 진무립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단려화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간 따라다니며 얻어먹기만 했으니 오늘 하루는 내가 내겠어요. 따라와요.”
그녀는 곧장 진무립과 용추를 인근 포목상으로 데려갔다.
촉금(蜀錦)으로 불리는 사천의 비단과 촉수(蜀繡)라고 일컫는 자수는 천하일품으로 유명하다.
기껏 성도까지 왔는데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것저것 옷을 집어 든 단려화가 두 사람에 맞춰보자 용추는 탐탁지 않은 듯 물었다.
“뭘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똑같은 옷 두 벌로 대체 언제까지 버틸 거예요? 두 사람은 마도림의 얼굴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그녀의 부친 단소룡도 진무립처럼 소탈한 성품이었으나 밖에 나갈 땐 황제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마차를 탄다.
화령을 대표하는 자신이 허름하게 다닌다면 부하들의 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용추의 가슴을 쿡 찔렀다.
“잘 버티면 먹고 싶은 건 다 사줄게요.”
용추는 그제야 미소를 되찾았다.
“한 시진까지는 견뎌보겠습니다. 그 약속 어기면 안 됩니다.”
“난 아버지 닮아서 내뱉은 말은 꼭 지키니까 걱정 말아요.”
계절에 맞춰 두꺼운 흑색 무복을 손에 쥔 그녀는 진무립에게 다가갔다.
“이상하게 검은색이 잘 어울리네. 사람이 어두워서 그런가?”
진무립은 헛웃음을 흘렸다.
“비싸 보이는데?”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잊었어요?”
은자 십만을 전표로 들고 다니는 여인은 천하를 뒤져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당우의 돈이었지만.
진무립의 무복을 고른 그녀는 용추에게 값비싼 자색 무복을 선물했다.
자리에 없는 유대하를 위해 같은 색 무복을 구입한 그녀는 인원에 맞춰 두꺼운 회색 장포까지 샀다.
“여기 자수도 가능한가요?”
무려 은자 백 개를 한 번에 지불한 그녀의 질문에 상인은 황송하듯 굽신거렸다.
“물론입죠. 어떤 문양으로 해드릴까요?”
그녀는 진무립이 가져온 여벌 옷을 보여주며 마도림의 표식을 주문했다.
하인이 장포를 들고 내실로 들어가자 진무립이 물었다.
“그대의 옷은?”
“저는 장포만 하나 있으면 돼요.”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겠지.”
진무립은 그녀에게 어울릴 듯한 하늘색 무복과 붉은빛의 화려한 궁장을 하나씩 골랐다.
단려화는 마음에 드는 듯 빙그레 웃었다.
“사내에게 옷 선물은 처음 받아보네요.”
값을 치르고 돌아선 진무립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여인에게 옷을 선물 받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옷을 찾은 그들은 곧장 지부로 향했다.
오후의 태양이 기울어가고 있음에도 거리 가득한 사람은 줄어들 줄 몰랐다.
“아직도 사람이 많네요.”
단려화의 말에 용추가 질린 듯한 얼굴로 말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봅니다.”
식사할 때도 어딜 가나 손님이 꽉 찬 탓에 객잔을 무려 세 번이나 옮겨야 했다.
진무립이 말했다.
“지부를 확인하고 와서 숙소부터 잡아야겠군.”
“그게 좋겠어요. 밤에 깊으면 아마 잠잘 곳을 찾기 힘들 거예요.”
열 십(十)자로 이어진 중앙 대로를 벗어나자 조금은 한적한 거리가 나타났다.
목적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개방의 분타를 찾으면 되었으니까.
한참 걸어간 끝에 좁은 골목을 벗어나자 개방의 현판이 걸린 장원이 나타났다.
그래도 보수를 한 모양인지 담장은 제법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이 층 전각의 지붕이 살짝 보였다.
젊은 거지 하나가 문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가운데 발을 멈춘 진무립은 단려화에게 물었다.
“개방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화령도 옆의 대치현에도 분타가 있어요. 섬에도 과거 천하대전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이들이 이따금 찾아오기도 했고요.”
“내가 보기엔 문서를 보여주고 비워달라고 해도 응하지 않을 것 같군. 그대 생각은?”
“그래도 개방인데 예를 갖추면 비워주지 않을까요?”
그녀가 아는 대치현의 거지들은 그래도 예를 아는 이들이었다.
단소룡의 성격을 아는 개방이기에 거지를 선별해 배치한 까닭이다.
진무립은 이번엔 용추를 쳐다봤다.
“네 생각은 어떠냐?”
코를 후비적거리던 용추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가서 치울까요?”
“······됐다.”
물어본 게 잘못이다.
진무립이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내기하지. 나는 비워주지 않는다. 그대는 비워준다. 지는 쪽이 당분간 머물 숙박료를 지불하는 거야.”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요. 대신 예를 갖춰야 해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바른 청년인지 잘 알잖아?”
성큼성큼 걸어간 그들은 지부의 정문 앞에 멈췄다.
“실례합니다.”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졸고 있던 젊은 거지, 개방의 삼결제자 동초개는 목소리가 들린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졸고 있던 동초개는 목소리가 들린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누구······.”
용추를 보고 순식간에 잠이 달아난 동초개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감히 개방의 분타를 넘보느냐!”
용추가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언제?”
진무립이 앞으로 나서며 예를 갖췄다.
“본의 아니게 소협을 놀라게 한 모양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초개는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시벌. 드럽게도 드럽게 생겼네. 깜짝 놀랐잖아.’
멋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한 동초개는 진무립을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이놈은 뭔 사내가 이렇게 곱지.’
눈이 번쩍 뜨일 미남자와 산적을 방불케 하는 사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졌다.
동초개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진무립은 매우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저는 마도림의 무인입니다. 분타주를 뵙고자 하는데 안에 계시는지요.”
“마도림?”
고개를 갸웃했던 동초개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혹시 그대가 마도림의 소공자?”
이런 미남자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마도림에서 왔다고 하니 최근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진무립부터 떠오른 거다.
‘개방은 개방이군.’
진무립은 웃으며 말했다.
“예. 제가 진무립입니다.”
“분타주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만나 뵙고 논의할 일이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보십쇼.”
안으로 들어간 동초개는 머리털과 수염이 불그스름한 중년 거지를 깨웠다.
“분타주님.”
단잠에서 깬 적모개가 눈을 비비며 고개 돌렸다.
“밥 시간이냐?”
“아닌데요.”
“그럼 왜 깨워. 거지새끼야.”
“······.”
틀린 말은 아닌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동초개는 돌아눕는 적모개를 다시 흔들었다.
“그만 일어나요. 손님이 왔다니까요.”
“거지소굴에 올 손님이 어딨어?”
“마도림의 소공자가 왔습니다.”
“뭐?”
머리를 벅벅 긁은 적모개는 마지못해 상체를 일으켰다.
“왜 왔대?”
“그건 모르지요.”
“내가 무슨 개나 소나 찾아오면 다 만나주는 거지새끼······ 로구나. 데려와라.”
“······.”
“어서.”
“가요. 가.”
밖으로 나간 동초개가 잠시 후 진무립 일행을 데려왔다.
분타주의 방에 들어선 진무립은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들어와서 보니 형편없군. 허물고 다시 지어야겠어.’
구멍 난 벽과 무너진 지붕은 대충 판자로 덧댔을 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진무립은 속내를 감추고 예를 갖췄다.
“마도림의 진무립입니다.”
적모개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문으론 입이 걸고 광오하다고 들었는데 대체 뭐가 맞는 소문이야?’
마도림이 중경을 장악한 후 그곳에 다녀온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쨌든 더없이 정중한 포권지례에 적모개는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타주 적모개요. 무슨 일로 오셨소?”
“개방과 본 림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싶어 그것을 해결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오해라니요?”
진무립은 품에서 초무강이 준 낡은 문서를 꺼냈다.
“사정이 있어 비워두긴 했으나 이곳은 오래전부터 우리 마도림의 장원이었습니다. 정의롭기로 유명한 개방의 형제들께서 알고도 이곳에 들어온 것은 아니겠지요. 하여 지금이라도 오해를 풀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으면 합니다.”
적모개는 진무립이 내민 문서를 받아들었다.
‘우라질. 설마 했는데.’
이곳이 오래전 마도림의 지부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경을 되찾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장원을 돌려받겠다고 올 줄은 몰랐다.
‘이대로 나갈 순 없지.’
이 겨울에 쫓겨난다면 자신은 몰라도 이결 이하의 제자들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적모개가 변명 거릴 생각하는 가운데 옆에 앉아있던 동초개가 눈치 없이 말했다.
“어? 이거 진짜네.”
“가만 좀 있어. 자식아.”
동초개를 밀쳐낸 적모개가 문서를 돌려주며 말했다.
“이곳이 오래전 마도림의 장원이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소.”
“하면 비워주시겠습니까?”
적모개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뻔뻔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소이다.”